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65화 (165/203)

< 165화_실마리 >

1.

“오구. 우리 해서 그래쪄?”

“...”

운동화 광고와 화장품 광고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결국 두호 형과 필승 형의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헤에. 그래도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했네?”

“그거야 뭐. 그게 당연한 거니까. 흠. 흠.”

필승 형과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바로 찾아갔던 두호 형.

나는 두호 형이 뭐라 하기도 전에 무조건 잘못했다고 사과부터 했다.

필승 형의 말을 듣고 느끼는 바가 많았으니까.

다행이도 두호 형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때리는 일도 없었다.

자만심에 관해 두호 형과도 짧지 않은 이야기를 나눴고, 앞으로의 훈련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건 나한테 먼저 물어보지. 그런 데는 내가 아주 빠삭한데 말이야.”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연예인들이 가장 많이 걸린다는 연예인 병도 어떻게 보면 자만심이 불러오는 병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네. 난 해서 너 보면서 그런 느낌 전혀 못 받았는데.”

“응?”

“보통 연예인 병 초기인 애들 보면. 딱 티가 나거든? 안하무인이라거나. 내가 제일 잘났다는 듯한 행동이라거나. 남 말 안 듣고 누가 뭐라 하면 네가 뭘 아냐고 무시하거나.”

“...”

와.

조곤조곤 뼈를 때리네.

딱 날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준현이나 재현이 기태는 그렇다 치고 아름이까지도 내 자만심에 대해 몰랐던 이유는 아마도 그 표출이 ‘격투기’라는 곳에만 한정적으로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구나... 체육관 사람들이나 격투기 쪽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그런 모습이 나왔다면 내가 몰랐을 수도 있지...”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름이.

“그래도. 착해. 착해. 그런 거 인정하기 쉽지 않은데.”

“쉽지 않기는. 딱 듣자마자 머리가 띵 했는데.”

“그래도. 해서 너는 은근히 보면 자존감이 참 높은 것 같아.”

“...갑자기?”

“자존감이 낮고 자존심만 강한 사람들은 누가 그걸 건드리면 참지 못하거든. 내가 쌓아 올린 탑이 곧 자기 스스로라 여기니까. 하지만 해서 너는 네가 쌓은 커리어와 너 스스로를 전혀 별개로 분리해둘 정도로 자존감이 높은 거야. 그러니 객관화가 잘 되고 네가 쌓은 탑에 흠집이 있으면 바로 수정이 가능한 거지.”

“그런 건가...?”

“응! 네가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더라도 언제든 다시 쌓을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게 무너지더라도 너 자신에게는 전혀 타격이 없다는 자존감! 완전 멋져!”

“...”

아무래도 내게 온 행복 중 가장 큰 건 아름이가 아닐까 싶었다.

내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도 어쩌면 눈앞의 이 어여쁜 천사님이 아닐까?

“...왜 그렇게 봐?”

“응? 그냥. 오늘따라 예뻐서.”

“치. 그럼 어제는 안 예뻤어?”

“그런 게 아니라...”

“됐어.”

저기 천사님.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렇게 되는 거죠?

왜 때문이죠?

“헤헤. 장난이지롱!”

그리고는 갑자기 품으로 파고드는 아름이.

“우우... 딱딱해...”

두호 형이랑 훈련 스케줄을 다시 조율하면서 웨이트가 평소보다 많이 빡세졌다.

지금 오랜만에 온몸의 근육들이 제대로 화가 난 상태라 부드러운 쿠션감은 기대하기 어려울거다.

“나는 곰돌이 같은 스타일도 좋은데...”

“...응?”

“처음 체육관 왔을 때 같은 그런 몸도 좋은데...”

“...”

그러고 보니 아름이랑 만난 지 꽤 되었지만, 한번도 내 첫인상에 대해 물어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 언제부터 인식했어?”

“무슨 말이야?”

“나라는 사람을 언제부터 알게 됐냐고.”

“언제부터긴? 체육관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지. 우리 체육관에 사람 몇 명이나 된다고.”

하긴.

팀 피스트 체육관이 동네 피트니스도 아니고 정식 관원 등록한 사람은 지금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처음 내가 체육관에 들어왔을 때는 지금보다도 훨씩 적었고.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부터 그냥 사귈 걸 그랬어.”

“...엉?”

“배가 푹신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뱃살 한번도 못 느껴봤어. 뭔가 억울해.”

“...”

이건 내가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뱃살을 늘려줄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사실 곰돌이 같은 스타일도 좋거든! 운동선수들은 은퇴하면 급격히 살이 찐다던데! 우리 해서도 은퇴하면 곰돌씨가 되겠지?”

“... 난 그럴 생각이 없는데?”

“내가 매일 맛있고 살찌는 거로 입에 넣어줄게!”

“...”

“그리고 운동은 못 가게 할 거야! 그러면 살찌지 않을까?”

“... 그 전에 성인병으로 죽지 않으면?”

어느새 아름이와 나는 서로가 함께하는 미래를 언급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지난번 아름이네 부모님을 만난 이후 상견례 날짜까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진짜 자기 부모님은 안 봬도 괜찮을까?”

“부산 너무 멀잖아. 상견례 때 보면 되지.”

“그래두... 그 전에 한 번 뵙고 인사 하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아들인 나도 일 년에 많아야 한두 번 얼굴 보는데 뭐.

상견례 이야기만으로도 우리 부모님은 벌써 축제 분위기셨다.

아버지는 아름이가 며느리가 된다는 소식에 전화로도 들떠있는 게 목소리로 느껴졌고 결국 엄마에게 등짝을 맞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도 아버지가 엄마한테는 꼼짝을 못하는데 이건 집안 내력인가 싶었다.

“흐음...”

“아름아? 무슨 생각 해?”

“응? 헤헤. 아니야!”

혼자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헤헤 웃고 말아 버리는 아름이.

“그러고 보니. 연말은 바빠서 많이 못 보겠네?”

“아아. 그렇지.”

애초에 두호 형과 필승 형의 이야기가 나온 계기가 운동화와 화장품 광고 때문이었다.

“어린 애기들이랑 광고 찍는다고 눈 돌리고 그러면 죽는다?”

“하하. 죽는다니. 말이 너무 과격하시네요.”

“우씨. 대답 안 해?”

“하하하. 알겠어. 아름이 널 두고 내가 어떻게 눈을 돌려.”

화장품 광고는 단독 광고지만 운동화 광고는 함께 호흡을 맞추는 상대 모델이 있었다.

난 요즘 티비를 잘 안 봐서 모르는데 스포티한 이미지로 유명한 여자 아이돌이라고 들었다.

엘리였나?

“하필 딱 시간 되는 날에 광고 촬영이야. 힝.”

“하하. 미안해.”

“내가 촬영장 놀러 갈까?! 커피차 끌고?”

“...아서라. 무슨 민폐냐.”

원래 이쪽 업계 사람도 아닌데 그냥 조용히 촬영만 하고 오면 되지.

괜히 번잡스럽게 일 벌였다가 구설에 오르면 골치아파진다.

“이열- 우리 스타병 걸렸던 강해서쒸. 달라졌어?”

“스타병이 아니라. 격투기 쪽에 한해서만 약간 자만했던 것뿐이거든?”

“그게 심해졌으면 스타병 되는 거야. 내가 잘 알아. 암. 암.”

“...”

연예인병이나 스타병에는 일가견 있다는 우리 아름씨.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름이 말마따나 자만심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나중에는 격투기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얼마든지 못난 모습을 보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못에서 난 녹이 그 못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스스로를 꾸준히 돌아보지 않으면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녹이 날 뒤덮어 스스로를 더 이상 쓸모없게 만들지 모른다.

“또. 또. 심각한 표정.”

“응?”

“어쨌든. 당분간 또 못볼테니까. 흐응... 와인이나 한잔 할까?”

“...네?”

내일도 아침부터 훈련 가야하는데 갑자기 와인은 무슨 와인이야?

“헤헤. 그럴줄 알고 짠! 포도주스도 사놨지!”

“...”

해맑게 와인과 함께 포도주스를 냉장고에서 꺼내드는 아름이.

그리고는 뚝딱뚝딱 간단한 안줏거리와 와인잔 두 개를 들고는 총총 걸어왔다.

-쪼르르.

“이건 해서 꺼. 이건 내 꺼.”

조명도 다 끄더니 무드등만 켜두고는 붉은 와인을 따르는 아름이.

물론 내 잔에는 비슷한 색깔의 포도주스다.

“... 그러고 보니 오늘 식스 테이크 하지 않나? 본방 봐야지!”

“안 봐도 돼. 뭐하러 티비를 봐? 실물이 여기 있는데?”

“...”

주말 저녁.

꺼진 불과 켜진 무드등.

그리고 와인.

모든 게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아. 나 잠시 화장실 좀...”

“앉아.”

“... 그럼 물 좀...”

“앉으라고.”

“...네.”

아.

내일 오전 훈련도 완전 빡셀텐데.

두호 형은 힘들다고 해도 이빨도 안 먹힐 텐데.

큰일이네.

*

“...놀랍습니다.”

“그러게요. 우리는 충분히 그의 역량을 한계치까지 끌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듯 상정 외의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을 줄이야.”

밖은 연말이다 뭐다 한창 성탄 분위기와 연말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팀 피스트의 체육관만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강해서 선배님! 와. 진짜 대단합니다!”

태양이 쟤는 연말인데 약속도 없나? 얼굴도 잘생긴 게 왜 연말까지 체육관에 나오고 그래?

“정신 집중! 마지막까지 집중해!”

“넵!”

두호 형의 코치진 합류로 내 훈련 일과는 꽤나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쉽게 말하자면 훈련 시간 대비 훈련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물론 한 번에 이렇게 늘어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그러면서도 충분히 빠르게.

“후욱. 후욱...”

그리고 그 결과는 스트렝스와 컨디셔닝을 담당하는 팀이 놀랄 정도로 가파른 신체 능력의 향상으로 돌아왔다.

“이게. 정말 사람의 몸인지 궁금하네요. 정말로 미스터 강의 몸을 해부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미 충분히 성장이 끝난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성장이 한창이라니. 아니. 아니. 일견 성장의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최근 한 달간의 훈련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정작 당사자인 나는 얼마나 힘들까.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힘든 훈련들이었다.

“어때? 할만하지?”

“...네...”

중요한 건. 두호 형의 말마따나 힘들긴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생각보다 할 만했다.

사실 여기서 조금 더 강도를 높여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물론 내가 먼저 자진해서 강도를 높여달라고 하진 않을 거지만.’

지금만 해도 지옥 같은데 여기서 자진해서 강도를 높이다니. 생각만 해도 미친 짓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훈련했던 건가?’

어쩐지. 나는 체육관 나오는 게 항상 즐거웠는데 한창때 창섭 형이나 다른 사람들을 보면 항상 죽을상을 한 채 체육관에 출근하곤 했었다.

참고로 요즘은 나도 아침마다 체육관 나오는 게 살짝 스트레스일 정도로 죽을 맛이었다.

“숨 좀 고르고. 그거 해봐.”

“아. 넵.”

잠깐 앉아서 쉬고 있자니 다가온 두호 형이 ‘그거’를 해보라는 말을 건넸다.

“후우...”

숨을 충분히 고르고.

혈행과 심박 수가 최대한 안정되었을 때.

-흐읍!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

순간적으로 모든 게 느려진 세상.

집중 모드였다.

-스슥.

-휘익.

-투우욱.

-파아아앙.

-스으윽.

-콰아아아앙!

두호 형이 샌드백을 잡고 나는 가벼운 스텝을 밟으며 원투 펀치부터 킥 까지 집중 모드를 유지한 채 타격 연습을 시작했다.

-뻐어어엉!

-휘이이이익.

-콰아앙.

-꽈아아앙!

-스으윽.

-투웅

-뻐어어억!

느려진 세상.

단순히 샌드백을 치는 훈련일 뿐이지만 내게는 샌드백의 충격 방향들이 모두 보였다.

펀치를 뻗고, 아직 그 충격이 가시지 않은 타격 부위에 정확하게 니킥을 꽂아 넣는다.

그러면 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샌드백은 더 크게 밀려나고 그 힘의 방향을 정확히 눈으로 본 뒤 다시 펀치와 킥을 꽂아 넣는다.

“큭!”

충격을 분산시키지 않고 최대한 같은 지점으로 때려 박는 공격.

집중력과 바디 컨트롤까지 필요한 테크닉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직 머리가 지끈거리질 않아.’

최근 몸의 한계치까지 짜내는 훈련을 시작한 뒤로 ‘집중 모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유의미할 정도로 늘어갔다.

집중 모드를 사용하면 혈행이 느려지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집중력도 빠르게 소모되는 느낌이었는데 최근에는 그 가용치가 부쩍 늘어난 느낌이었다. 이렇게 훈련 중에도 집중 모드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후우.”

머리가 살짝 지끈거리기 시작하자 바로 집중 모드를 풀었다.

여기서 더 길어지면 후유증이 커서 다음 훈련에 지장이 갔기 때문이다.

“우와...”

“허얼... 진짜. 몇 번을 봐도 저건 미친 것 같아.”

“괴물이야. 괴물. 안 그래도 괴물이었는데. 요즘은 슈퍼 괴물이 된 것 같아.”

차례로 태양이와 창섭 형. 필승 형의 반응이었다.

“2분 30초 남짓. 최대한 집중한 거였지?”

“넵.”

“순수 타격만 했을 경우 거의 1라운드에 가깝게 지속 가능하겠어. 최대 집중 상태로.”

“그러게요.”

1라운드는커녕 처음에는 1분도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것도 최대 집중력으로는.

그래서 시합 중에도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몇 초씩 끊어서 사용하곤 했던 집중 모드였다.

그런데 지금은 일방적인 타격에 한해서지만 거의 1라운드 가까이 최대 집중 모드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 장족의 발전이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부족해. 그래플링으로 들어가면 훨씬 빨리 떨어진다며?”

“...네.”

아무래도 혈행과 체력이 관련 있다 보니 타격보다 체력소모가 큰 그래플링 상태에서는 몇 배는 빠르게 한계가 다가왔다.

“다행히... 라무차는 그래플링 싸움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야. 카이서스는 복서니 말할 것도 없고.”

“넵!”

“그래도. 가지고 있는 무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건 창피한 일이야. 더 날카롭고 강하게 단련해야지.”

“넵!”

“주기적으로 검사 꼭 받고.”

“넵!”

아무래도 이 ‘집중 모드’는 몸에 여러 가지 과부하를 가져오다 보니 일주일에 최소 한번은 정밀검사를 받으며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이상 증상을 예방하고 있었고, 다행히 별다른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내일이랬나? 광고 촬영?”

“넵. 내일 운동화 광고만 찍으면 끝이에요. 바로 라스베이거스로 넘어가면 됩니다.”

화장품 광고는 벌써 촬영이 끝났다.

남은 건 운동화 광고하나.

이것만 끝나면 라스베이거스 현지 캠프로 떠나야 했다.

“그래. 광고 촬영 잘하고.”

“하하. 돈 벌어오겠습니다!”

두호 형은 깔끔하게 광고 촬영 잘하고 오라는 말을 남기고는 체육관 정리에 들어갔고.

“해서야! 나 진짜 촬영장 좀 데려가 주면 안 되냐? 나도 엘리 보고 싶어! 엘리!”

“개 부럽다! 아름 씨도 모자라서 엘리까지! 우우! 꺼져라 강해서! 악의 축!!”

창섭 형과 필승 형은 내일 있을 광고 촬영장에 데려가 달라며 얼마 전부터 생떼를 부려댔다. 엘린가 뭔가. 아이돌이 보고 싶다며.

아저씨들. 그래봤자 소용없어요. 이미 내일 같이 갈 사람은 정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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