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77화 (177/203)

< 177화_스트리트파이트 >

1.

“그래?”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는 말에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안 코치님.

이러니저러니 해도 팀 피스트의 수석 코치로서 안형석 코치님은 매일 우리 모두의 훈련 스케줄과 진행 과정들을 직접 챙기셨다.

한마디로 내 현재 상태와 목표치. 그리고 그 과정까지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을 거라는 거다.

한마디로 요즘 훈련 어떻냐는 말은 그냥 ‘열심히 하라’는 말의 기출 변형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됐다.

“아. 그리고. 필승이한테 혹시 이야기 들은 것 없어?”

“네?”

“필승이 올해도 스트리트 파이트 나가잖냐.”

“아아. 이번에도 메인 코치로 나간댔죠?”

작년에도 필승 형이 한 번만 우정 출연해달라고 사정 사정을 했었는데 시합 일정 때문에 결국 부탁을 못 들어줬었다.

시합 준비 중에도 잠깐 시간을 내어 출연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시합 준비 자체를 미국에서 했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지.

“작년에 상대 코치한테 졌잖냐. 올해는 자기 팀이 우승할 거라고 벼르고 있더라.”

벌써 필승 형이 우리 체육관에 온지도 몇 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필승 형을 탐탁지 않아 했던 안 코치님도 이제는 필승 형을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

“훈련에 지장 가지 않으면 한번 나가줘라. 전두형 대표랑 최창우 선수도 부탁한다고 연락 왔더라.”

“전두형 대표요?”

스트릿 FC의 전두형 대표라.

뭔가 되게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그래도 별로 그립거나 그러진 않는데.

“이번에 한국에서 라무차와의 방어전을 치른다는 기사가 나면서 스트릿 FC도 활기가 조금 도는 모양이야. 안 그래도 요즘 한국 격투기가 붐인 데다 전 세계 격투기 팬들의 이목이 한국으로 몰리고 있으니까.”

안 코치님의 말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긴. 전두형 대표도 전형적인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지.

“나쁠 거 없을 거다. 어설픈 예능 프로그램 나가는 것보다 격투가로서 전문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일 테니까. 방송국이랑 전 대표도 생각이라는 게 있다면 전부 해서 너한테 맞춰줄 거고.”

“하하. 일단 필승 형이랑 이야기해볼게요.”

“그래.”

그렇게 안 코치님과의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는 길.

“어? 해서야. 이제 나오는 거야?”

누가 봐도 어색한 타이밍에 어색한 말투로 말을 걸어오는 필승 형이었다.

“네? 네. 한창 훈련하다 미팅한 거라 빨리 가서 보충 훈련해야 하는데. 빠듯하네요.”

“아... 바빠?”

“바쁘죠. 그럼. 미팅한다고 20분은 날린 것 같은데. 몸도 식었고. 한 시간은 넘게 보충해야 할 것 같아요. 아씨.”

“어... 그, 그래. 훈련하다 끊기면 좀 그렇지. 하하.”

“진짜. 시합 전까진 체육관에 딱 틀어박혀서 훈련만 해야겠어요. 안 그래도 안 코치님한테 시합 때까지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게 다른 인터뷰나 이런 거 다 거절해달라고 했어요.”

일부러 바쁜 척. 훈련이 도중에 끊겨서 짜증 나는 척을 했더니 눈에 띄게 당황하는 필승 형이었다.

“...그렇구나? 혹시 안 코치님이 내 이야기는 뭐 안 하디?”

“네? 형 이야기요?”

“아, 아니다. 가자. 훈련해야지.”

“넵.”

결국, 하려던 말을 속으로 삼키고 마는 필승 형.

"아!"

나는 체육관으로 옮기던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안 코치님이 그 말은 하더라구요. 그... 뭐냐. 전두형 대표가 스트리트 파이트에 한 번 출연해달라 했다고."

"그래?"

전두형 대표와 스트리트 파이트가 언급되자 바로 반색하는 필승 형.

그런데 어쩌지? 미안하지만 형이 생각하는 말을 해줄 생각이 없는데.

"그 대표도 참 양심 없지. 형도 알잖아요? 저랑 전두형 대표랑 별로 편한 사이 아닌 거? 최창우도 그렇고?"

"그, 그렇지."

"그런데 이제 사람 좀 떴다고 막 친한 척하려 하고. 사람이 말이야. 그런 거 보면 좀 별로지 않아요? 자기 아쉬울 때만 그러는 거?"

"...그래도 예전에 스트리트 파이트 부산 오디션에도 깜짝 출연하고 했잖아? 그때 좀 푼 거 아니었냐?"

"에이. 그 정도 앙금이 그렇게 쉽게 풀리나요. 형도 잘 알면서. 아! 형은 최창우나 전두형 대표랑도 친하죠? 이런 이야기 하면 불편하려나?"

"음... 아니다. 괜찮...아."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이 축 처진 필승 형.

그러니까 평소에 제 뒤통수를 적당히 때리셨어야죠.

"가요. 사람들 기다리겠다."

"그래..."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는 필승 형.

내가 너무 심했나 싶었다.

“양심도 없는 사람들. 내가 진짜 필승 형이 부탁했으면 고민이라도 해보겠지만 전두형 대표나 최창우가 부탁하는 거면 고민할 거리도 아니지. 안 그래요?”

“어?”

“형이 부탁하면 고민은 해본다고요.”

“...너. 다 들었지? 안 코치님한테?”

“뭘요? 형이 스트리트 파이트에 저 출연시키는 거 안 코치님한테 허락받은 거요?”

-빡!

“이 새끼가 다 알면서 형을 놀려?!”

“아! 또 때렸어! 안 나가! 절대 안 나가!”

“헙!”

순간 빡쳤는지 내 뒤통수를 때렸다가 그제서야 현실 파악이 됐는지 입을 틀어막는 필승 형이었다.

*

“형. 나 드링크좀.”

한창 훈련하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에너지 드링크를 찾았다.

“어! 여기! 시원하게 준비해놨지!”

그러자 시원하게 준비된 드링크를 대령하는 필승 형.

“이거 너무 차가운 거 아니에요? 너무 차가우면 흡수율도 떨어지고 대사량도 떨어뜨리는데.”

“...후우.”

“어? 지금 한숨 쉬신 거?”

“아니! 아니지! 너무 차가우면 가서 살짝 데워올까? 미지근하게?”

“흐흐. 됐어요. 갈증 났으니까 그냥 마실게요.”

“...”

요즘 이 맛에 체육관에 나온다.

훈련은 여전히 지옥 같지만, 고통을 분담할 필승 형이 있으니까.

“필승 코치님이랑 해서 선배님 무슨 일 있어요?”

“필승 형 스트리트 파이트 촬영하는데 해서가 스페셜 코치로 하루 출연해주기로 했단다. 아마 이번 주 목요일까지는 계속 저럴 거다.”

“아아...”

저 뒤쪽에서 태양이와 창섭 형의 대화가 들렸지만 별로 신경 쓰이진 않았다.

창섭 형은 나중에 뒷감당 되겠냐고 했지만 일단 지금이 즐거우면 상관없었다.

“그런데 해서야. 목요일... 알지?”

“목요일 뭐요?”

“너 이 샊... 하하. 스트리트 파이트 촬영 말이야. 안 코치님한테도 다 허락 맡았고 두호 형이나 다른 코치들한테도 다 말 해뒀어.”

“아. 맞다 맞다. 그런데 제가 지금 훈련하다가 무리를 했는지 어깨가 좀 결려서요. 그날 촬영 갈 수 있으려나. 쉬면서 컨디션 회복해야 할 것 같은데?”

“...뭐?”

“누가 어깨 좀 주물러주면 컨디션 회복이 빨리 될 것 같기도 하고...”

“...”

이번엔 주먹 쥔 손까지 부들부들 떠는 필승 형.

내가 너무 심했나? 드디어 폭발하나? 싶은 순간이었다.

-주물 주물.

“여기냐? 어후. 꽉 뭉쳤네. 내가 현역 때부터 근육 마사지 잘했어. 어때. 좀 풀리는 것 같지?”

“...”

생각보다 이 형은 참을성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2.

5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

매주 목요일마다 정기 훈련과 촬영을 하는 ‘스트리트 파이트 파이팅 어게인’ 은 이전의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재야의 고수나 갓 격투기에 입문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 ‘운동 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파이터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방향의 취지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은 제가 아주 특별히! 아주 엄청난 스페셜 코치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스트리트 파이트:파이팅 어게인’의 필승 팀을 이끌고있는 박필승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팀원들 앞에서 한껏 콧대를 세우고 있었다.

‘내가 진짜. 오늘을 위해 쓸개를 씹어먹는 심정으로 버텼다.’

속으론 이를 갈면서도 강해서의 비위를 맞추길 근 일주일.

드디어 오늘 촬영장까지 WFC 3체급을 석권한 현재진행 중인 전설을 데리고 올 수 있었다.

“브로일러 미들급 챔피언. WFC 미들급 챔피언.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헤비급 챔피언. 프로 데뷔 이후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는 전 세계가 경악한 파이터! 팀 피스트의 강해서 선수를 모셔보겠습니다!”

그리고 박필승의 스페셜 코치 소개가 이어지는 순간 정말 놀랐다는 듯 입을 쩌억 벌리기 시작하는 스트리트 파이트 도전자들.

“헐! 대박!”

“진짜? 진짜 강해서 선수님 오신다고?”

“진짜 나와? 뻥 아니야?”

“라무차랑 8월 시합 아냐? 오실 수 있나?”

도전자들은 못믿겠는지 카메라도 신경쓰지않은채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 새끼는 왜 안나와?’

그리고 박필승 또한 거창하게 소개를 했는데 나오지 않는 강해서 덕분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저벅 저벅.

쿠션감 있는 체육관 바닥에서도 느껴지는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진짜 강해서의 등장.

“와! 강해서 선수다!”

“저 진짜 팬이에요!”

“와씨. 나 안 떨어지길 잘했어! 강해서 선수랑 같이 훈련을 하다니.”

“저 사진. 사진 찍어도 돼요?”

어느새 메인 코치인 박필승은 뒷전이고 강해서 앞으로 몰린 채 어미를 본 아기 새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보내는 도전자들이었다.

-휙. 휙.

그 와중에도 카메라를 신경 쓰는 박필승.

“...”

하지만 카메라들도 하나같이 강해서를 향해 돌아선 상황.

박필승을 찍는 카메라는 단 한대도 없었다.

“망할...”

그래도 오디오는 물려있었는지 나직한 필승의 욕설에 음향 감독이 NG라는 듯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손을 젓고 있을 뿐이었다.

*

-합!

-흐압!

-쿠웅!

-철컹!

-팡! 펑 펑!

여기저기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기합성이 울려 퍼지는 체육관.

“다들 초보가 아닌데요?”

“이번 시즌 부제가 파이팅 어게인이니까. 다들 투기 종목 경험이 있고 선수 생활이나 프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야.”

“아아...”

“생활고나 제대로 된 기회를 잡지 못해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경력자들에게 좋은 무대를 만들어주는 게 이번 시즌의 취지지.”

강해서는 이번 시즌 스트리트 파이트 출연자들을 보며 필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취지는 좋네요.”

6명 남은 필승의 팀원들은 강해서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아니, 격투기계에서 강해서라는 이름이 가지는 위상은 복싱의 카이서스와도 맞먹는 수준이었으니까.

-퍽! 퍼퍽!

그리고 케이지 안에서 스파링을 펼치고 있던 출연자와 필승 팀의 코치인 스트릿 FC의 프로 파이터.

“너무 막 들어가는데. 왜 저런건 뭐라 안 해요?”

“응?”

“저기 도전자. 너무 막 들어가잖아요.”

강해서는 받아주는 스파링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필승에게 물었다.

케이지 안에서는 강해서의 말대로 스트리트 파이트의 도전자가 달려들듯 프로 파이터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

그리고 그걸 본 필승은 그저 한숨을 쉴 뿐이었다.

“WFC랑 여기는 수준이 달라. WFC에서는 잘못된 플레이가 맞는데. 여기선 아주 틀린 답은 아니거든.”

“...저게요?”

강해서는 놀랍다는 듯 반문했다.

저렇게 무지성으로 달려들면 펀치를 날리다 거리가 붙으면 몸싸움을 한다? 그리고 테이크다운으로 가져간다?

WFC였으면 무지성 타격으로 달려드는 순간 거리를 좁히는 건 고사하고 활짝 열린 정면을 두들겨 맞을 터였다.

“저렇게 달려들어도 제대로 클린 히트시키질 못하니까. 어설프게 한두대 맞는 것보단 저렇게 휘두르는 펀치에 얻어걸리면 이득이고 펀치 못 맞춰도 몸싸움 들어가서 그래플링으로 끌고 가면 유리하니까.”

“흐음...”

“정 그러면. 해서 너가 한번 보여줘라. 안 그래도 팀원들도 네 실력 좀 보고 싶어 하던데.”

“제가요?”

“그래.”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강해서의 지도 스파링.

물론 스트리트 파이트 제작진 입장에서도 강해서의 스파링 영상이라면 무조건 대박이라는 생각에 거절은커녕 적극적으로 판을 만들어주었다.

-툭. 툭.

입고 왔던 옷 그대로 갈아입지도 않은 상태에서 스파링용 글러브만 착용한 강해서.

“후우. 후우...”

그리고 반대편에서 긴장한 채 스파링을 준비 중인 선수는 스트리트 파이트 ‘필승 팀’의 코치이자 스트릿 FC 웰터급 랭킹 1위인 박해솔 선수였다.

“와. 강해서 선수의 스파링이라니.”

“근데 체급 차이 너무 나는 거 아냐?”

“어차피 스파링인데 뭐. 그리고 미들급이나 라이트 헤비급 코치나 나갔다간 아무것도 못 할걸? 차라리 빠른 박해솔 코치님이 나을 거야.”

“하긴. 해솔 코치님이 빠르긴 하니까.”

웰터급에서도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는 박해솔 선수.

스파링을 구경하는 도전자들과 다른 사람들도 강해서라는 살아있는 전설이 경량급의 재빠른 선수를 상대로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관심을 집중했다.

“맞으면서 잡겠지.”

“일단 잡히면 끝이지. 체급이 있으니까. 계속 치고 빠져야 해.”

“스피드에선 당연히 우세하니까. 어차피 스파링인 거 데미지 안 들어가더라도 많이 때리기만 해도 이득이지.”

경량급의 스피드를 상대로 헤비급 파이터가 보여주는 경기 운용. 모두가 그걸 기대하고 있었다.

‘아니지. 내가 그런 걸 보여주려고 해서를 데려온 게 아니지.’

단 한 명. 박필승만 제외하고.

-삐

신호음과 시작된 스파링.

-통. 통. 스슥!

가볍고 경쾌한 스피드와 함께 강해서의 주변을 둥글게 도는 박해솔 선수.

-쉬잇!

가볍게 견제용으로 왼손 잽을 뻗어보았다.

체중만큼이나 신장과 리치 차이도 컸기에 힘보다는 스피드를 최대한으로 높여 말 그대로 견제만 하고 빠지려는 의도.

하지만

-후웅!

가볍게 박해솔의 펀치를 피해내고는 순식간에 그의 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강해서.

-휘이이익! 툭.

그리고 박해솔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회수되는 펀치 사이드에서 툭 하는 감각과 함께 그의 복부에 닿은 강해서의 오른손 글러브.

“... 헤비급이 뭐 저렇게 빨라?”

한 도전자의 얼떨떨한 반응.

스트리트 파이트에서 처음으로 선보여지는 강해서의 스피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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