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61화 (161/203)

< 161화_Give up >

1.

-강해서! 2라운드 56초! 동양 태평양 챔피언을 격침 시키다!

-MMA를 넘어 복싱까지! 세계를 노리는 코리안 파이터 강해서!

-한국 브랜드 평판 1위? 세계 스포츠 브랜드 평판 1위! 한국을 빛낸 스포츠 스타 강해서!

-강해서 신드롬? 만학도의 꿈을 키우는 청장년층 늘었다.

-조던 리와의 복싱 이벤트. 3분 56초 만에 강해서가 벌어들인 돈은?

-강해서! 시급 1,050억? 월드클래스 스포츠 스타의 수입을 알아보자!

-강해서와 카이서스의 말말말! 두 사람의 이벤트전은 과연?

-카이서스의 체육관에서 현지 훈련을 진행한 강해서! 그와 카이서스의 인연은?

└강해서 진짜 진심 개사기캐인 듯... 복싱도 그냥 미쳤던데? 스위치히터에 다양한 스타일 활용까지! 개사기 아니냐?

└솔직히 에바 같음. 저렇게 여러 스타일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한 스타일을 깊게 파는 게 훨씬 효율적임

└개소리하넼ㅋㅋㅋ 한 스타일을 깊게 판 것보다 효율 적어도 강해서가 이김~ 조던 리 개발렸쥬~ 카이서스도 원래 스타일은 스위치히터에 올라운더쥬~ 반박못하쥬~

└ㅋㅋㅋ 말투 진짜 개때리고싶네ㅋㅋㅋㅋ

└시급 1050억이래서 뭔말인가 했더니ㅋㅋㅋ 기레기 수준 진짜... 4분 경기 뛰고 70억 벌었으니까 시급으로 따지면 1050억이라는 소리였누? 왜? 월급으로 계산해보지 그래? 어그로하고는 ㅉㅉ

└복싱 이벤트는 티비 중계 안 해줘서 실시간으로 못 봤었는데. 장난 아니었네 ㅋㅋㅋ 근데 진짜 강해서 카이서스랑 시합 가나?

└갓-해서와 카이서스! 신과 황제의 싸움이네. 가슴이 웅장해진다 진짜

└여윽시 캡틴 코리아! 국뽕이 치사량이오!

조던 리와의 복싱 이벤트가 끝난 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터넷상에는 강해서의 승리 기사가 쉼 없이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하. 참. 4분에 600만 달러라니.”

그리고 그런 강해서의 기사를 접한 라무차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나도 이참에 복싱이나 해볼까? 돈이 장난이 아니잖아?”

“참아. 스파링 글러브 끼고도 답답해하면서.”

“하하하. 그건 맞아.”

라무차의 코치 가필드는 그에게 어림도 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듯 핀잔을 줬다.

“답답한 복싱 글러브를 끼고는 때리는 맛이 안 난단 말이지. 맞아도 맞는 느낌이 안 나고.”

라무차가 MMA라는 스포츠를 선택한 이유.

그건 폭력을 좋아하는 그의 성향과 가장 잘 맞으면서도 그나마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운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조르고. 던지고. 몇 가지 제한이 붙긴 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지. 흐흐.”

크게 꿈틀거리는 근육을 풀어내며 으쓱거리는 라무차를 보며 가필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컨트롤이 어려워. 컨트롤이.’

벌써 몇 년째 라무차를 맡아 캐어하고 있는 그였지만 그에게도 라무차의 컨트롤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나마 그의 기호를 파악하고 특정 행동으로 유도하는 게 최선일 뿐.

“그래서. 텔론 회장은 뭐래? 복싱 이벤트도 끝났으니 슬슬 방어전 일정을 잡아야지?”

“안 그래도 연락이 왔었어. 내년 2월. 늦어도 3월. 연초 가장 큰 이벤트 무대가 어떻냐더군.”

“흐흐. 좋지. 좋아. 미스터 강. 이놈이랑 붙으면 PPV 판매수익도 높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라무차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본능에 이끌리는 삶을 살았다.

좋고 싫은 것에 대한 반응이 확실했고, 돈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승리 수당까지 받으려면. 언제나 침착해야 해. 알지?”

“끄응. 걱정 말라고. 애송이 놈이 날 열받게 하지만 않으면...”

“열받게 하더라도. 참아야지.”

“... 그게 잘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잖아.”

퉁명스럽게 말하며 시선을 회피하는 라무차.

“후우...”

라무차의 WFC 전적은 17전 15승 2패. 15KO였다.

“솔직히 걱정돼. 라무차 네가 이렇게 흥분하는 건 처음 봤으니까.”

“그만큼 강한 놈이거든. 강해서라는 애송이는 말이야.”

“...”

“토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강함만은 진짜배기야.”

후우.

가필드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라무차의 전적 중 승리는 모두 KO승이었으며 2패는 반칙으로 인한 몰수패였다.

그것도 두 시합 모두 상대방을 들어 던지는 파일드라이버에 가까운 헤드슬램으로 인한 반칙패였다.

라무차의 반칙으로 인해 승리를 거둔 두 선수는 모두 목에 심대한 충격을 받고 은퇴 혹은 은퇴에 가까운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고.

“그래도. 내가 이겨. 걱정 말라고.”

“후우.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흥분하지 말라는 거야.”

“그것도 걱정 마. 토끼가 아무리 쎄봤자 토끼야. 이건 뭐랄까. 사냥 직전의 흥분이랄까. 그런 거야. 사실 이제껏 사냥이라기에도 민망한 상대들이랑만 붙었잖아?”

“...”

가필드는 라무차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헤비급에서 100킬로가 넘는 거구들을 어깨 위로 들어 바닥에 내려찍는 짐승 같은 선수가 라무차였다.

오죽하면 닉네임이 비스트일까.

가필드는 라무차가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다음 시합을 ‘사냥’이라고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만.”

라무차의 훈련을 준비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가필드를 붙잡은 라무차의 마지막 한마디.

“만약 애송이 놈이 토끼가 아니라 늑대나 사자가 된다면. 그때는 나도 장담 못 하지. 흐흐... 내 목을 노리는 상대에게 흥분을 감추고 싸울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

무슨 중요한 말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역시나였다.

가필드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훈련기구를 챙기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찬란한 재능이든 무서운 신예든 상관없었다.

가필드는 그저 라무차의 상대인 강해서의 애도를 표할 뿐이었다.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은 절대 사자나 곰을 이길 수 없다. 그것도 맨손으로는.

그게 자연의 섭리였다.

강해서는. 라무차를 이길 수 없다.

그러니 라무차의 코치 된 입장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디 강해서가 라무차를 흥분시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라무차가 패배할 단 하나의 시나리오는 반칙패 뿐이었으니까.

*

“... 기권이요?”

“그래.”

조던과의 시합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오자 예상치 못한 소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겠어요?”

“괜찮지. 이대로 올라가봤자... 아마 줄창 두들겨 맞기만 하다가 내려올 거다.”

“...”

두호 형의 미들급 챔피언 토너먼트 기권 선언.

학센과의 4강전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이제는 미첼과의 결승만이 남은 상태였다.

지난 경기에서 부상이 조금 있기는 했다지만 기권 선언을 할 줄은 몰랐는데 꽤나 예상 밖이었다.

“해서야.”

“네?”

“난 너랑은 사정이 달라. 끝이 보이면 멈출 줄도 알아야지.”

“언제는 앞으로 나아갈 때는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라면서요.”

“그러니까 인마. 눈앞에 떡하니 낭떠러지가 있는데 멈춰야지. 그걸 계속 나아가는 것도 미련한 거다.”

“...”

이 아저씨가 원래 이렇게 말을 잘했나?

아주 달변가가 다 되셨어.

“넌 아직 앞이 창창할 거다. 벽은 있을지언정 길의 끝이 보이진 않겠지. 그러니 계속 나아가라. 내 몫까지.”

“... 요즘 뭐 말하기 학원 다녀요?”

“하하하. 유안이 때문에 공부를 조금 하고 있지. 싸움만 할 줄 아는 아빠라고 손가락질받으면 안 되니까.”

“참. 힘드네요. 가장이라는 것도.”

“하하하.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다.”

흠.

그러고 보니 이번에 한국 오면 아름이네 부모님을 뵙기로 했는데.

정말 나도 언젠가는 두호 형의 심정을 이해할 날이 올까?

“은퇴...를 하는 건 아니죠?”

“음... 일단은 미들급 토너먼트에만 기권 의사를 표할 생각이다. 웰터급 타이틀은 쥐고 있어야지. 어차피 지금은 보다시피 훈련도 힘들어서. 이참에 웰터급으로 체급 조절을 하는 중이야.”

그나마 듣던 중 다행인 말이었다.

이번을 계기로 두호 형이 은퇴를 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아예 은퇴하는 건 아닌 듯 했다.

“고민은 하고 있어. 은퇴를 해야 할지. 지도자 준비도 하고 있으니까.”

“형도 나이가 있으니까요...”

“유안이랑 시간도 더 갖고 싶고. 그리고... 나도 이제는 조금 겁난다.”

“네?”

“어느 순간부터. 케이지 위로 오르는데 망설임이 생겼어. 격투기 선수에게는 있어선 안 되는 망설임이지.”

“...”

“이번에 케이지에 들어가면 이길 수 있을까? 지는 건 아닐까? 이런 망설임이 아니야.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을까? 시합이 끝나고 나서도 멀쩡한 모습으로 유안이를. 애 엄마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망설임이라...

나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하고 올랐던 케이지. 스스로의 패배나 부상을 염려했던 적은 없었다.

“열심히 하면 이길 수 있어.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이길 수 있어. 이런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패배하는 순간 나는 ‘열심히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은 게’ 되어버리니까.”

“음...”

“다만. 시합이 끝나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노력하자. 열심히 하자.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훈련에 매진해왔는데. 이제는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훈련해도 후회를 할 것 같다는 망설임이 생겼어. 이건 파이터로서 치명적인 독이지.”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지킬 것이 많아지고 경기에서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케이지 밖에 많이 생겨버린 거다. 충분히 두호 형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렇다는 거다. 솔직히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미련은 없어. 나 대신 내 뜻을 이어갈 든든한 후배가 있잖아?”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시원섭섭하다는 표정으로 웃어 보이는 두호 형.

“... 누가 형 뜻 이어간대요?”

“누가 너래? 태양이 말한 거야 태양이 인마. 미들급 직속 후배. 크큭.”

“... 아놔. 이거 놔요!”

아주 재미있다는 듯 큭큭거리며 웃다가 갈비뼈 쪽이 아픈지 가슴팍을 부여잡고도 계속해서 웃어젖히는 두호 형.

“농담이고. 태양이도 기대가 되지만. 역시 내 정신을 이어받는 건 너지. 강해서.”

“됐거든요.”

“당분간 휴식하면서. 체육관 일을 좀 보려고. 형석이 형도 그러길 바라고.”

“스텝으로요?”

“그래. 아마 해서 네 헤비급 타이틀전이 내 지도자로서 첫 커리어가 될 것 같아.”

“... 좋네요.”

내 스텝진으로 두호 형이 참여하다니.

형의 은퇴와는 별개로 뭔가 내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형.”

“응?”

“제가 처음 형 시합에 세컨 진으로 따라갔을 때 했던 말. 기억해요?”

“...”

“따라오라고. 세계를 보여준다고 했죠?”

“그런 말을 했던가...”

“이번엔 제 차례네요. 따라오세요. 형이 제게 세계를 보여줬다면. 전 세계의 정점을 함께 밟을 수 있게 해드릴게요.”

MMA든 복싱이든. 가장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줄게요.

나만 믿고 따라와.

**

“... 그렇게 입고 가게?”

“응?”

오늘은 아름이의 부모님을 뵙기로 한 날이었다.

아름이와 나는 누가 먼저 나서서 공식적으로 말을 한 적은 없지만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름이가 먼저 부모님과의 만남을 말하기 전까지는.

“무슨 장례식장 가니?”

“... 옷이 없어... 특히 맞는 게...”

운동을 시작하고 옷을 사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나마 유나와 함께 쇼핑을 갔던 기억이 가장 최근의 쇼핑이었으니 말 다 했지.

옷장을 뒤져봐도 인터넷으로 구입한 운동복이 전부였다.

몇 개 있던 정장들도 모두 운동하기 전에 샀던 옷들 뿐. 체급이 늘어버린 지금은 맞는 옷이 없었다.

“그나마 이게 제일 살 쪘을 때 산 옷이라서...”

110킬로에 육박했던 운동 전 인생 몸무게를 찍었을 때 샀던 검은 정장.

그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이었다.

“...내가 미쳐. 지금 몇 시야?”

“지금? 2시...”

“빠듯하겠다. 일단 들어가서 옷부터 갈아입자.”

“엉?”

“아무 옷이나 갈아입고. 백화점에 옷 사러 가자. 이건 아니야. 이게 어딜 봐서 맞는 거야? 가슴은 터질 것 같고 팔 기장은 짧고 허리는 널널하고.”

“...”

“빨리! 빨리! 시간 없단 말이야.”

아름이의 극성에 일단 빨리 옷을 갈아입으러 집으로 들어갔다.

하긴. 내가 봐도 이건 좀 아니다 싶긴 했는데...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

미리 준비를 해야 했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러면 아름이랑 첫 야외 공개 데이튼가?”

한국에서는 아름이와 단둘이 백화점같이 사람이 많이 몰린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분명 사람들이 알아볼 텐데... 첫 공개 데이트라니...

“뭘... 입지?”

왜 죄다 운동복 뿐이지?

유나가 사준 옷도 체급이 올라가면서 지금은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렸다.

“해서야! 뭐해! 아직 갈아입어?”

“자,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첫 공개 데이튼데 운동복이라니.

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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