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50화 (150/203)

< 150화_맘모스 >

1.

“반갑습니다. 강해서 선수님! 저 진짜 팬이에요!”

최슬혜 선수의 연락을 받은 다음 날 바로 찾은 동부 복싱클럽.

“안녕하세요. 최슬혜 선수 소개로 왔습니다.”

“잘 오셨어요. 진짜.”

KPBF

한국 프로복싱 연맹의 헤비급 챔피언 김재우 선수가 정말 반갑게 날 맞아주었다.

“슬혜는 뛰러 나갔어요. 안으로 좀 들어오세요.”

“아. 네.”

김재우 선수의 안내를 받아 체육관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체육관 시설이 꽤나 엔틱했다.

“하하. 시설이 조금 낡았죠?”

“네? 아. 아뇨. 클래식하고 좋은데요?”

여기저기 손때 묻은 운동기구들과 흔적들.

옛날 우리 체육관이 생각났다.

지금의 새로운 체육관도 어느덧 익숙해졌다지만 역시 첫 체육관은 의미가 남달랐으니까.

“사실 우리 체육관이 사정이 별로 안 좋아서... 하하. 아! 저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네? 아. 네.”

김재우 선수는 나보다도 어린 20대 후반인 거로 알고 있었는데 정확히 몇 살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은 없었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잘 안 나와서 어쩔 수가 없었다.

“와. 저 진짜 팬인데. 이거 저 SNS에 올려도 돼요?”

“네? 아. 그럼요.”

나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정말 기쁜 듯 환한 웃음을 짓는 김재우 선수.

사실 내가 최슬혜 선수의 제안 이전에 훈련 메이트로 김재우 선수를 생각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정보가 없어.’

KPBF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보가 나왔다.

한국 프로복싱연맹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그 KPBF의 챔피언인 김재우 선수에 관한 정보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이름을 알아야 겨우 기사 하나가 검색될 정도랄까.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팀 피스트’를 통해 현직 프로복싱선수에게 복싱 훈련을 받고 있었다.

해당 선수는 한국권투연맹(KBF) 소속의 헤비급 사우스포 선수였다.

한국에는 몇 개의 프로복싱 단체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한국 프로복싱연맹(KPBF)과 한국권투연맹(KBF), 한국권투협회(KBA), 한국권투위원회(KBC). 복싱매니지먼트코리아(KBM). 대한모든복싱평의회(KABC). 총 6개.

한국은 복싱의 불모지라 불릴 만큼 복싱계가 죽어있었는데 이번 이벤트 전을 준비하면서 그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가뜩이나 작은 복싱계는 6개의 단체가 파이를 나눠 가지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도 교류와 반목을 하며 경쟁하고 있었다.

“이거. 슬혜한테 듣기는 했는데. 왼손잡이 선수를 상대하는 느낌 정도를 알려드리면 될까요?”

“네. 사실 그게 제일 크죠. 다음 상대가 왼손잡이라.”

신장이나 리치는 김재우 선수와 조던 리의 차이가 너무 컸다.

김재우 선수의 키는 190 초반 정도. 나와 비슷했고 리치도 크게 차이 없어 보였으니까..

“사실 저도 최근에 시합이 없었어서. 하하. 오히려 제가 스파링을 부탁드려야 할 판일지도 몰라요.”

“그런가요?”

“저희 협회가 조금 사정이 안 좋아서... 하하.”

체육관도 사정이 안 좋고 협회도 사정이 안 좋고.

그래도 긍정적으로 웃으셔서 다행이네.

“요즘은 타 단체들이 조금 활발한데... 저희는 해당 단체들이랑 협약을 안 맺어놔서요. 하하.”

한국 복싱은 앞서 말한 6개의 단체가 있었고 각 체육관은 복싱 단체에 가입함으로써 해당 단체가 주최하는 시합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가입한 단체와 협약이 맺어진 단체의 시합에도 출전할 수 있었는데 KPBF는 교류 협약이 맺어진 단체가 거의 없다 보니 자체적인 시합 외에는 출전할 수 있는 경기가 없다고 했다.

“다른 단체 시합에 출전하면 바로 제명이라서... 하하. 고민이 많네요.”

결코, 웃으면서 할만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사람 좋게 웃으며 말하는 김재우 선수.

“일단. 몸부터 풀까요?”

“그러죠.”

어쨌든 복싱 훈련을 하러 왔으니 목적부터 달성해야겠지.

실력부터 한번 보자고.

-팡! 팡!

체육관 한쪽에 설치된 작은 복싱 링.

김재우 선수와 나는 둘 다 헤드기어는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스파링용 글러브만 낀 채 링에 올랐다.

“일단. 왼손잡이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일 텐데. 이건... 뭐. 몸으로 배우는 게 최고죠? 저희 같은 사람들은?”

“그럼요.”

복싱 훈련을 시작하면서 사우스포와 스파링을 꽤나 가져봤지만 사실 생각처럼 까다롭지는 않았다.

사실 나 정도 되는 피지컬과 인지력이면 왼손 오른손 같은 건 별문제가 되지 않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

하지만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휙. 팡! 휙. 휘익. 턱! 펑!

내 왼쪽에서 날아드는 오른손 잽은 거리 감각이 애매했고 그걸 피한 뒤 안으로 파고들 때는 내 왼발과 상대의 오른발이 부딪치며 스탭을 방해했다.

충분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상대의 펀치는 내게 닿았고 상대의 왼손은 오른쪽으로 열려있는 내 몸통을 집요하게 노려댔다.

“와. 진짜 왼손잡이 경험 적은 것 맞아요? 틈이 전혀 없으신데요? 유효 타격이 하나도 없었어요.”

짧은 매스 스파링 1라운드가 끝난 뒤.

김재우 선수는 정말 놀랐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이제 겨우 1라운드인데요. 그리고 저도 복싱 훈련은 계속해왔고.”

“그냥 복싱 훈련을 조금 하신 정도가 아니신데...”

당연하지.

집중력까지 끌어올려서 상대했으니 세계급도 아닌 국내 챔피언에게 쉽게 유효타를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실력이 좋네.’

사실 정말 별 기대 안 했다.

같은 체급에 사우스포라는 이유로 하루 정도 날린다 생각하고 왔던 거지 KPBF 챔피언에게서 대단한 역량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김재우 선수와의 공방은 내 기대 이상이었다.

솔직히 KBF 랭커라는 지난 훈련 상대보다 월등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땡

라운드간 휴식 시간이 종료되는 종이 울리고.

“이젠 저도 공격할게요.”

스파링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휙

나와 비슷한 리치임에도 훨씬 길게 뻗어오는 것 같은 김재우 선수의 라이트 잽.

집중력을 끌어올린 채 그 주먹을 피해내며 김재우 선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종합격투기에서는 기본이 양팔 거리라면 복싱은 한팔거리. 혹은 그보다 짧은 거리에서 주먹을 교환했다. 그러니 이 거리에 익숙해져야겠지.

-휘익!

그의 품을 파고들며 뻗은 라이트.

레프트를 뻗자니 김재우 선수의 라이트 잽이 채 회수되기 전이라 펀치를 뻗어낼 궤적이 없었다.

-슥.

오른쪽 어깨는 뒤로 빠져있다 보니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뻗어나가는 궤적도 길었을뿐더러 그 리치도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김재우 선수는 충분히 펀치를 피해내고는 이번에는 비어버린 채 열려있는 내 복부를 향해 라이트 바디를 때려왔다.

-퉁!

왼팔 가드로 라이트 바디를 막아낸 뒤 회수되는 김재우 선수의 오른손을 따라 왼손을 뻗어 레프트 바디를 날려줬다.

-퉁!

매스 스파링이기에 가볍게 바디를 터치하는 정도에서 그친 바디 훅.

-퉁! 퉁 퉁!

그와 동시에 경직된 그의 몸으로 라이트 스트레이트와 어퍼. 레프트 바디까지 한 번 더 욱여넣었다.

“허...”

2라운드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요 타격 부위들에 내 펀치를 허용한 김재우 선수는 잠시 넋을 빼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와... 강해서 선수는 지금 당장 복싱해도 세계급 선수가 되겠어요. 아니지. 이미 세계급 선수니까 동양 챔피언이랑 붙는 건가?”

“하하.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진짜로요. 이거... 생각보다 제가 도움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적겠는데요? 어쩌지...”

글러브를 낀 손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는 김재우 선수.

나는 애초부터 큰 기대를 가지고 온 게 아니었기에 이 정도면 충분했다.

왼손잡이가 어떤 식으로 거리를 쓰는지. 오른손잡이를 상대할 때 주로 어떤 부분을 불편해하고 어떤 상황을 반기는지. 그런 게 알고 싶었던 거니까.

단순 실력으로 국내 챔피언에게 질정도라면 애초에 복싱 이벤트 게임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복싱으로 쳐도 나는 아마 세계 챔피언에 근접한 기량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Rrrrrrr

그때 링 바깥에 놔둔 스마트 폰의 벨 소리가 들렸다.

“아. 잠시만요.”

평소의 기본 벨 소리와는 다른 멜로디의 벨 소리.

이건 아름이나 부모님. 혹은 안 코치님에게 연락이 왔을 때만 울리는 벨 소리였고 웬만하면 꼭 받아야 하는 전화였다.

“여보세요?”

-해서냐? 잘 도착해서 훈련하고 있어?

“넵!”

전화의 발신자는 안 코치님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미국에서 연락이 왔다.

“미국이요?”

-그래. 맘모스한테서.

“맘모스 코치님이요?”

갑자기?

-맘모스가 들어올지도 모르겠어.

“갑자기요? 풀어서 좀 말해주세요.”

안 코치님은 정리된 페이퍼가 없으면 너무 말을 중간중간 건너뛰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었다.

-맘모스가 복서 출신이잖아. 그것도 사우스포.

“...그래요?”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제가 아는 맘모스 코치는 타격으로 브로일러를 씹어먹은 전 브로일러 라이트 헤비급 랭커인데...

-복싱 선수로 활동하다가 부상으로 복싱을 그만두고 종합격투기로 넘어온 거지. 넘어와서도 그라운드보다는 펀치에 킥을 섞은 타격 위주로 플레이했고. 그래도 가장 잘 하는 건 역시 복싱이지.

“흠...”

-거기다 키와 리치도 조던 리보다 우수해. 무엇보다. 맘모스가 먼저 연락이 왔다는 거다. 널 도와주고 싶어서. 아마 국내에서 어떤 훈련을 받아도 그에게서 받는 것보다 못할 거야.

안 코치님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도 맘모스 코치가 직접 한국으로 들어온다면 나로서는 완전 땡큐였다.

-현역 시절 파이팅 스타일도 조던 리와 비슷하니 도움이 많이 될 거다. 그러면 오케이 한 거로 알고 들어오라고 한다.

“넵!”

생각보다 날 도와주려는 손길이 여기저기 많구나 싶었다.

예능에서 딱 한 번 봤을 뿐인 최슬혜 선수부터 미국에서 먼 길을 찾아오는 맘모스 코치님까지.

아!

“잠깐만요! 안 코치님!”

-어. 왜?

“맘모스 코치님. 이름이 뭐였죠?”

맨날 맘모스 맘모스 불러서 이름도 기억나질 않았다.

-까먹을 게 따로 있지. 레오잖아. 레오 벤투라.

“아. 레오 벤투라. 그랬었죠. 알겠습니다!”

-그래. 훈련 잘하고. 끝나면 필승이한테 연락하고.

“넵!”

그렇게 안 코치님과 연락을 끝마친 뒤 다시 훈련을 재개하기 위해 김재우 선수를 돌아봤는데

“죄송해요. 코치님한테 전화가 와서.

”아뇨. 괜찮아요.“

김재우 선수의 눈이 과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 전화 통화하시다가 레오 벤투라 선수 이름이 나오길래...“

”아아. 아는 코치님인데. 이번에 복싱 훈련을 도와주러 한국에 들어오신다길래요.“

”헐!“

...

헐이라는 단어를 현실에서 저렇게 크게 내뱉는 걸 처음 봤다.

채팅 말고 현실에서도 쓰는구나.

”저 레오 선수 완전 팬입니다!“

”네?“

”제가 처음 복싱을 시작한 게 레오 선수 경기 보고였거든요! 어깨 부상으로 은퇴하시면서 펀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MMA로 전향하셨지만!“

”아... 그래요?“

맘모스 코치가 운동을 그만둔 지 꽤 된 거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제가 처음 복싱을 시작한 게 벌써 20년 가까이 되니까요. 초등학생 때 레오 선수 영상을 찾아보면서 왼손잡이 스타일에 빠졌었거든요.“

그렇지.

보통은 운동에 입문하는 게 청소년 시기일 테니 십몇 년 전에 활동했던 선수를 기억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겠다.

오히려 내가 특이한 케이스지. 입문도 늦었을뿐더러 이쪽 세계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옛날 선수들은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으니까.

”제 우상입니다. 복싱을 하게 된 계기!“

아이처럼 신나서 예전 맘모스 코치의 대단했던 시절을 두서없이 쏟아내는 김재우 선수. 그에게 레오는 아마 나한테 두호 형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면. 맘모스 코치 오면 같이 한번 볼래요? 어차피 복싱 체육관에서 훈련하면 좋을 것 같아서 섭외해야 할 텐데.“

”지, 진짭니까?“

”네.“

그거 뭐 별거라고.

맘모스 코치도 자신의 올드팬을 만나는 일은 분명 기꺼워할 거라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날 와락 끌어안는 김재우 선수.

조금 전까지 스파링 중이었어서 땀 때문에 몸이 찐득거려서 결코 상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 두 사람. 뭐해요?“

그때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왜 끌어안고 있어요?“

언제 들어왔는지 최슬혜 선수와 아름이가 나와 김재우 선수를 상당히 불신 섞인 눈으로 번갈아 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