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52화 (152/203)

< 152화_선택지 >

1.

-휘익. 떠억!

“크윽...”

2미터에 달하는 신장.

120킬로에 육박하는 체중.

그리고 그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킥 공격.

브라이언은 킥 공격을 맞은 후 행해야 했을 자신의 할 일을 미처 이행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야 했다.

‘괴물...’

브로일러 라이트 헤비급을 제패한 챔피언 브라이언 제프.

비록 지난 강해서와의 챔피언 전에서는 패배했지만 꽤나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경기 후 시합 영상을 보며 피드백을 가져보니 더더욱 그랬다. 충분히 유리하게 게임을 풀어갈 수 있었고 승리할 수도 있었는데 막상 당시에는 그 길이 보이지 않았었을 뿐.

강해서가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린다는 소식에 브라이언도 고민이 깊어졌었다.

브로일러 라이트 헤비급에는 딱히 위협적인 도전자가 없다고 생각되었기에 그 또한 체급을 올려야 하나 하는.

그러던 중 강해서가 WFC 헤비급 챔피언과 타이틀전을 위해 달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또, 그 챔피언이 스파링 메이트를 구한다는 소식 또한 접하게 되었다.

현재 브라이언의 평체는 100키로에 중반에 육박하는 수준.

93키로의 제한을 가진 라이트 헤비급은 훌쩍 뛰어넘었고 웬만한 헤비급 선수와도 맞먹는 수준이었기에 WFC 헤비급의 수준을 가늠코자 라무차의 스파링 메이트에 지원하게 되었다.

“이봐. 괜찮아? 지금이라도 그냥 제대로 된 스파링을 하자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비틀거리는 브라이언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라무차의 눈빛.

“전력을 다한 스파링은... 솔직히 자넨 나한테 안 돼. 자네같은 스파링 메이트 구하기 어렵다고.”

라무차가 브라이언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브라이언만큼 쓸 만한 스파링 메이트를 구하기 어렵다는 단 하나의 이유.

“까득.”

브라이언은 그게 자존심 상했다.

처음 라무차의 스파링 메이트로 체육관에 왔을 때는 기량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심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스 스파링을 진행하면 할수록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자신과 라무차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 한끗 차이가 아니야.’

격투기 선수는 단 한 번의 시합으로 누가 누구보다 강하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날의 컨디션이나 찰나의 사고로 승패가 나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정말 현격한 실력차이가 있는게 아니라면 조금 더 많은 표본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브라이언은 자신이 강해서에게 패배를 하긴 했지만 그와의 차이가 현격히 날 정도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른 날. 다른 곳에서 경기를 했을 경우 자신이 이길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따지자면 6대4. 조금 더 타이트하게 보면 7대3 정도로 강해서가 유리한 건 맞지만 절대 이길 수 없는 수준은 아니라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라무차는 달랐다.

메스 스파링만으로도 그에게서는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2미터의 거구임에도 야생동물처럼 유연하고 재빠른 몸놀림.

정형화 되지 않은 펀치와 킥임에도 적재적소에 날아들었으며 그 파워 또한 무시무시했다.

무엇보다 브라이언 자신의 공격이 도저히 먹히질 않았다.

보고 피하는 게 아닌 대부분이 정말 감으로 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라무차의 회피.

그에 브라이언은 결국 메스 스파링이 아닌 전력 스파링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메스 스파링과 전력 스파링은 마음가짐도. 공격의 디테일과 스피드도 다를 테니까.

-휘익. 슥. 쒸이익. 쩌억!

하지만 결과는 더욱 처참했다.

브라이언의 세련된 기술과 펀치는 모두 라무차를 건드리지도 못했고, 투박한 궤도에 그저 휘둘러 올 뿐인 라무차의 펀치는 정면으로 브라이언의 안면을 두드렸다.

-쿠웅!

“이봐! 괜찮아?”

라무차의 펀치에 다운을 허용한 브라이언.

‘강... 해서...’

흐릿해져가는 의식 사이로 브라이언은 라무차의 다음 상대이자 자신의 친구인 강해서를 떠올렸다.

‘이 자식은... 괴물... 이야...’

*

“... 악!”

한창 복싱 훈련 도중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글러브를 벗어던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작스런 내 돌발 행동에 깜짝 놀란듯한 맘모스 코치.

-후비적. 후비적.

“그... 귀가 간지러워서요.”

맘모스 코치는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가 내 이야기를 하는지 진짜 귀가 너무 간지러웠으니까.

복싱 글러브를 끼고 귀를 후빌 수는 없으니 어쩌겠어.

“... 다 했으면 다시.”

“넵!”

복싱은 MMA에 비해 움직임. 그러니까 스텝이 조금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낮은 파운드의 글러브를 끼고 타격 하나하나가 언제든 상대방을 KO시킬 수 있는 진검과도 같은 MMA에서는 복싱보다 조금 더 먼 거리에서 대치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그만큼 근거리에서 펀치의 교환이 짧은 순간에도 수없이 이어지는 복싱과는 달리 한방 한방이 크고 묵직한 편치들로 구성이 되는 MMA.

아무래도 공격의 빈도가 복싱에 비해 적다보니 MMA의 스텝은 회피기동보다는 짧게 피하고 빠르게 들어가서 카운터나 테이크다운을 노리는 식으로 발전되었다.

그에 비해 복싱은 팔만 뻗으면 상대방에게 닿을 거리에서 짧은 순간에 수없이 많은 교전을 벌여야 했고, 짤은 거리에서 상대의 펀치를 수비하기 위해선 상체 컨트롤만큼 다리의 스텝도 중요했다.

“아웃복서. 스워머. 슬러거. 이런 건 다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말 하는 사람들이 있지. 맞아. 요즘 복싱은 그런 틀에 맞춰서 이야기하기엔 너무 뒤섞여 있으니까.”

한창 스텝 향상을 위한 어질리티 훈련을 하고 있는데 맘모스 코치의 입이 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쓸모가 없다고는 할 수 없어. 왜냐하면 각 선수들의 강점을 따지고 보자면 결국 또, 저 세 가지 스타일 안에 들어가게 되거든.”

복싱의 기본 이론이 약한 날 위해서 훈련 중에는 이렇게 이론 공부를 시켜주는 우리 자상한 맘모스 코치님.

훈련 중이 아니었다면 분명 꾸벅 꾸벅 졸았을 텐데. 몸을 움직이면서 졸 순 없으니 강제로 듣게 되는 대단한 공부법이었다.

“조던 리는 굳이 따지자면 슬러거 스타일의 파이터다. 요즘은 슬러거들도 인앤 아웃을 하며 스텝을 잘 쓰고 초반 셋업은 아웃파이팅으로 가져간다지만, 확실히 스피드와 스텝은 약해.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무게중심을 낮춰야 하는 슬러거의 특성상 어쩔 수 없지.”

“슬러거에 가까운 선수는 어쩔 수 없이 아웃복서 스타일에 약하다. 아니, 스타일을 떠나서. 그냥 느린 놈은 빠른 놈한테 맞게 돼 있어. 그게 복싱의 이치지.”

당연한 이야기를 하시는 맘모스 코치님.

느린 놈이 빠른 놈한테 맞는 건 MMA도 마찬가지죠.

물론 그 빠름과 느림이 절대적인 속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 그러면 카이서스는 어떤 스타일에 가까워요?”

맘모스 코치의 설명을 듣다보니 문득 든 궁금증.

카이서스는 어떤 스타일의 파이팅을 할까?

“카이서스라... 그는 지금 전형적인 슬러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허리와 상체를 세우고 뚜벅 뚜벅 걸어가서 강력한 펀치로 도전자들을 잠재우고 있으니까.”

“그러면 카이서스를 상대로도 아웃복싱 스타일을 가져가면 유리하겠네요?”

“음...”

잠깐 고민하는 듯 한 맘모스 코치.

하지만 그의 입은 이내 다시 열렸다.

“내가 말 했지. 지금은 전형적인 슬러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네?”

“그는 지금 오소독스 슬러거 파이팅을 하고 있어. 최근 몇 년간 그 스타일이 변한 적이 없지.”

“네.”

“그의 과거 영상을 찾아본 적이 있나?”

그러고 보니 안 코치님이 카이서스의 전성기 영상을 보려면 5-6년 전의 껄 보라고 했었지.

“카이서스는 오소독스가 아니야. 그가 왜 위대한 황제라고 불리는지를 넌 모르는 것 같군.”

그냥 상대할 선수가 없을 정도로 강하기 때문에 위대한 황제라고 불리는 게 아닌가?

“후후. 겨우 그 정도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프라고 불릴 리가 없지. 어떤 스타일이라도 약점이나 공략 법은 존재할테니까.”

“그러면요?”

“카이서스는 가장 완벽한 스위치히터야. 내가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오소독스와 사우스포를 왔다갔다하며 심지어 두 자세를 믹스해서 전혀 본 적 없는 스타일의 파이팅을 하기도 하지.”

“그건 들었어요. 안 코치님한테.”

“그리고. 그는 가장 완벽한 복서-펀쳐 스타일이야. 그냥. 전천후 올라운더라고 보면 돼.”

“...”

“그는 모든 스타일의 복싱을 왼손 오른손. 심지어 그 중간 경계인 어떤 스타일로도 펼쳐낼 수 있어. 그것도 누구보다 뛰어나게. 그에겐 약점이 없었지.”

내가 뭘 들은 건가 싶었다.

그러니까. 복싱에 한해서는 그냥 없는 것 없이 다 갖추고 있다는 소리잖아?

“전성기 시절의 카이서스는 말 그대로 신이었어. 복싱은 가위 바위 보 같은 상성이 아무래도 조금씩은 있는데, 거기서 무조건 유리한 상성을 낼 수 있다면 질 수가 없는 싸움이 되겠지. 중요한건, 심지어 같은 주먹을 내더라도 카이서스가 더 강하다는 거야. 그는 어떤 스타일로도 세계 최정상을 노릴 수 있는 선수였으니까.”

“... 그게 5-6년 전이면. 지금은 전성기에서 내려왔을까요?”

“흠...”

최근 몇 년간 오소독스 슬러거의 복싱 스타일만 사용했다면 나머지 무기들은 무뎌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건 내가 뭐라 장담할 수 없어. 다만... 최근 들리는 흥미로운 소식은 있더군.”

“네?”

“평소 개인 훈련을 잘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 카이서스가. 작년쯤인가부터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고 해. 그의 나이는 아직 복서로서 한창인 30대 중반. 그의 무기들이 녹슬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 나는.”

“하하. 그렇구나.”

솔직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전성기의 모습이 아닌 무뎌진 그를 상대해야했다면 꽤나 김빠지는 일이 될 것 같았으니까.

이왕 맞부딪친다면. 비록 지더라도 최고의 상대와 붙고 싶었다.

“카이서스 이전에 조던 리부터 생각해. 그도 그리 만만한 선수가 아니니까.”

“넵!”

“마지막 세트 하고 휴식 후 스파링이다. 조던 리의 사우스포에 완벽히 적응할 때 까지.”

“넵!”

맘모스 코치와의 복싱 훈련.

이전까지의 타격 훈련이나 복싱 훈련과는 또 다른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나날들이었다.

“자. 다음은 미스터 킴!”

“넵!”

물론 내 옆에서 함께 구르고 있는 김재우 선수.

아무래도 파이팅 스타일까지 자신과 비슷한 김재우 선수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인지 맘모스 코치가 정성스레 굴려주고 있었다.

“해서야! 코치님 호출!”

한창 스텝 훈련 마지막 세트를 마치고 쉬고 있는데 안 코치님의 호출이 들어왔다.

“후우... 네!”

꽤나 부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체육관 안쪽의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을 걸을수록 부들거리던 다리가 안정을 되찾고 조금씩 힘을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똑똑

“코치님. 저 해섭니다.”

-들어와.

꿀 같은 휴식 시간을 반납하고 찾은 사무실.

제발 소파에 앉으라고 해줬으면...

“일단. 거기 좀 앉아라.”

“넵!”

나이스.

소파에 앉으면 최소 20분짜리였다.

“우선. WFC에서 연락이 왔다.”

“WFC에서요?”

“그래. 가장 급한 건 복싱 이벤트 매치. 조던 리와의 매치 일정이 나왔다.”

드디어 나왔구나 싶었다.

벌써 기사도 나왔고 너튜브나 인터넷에는 관련 떡밥 영상들이 수백 개는 떠도는데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오히려 조금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

“11월 초. 라스베이거스다.”

“두 달 조금 안 남았네요.”

“일정만 안 나왔다 뿐이지 매칭은 이미 결정 났었기에 훈련 스케줄이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그건 그렇죠.”

조던 리와의 매치가 확정된 건 8월 말 페드릭과의 경기가 끝난 직후였으니까.

“그리고... 다음은 타이틀전에 관한 내용이다.”

조던 리와의 매치는 말 그대로 이벤트 매치일 뿐.

타이틀전이야 말로 메인 디시였다.

“두 가지다.”

“네?”

“라이트 헤비급에서 타이틀 샷을 받은 선수가 타이틀전을 요구하고 있어.”

“아...”

미들급은 타이틀을 내려놨지만 라이트 헤비급은 아직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너도 아는 선수다. 빌리. 그가 수문장을 뚫고 랭커 진입 후 핸콕과의 타이틀 샷이 걸린 매치에서도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현 라이트 헤비급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빌리.”

TWF31 헨더슨의 팀 코치로 출연한 바 있는 선수.

그는 자신의 형인 클락 때문에 내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레이첼과 멜린 가문의 선처를 알게 된 후 그 감정을 어느 정도 삭힌걸로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런 감정들을 차치하고라도 라이트 헤비급의 가장 강력한 도전자로서 내게 도전하는 건 꽤나 놀라운 일었지만.

“두 번째는. 라무차와의 헤비급 타이틀전이다.”

“...라무차.”

사실 나는 이게 용건일거라 생각했다.

라이트 헤비급 방어전은 생각지 못했으니까.

“우선. 텔론 회장은 네 의사를 존중한다고 했다. 라이트 헤비급 방어전을 먼저 가질 것인지. 헤비급 타이틀전을 먼저 가질것인지. 다만 라이트 헤비급 방어전을 치르게 되면 헤비급 타이틀 샷은 페드릭에게로 넘어갈 수도 있다.”

“아무래도. 그렇게 되나요?”

“라무차의 지난 경기가 너무 오래되었어. 헤비급 방어전도 빠른 시일 내에 치러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흠...”

이건 고민을 조금 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미들급도 한 번의 방어전을 치르지 못하고 타이틀을 내려뒀는데 라이트 헤비급도 방어전을 한번 젖히는 건 그림이 별로 안좋았으니까.

그렇다고 라무차와의 타이틀전을 그냥 넘겨버리는 것도 꽤나 아까운 일이었고.

-Rrrrrrrr

그때 울리는 내 스마트 폰 벨소리.

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더니 해외에서 걸려온 모르는 번호였다.

“받아봐라.”

“...넵.”

혹시나 보이스피싱같은 사기 전화가 아닐까 하며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는데

-헤이. 미스터 강? 나야. 브라이언.

MMA 바닥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

브라이언 제프의 전화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