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68화 (168/203)

< 168화_사전 기자회견 >

1.

“... 그리고 이번 활동도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이제 한국을 벗어나 해외에서도 핑크 펀치의 활동에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공중파 연예 정보 프로그램 중 하나인 ‘한밤 연예’.

오늘은 전 세계적인 K-POP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중 하나인 핑크 펀치. 줄여서 ‘P.P’라고 불리는 아이돌 그룹이 한밤 연예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또 이런 질문을 안 드릴 수가 없겠죠? 전 세계 팬 분들의 궁금증을 해소해드리는 게 저의 역할이니까요!”

한밤 연예 리포터는 오랜만에 초대형 스타급 아이돌 그룹을 인터뷰하며 한창 텐션이 올라가 있었다.

“핑크 펀치의 멤버분들! 4인 4색의 매력을 가진 핑크 펀치의 이상형은 과연 누구일까! 너무 궁금한데요. 혹시 멤버분들. 이상형이 있으실까요?”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에 이상형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를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한밤 연예에서만큼은 공식 질문과도 같은 관례였다.

“어. 저는...”

당연히 해당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예상 답변을 준비했던 핑크 펀치의 멤버들.

누군가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를 언급기도 했고, 누군가는 만화 캐릭터를 언급하며 특정 ‘스타일’을 이상형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우리 엘리 씨! 엘리 씨도 이상형이 있을까요?”

항상 차가운 표정에 웬만해선 잘 놀라지 않는 편이라 팬들로부터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은 핑크 펀치의 메인 댄서 엘리.

리포터는 공식 질문이라 던져본다는 심정이었지 설마하니 엘리의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 예능에서도 말이 많지 않고 과묵하기로 유명한 멤버인 데다 이제껏 엘리에게 접근했던 남돌이나 다른 연예인들이 하나같이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도 유명했기 때문.

“전... 강해서 선수요.”

“...네?”

“WFC 선수. 강해서 선수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열린 엘리의 말문에 오히려 리포터가 당황하고 말았다.

“아아. WFC 챔피언 강해서 선수를 말씀하시는 거죠?”

“네.”

질문에 답변은 했지만, 여전히 단답형인 엘리.

“엘리 씨는 강해서 선수처럼 조금 듬직한 스타일을 좋아하시나 봐요. 하하하.”

“네.”

이것 참.

꽤나 난감한 낯빛으로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리포터였다.

엘리의 발언은 충분히 이슈가 될만한 내용이었지만 너무 단답형이었다.

뭔가 더 이슈가 될만한 소스를 긁어내야 했다.

“혹시 강해서 선수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음...”

“우리 엘리가요! 하하하. 얼마 전에 우리 엘리가 스포츠 브랜드 광고를 찍었는데, 거기서 조금 사고가 있었어요. 그때 마침 광고 파트너 모델로 강해서 선수님이 현장에 계셨는데 덕분에 엘리가 아무 탈 없이 광고 촬영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해요. 하하. 그래서 엘리가 강해서 선수님에게 고마운 마음에 이상형이라고 한 것 같아요.”

엘리가 말을 고르는 사이 다급하게 핑크 펀치의 랩을 담당하는 다른 멤버가 빠르게 치고 들어와 말을 내뱉었다.

괜히 랩 담당이 아니라는 듯 긴 문장을 빠르고 정확한 발음으로 한 호흡에 쏟아냈는데, 덕분에 인터뷰장에는 잠시간 정적이 맴돌았다.

-컷. 컷!

그때 리포터의 눈에 보인 연출부의 사인.

아무래도 핑크 펀치의 회사에서도 이번 인터뷰 내용은 NG 처리가 되었나 보다.

‘인터뷰해 봤자 편집될 내용이면 집착할 필요가 없지.’

생방송도 아닌 녹화 방송에 녹화 인터뷰.

핑크 펀치 쯤 되는 인지도의 그룹과 회사라면 인터뷰 내용의 편집 정도에는 얼마든지 힘을 쓸 수 있었다.

만약 이번에 엘리가 한 말이 돌발 발언이라 해도 결국 방송을 타지 못하고 편집될 내용이라는 것.

“... 엘리? 광고 촬영? 운동화 광고?”

안타깝게도 한밤 연예의 핑크 펀치 다음 인터뷰 상대가 아이돌 그룹 리엘리 출신의 여배우. 손아름이라는데 있었다.

“강해서...”

그리고 자신의 연인의 이름을 낯선 곳에서 들은 손아름의 심기는 그리 편하지 않았다.

*

“으엣-취이!”

계체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도중 느닷없이 재채기가 터졌다.

“아! 깜짝이야!”

“얌마. 좀 조용히 좀 해라. 누가 기침을 그렇게 크게 하냐? 그것도 차 안에서!”

재채기 좀 크게 했다고 창섭 형과 필승 형은 또 한마디씩 날 구박했다.

“재채기는 뭐랄까. 이렇게 최대한 크게 해 줘야 시원하잖아요.”

“혼자 있을 때 그렇게 해 인마! 좁은 차 안에서 민폐잖아!”

추운 날씨 덕분에 창문을 모두 닫아둔 밀폐된 차 안.

내 재채기가 크긴 했는지 다들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쩝. 그렇게 컸나. 내 재채기가.

“갑자기 웬 침이야? 해서 너 감기 걸린 건 아니지?”

그 와중에도 날 걱정해주는 건 역시 두호 형뿐이었다.

“선배님! 컨디션 안 좋으심까?!”

아... 이제 한 놈 더 있네.

“괜찮아. 갑자기 귀가 간지럽고 재채기가 나왔던 것뿐이니까. 혹시 태양이 너가 내 욕 한 거 아니냐?”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하늘 같은 선배님을!”

“대답 좀 조용히 해. 밀폐된 차 안에서 시끄럽게.”

태양이 얘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왜 항상 말을 할 때마다 이렇게 크게 말하는 걸까 싶었다.

“야. 강해서 네가 그런 말 할 처지냐? 네 재채기 소리가 제일 컸어 인마.”

태양이를 뭐라하는 내게 또 한마디 하는 필승 형.

형이 이러니까 제가 태양이 앞에서 위신이 안 서잖습니까 위신이.

“다들 조용히 해라. 해서 컨디션이 제일 중요하지. 창섭아. 히터 좀 더 틀고. 필승이는 건조하지 않게 해서한테 물 좀 줘라.”

결국, 교통정리는 안 코치님의 몫이었다.

운전 중이던 창섭 형은 히터 온도를 조금 더 높였고, 필승 형은 올라간 히터만큼 건조함을 대비해 내게 물을 건넸다.

진짜 그냥 재채기 한 건데. 쩝.

-꿀꺽. 꿀꺽.

그래도 계체 이벤트를 가면서 편하게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게 썩 나쁘지 않았다.

미들급일 때는 오히려 계체 이벤트를 가는 차 안에서 물병이나 종이컵에 침을 뱉어냈던 적도 있는데.

“도착했습니다!”

숙소에서 채 몇 분 걸리지 않아 도착한 계체장.

“자! 들어가 볼까요!“”

나는 씩씩하게 차에서 내려 계체장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1월의 라스베가스를 가득 채운 한기가 느껴졌지만, 그 또한 얼마지 않아 계체장 안의 뜨거운 열기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애송이!!!”

그리고 가장 뜨거운 놈은 역시.

“오! 라무차!”

열이 받을 대로 받은 라무차였다.

**

“애송이!!!”

라무차는 오늘 계체 이벤트를 두고두고 벼르고 있었다.

원래 그는 오픈 워크아웃 때 건방진 애송이 파이터에게 한 방 먹여주리라 생각하고 강해서와 마주쳤을 때 할 말들까지 생각해두었었다.

그런데 정작 오픈 워크아웃 때 메인 카드 중 하나인 강해서가 불참을 할 줄이야.

거기에 더해 SNS에 올라온 강해서의 게시물.

=이번 오픈 워크아웃은 불참. 이유는 철창을 벗어난 고릴라 때문.

그 게시물을 확인한 팬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록 그의 글을 퍼 나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픈 워크아웃에 참여했던 라무차도 알게 되었다.

“참아야 해. 참아. 라무차!”

당연히 참을성이 없고 다혈질적인 라무차는 오픈 워크아웃에서부터 불편한 심기로 난동을 부렸고, 오늘 계체 이벤트에서도 강해서를 발견하자마자 성난 소처럼 달려들 태세를 갖추었다.

“오! 라무차!”

그런 라무차를 향해 반갑다는 듯이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웃어 보이는 강해서.

라무차의 담당 코치는 과연 저 강해서라는 파이터가 제정신인지 궁금했다.

WFC의 전설이라 불리는 파이터.

제대로 된 베이스 운동도 없어 선수 프로필에 ‘스트라이커’라고 적혀있는 별명 그대로 ‘짐승’ 같은 사나이.

WFC 헤비급에 느닷없이 나타나 생태계를 교란하는 정도가 아닌 완전 씹어 먹어버린 ‘비스트’

‘그런 라무차를 이렇게 도발하다니.’

라무차는 이런 종류의 도발에 취약했다.

애초에 WFC 입성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트래쉬 토크라던지 상대 선수의 도발 같은 걸 당해본 적이 없었던 라무차였다.

WFC 입성 초창기에 라무차를 도발했던 선수들이 하나같이 심각한 부상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할 만큼 처참하게 패배했었기에 이후로는 라무차의 심기를 건드리는 선수가 없었던 이유였다.

“... 나는 내일 정말 저 애송이 놈을 케이지 안에서 때려죽일지도 몰라.”

다행히도 라무차는 계체장에서 당장 폭발하지는 않았다.

“하루. 어차피 단 하루만 참으면 저 애송이 놈의 이빨을 모조리 부숴버릴 수 있으니까.”

기약 있는 기다림은 아무리 짐승 같은 라무차라도 인내하도록 했던 것이다.

-라무차. 계체 통과.

-강해서. 계체 통과.

곧이어 진행된 WFC 296의 계체 이벤트.

120킬로라는 한계 체중이 있었지만, 강해서와 라무차는 여유롭게 계체를 통과했다.

그리고 이어진 시합전 기자회견.

-미스터 강은 지난 오픈 워크아웃 때 불참하셨었죠? 혹시 컨디션의 난조가 있었던 건 아닌지 많은 팬 분들의 우려가 있었습니다.

진행자는 가장 먼저 강해서의 오픈 워크아웃의 불참을 거론했다.

오픈 워크아웃은 공개 훈련을 하는 이벤트로, 조금 귀찮고 번거롭긴 하지만 WFC 시합을 보러 온 팬들을 위한 작은 서비스 같은 행사와도 같았다.

모든 선수가 강제로 참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벤트의 메인 카드 선수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웬만큼 참석하는 게 기본인 행사.

“아아. 팬 분들의 걱정은 넣어두셔도 됩니다. 제 컨디션은 완벽하니까요. 다만 저는 사파리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네?”

“제 SNS에도 올렸지만. 최근 라스베이거스에 철창에서 탈출한 고릴라 한 마리가 시내를 활보한다고 해서요. 안전을 위해 체육관에 있었습니다.”

“아...”

강해서의 직설적인 발언에 진행자마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당황한 순간.

“...지금 그 고릴라가 말하는 건 아니겠지?”

"글쎄? 어쨌든 내가 할 일은 사람으로서 길 잃은 고릴라를 다시 케이지 안에 넣어주고 재워주는 일뿐이야. 라스베이거스의 겨울은 추우니까."

라무차는 강해서를 만나면 그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했던 많은 말들이 그 순간 모두 사라지는 걸 느꼈다.

머릿속이 하얘졌달까?

"그래도. 다행히 누군가 고릴라의 목에 목줄을 제대로 달아놨나 보군. 앞뒤 모르고 설치진 않으니까."

"이런 개자식이!!!"

그리고 결국 강해서의 도발에 폭발하고 만 라무차.

기자회견 테이블에서 일어난 그는 금세라도 강해서를 향해 뛰어갈 듯 보였다.

"워. 워. 참으라고. 여기서 때려봤자 한두대야. 알잖아? 하루만 참으면. 내일은 마음 놓고 두드릴 수 있다는 걸."

그런 라무차를 향해 기자회견 석상에 앉아 끝까지 태연하게 대응하는 강해서.

-쾅!!!

그대로 기자회견 테이블을 내려치고는 카메라 밖으로 나가버리는 라무차.

시작과 함께 심각한 분위기로 끝이 나버린 WFC296의 시합전 기자회견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텔론 회장은 굳이 이 상황을 수습하지 않았다.

"아주. 최고군. 최고야."

WFC296의 PPV 판매율은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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