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63화 (163/203)

< 163화_트러블 >

1.

“이야- 이게 얼마 만이냐?”

“그러게. 우리 바쁘신 챔피언님 아니야?”

기태와 재현이는 현관문으로 들어오자마자 반가움의 인사를 이따위로 날려댔다.

“야. 야. 만나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왐마. 미친놈. 사람들이 이걸 봐야 하는데.”

“만나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래. 헐.”

“하하하하.”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놈들.

말로는 내가 바빠서 못 봤다고들 하지만 실상은 서로가 바빴다. 물론 내가 바쁜 경우가 훨씬 많긴 했지만.

어느덧 우리 나이가 34살.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연말 시즌을 넘기면 35살이 된다.

“준현이는?”

“회사 연말 회식에 잠깐 얼굴만 비추고 온대.”

“크으. 잘나가네 김 사장님.”

5년이라는 시간은 서른 살의 배불뚝이 웹 소설 작가였던 나를 세계 최정상의 격투기 선수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준현이는 나와 함께 해외를 다니며 번역이 아닌 통역 쪽으로 발을 넓히고 인맥들을 동원해 통·번역 회사를 차려 어느새 어엿한 사장님이 되어있었다.

“재현이 너는. 할만하냐?”

“할만하긴. 그냥 다니는 거지 뭐.”

재현이는 원래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었고 얼마 전 과장으로 진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꽤 빠른 편 아니냐? 서른다섯 살에 대기업 과장이면?”

“대기업은 무슨. 뭐. 느린 편은 아니지.”

나와 준현이가 꿈을 좇아 산다고 해서 재현이에게 그렇지 못한 삶을 산다고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재현이는 재현이만의 삶을 성실히 살아내고 있었고 그에 따른 만족도도 높았으니까.

“그나저나. 기태 너는?”

“그래. 너가 제일 문제야 새끼야.”

“문제는 무슨.”

재현이가 나와 준현이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면 기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 중이었다.

“그래도 노래 좋더라.”

“재현이 너는 기태 공연 가봤어?”

“나야 당연히 가봤지. 친구가 하는 공연인데. 누구랑은 달라 인마.”

기태는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재작년쯤 음악을 하고 싶다며 뮤지션의 길에 도전했다.

물론 기태가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알았지만 설마하니 서른셋의 나이에 가수에 도전할 줄은 정말 몰랐다.

“보컬 인마. 보컬.”

“보컬은 가수 아니냐? 노래하는 사람이면 다 가수지.”

“뭐. 그렇긴 하지.”

자신만의 노래를 해보고 싶다며 밴드를 차린 지 2년.

지금은 홍대 인디밴드 중에서도 꽤나 인지도가 있다는 기태의 밴드였다.

“미안하다. 공연 보러 한번도 못 가서.”

“너 바쁜 건 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다 아는데 뭐. 월드 클라쓰 아니냐? 난 기껏해야 홍대 클라쓰고.”

“이태원 클라쓰보단 낫네. 홍대 클라쓰.”

“큭큭.”

정말 오랜만에 나누는 시답잖은 농담과 시시덕거림.

서른 살. 그때 그 시절 홍대 술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보던 얼굴들이 이제는 일 년에 몇 번 얼굴 보기도 어려워졌다지만, 그래도 만나면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어색하지 않고 편했다.

“야. 너 씨디 같은 거 없냐?”

“씨디? 있긴 한데. 한번도 안 들어봤냐 너?”

“어? 어...”

사실 기태 밴드 이름도 정확히 기억 못 했다.

변명이 아니라 진짜 바빴다고...

“그래. 바빴겠지. 아름 씨랑 연애하고 부모님도 뵙고 오고. 마이애미에서 휴가도 즐기고. 그치?”

“...죄송합니다.”

“스트리밍 어플에도 대표곡들은 다 올라와 있으니까 들어봐. 아니면 사운드 클라우드에 가면 우리 노래 거의 다 있어.”

“...”

미안한데 저는 그게 뭔지 몰라요...

그냥 바이브 같은데 검색하면 안 되니?

“되지. 돼. 네이버나 바이브에 기태네 밴드 노래 많아. 한번 틀어봐. 같이 들어보자.”

“아. 미친놈들. 나 없을 때 들어!”

“뭐래? 너 있을 때 들어야지 제대로 된 인증이지.”

기태는 뭐가 부끄러운지 음악을 틀려는 날 방해하려 했고, 그런 기태를 재현이가 막아서며 놀려댔다.

=warrior! 멈추지 말고 나가! Don’t worry Ya! 걱정 따윈 집어치워! 이건 너를 향한 Red warning Ya!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기태네 밴드의 최고 인기곡. ‘Warrior’

“오? 좋은데?”

정말 생각보다 좋았다.

낮은 베이스가 심장을 울렸고 웅장한 사운드와 기태의 무겁고 단단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살짝 하드한 느낌의 록 스피릿이 느껴진달까.

“원래 기태가 헤비메탈 좋아했잖냐. 이 노래 좋더라. 뭔가 들으면 심장이 쿵쿵 뛴달까.”

“...뭐. 팬 분들도 제일 좋아해 주시는 노래 중 하나야. 공연 레퍼토리 클라이막스에 부르는 곡이지.”

재현이 말대로 약간 감정을 고양시키는 종류의 음악이었다. 기태의 말처럼 공연 클라이막스에 부르기 좋은 노래.

“기태야. 너희 밴드 이름이 뭐라고?”

“... 너 바이브로 검색은 어떻게 한 거냐? 거기 나와 있잖아.”

“재현이가 검색해줬지. 됐다. 내가 볼게.”

자기 밴드 이름인데 부끄러워하기는.

나는 스마트 폰을 들어 재생 중인 음악 정보를 확인했는데

“Champion?”

기태네 밴드 이름이 챔피언이었다.

“야. 솔직히 말해봐. 밴드 이름도 그렇고. 워리어 이 노래도 그렇고. 뭔가 자꾸 내가 떠오르는데?”

“뭐래? 미친놈인가.”

“진짜 아니야?”

“아. 아니라고!”

아니기는.

귓불이 빨개졌는데.

참고로 기태는 거짓말하면 목덜미나 귓불이 살짝 빨갛게 달아오른다.

기태도 우리도 모두 아는 공공연한 사실.

“아! 추운 바깥에 있다가 들어와서 빨간 거야! 얼어서!”

“방에 들어온 지가 언젠데. 덥다 더워.”

끝까지 발뺌하는 기태와 덥다며 옷을 한 겹 벗어던지는 재현이.

“푸하하하. 알겠어. 믿어줄게.”

“...”

“근데 노래 좋다. 진짜.”

기태가 내게 영감을 받아서 만들었든 어쨌든. 진짜 노래가 좋았다.

장난스럽게 놀리는 듯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사실은 조금 뿌듯하기도 했다.

나와 준현이에게 자극받아 남들보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도전했던 꿈.

그리고 거기서 이런 성과물들을 만들어내며 자신의 목표를 조금씩 이루어나가는 기태를 보자니 이게 다 내덕분인 것 같고 내 선한 영향력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야. 이거 고음질 파일 있냐?”

“어? 왜?”

“이거. 작사 작곡 다 기태 네가 한 거야?”

“어... 그런데 왜?”

왜긴 왜야.

나름 나를 향한 헌정곡이니 내가 좋은데 써주려고 그러지.

밴드 챔피언이 부른 워리어.

WFC 최강의 자리에 올라설 무대의 입장곡으로 딱이지 않겠어?

*

“하나 더!”

“으악!”

“멈추지 말고. 쉬지 말고!”

“악!!”

조던 리와의 복싱 이벤트가 끝난 뒤 며칠간의 달콤한 휴식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일상 훈련.

“더 할 수 있잖아!”

“... 더 해야돼요?”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야.”

“...”

두호 형이 내 전담 코치진으로 들어오고 난 뒤 훈련 스케줄은 꽤나 많은 부분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아직 여유 있는 것 같은데?”

“뭐야? 이게 네 한계치 맞아?”

“연기하지 마. 봐. 아직 일어날 수 있잖아.”

두호 형은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인지 훈련을 정말 빡세게 돌렸다.

“최 코치? 잠시만...”

오죽하면 스트렝스와 컨디셔닝을 담당하는 코치가 두호 형과 따로 이야기를 해야 했을 정도.

“자. 자. 하나 더!”

“으아아악!!!”

그러나 결과적으로 바뀌는 건 없었다.

“것 봐. 넌 할 수 있다니까?”

스트렝스 코치는 내가 두호 형의 훈련 스케줄을 절대 따라가지 못할 거라 했지만, 생각 외로 나는 두호 형의 훈련 코스를 모두 무리 없이 소화해 냈다.

“... 미스터 강에 대한 스테이터스를 다시 체크해봐야겠군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프로그램 안에서 미스터 강의 한계치를 갱신해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가 가진 육체적 한계는 우리의 상정을 뛰어넘었어요.”

오죽하면 스트렝스 코치와 그의 팀이 두호 형의 코칭을 보고는 내 훈련 스케줄을 처음부터 다시 짜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후욱. 후욱. 형. 제발 조금만. 조금만 쉽시다. 어우. 나 죽겠어요.”

아직 라무차와의 시합 일정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힘들어.

어차피 연말 연초는 지나야 시합 일정이 나올 예정이었다.

예상하는 일자는 내년 2월이나 3월 중 있을 연초 최대 이벤트.

“...너 인마. 항상 이렇게 훈련했냐?”

“네?”

“너 항상 이렇게 훈련했냐고.”

바닥에 주저앉아 두호 형에게 엄살을 피워봤는데 그 반응이 예상과 달리 심상치 않았다.

“해서야.”

“...넵.”

“너. 솔직히 지금 죽을 것 같아?”

“...”

솔직히 말하자면.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죽을 것 같을 정도로 훈련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도저히 일어나기도 힘들고. 내일 훈련 못 받을 것 같고. 머리도 못 감을 정도로 힘이 없고. 그래?”

“...”

“근육이나 관절에 염증이 생길 정도로 무리했어? 진짜 솔직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나는 네가 아니니 네 몸이 느끼는 부하를 알 수가 없으니까.”

“... 아뇨.”

근육이나 관절에 염증이 생기면 안 되죠. 그러면 오히려 훈련을 쉬어야 하는데.

“이제껏 근육이나 관절에 무리가 올 정도로 훈련을 받아본 적은 있어?”

“... 아뇨.”

“그러면. 해서 너는 아직 네 몸이 어느 정도에서 무리를 느끼는지. 그 신호는 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거냐?”

“...”

사실. 두호 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껏 이렇게 훈련해 왔고 이런 훈련으로도 큰 어려움 없이 100프로의 힘을 내지 않고도 승리해왔다.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

“...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몸에 대해 제일 잘 알아야 해. 내 한계가 어디인지. 그 한계선 근처에 도달했을 때 몸이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그 기준선이 잡혀야 훈련에 기준이 잡힌다. 그런데 너는 지금 그런 기준이 전혀 없어 보여.”

“사실 형이 무슨 이야기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몸의 한계에 도달하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한계에 도달하는 경험이 없으면 좋은 거잖아요.”

“... 너. 문제가 있구나.”

아니. 안 다치고 훈련 성실히 잘 받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진짜.

“내가 미들급 토너먼트를 멈출 수 있었던 건. 여기서 더 무리하면 몸에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는 확신이 있어서였어. 그건 수십 년간 운동하면서 내가 경험한 내 몸이 보내는 반응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지. 지금 그 기준을 잡아두지 않으면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

“한계치까지 안 가면 되잖아요. 멈춰야 할 때까지 몰아넣지 않으면 되잖아요.”

“... 강해서. 너 이제껏 이런 못난 마인드로 케이지에 올랐었구나?”

“못난 마인드라뇨.”

“적당한 마음가짐. 대충해도 이긴다는 마인드. 스스로에게 절실하지 않은 그런...”

“마음가짐이. 마인드가. 승패를 나누진 않잖아요. 결국, 이기는 건 더 쎈 놈이에요. 마음가짐으로 실력을 뒤집을 수 있으면 저를 이겼어야 하는 선수들이 몇 명은 있었겠죠!”

“...”

...

어쩌다 보니 두호 형의 말을 자르고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지난 조던 리와의 복싱 이벤트 이후 텔론 회장과 만났을 때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지금껏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내왔는데.

심지어 위기라고 느낄만한 순간들도 없이 승리해왔는데.

당사자인 내가 괜찮다는데.

왜 자꾸 옆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깎아내리려는 듯 이야기들을 하는 걸까.

“...확실히. 넌 지금 문제가 있구나.”

“문제가 있으면 결과로 나타나겠죠. 하지만 저는 이제껏 압도적으로 이겨왔고, 결과로 과정을 증명해왔어요. 저는 챔피언이고.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어요. 누구와는 다르게.”

“...”

아차.

감정이 격해져 말이 헛나왔다.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이 잘못 나온 게 아니라 정말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죄송해요. 말이 잘못 나왔어요.”

“모든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래. 해서 네 말도 틀린 건 아니지. 네가 가진 그 압도적인 재능을. 천재성을. 어쩌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처음으로 첨예하게 부딪친 나와 두호 형.

하지만 그 끝은 두호 형이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서는 거로 결말이 났다.

“네가 원하는 대로 훈련해. 더 뭐라 하지 않으마.”

“...형.”

작은 목소리로 두호 형을 불러봤지만, 꽤나 화가 난 듯한 모습으로. 또, 조금은 어깨가 처진듯한 모습으로 체육관을 나가는 두호 형.

아무리 감정이 격해졌다지만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게 맞았다.

서로 감정이 조금 가라앉으면 먼저 사과해야지.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그때 안쪽 사무실에서 나오는 필승 형.

“해서야. 안 코치님이 부르신다.”

“네?”

그리고는 안 코치님이 부른다는 말을 전달해왔다.

“헤비급 타이틀전. 조금 전에 WFC에서 일정 조율 연락이 왔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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