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_도전권? >
1.
“일단 어떻게 된 건지는 아직 전달받은 게 없어. 한국은 지금 일요일이니까. 방금 전에 응급실 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게 다다.”
말인즉슨. 9월 토너먼트를 준비하느라 한국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두호 형이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현지 정리 할 인원 남겨두고 나랑 필승이. 그리고 해서까지 세 명만 먼저 출발할까 한다. 강해서. 괜찮지?”
“당연하죠!”
어차피 오늘 시합은 데미지도 피로도도 없었다.
지금 당장 비행기가 없는 게 아쉬울 뿐.
“그럼 빠르게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간다. 필승이랑 해서는 내일 아침에 늦지 말고. 창섭이는 나중에 따로 좀 보자.”
“넵!”
일단 어떻게든 현장 정리는 마무리가 됐다.
“자. 자. 별 일 없을 거야. 훈련하다가 쓰러지는 일이 뭐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건 오늘의 승리지!”
“그래! 해서야. 오늘 완전 멋있었다!”
평소보다 확실히 다운된 분위기였음을 팀원들도 알아챘을까. 애써 어두운 분위기를 떨쳐내며 오늘의 승리를 축하해줬다.
“하하. 감사합니다! 한국 가면 제가 한턱 쏠게요!”
오늘은 단 4초의 시합으로 파이트머니와 승리수당. 퍼포먼스 오브 어 나이트 까지 꽤나 많은 돈을 벌었으니까 한턱 쏘는 것 정도야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서야.”
“아. 창섭 형.”
그렇게 팀원들과 으쌰으쌰하며 짐을 정리해 숙소에 도착했을 때 쯤. 창섭 형이 날 따로 불렀다.
“한국 가면 상황 보고 연락 좀 남겨주라. 경유지에서 폰 확인 가능하면 바로 확인 좀 하게.”
“아. 넵.”
창섭 형은 이번 WFC 292 시합을 위해 꾸려진 ‘팀 피스트’의 인원 중에서 안 코치님을 제외하고는 가장 맏이였다.
물론 필승 형도 있었지만 필승 형보다 창섭 형이 팀 피스트에 훨씬 오래 있었기 때문에 이런 구도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안 코치님이 먼저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에서 현장을 마지막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창섭 형 밖에 없었다.
우리와 함께 한국으로 가지 못하고 미국에 조금 더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었고.
“너무 걱정 마세요. 아시잖아요. 두호 형이 어떤 사람인지.”
“그래. 하하. 걱정 안 해 인마.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일부러 더 웃으며 대답하는 창섭 형.
하긴. 창섭 형은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두호 형과 함께 운동했었으니까.
팀 피스트에서 두호 형과 가장 오래 알고지낸 사람을 꼽아보라면 첫째가 안 코치님이고 둘째가 창섭 형이었다. 오래 알고 지낸 만큼, 가까운 만큼. 당연히 더 걱정 되겠지.
“늦었다. 난 코치님한테 가봐야해서 먼저 들어간다. 쉬어.”
“넵! 형도 쉬세요!”
그렇게 창섭 형마저 자리를 뜨고 난 뒤.
“후우.”
숙소의 내 방에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으니 답답한 한숨부터 나왔다.
시합에서 이기고 이런 기분인 적은 또 처음이라 꽤나 생경했다.
“뭐. 어쨌든 내일 한국 들어가면 알게 되겠지.”
지금 당장은 뭔가 알 수 있는 방법도 할 수 있는 수단도 없었으니까.
*
다음날 아침.
가장 빠른 비행기로 한국행을 예정했던 안 코치님을 비롯한 필승 형과 나는 숙소 로비에서 만나 피닉스 공항으로 향했다.
“일단 두호는 괜찮다더라.”
“네?”
“새벽에 연락이 왔어. 일요일 오후라도 응급실은 하니까.”
공항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안 코치님.
“별다른 이상소견은 없고. 꽤나 심한 탈수 증상 때문에 쓰러진 것 같다고 하더구나.”
“아아.”
“휴우.”
나와 필승 형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안도의 한숨.
격투기 선수에게 탈수로 인한 컨디션 난조나 쓰러지는 일은 그나마 흔한 일 중 하나였다.
물론 결코 몸에 좋은 일은 아닐뿐더러 자주 일어나면 몸 자체에 영구적인 데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일은 맞았지만, 그래도 다른 경우의 수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었다.
‘펀치드렁크나 뇌진탕 같은 거면 어쩌나 했는데.’
격투기 선수에게 흔한 또 다른 질병은 ‘뇌’와 관련된 것이었다.
MMA가 복싱보다는 덜하다고는 하지만 타격에 의한 뇌손상에서 자유로운 스포츠는 절대 아니었다.
특히 두호 형은 터프한 파이팅 스타일로 시합 때마다 꽤나 많은 펀치를 허용하는 편이었기에 더욱 걱정이 되었었다.
“혹시 모르니까 월요일 되면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우리는 한국 도착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가면 돼.”
“넵!”
일단 별 일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마음이 놓였다.
창섭 형에게도 톡으로 지금 들은 이야기를 먼저 남겨두었고, 우리는 피닉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열네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낸 뒤에야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거. 괜히 민폐를 끼쳤네.”
서울에 위치한 모 대학병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당도한 그곳에선 꽤나 멋쩍게 웃고 있는 두호 형이 있었다.
“민폐는 무슨. 제수씨는?”
“아. 다들 온다기에 뭐 먹을 것 좀 사러 갔어.”
한달음에 달려온 것과는 달리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는 코치님과 괜히 신경 쓰이는 두호 형.
“형은 진짜. 그 옷 입으면 안 되겠다.”
“어?”
“옷이 터질 것 같잖아요. 옷이.”
흰색과 녹색이 뒤섞인 환자복.
두호 형이 그걸 입고 있는 걸 보니 괜히 뭔가 울컥했다.
“하하. 야. 건강검진 받으러 가도 입는 옷인데 왜 그러냐. 새끼.”
“쯧. 탈수는 갑자기 또 왜 온 거에요? 미들급으로 체급 올라가놓고.”
아닌 게 아니라, 웰터급 시합을 준비하다가 탈수 증상이 왔다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미들급으로 올려놓고 탈수 증상으로 쓰러졌다 하니 꽤나 당황스럽긴 했었다.
“아아. 그게...”
그리고 이어진 두호 형의 이야기는 별것 없었다.
웰터급이 아닌 미들급에 맞는 몸을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훈련했고, 그 결과 피로 누적과 탈수가 함께 오면서 쓰러졌다는 게 다였다.
“나이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더라.”
“...”
거기에 추가로 한 이야기가 이거였다.
지난번 나와 미들급에서 맞붙었을 때보다도 훨씬 근육 성장속도가 느려졌고, 몸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초조함이 찾아왔다는 것.
그럴수록 더욱 자신을 몰아붙이고 자신에게 엄격하게 훈련을 진행했는데 거기서 몸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는 거였다.
“검사 결과는 뭐래요? 정밀검사 받았다면서요.”
“결과가 뭐 바로바로 나오냐. 일단 먼저 나온 검사 결과들은 다 정상이더라. 다만...”
말을 하다가 뒤를 줄이는 두호 형.
“프로 격투기 선수로 뛸 몸은 아니라지?”
그 뒤를 안 코치님이 받아서 완성시켜주셨다.
“하하. 정확하게 아네 형석이 형은.”
꽤나 씁쓸한 웃음과 함께 인정하는 두호 형.
“이 멤버니까 하는 말인데. 의사가 말하길 내 몸은 너무 혹사 당했다더라.”
“네?”
“근육도 손상된 곳이 많고. 관절이나 인대도 너덜너덜하고. 지금부터 잘 관리하면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정상이지만 격투기 같은 과도한 운동을 지속하기에는 몸에 한계가 왔대.”
“...”
저렇게 앉아있어도 환자복을 찢고 나올 것 같은 근육질의 몸인데. 저 몸에 한계가 왔다니. 선뜻 믿기지도 납득을 하고 싶지도 않은 말이었다.
“이거. 분위기가 또 쳐졌네. 야. 강해서. 시합 봤다. 끝내주던데? 4초 KO!"
"아. 네."
“내가 그거 보고 흥분해서 훈련하다가 쓰러졌다는 거 아니냐.”
“... 그거 지금 웃으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죠?”
“하하하하.”
시원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두호 형.
이렇게 보면 평소와 다를 게 하나 없어보이는데.
하긴. 두호 형도 이젠 정말 40대 중반이었다. 전성기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는 나이 대.
“어? 필승 삼촌이다! 해서 오빠!”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형수님과 유안이.
“유안아!”
유안이는 짧은 다리로 달려서 내게... 오지 않고 두호 형에게 안겼다. 쩝...
“유안아. 왜 이놈은 오빠고 나는 삼촌이냐?”
“삼촌은 늙은 삼촌이니까 삼촌. 해서 오빠는 젊은 오빠니까 오빠.”
“크윽...”
벌써 초등학생이 된 유안이는 예전과는 달리 사람 뼈 때리는 말을 곧잘 하곤 했다.
이번에는 타깃이 내가 아니라 필승 형이라 다행이었고.
어쨌든 형수님과 유안이가 오면서 조금 다운되었던 병실 분위기는 다시 밝아졌고, 두호 형의 건강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엊그제 페드릭과의 시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두호 형의 병문안은 끝이 났다.
2.
-WFC 최단경기 기록을 갱신한 재능! 강해서! 다음 목적지는 정해졌다!
-헤비급의 ‘비스트’ 라무차! 그에 맞서는 ‘원더보이’ 강해서! 헤비급 벨트의 방향은?
-강해서! 라무차에게 ‘잠은 내가 재워줄테니 잠을 아껴 훈련에 매진해라?’
-어린 괴물은 완성된 괴물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격투기의 다음세대를 이끌어갈 페드릭과 현 격투계를 이끌고 있는 강해서의 시합 들여다보기!
-이변! 또 이변! 라이트 헤비급 랭킹의 판도를 뒤집다. 핸콕에게 1라운드 승리를 얻어낸 빌리! 언더독의 반란?
-동양 태평양 챔피언 조던 리. ‘강해서의 발차기는 화려하고 멋있는 그의 무기. 다만 복싱에는 쓸 수 없어. 그는 복싱으로는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드디어 WFC 헤비급 타이틀전이 이뤄지나! 라무차 Vs. 강해서! 전문가들의 예측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WFC 헤비급 챔피언이자 ‘비스트’ 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선수 라무차는 스마트 폰으로 기사들을 읽다가 폰을 내려뒀다.
“코멘트들 읽은 거 아니지?”
“안 읽었어.”
라무차의 매니저는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확인을 했지만 다행히도 라무차는 댓글들을 읽지 않았다.
꽤나 단순하고 다혈질인 라무차에게 인터넷 기사나 커뮤니티의 글과 댓글은 너무 큰 자극이었다.
그걸 알기에 매니저는 언제나 라무차에게 댓글을 보지 않을 것을 강조했고, 이제 와서는 라무차 스스로가 댓글 창 근처로는 시선도 두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나저나. 날 재워준다니. 이것 참.”
중요한 건 댓글을 읽지 않아도 강해서의 승리 인터뷰만으로 라무차의 코에서 뜨거운 콧김이 뿜어지고 있다는 거였다.
“TWF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정말 다행이야. 케이지에서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헤비급 챔피언으로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장기집권중인 라무차.
그런 그에게 트래시 토크나 도발을 걸어오는 선수는 집권 아주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집권 초창기 그에게 어설픈 도발을 했던 선수들은 모두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처참하게 짓밟혔었으니까.
“그보다. 기사 다 봤으면 슬슬 내려와. 스파링 파트너 왔어.”
“아. 그 브로일러의?”
“그래. 브라이언 제프. 어렵게 데리고 왔다고.”
“좋아 좋아! 얼마만의 스파링이야? 으하하하!”
브로일러의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이자 평체로는 헤비급 기준에 부합하는 브라이언 제프.
평소 스파링 상대를 구하기 어려웠던 라무차에게는 이런 기사 몇줄 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기에 금새 강해서에 관한 건 잊어버리고 체육관으로 내려가며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
“... 복싱이요?”
“그래. 복싱.”
텔론 이 양반이 미쳤나.
엊그제 시합 끝낸 사람한테 복싱 이벤트 매치 제안이라니.
아니. 그것보다.
“복싱보다. 헤비급 매치가 먼저 아니에요? 뭔 이벤트 매치를 한 다리 건너 하나씩 뛰어요?”
“... 그러게.”
블레이크와 복싱 이벤트전. 그다음으로 헨더슨과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전. 그 뒤엔 또 브라이언과 챔피언전 이벤트. 가장 최근엔 엊그제 페드릭과의 헤비급 메인 매치.
이건 뭐 내가 WFC 선수인지 반쯤 외부선수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벤트 매치가 많았다.
“상대는 동양 태평양 챔피언 조던 리.”
“아니. 동양 챔피언이고 뭐고 간에...”
“그리고 WBC가 내건 조건은. 이번에 해서 네가 동양 태평양 챔피언에게 이길 경우. 세계 챔피언에게 도전할 수 있는 타이틀 샷을 준다는 거다.”
“...”
잠깐만.
세계 챔피언에게 도전할 수 있는 도전권을 준다고?
현재 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은 모든 복싱 협회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데?
“... 카이서스와의 타이틀전을. 걸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