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75화 (175/203)

< 175화_최고의 파이터 >

1.

-강해서♡손아름. 결혼 초읽기?

-상견례 준비 중. 손-강 커플!

-이달의 뮤지션에 선정된 밴드 ‘챔피언’은 누구?

-엘리와의 스캔들? 아니다. 손아름과 결혼 준비 중. 한국이 낳은 파이터 강해서!

-세계를 제패한 사나이 강해서. 그와 손아름의 연애 스토리는?

-WFC 라이트 헤비급 잠정 챔피언에 등극한 빌리. ‘진정한 라이트 헤비급의 챔피언을 가리고 싶어.’

└둘이 잘 사귀고 있었네 ㅊㅋㅊㅋ

└갓해서와 손아름님은 킹정이지. 너무 잘 어울림!!

└와... 개부럽다 진짜. WFC 최초 3체급 챔피언인데 아침에 눈 뜨면 손아름이 자고있어ㄷㄷㄷ

└해서 형... 혹시 지금 누군가로부터 협박을 당하고 있다면 당근을 외쳐줘!!

추측성 기사는 자제해달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이미 인터넷 뉴스 연예란에는 하루 만에 나와 아름이의 기사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물론 스포츠란에도.

“상견례 날짜 잡고 있다고 했다며? 그런데 무슨 추측성은. 기자들이 팩트만 말 했구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자리.

스마트 폰으로 기사들을 보고 있자니 재현이 놈이 태클을 걸어왔다.

“해서야. 이해해라. 재현이 쟤 요즘 까칠하다.”

“왜?”

“솔로의 마음을 우리가 어찌 알까.”

준현이와 기태. 그리고 재현이까지.

항상 뭉치는 친구들 중 외모로만 봤을 때 가장 봐줄 만한 건 재현이였다. 아! 물론 나는 빼고.

“하. 살다 살다 준현이한테 이런 소리를 듣다니.”

하지만 지금 좌절에 빠진 것도 재현이였다.

준현이는 영은 씨와 여전히 잘 만나고 있었고 우리처럼 결혼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기태는

“이번에 유나 TV 나간다며?”

“어? 어. 해서 네 덕분이지.”

의외로 기태가 유나와 뭔가 썸씽이 있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부산 해운대 휴가 이후 자주 연락하고 지냈던 건 알았는데 작년에 일을 그만두고 밴드 생활을 하면서부터 부쩍 가까워진 듯했다.

유나야 알아주는 홍대피플이었고 공연이나 트렌드에 빠삭했으니까.

“치사한 새끼...”

“내가 뭐.”

“유나랑 사귀면 저주할 거다.”

“...”

“이미 한번 까였... 읍! 읍!”

술에 취한 건지 아니면 취한 척을 하는 건지. 재현이는 모두까기 포지션을 잡고 친구들 모두를 까기 시작했다.

“재현이 넌 살 좀 빼. 웨딩촬영도 그 몸뚱이로 할 거냐?”

“해서 너는... 어휴. 됐다. 지 등에 붙은 스티커도 못 떼는 새끼.”

어휴. 이 가련한 놈.

“악! 악! 항복! 항복!! WFC 챔피언이 일반인 잡는다!”

“스티커 떼.”

“떼 줄게! 떼 줄게! 뗐어!”

꼭 고통을 줘야 말을 알아먹는다니까.

“너도 연애 좀 해라.”

“나라고 안 하고 싶겠냐?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 안 하냐?”

괜히 신경 쓰이는 재현이 놈.

아무래도 나나 준현이 기태는 나름대로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데 재현이만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해 더욱 신경이 쓰였다.

“어쭈? 해서 이 새끼. 챔피언 먹었다고 아주 괘씸한 생각을 하네?”

“괘씸하기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회사 때려치우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라.”

“회사 때려치면? 너가 먹여 살리게?”

“나 돈 많다? 매니저가 필요하긴 해. 우리 팀 말고. 내 개인 매니저.”

사실 작년쯤부터 재현이에게 제안은 했었던 일이었다.

격투기 스케줄 외에도 병원 검진이나 방송 광고 스케줄 등 내 개인적인 업무를 전담해줄 매니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창섭 형이나 태양이를 끌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팀 피스트와의 매니지 계약은 ‘격투기’에 국한되어 있었으니까.

“야. 해서야.”

“엉?”

“지난번엔 그냥 웃으면서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이 엉아가 꼬장을 좀 부릴 테니까 기분 나쁘지 않게 들어라.”

“...뭐래?”

술 먹다가 갑자기 정색하는 재현이 놈.

“네가 내 생각해 주는 건 고마워. 그런데 난 내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성과도 마찬가지고. 너나 준현이 기태가 꿈을 좇아 사는 거. 되게 멋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너희랑 같은 건 아니야.”

“...”

“나처럼 별달리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면서 소소한 취미에 만족감을 찾는. 모두가 꿈을 좇아 살아야 한다는 것 명제 자체가 나한테는 오히려 감정노동을 시킨다고.”

“...그래.”

재현이의 말을 들어보니 약간 강요 아닌 강요를 했던 것 같았다.

내가 뒤늦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거기서 성공했다고 해서.

준현이나 기태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해서.

그것들이 재현이도 억지로 새로운 직업을 찾거나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날 위로하려면 그냥 돈으로 주든지 아니면 한정판 피규어들을 구해와라.”

“...아. 꺼져.”

잘 나가다가 꼭 이상한 데로 말이 새는 재현이 놈.

하긴. 이놈은 항상 이랬다.

친구들과 미팅을 나가더라도 항상 먼저 주목을 받고는 마지막에 일부러 이상한 말을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스타일.

좋은 이미지. 칭찬에 약한 편이라 언제나 마지막엔 스스로 그 이미지를 지우려 하는 놈이 재현이였다.

“...갖고 싶은 거 있냐? 뭐. 피규어?”

“어? 어! 이번에 수제 피규어 한정판으로 나온 게...”

그리고 진성으로 서브컬쳐에 빠져있는 오타쿠 놈.

“그나저나. 너희 상견례는 언제 한다고?”

재현이의 취미 관심사에 관한 주제가 한번 지나고 나니 이제는 본론인 나와 아름이의 결혼 쪽으로 이야기가 넘어왔다.

“봄 안에 하려고. 4월달 안에?”

“되게 빠르네.”

“이왕 하기로 한 거. 그냥 빨리 해치워 버리게.”

아름이와 나는 어차피 전 국민이 알고 있는 공개 연애 중이었다.

이번에 상견례를 준비하고 있으며 결혼을 계획 중이라는 인터뷰까지 했으니 더 질질 끌 것도 없다는 게 아름이의 의견이었다. 나 또한 그에 동의했고.

“우리 중에 제일 먼저 가는 건 해선가? 난 내가 제일 먼저 갈 줄 알았는데.”

“우와... 김준현 저 새끼 입에서 저 대사가 나올 줄이야.”

나보다 먼저 결혼 이야기가 나왔던 준현이의 한마디에 재현이는 다시 한번 꼬장이 폭발했다.

어휴. 측은한 새끼.

“그러면 해서 너 프러포즈는 했냐?”

“엉?”

안 그래도 그걸 요즘 고민하고 있었다.

프러포즈.

정말 앞이 막막하다. 나도 한때는 웹 소설 작가였는데 이렇게나 창의력이 빈곤할 줄이야.

“이 새끼. 안 했네 안 했어. 에라이! 고추 떼라!”

“거기서 그게 왜 나와?”

“악! 악! 죄송! 죄송!”

준현이에게 꼬장 부리다가 타깃을 나로 바꾼 재현이를 한 번 더 눌러준 다음 준현이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걸 질문했다.

“야. 넌 프러포즈했냐?”

“놉.”

“...그래.”

하긴. 준현이가 프러포즈했다면 우리가 모를 리가 없지.

“너네. 숙제다. 각자 흔하지 않고 감동적인 프러포즈 이벤트 10개씩 생각해서 이번 주까지 톡 보내.”

어쩔 수 없이 난 친구 놈들에게 프러포즈 아이디어 자문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앗지랄.”

“뭐래? 미쳤나봐.”

“놉. 꺼지삼.”

차례로 기태와 재현 준현이의 대답.

어찌 된 게 단 한 명도 오케이 하는 놈이 없는지 원.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되면 아이디어 하나당 10만 원. 그중에 프러포즈 이벤트로 낙찰된 아이디어 낸 사람한테는 상금 100만 원 추가.”

“콜.”

“내가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하려고 생각해둔 프러포즈 아이템이 있는데...”

“야. 내가 PPT로 만들어서 보내줄게. 이 엉아만 믿어라.”

이번에는 준현이와 기태 재현이 순서로 득달같이 콜을 외치는 놈들.

근데 프러포즈 이벤트. 진짜 이놈들만 믿어도 될까 싶었다.

*

“더! 더 움직여!”

“으아아악!!!”

일상으로 돌아온 지도 한참.

어느덧 차가운 북풍이 가시고 간간히 따뜻한 춘풍이 부는 계절이 되었다.

“할 수 있어!”

“악!”

나는 정말 이곳이 지옥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고된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다.

“오케이. 잠깐 쉬자.”

“후욱. 후욱...”

두호 형의 스텝진 합류와 함께 내 전담 스트렝스 팀도 약간의 인원 조정이 있었다.

“넌 진짜 축복받은 놈이야. 이런 몸뚱이라니...”

보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내 몸뚱이에 맞는 근력 훈련 스케줄을 짜기 위해서였다.

“아마. 네 체급에서 너만큼 빠른 선수는 없을 거다.”

“하하. 그럴까요?”

“장담하지.”

두호 형은 지도자 준비를 꽤나 예전부터 해왔던 것 같았다.

물론 한국이라는 격투기 불모지에서 훈련하며 스스로의 훈련 스케줄을 짜기 위해 공부했던 것들이 지도자의 포지션에서 빛을 발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이 있지? 꺽다리. 혹은 키만 큰 쭉정이.”

“네? 어... 네. 들어본 것 같아요.”

“실제로. 키가 크면 클수록 움직임이 굼떠진다. 그냥 보이는 것만 느려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느려져.”

“... 그런가요?”

“그래. 체급이 낮은 선수들이 더 빠른 게 단순히 몸무게가 작게 나가서만은 아니란 거지.”

그쪽으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사람의 몸은. 그러니까 인간형 체형은 가질 수 있는 한계라는 게 있다. 유인원이든 사람이든 학술적으로 3-4미터 이상의 크기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인터넷 보면 막 거인 유골이다 뭐다 해서 엄청 큰 사람 뼈도 있고 하던데. 3-4미터를 넘길 수 없다고?

“인간형의 육체를 가지고 신장이 3-4미터를 넘어가면. 상체의 질량 부피 밀도를 하체의 근육이 지탱할 수가 없다는 게 정론이야.”

“어려워요. 쉽게.”

“한마디로. 덩치가 커질수록 몸을 지탱하는 근육이 과부하가 걸린다는 거야. 그래서 덩치가 커지고 무게가 많이 나가면 몸이 굼떠지지.”

“아하.”

것 봐. 쉽게 말하니까 얼마나 좋아.

“보통은 그렇다. 3미터 4미터까지 갈 것도 없어. 2미터 부근의 헤비급 파이터들만해도 스텝이나 핸드 스피드가 경량급 선수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120키로 헤비급 파이터와 60키로급 경량급 파이터는 단순히 몸무게만 보면 2배 차이지?”

“네.”

“그러면 상체만 놓고 보면 몇 배 차이가 날까? 똑같이 2배일까?”

“어... 글쎄요?”

“개인차는 있겠지만 상체 무게는 60키로급 선수보다 120키로급 선수가 3배 이상 나가게 된다. 그런데 하체 근육이 내는 파워는 60키로급 선수보다 120키로급 선수가 3배 이상 증가하지는 않지.”

“아...”

“거기서 오는 차이가 움직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움직임을 위해 근육을 키우다 보면 그 근육 때문에 오히려 기동성이 더 떨어지는 거고.”

그래서 영화 같은데 보면 거인들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거였나?

그냥 작은 사람의 시점에서 봐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어쨌든. 해서 너도 사람인 이상 그 제약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월등히 유리해.”

“제 근섬유가... 얇아서요?”

“그렇지.”

지난 신체검사에서 알게 된 내 근육의 비밀은 근섬유의 굵기가 평균치보다 훨씬 얇고 섬유의 개수가 고강도 트레이닝을 통해 변화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해서 너라면 가능해. 체급을 뛰어넘는 움직임.”

“대신 이 족... 아니 지옥 같은 훈련을 계속 해야 하구요...”

“그래. 이렇게 굴러도 아직 한번도 문제 생긴 적 없지?”

“...그렇긴 하죠.”

이놈의 몸뚱이는 어찌 된 건지 탈도 잘 나지 않았다.

부상도 없었고 그 흔한 근육 손상이나 염증반응 같은 것도 없었다.

어릴 적부터 유독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 편이긴 했지만 내 몸이 이렇게나 튼튼했다니...

“생각해봐라. 헤비급 체급과 파워. 거기에 경량급 스피드와 순발력을 가진 파이터를. 거기에 네가 가진 그 집중력과 인지능력이면...”

답지 않게 횡설수설하듯 말을 길게 늘이는 두호 형.

“네가 최고다. 해서야. 다시는 없을 최고의 파이터가 될 거야.”

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불안하게 또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두호 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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