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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대격투천재의 탄생-172화 (172/203)

< 172화_리벤지 >

1.

-떠어어억!!!

-쿠우우웅!

꽤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라무차.

“...”

카이서스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허. 결국, 타격으로 저 짐승을 잡아내는군!”

그의 프로모터인 켄달은 혼자 흥분한 듯 침을 튀기며 강해서의 승리를 떠들어댔다.

“흐음...”

하지만 못내 뭔가 불만인듯한 카이서스.

“왜 그런 표정이야? 미스터 강이 이겼다고?”

“그런가? 그렇게 보이나?”

“당연하지! 쓰러진 건 라무차고. 링 위에서 환호하고 있는 건 미스터 강이잖아?”

“내 눈엔 둘 다 패배자로 보이는군.”

처음 이곳 WFC Apex를 찾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온도 차이를 보여주는 카이서스.

“저건 누구도 이긴 게 아니야. 둘 다 패배한 거지.”

“그런가? 나는 솔직히 이번 시합에서 미스터 강의 근성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라무차의 괴물 같은 맷집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냈잖아?”

“곰과 맞서 싸우면서 맨몸으로 버텨냈다고 박수를 받아야 하나? 고양이를 잡을 때는 손으로. 곰을 잡을 때는 총으로. 필요한 곳에 필요한 수단을 사용할 줄 아는 게 스마트한거야.”

주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모자를 눌러쓰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카이서스.

“어쨌든. 이번 시합에서는 그에게 실망했어. 나는 그가 보다 완벽한 승리를 가져갈 줄 알았어. 라무차는 그가 상대하기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어.”

“하지만 지난번에는 미스터 강의 투쟁심이나 야성미가 부족하다고 했었잖아? 이번에 그런 부분은 보충되지 않았을까?”

“후우...”

자신의 졸졸 따라붙으며 끊임없이 강해서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려는 켄달을 보며 카이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맹수를 상대하며 무모하게 맨몸으로 덤벼드는 사람을 보고 투쟁심이 있다거나 용맹하다고 하지 않아. 맹수 물어뜯기면서도 버티는 사람을 보고 야성미가 있다고 하지는 않잖아.”

“그러면. 카이서스 네가 말하는 투쟁심이나 야성미는 무얼 말 하는거야?”

“파이터로서의 결단력. 다른 고려 없이 단호하게 상대를 부수겠다는 결심. 조금 더 적극적인 파이팅.”

“...뭐?”

“내가 말하는 투쟁심은. 무작정 달려드는 무모함이나 끝까지 쓰러지지 않는 정신론적인 이야기가 아니야. 이성으로 판단하고. 효율로 고려하되.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서는 실행력을 말 하는거지.”

실제로 카이서스는 이제껏 강해서의 모든 시합들이 ‘상대방의 공격에 맞추어 반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걸 기억했다.

심지어 지난 조던 리와의 시합에서조차 강해서는 상대의 반응에 맞춰 자신의 폼을 바꿔가며 경기를 운영했다.

“그는 영리하고.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여러 가지 스타일을 완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지. 하지만 그뿐이야. 그런 파이팅으로는 내게 이길 수 없어.”

심지어 이번 라무차와의 시합은 더욱 처참했다.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떤 걸’ 사용할까에 집중하는 모습.

“다양한 무기를 갖고 있지만. 무기의 숙련도를 물어본다면. 글쎄. 도저히 내가 지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달까.”

이번 라무차와의 경기에서 카이서스는 강해서가 자신의 무기를 조금 더 제대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하지만 끝끝내 강해서는 ‘라무차에게 유리한 무기’를 뽑아내긴 했지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했기에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졸전을 치러야 했다.

“흐음...”

그제야 카이서스의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켄달.

“뭐. 지난번에도 말한 바 있듯. 나는 그에게 당장 나와 같은 눈높이를 갖추라 강요하지 않을 거야. 그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니까. 2-3년쯤 지나면 더 좋아지겠지. 나와의 경기는 그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 시킬거야. 물론 패배라는 뼈아픈 경험을 포함해서.”

WFC Apex를 벗어난 카이서스.

“체육관으로?”

“아니. 바로 집으로 가지. 딱히 몸을 움직이고픈 생각이 들질 않는군.”

강해서의 시합을 보고 난 뒤.

체육관이 아닌 자택으로 향하는 카이서스와 켄달이었다.

*

“고생했다.”

“잘했어!”

승리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케이지에 뛰어든 두호 형과 필승 형.

이번 시합은 승리 인터뷰를 하기도 힘들 정도로 모든 걸 쏟아부었던 경기였다.

“후우...”

체력을 조금 회복하고 난 뒤 승리 인터뷰를 할 때 관중석을 훑어보았다.

분명 시합 중에 관중석에 앉아있던 카이서스를 발견했었으니까.

이번 시합도 보러왔구나. 좋은 모습을 보여야지.

그런 생각을 했었으니까.

‘...없다.’

그런데. 카이서스가 앉아있던 자리는 비어있었다.

대부분의 관중이 승리 인터뷰를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면, 그가 앉았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조던 리와의 시합 때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었는데. 오늘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었나 싶었다.

“헤비급 타이틀이라니! 우와. 이게 실환가 싶다!”

지친 몸을 이끌고 무대를 내려와 라커룸으로 향하는 길.

팀 피스트의 스텝진들의 기쁨에 찬 목소리들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졸전이었어.’

가진 걸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가진 걸 제대로 개발하지도 못했다.

집중 모드를 조금 더 개선시켰다면.

집중 모드 상태로 훈련을 조금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적당한 수준에서의 훈련이 아닌. 정말 한계까지 스스로를 쥐어짜는 나날을 보냈다면.

과연 오늘과 같은 졸전을 펼쳤을까 싶었다.

아니, 적어도 승패와 관계없이 이렇게 찝찝한 마음은 들지 않았을 테지.

-척

“고생 많았다. 덕분에... 잘 봤다. WFC의 정상.”

“...두호 형.”

쪽팔리게.

세계 최정상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해놓고는 피 냄새나는 싸움을 보여줬다.

물론 라무차는 대단했다.

아주 수준 높은 선수였고 대단한 실력을 갖춘 선수였다.

그런 선수에게 승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자랑스러워해도 될 만큼.

다만.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게 문제지. 훨씬 좋은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는 걸.’

적당한 타협과 자기만족만 아니었다면.

‘그나마. 두호 형이 스텝으로 붙으면서 훈련 강도를 높였기에 이렇게나마 이겼던 거야.’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누가 이겨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승부.

누군가 보기에는 명승부라 칭할만한 경기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둘 모두가 패배자일 뿐이었다.

승자가 없는 시합.

“오늘은 데미지가 꽤 크니까 숙소에서 나오지 말고 푹 쉬어. 혹시라도 몸 상태 안 좋으면 바로 연락하거나 소리 지르고.”

“넵.”

“일단 닥터 체크에서 큰 문제는 없다고 하니. 정밀 검사는 내일 병원 가서 받도록 하자.”

“넵.”

데뷔 이후 가장 많이 맞은 시합.

WFC 헤비급 챔피언 획득이라는 역사적인 날이었지만 당장 내게 필요한 건 절대 안정과 휴식이었다.

-털썩.

“후우...”

쓰러지듯 침대에 드러누워 낯선 숙소의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명 시합에서 이겼고. 원하던 챔피언 타이틀을 얻어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한숨이 많아지고 답답한 걸까.

-Rrrrrrrr

그때 울리는 스마트폰 벨 소리.

아름이였다.

“...여보세요?”

-해서야? 전화 돼?

“어. 말해.”

나는 애써 밝게 전화를 받았다.

시합의 승자가 패자처럼 쳐져 있을 순 없으니까.

아름이가 걱정할 테니까.

-시합. 축하해!

“어. 고마워.”

-이번 시합은 조금 어려워 보이던데. 괜찮아? 부상은 없어?

“어어. 괜찮아. 그냥 거의 다 타박상이라서. 내일 병원 가볼 건데 별문제는 없을 거야.”

-그럼 다행이구. 어쨌든 정말 축하해! 헤비급 챔피언!

“하하. 고마워.”

그래도 아름이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 마음이 조금 씻겨져 내려가는 듯했다.

답답함이 조금 해소되었달까.

“아름아. 나 오늘은 조금 힘들어서.”

-아... 미안해! 그럼 쉬어!

하지만 그마저도 피로감이 있어서 전화를 오래 붙들고 있지는 못했다.

“후우...”

몸과 얼굴의 욱씬거림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늘 밤은. 일단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았다.

2.

-강해서! 4라운드 만에 라무차를 꺾고 WFC 최정상에 우뚝 서다!

-WFC의 ‘비스트’ 라무차! 강해서의 펀치에 무릎 꿇다!

-미들급부터 헤비급까지! WFC 중량급 3체급을 제패한 레전드 강해서!

-라무차. ‘강해서는 대단한 선수. 하지만 이번 승부는 종이 한 장 차이. 리벤지 매치에선 분명히 내가 이길 것.’

-다음 빅 이벤트는 WFC 297! 미들급 토너먼트 결승전!

-‘비스트’ 라무차. ‘잠시 타이틀을 맡겨놓았을 뿐.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다? 리벤지 매치 예고?

-미스터 ’갓‘ 그의 끝은 어디인가? 데뷔 이후 무패행진을 이어온 강해서의 모든 걸 파헤쳐보자!

-이제 남은 관문은 카이서스? 강해서의 무한도전!

└크으... 국뽕이 마구 차오른다! 중량급 3개 체급 제패!

└WFC 3개 체급 제패면 복싱 8체급 9체급 석권이랑 동급 아님? 개쩐다

└그것도 중량급이라는 게 중요함! 이제껏 한국은 고사하고 아시아에서도 중량급 챔피언은 나온 적 없으니까. 챔피언이 뭐냐. 랭커도 드물었는데

└와... 어제 시합은 진짜 치킨 시켜놓고 보다가 시합 끝날때까지 치킨 열지도 못했음. 지는 줄 알았음

└강해서 시합치고는 진짜 혈전이었지. 나도 지는 줄 알았음

└그래도 결국 갓-해서느님의 승리! 크으... 라무차도 안되는거라!

└근데 라무차가 리벤지 매치 들고 오면 위험한 거 아니냐?

└오늘 시합 보면 만약 리벤지 매치 성사되면 불안요소가 있긴 함. 그래도 강해서가 지는 그림은 안그려짐

└우리 갓-해서 형님이 다 이기거든?! 라무차는 상대도 안되거든?! 카이서스 딱 대!!!

전날 시합의 결과로 인터넷은 뜨거웠다.

특히 한국 쪽은 검색 플랫폼을 비롯해 SNS와 인터넷 뉴스까지 모두 강해서의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도 정도의 차이일 뿐 강해서의 파격 행보에 시선을 집중하는 건 매한가지였고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해서를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그리고 그런 WFC 296 시합 기사들을 살펴보고 있던 텔론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허... 일단. 몸은? 오늘 병원 갔을 거 아냐.”

“병원 검진 결과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조금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끄응...”

연초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강해서와 라무차의 타이틀전.

시합 전부터 날카롭다기보단 흉포한 신경전이 있었고, 시합 내용 또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그리고 결과는 강해서의 승리.

텔론의 입장에서는 강해서도 라무차도 응원할 수 없었지만,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라무차보다는 강해서가 이기는 게 이득이었다.

무패의 전설. 카이서스와의 복싱 이벤트가 잠정적으로 예정된 최고의 흥행 카드.

라무차도 아까운 패지만 아무래도 강해서가 더 효용 가치가 높았다.

그런 이유로 이번 시합의 결과에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웠던 텔론이었다.

“하하. 기껏 완벽한 시나리오로 마무리되었는데. 리벤지 매치라니.”

중요한 건 시합이 끝나자마자 리벤지 매치 요구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텔론이 보기에도 정말 아슬아슬했던 시합.

리벤지 매치가 이루어진다면 그때야말로 승패를 알 수 없는 경기가 이루어질 터였다.

“어떻게... 답변을 줄까요?”

그렇기에 텔론은 고민이 깊어졌다.

“리벤지 매치라...”

분명 인터넷에서도 벌써부터 이야기가 나오고 있긴 했다.

강해서와 라무차의 리벤지 매치라면 또다시 흥행에 성공하긴 하겠지.

하지만 굳이 둘을 붙일 필요는 없었다.

강해서에게는 카이서스라는 이벤트 매치와 라이트 헤비급 방어전. 그리고 또 다른 헤비급 컨텐더들이 있었으니까.

“올여름. 가장 큰 이벤트가 언제 있지?”

투걸거리면서도 시합 스케줄러를 여는 텔론.

“한 명도 아니고. 둘 모두가 원하는 경우라니. 이런 경우는 난생처음이군.”

이번 리벤지 매치를 희망한다며 텔론에게 직통으로 연락을 해왔던 건 라무차 한명이 아니었다.

승자인 강해서 또한 다음 시합으로 복싱 이벤트전이나 라이트 헤비급 방어전이 아닌 라무차와의 2차전을 희망해왔으니까.

“반년 뒤 여름. 이 두 사람의 리벤지 매치. 기획해보지.”

어쩔 수 없다는 듯 연간 계획표를 들추며 이 둘에게 가장 어울릴 무대를 찾는 텔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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