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70화 (170/203)

< 170화_유효타 >

1.

-휘익.

-턱. 후웅!

어느덧 1라운드 종반.

이번에도 내 공격은 라무차의 가드에 막혔고 라무차의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듯한 펀치는 위협적이게 날 할퀴고 지나갔다.

“후욱. 후욱...”

보통 WFC 시합은 5분 3라운드제가 기본이지만, 메인카드나 타이틀전 같은 경우에는 5분 5라운드로 시합을 진행한다.

이제 겨우 4분을 지난 시점.

평소라면 압도적인 실력차이로 벌써 게임을 끝냈거나 게임을 끝낼 돌파구를 찾았을 시점인데.

‘막막하다.’

오늘만큼은 다른 때와 달랐다.

말 그대로 막막함.

‘속도는 내가 살짝 위. 힘은... 비등하지만 체격차이와 체중 차이 때문에 불리하다.’

라무차와의 체격차이나 체중 차이를 생각하면 힘이 비등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대단함이 시합을 유리하게 풀어내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유효타가 없다.’

1라운드가 끝나갈 때 까지 제대로 된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거다.

-쿵! 쿵!

-후웅!

이번에도 저돌적으로 치고들어오는 라무차.

그의 펀치와 킥을 피해내고는 테이크다운을 시도하기위해 그의 비어있는 하체로 파고들어 왼쪽 다리를 붙잡으려 했지만.

-스윽.

자연스럽게 왼 다리를 뒤로 빼며 상체를 숙여 날 위에서 짓누르는 라무차.

‘바로 이게 제일 문제지.’

분명 압도적인 ‘인지력’과 라무차보다 조금 더 빠른 스피드로 치고 들어갔는데 기술에 실패했다.

타격도 그랬다. 분명 가드가 비어있는 곳을 발견하고 공격을 시도해도 번번이 유효타에 성공하지 못했다. 심지어 미끼 공격으로 라무차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유도한 후 사각에서 시도했던 공격마저 정타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마치 어디가 공격받을지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눈으로 보지 않고도 피할 수 있는 무슨 센서가 있는 듯 했다.

-삐-

라무차가 날 위에서 짓누르며 백 포지션으로 돌아가려는 날라 날카롭게 울린 1라운드 종료 신호.

“후우...”

난생 처음.

나는 MMA입문 후 최초로 막막함을 느끼며 세컨진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

“꽤나 지루한 시합을 펼치는군.”

WFC 296이 열리는 WFC Apex.

카이서스는 그의 프로모터인 켄달과 함께 강해서의 시합을 보기위해 이곳 체육관을 찾았다.

“관중들이 보기엔 지루한 시합이고.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수준 높은 공방이지.”

“그렇지. 하지만 이곳 관중들은 화끈한 난타전을 보러 왔을 거란 말이야.”

카이서스는 시합이 지루하다고 투덜거리는 켄달을 슬쩍 바라본 뒤 마침 1라운드가 끝나고 각자의 세컨진으로 돌아서는 강해서와 라무차를 바라보았다.

켄달의 말도 틀린 것이 없는 게, 강해서도 라무차도 화끈한 스트라이킹으로 유명한 선수들이었다.

지루한 몸싸움이나 그래플링보다는 스탠딩에서 불같은 타격으로 상대 선수를 공략하는 스타일.

“저 둘은. 아마 처음으로 비슷한 수준의 스트라이커와 맞붙는 상황일거야. 이제까지는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선수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타격력을 선보였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거지.”

“카이서스. 자네와의 시합에서도 이런 양상일까?”

“복싱과 MMA는 다르지. 나는 미스터 강과의 화끈한 타격 전을 기대하고있어.”

켄달의 물음에 꽤나 시원하게 대답하는 카이서스.

그의 대답을 들은 켄달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케이지 안 MMA 시합에 집중했다.

“그런데. 확실히 라무차는 대단한 것 같아.”

“... 대단한 친구지.”

WFC 헤비급을 씹어 먹은 괴물.

체중조절이라는 걸 할 생각이 없는 선수였기에 헤비급만을 제패했다지만 그의 재능만큼은 진짜배기였다.

“저 친구가 복싱을 했더라면. 자네와 미스터 강의 시합만큼 재미있는 시합이 메이드 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지.”

이번에도 조금의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나온 카이서스의 대답.

“아무리 강한 상대와 붙고싶다고해도 고릴라에게 복싱 글러브를 끼워줄 수는 없잖아?”

“뭐? 하하하하하.”

켄달은 카이서스가 지난 시합전 기자회견에서 강해서의 발언을 차용한 것이라 생각하고는 신나게 웃었다.

“진심이야. 라무차. 그의 재능은 나와 미스터강의 재능과는 또 다른 결의 재능이고. 그 수준은 말 그대로 최상급이지. 우리와 같은 정점에 오를 재능이야. 다만... 그는 복싱의 테크닉에 맞지 않아. 고릴라에게 복싱 글러브를 끼워준다고 복싱 시합을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라무차를 복싱링에 올린다고 해서 복싱 시합을 기대할 수는 없어.”

“아무리 그래도. 그는 고릴라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그의 재능은 동물적이고 날카로운 육감의 영역에 가깝지. 저런 재능을 가진 자가 복싱을 한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지만... 복싱은 철저한 수싸움과 계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제약이 많고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니까. 그의 재능은 종합격투기 안에서 빛을 발하지 복싱에서는 아니야.”

“흐음... 그렇군. 복싱에서는 고릴라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거지? MMA에서는 아니고?”

“사실. MMA도 복싱보다 조금 덜할 뿐이지. 미스터 강이 그걸 눈치 챌 때가 아마 이번 시합의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2라운드 시작 알림 음과 함께 케이지 센터로 향하는 강해서와 라무차.

카이서스는 그런 둘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이번 시합의 승자를 조심히 점쳐볼 뿐이었다.

2.

“아직 크게 불리하지도. 유리하지도 않아. 이럴 때일수록 천천히. 성급하게 나갔다가 오히려 역공을 맞을 수 있어.”

“넵!”

-삐-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간 휴식 시간.

2라운드는 1라운드와는 다른 방향으로 라무차를 공략해봐야겠다 생각하며 케이지 중앙으로 조심스럽게 스텝을 옮겼다.

-쿵! 쿵! 쿵!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성큼성큼 뛰어오는 라무차.

이건 진짜 짐승인지 사람인지 모르겠다.

-휘이익

그의 스텝에 맞춰 가볍게 뻗어내는 레프트 잽.

1라운드에서는 라무차의 저돌적인 공격에 카운터를 치는 형식으로 시합을 풀어나갔었지만,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유효타를 성공시키지 못한 채 1라운드를 소비하고 말았다.

그래서 2라운드부터는 받아치는 게 아닌 공격적인 운영으로 라무차의 호흡과 스텐스를 뺏어볼 계획이었다.

-턱. 후우웅.

내 레프트 잽을 가볍게 쳐내면서 한걸음 더 파고드는 라무차.

-쒜에엑

그런 그의 움직임을 충분히 예상했기에 이제 막 지면에 닿으려 하는 그의 왼쪽 다리를 향해 오른발 로우킥을 차냈다.

-스슥

‘또다.’

채 로우킥이 닿기도 전.

아니. 내가 로우킥을 차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오른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라무차의 하체 근육은 왼발의 회피기동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게 말이 되나?’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상태였기에 볼 수 있었다.

라무차는 미처 오른발에 제대로 된 타격을 위한 힘이 실리기도 전부터 공격을 눈치 챘다는 듯 왼발을 뒤로 물리려 했다.

정확히는 앞으로 내딛는 중인 왼발을 효율적으로 다시 뒤로 빼기위해 온 몸의 밸런스와 지탱 발이던 오른 다리의 근육 움직임이 변화했다.

-쒜에엑. 퉁.

-쩌어억!

결국 그대로 로우킥을 던졌다면 간발의 차이로 헛발질을 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준비하고 있었던 만큼 제자리에서 로우킥을 찬 게 아니었다. 왼다리로 앞으로 몸을 박차내며 결국 라무차의 왼 다리에 꽃아 넣는데 성공한 로우킥.

이번 시합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제대로 들어간 정타였...

-후우웅!

-떠어억!

갑자기 왼쪽 하복부에서 울리는 어마어마한 고통.

순간 다리가 풀려버릴 뻔 했다.

“크흡...”

입에서 침이 흐를 정도로 순간적인 충격이 컸다.

-퉁!

밀착해 있는 라무차를 밀어내며 겨우 거리를 벌리고 나니 그제야 내가 맞은 게 라무차의 오른손 바디훅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체 언제...?’

집중력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로우킥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고의 타이밍을 잡았고, 또 타격 타이밍에 맞춰 앞으로 튀어나가기까지 했다.

‘... 설마 내가 앞으로 튀어나올 걸 예상하고 그 상황에서 최선의 수를 찾아냈다는 건가?’

분명 로우킥을 차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왼 발을 빼려는 움직임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내가 놓쳤다면 앞으로 살짝 대쉬하는동안 생긴 시야의 사각 뿐.

중요한 건 그 찰나의 틈에 이런 판단을 내리고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냐는 거였다.

‘괴물은. 괴물이네 진짜.’

저 플레이가 고도의 예측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정말 말도 안 되지만 거의 본능적으로 최소한의 피해와 최고의 이득을 보려는 행동에서 나온 건지는 모르겠다.

만약 전자가 아닌 후자가 답이라면

‘오싹하네.’

짐승도 그만큼 감이 좋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까 말이야.

-씨익.

내게 제대로 얻어맞은 왼다리를 툭툭 털더니 날 향해 씨익 웃어 보이는 라무차.

재밌냐? 난 재미없다니까.

-쿵. 쿵!

2라운드 시작과 함께 서로 한 번씩 유효타를 성공.

라무차는 변태적인 성향이 있는지 그때부터 더욱 저돌적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쿵!

지속적인 ‘집중 모드’의 샤용은 몸싸움만큼이나 빠른 체력소모를 동반했다.

중요한건 쌍방 체력소모가 아닌 일방적인 체력소모라는 것.

그래서 이번에는 집중모드를 잠시 넣어둔 채 내게 돌진하는 라무차에게 몸싸움을 시도했다.

‘체력을 뺄 거면 같이 빼야지.’

물론 체중에서도 체급에서도 차이가 나다보니 근력이 비슷한 수준이라도 내게 불리한 싸움이긴 했다.

‘그래도 나 혼자만 체력 방전 되는 것 보다야 낫지.’

거기다 라무차는 나보다도 더 타격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플링으로 들어가면 이번 시합의 실마리가 조금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타격을 시도한다 해도 아예 피할 틈을 주지 않고 때리면 어떻게든 유효타를 넣을 수 있었으니까.

-뿌득. 뿌드득. 뿌드드득.

정말. 진심으로. MMA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온 몸의 힘을 다하는 몸싸움을 겪었다.

이렇게 힘을 주다가 정말 몸 어디가 부서지는 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악을 썼다.

-꿈틀!

라무차 또한 온 몸의 근육에 힘이 팽팽하게 들어간 게 느껴졌고 그의 표정에는 꽤나 당황한 감정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었다.

아무래도 라무차 또한 이렇게까지 비등한 몸싸움을 해본 적이 없는 듯 했다.

-툭. 휘익!

라무차가 살짝 당황한 틈을 타 왼쪽 어깨로 그의 상체를 밀쳐냄과 동시에 오른팔을 뿌리쳐 자유롭게 만들었다.

몸싸움 도중에. 특히 이렇게 전력을 다하는 몸싸움 도중에 ‘집중력’을 끌어올리면 체력 소모가 어마어마할게 뻔했지만, 타이밍이 왔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집중모드에 들어갔다.

-휘이잉!

왼쪽 어깨로 라무차를 밀어낸 틈으로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그의 왼쪽 아랫턱을 노리는 라이트 어퍼를 올려쳤다.

-휘익.

야심차게 집중모드까지 써가며 준비한 공격.

분명 사각으로 꽂아 넣은 펀치였고, 뒤늦게 본다 하더라도 반응할 시간이 부족할 공격이었는데 이번에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상체를 뒤로 빼며 공격을 흘려버리는 라무차였다.

‘그런데. 사람이면. 이런 상황을 학습하게 마련이거든.’

라이트 어퍼가 미끼였던 건 아니다. 정말 작정하고 휘두른 펀치였으니까.

중요한 건 라이트 어퍼가 빗나갔을 때를 대비한 후속 공격이 준비되어 있다는거다.

-쒜에에엑!

라이트 어퍼을 날리는 회전력을 그대로 이용한 오른발 하이킥.

-쩌어억!

왼쪽 어깨로 라무차를 밀어내면서 만들어진 틈과, 라무차가 라이트 펀치를 피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상체를 뒤로 빼며 만들어진 공간으로 태권도식 상단 차기가 정확하게 라무차의 왼쪽 관자놀이에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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