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36화 (136/203)

< 136화_이건 뭐야? >

1.

식스 테이크.

주말 저녁 황금타임에 방영되는 예능으로 남자 넷 여자 둘로 이루어진 고정 멤버의 캐미가 돋보이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었다.

이렇다 할 하나의 플롯으로 진행되지는 않고 매번 새로운 개인 미션이나 목표. 혹은 협동 과제 등을 나눠주고 그 안에서 멤버들간의 얽히는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으로 대부분 야외에서 촬영을 많이 한다고 했다.

내가 이번 촬영을 나오기 전 참고하기 위해 봤던 것 만해도 방탈출 / 마피아 / 멤버 속이기 / 추격전 / 팀 단위 미션 경쟁 등등 다양했다.

-오늘은 특별히 이곳을 찾아주신 게스트들이 있는데요. 이제 곧 무더운 여름이죠? 오늘 주제는 여름을 맞아 선남선녀 커플 올림픽이 되겠습니다.

고정 멤버들이 먼저 나가서 오프닝 촬영을 하다가 메인 PD가 오늘 촬영 주제를 알려주니 고정 멤버들은 난리가 났다.

“어? 오늘 커플이야? 아씨. 옷 좀 예쁘게 입고 올걸.”

“누구 나오는 거야? 아이돌 나오나?”

“커플? 나 이런 거 집사람이 보면 안 좋아해. 그래서 누구 나오는데?”

이미 게스트들과 인사도 다 했으면서 마치 몰랐다는 듯 리액션을 펼치는 그들.

카메라 밖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자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오늘의 게스트들. 들어와주세요!

메인 PD의 입장 사인이 떨어진 뒤 게스트들을 담당하고 있던 연출부 스탭이 들어가시면 된다는 말을 한 번 더 한 뒤에야 우리는 카메라 화면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커플 올림픽이니만큼. 조금 특별한 분들을 모셨습니다. 스포츠 레전드 스타들을 모십니다!

“와! 강민기 선수다!”

“서연태 선수!”

“김민정 선수는 지금 시즌 아니야?”

“아니! 인하 누나! 누나가 여긴 어쩐 일이야?”

멤버들은 게스트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과장된 리액션들로 기분 좋게 맞아줬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등장하는 차례.

“헐.”

“진짜 커플이 나왔어.”

“강해서 선수! 아름아!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저도 몰랐어요! 아까까지만 해도 연락할 때 아무 말도 없었는데?”

당연하겠지만 다른 게스트들 보다는 조금 더 뜨거운 반응이 나왔다.

“이야. 강해서 선수. 지금 대한민국에 종합격투기 붐을 일으킨 장본인 아닙니까? 워낙 핫해서 뜨겁네 뜨거워.”

“하하. 감사합니다.”

고정 멤버들 중 메인 MC역할을 하는 식스 테이크의 터줏대감 김재훈 씨의 소개에 가볍게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인사하고는 미리 정해져 있던 내 자리로 가려는데.

“어? 해서 선수. 왜 그리 가세요?”

“어? 아름이 옆으로 간다!”

“이거 커플 결정전 같은 거안해? 현실 커플이라고 막 저래도 되는 거야?”

고정 멤버들이 그런 날 말려댔다.

나는 당황해서 아름이와 제작진을 바라봤는데 표정의 변화가 1도 없었다.

어쩌라고...

나 어떻게 해야 되는데...

“흠. 강해서 선수는 제꺼니까. 제가 데려갈게요.”

뻘쭘하게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 있자니 아름이가 씩씩하게 걸어 나와 내 팔목을 붙잡고 자기 옆으로 데려갔다.

“우우우우! 불공평하다!”

“아름아! 너 다시 봤다? 너 되게 적극적인 아이구나?”

“완전 미녀와 야순데? 강해서 선수 덩치가 아름이 두 배도 넘겠어?”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얼굴만 붉히고는 아름이 옆에 섰다.

“어? 강해서 선수 얼굴 빨개졌다!”

“수줍어하시네. 격투기 할 때는 엄청 야수같더니. 이렇게 보니 샤이 가이야. 샤이 가이.”

마지막까지 멤버들의 놀림 아닌 놀림을 받으며 내 소개 차례까지 지나가고 나서야 게스트 입장이 마무리 되었다.

-자. 여섯 명의 게스트들이 모두 나오셨는데요. 보시다시피 성비가 맞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커플 선정은 전적으로 게스트들의 선택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왜 우리는 선택권 없어?”

“남남 커플 싫어!”

“근데 인하 누나도 무서운데?”

메인 PD의 진행에 꽤나 반발하는 리액션을 보여주는 멤버들.

오늘 게스트는 남자 셋 여자 셋으로 ‘식스 테이크’의 고정 멤버 성비가 남자 넷 여자 둘이다보니 남남 커플이 최소 한 커플은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스트들을 간략히 꼽아보자면 남자 게스트는 나를 포함해 레슬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강민기 선수.

태권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서연태 선수 이렇게 세 명이었다.

여자 게스트들은 사격 올림픽 금메달 메달리스트인 박인하 선수.

핸드볼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김민정 선수.

현 복싱 세계 챔피언인 최슬혜 선수.

이렇게 여섯 명이었다.

그 중 현역은 나와 서연태 선수. 최슬혜 선수 세 명이었고.

“근데 정확히 올림픽이 어떤 걸 하는 건데? 선수들이 잘 하시는 분야가 다들 너무 다르실 텐데?”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커플 올림픽이니만큼 다양한 종목을 준비했는데요. 집중력을 요구하는 종목부터 신체능력. 커플간의 협동심이 필요한 종목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그건 나중에 보시면 압니다.“

꽤나 절묘하게 티키타카 하는 김재훈 씨와 메인 PD.

"너무 얼어있지 않아도 돼. 편하게 해.“

“어?”

“너무 딱딱하다고 지금.”

아름이가 아주 작게 소곤거리며 내게 긴장 풀라고 말해줬다.

긴장이라니. 나 전혀 긴장하지 않았는데?

완전 자연스러운데?

-게스트들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멤버들의 매력을 봐야겠죠? 멤버들 매력발산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에이. 무슨 매력발산이야?”

“우리 매력 봐서 뭐하게? 게스트들이 나와야지.”

-멤버들이 매력발산을 하고 있을 때. 해당 멤버가 마음에 드시는 게스트 분들은 해당 멤버를 선택하기 위해서 같이 무대에 나가서 매력 발산을 해주셔야 합니다.

“오! 그거 좋지! 내가 춤은 또 한 춤 하거든!”

여기까지는 일단 사전에 설명을 들었던 대로였다.

멤버들이 매력발산을 할 테고, 아름이가 나와서 매력 발산을 하면 그때 내가 나가면 된다는 식의.

근데 분위기가...

-휘익 휘익!

“멋지다!”

멤버들의 매력발산이라는게 음악에 맞춰 나와 춤을 추는 거였는데 생각만 하던거랑 눈 앞에서 보는거랑 너무 느낌이 달랐다.

일단 내 눈앞에는 열대가 넘는 카메라가 반원을 그리며 우리를 감싸고 있었고 수십 명의 스텝들이 앉거나 선채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 앞에 나가서 춤을 추라니...

“자. 다음은 우리 식스 테이크의 댄스퀸! 아름이!”

그리고 드디어 호명 된 아름이.

나는 아름이의 춤을 영상을 통해서만 봤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너튜브나 인터넷을 뒤져보면 아름이가 예전 아이돌 활동을 할 때부터 최근까지의 영상들이 모두 있었기에 댄스 영상을 찾아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춤을 추는 걸 본 적은 결단코 없었다.

물론 내가 춤을 춰달라는 요구를 한 적도 없었을 뿐더러 아름이와 나는 연예인과 비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명의 여자와 남자로 만났으니까

“와아아아아!”

“꺄악! 아름 언니 최고!”

그러니까.

이렇게 음악에 맞춰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가 춤을 추는 아름이의 모습이 되게 낯설고 뭔가 묘한 감흥을 일으켰다.

“강해서 선수 봐! 완전 넋이 나갔는데?”

“아름 언니 춤 처음 본 거 아니에요?”

유명한 댄스곡에 맞춰 춤을 추는 아름이는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뭔가 프로패셔널함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저렇게 나가서 춤을 춘다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는데, 너무 진지하게. 그리고 잘 추니까 진짜 멋있었다.

“어어? 아름이! 강해서 선수한테 간다!”

그런데 노래가 조금 느리고 끈적한 장르로 바뀌더니 아름이가 뭔가 요염한 표정과 걸음으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

그리고는 내게 아주 가까이 달라붙으며 살랑 살랑 춤을 추는데 아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름 언니! 안 돼!”

“아름아! 너 그런 춤도 춰? 남자친구라고 너무 끼부리는 거 아니야?”

나는 이제껏 아름이가 강아지과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잘못 알고 있었다.

얘는 여우였다. 그것도 꼬리가 한 백 개는 달린 여우.

-자. 강해서 씨. 손아름 씨의 매력 발산이 마음에 들었으면 강해서 씨도 나와서 함께 매력발산 해주셔야 커플이 됩니다.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날 일깨우는 메인 PD의 한마디.

순간 앞이 깜깜해졌다.

여길 나가서 같이 춤을 추라고?

아름이는 지금 내가 알고 있던 아름이가 아닌데?

-성큼

“와아아아아!!!”

“뭐야. 뭐야. 서연태 선수가 나왔어?”

나가서 무슨 춤을 춰야 되나 한창 고민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들려오는 환호성.

오른쪽을 돌아보니 태권도의 서연태 선수가 앞으로 나오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서연태 선수! 매력 발산 나오셨습니다! 셋 셀 동안 아무도 안나오시면 자동으로 손아름 씨와 서연태 선수가 커플이 됩니다!

아주 재미있다는 듯 한 메인 PD의 진행과

-찌릿

순간 현실로 돌아온 아름이의 정색하는 표정이 내게 날아들었다.

이대로 내가 가만있으면 아름이를 뺏길 판이라는 거지.

“흐흠...”

나는 아름이와 서연태 선수 사이로 몸을 집어넣으며 음악에 맞춰 몸을 꿈틀거렸다.

말 그대로 그냥 꿈틀거렸다. 진짜로. 태어나서 한 번도 춤이란 걸 제대로 춰본적이 없으니까.

웨이브는 그냥 가상의 벽이 있다 생각하고 거기에 가슴 배 무릎순서대로 닿게 하면 된다며?

“왁! 어떡해!”

“강해서 선수 몸치 아냐?”

“우리 강해서 선수 보호 좀 해줘! 이게 뭐야!”

내 춤이 너무 별로였나... 뒤에서 멤버들은 난리가 났고 눈앞에 공책을 들고 있던 작가들도 고개를 숙이고 웃고 있었다.

쩝. 신비주의를 깨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깨겠구만. 이 방송이 나가면.

*

“해서야! 여기 물!”

“아. 고마워.”

커플 결정전이 끝나고 난 뒤의 휴식시간.

SBC 홀에서 진행된 오프닝 촬영은 오프닝에만 2시간을 소비했다.

“이렇게 찍어도 오프닝은 10분도 안 나가.”

“허얼. 너무 허무하겠다.”

“그래도 해서 네 춤은 나갈걸. 분명히.”

“그건 좀...”

우여곡절이랄 것도 없이 나와 아름이는 커플이 되었다.

멤버를 선택하는 건 게스트였지만, 게스트가 둘 이상 나오면 멤버가 마음에 드는 게스트를 선택하는 형식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서연태 선수는 왜 나왔을까?”

내가 나가기만 하면 아름이가 날 선택할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는데. 왜 굳이 나왔지? 그냥 방송분량 확보차원인가?

“뭐. 방송분량 때문일 수도 있구. 음...”

뭔가 말을 줄이는 아름이.

캥기는게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서연태 선수가 예전부터 인터뷰에서 이상형으로 날 계속 말했었거든.”

“이상형?”

“응. 예전에 다른 프로그램도 같이 촬영한 적 있는데. 그때도 계속 내가 이상형이라고 막 그랬어서 좀 불편했던 적 있어.”

꽤나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서연태 선수와의 일을 털어놓는 아름이.

예전에 방송을 같이 했을 때도 연락처를 물어보거나 쉬는 시간에 계속 찾아와서 귀찮게 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별 신경쓰지 마.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이런 경우는 되게 흔해.”

“흠...”

아름이가 연예인이다 보니 이런 종류의 불편한 일이 있을거라는 건 예상 했다. 말 그대로 예상은.

그런데 눈앞에서 직접 보니 당연하게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심지어 공개연애중인 남자친구가 뻔히 보고 있는 상황에서 본인 어필을 하다니.

생각해보니 기분 확 나쁘네.

“그보다. 해서 너. 춤 어쩔 거야. 그거 인터넷에 박제되겠던데?”

“아... 뭐. 어쩌겠어. 한 번도 안배워본걸.”

잘 할 수 있는 걸 못하면 열 받겠지만 애초부터 못하는 걸 못했다고 열 낼 필요는 없었다.

“헤헤. 다음에 춤 가르쳐줄까?”

“응?”

갑자기 아까처럼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달라붙어 위로 올려다보는 아름이.

“다음에에. 내가아. 추움. 가르쳐준다구우. 헤헤.”

“...”

여우다. 여우가 분명해.

강아진 줄 알았는데 요즘은 아름이가 웃고 있는 걸 보면 그 뒤로 꼬리가 살랑거리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진짜다.

*

-자. 커플 결정전이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커플 올림픽이 시작될 텐데요. 우승 커플팀에게는 저희가 직접 제작한 식스테이크 금메달이 수여됩니다.

“와아! 그거 진짜 금이죠?”

“대박. 무조건 따야지!”

잠깐의 휴식 시간이 있은 후 방송국 근처의 실내 체육관으로 자리를 옮겨 재개된 식스 테이크 촬영.

-첫 종목은. 커플 손 펜싱입니다.

-각 커플은 이 옷을 입고 손 펜싱을 하게 되는데, 이때 뒤에 있는 사람만 공격할 수 있습니다.

커플 손 펜싱.

특수 제작된 옷을 입고 백허그를 하는 자세로 시합을 진행한다고 했다.

뒤에 선 사람만 공격 가능하고 상대방 커플의 앞에 선 사람의 얼굴에 손 펜싱으로 먹물을 많이 묻히는 팀이 이기는 게임.

“내가 앞에 설게. 해서 네가 뒤에 서서 공격. 오케이?”

“오케이.”

“나 메이크업 새로 하지 않게 잘 해야 해?”

“걱정 마.”

손 펜싱이라.

한 번도 해본적은 없지만 티비에서 본적은 있었다.

중요한건 공격을 당하는 게 내가 아니라 아름이라는 건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첫 시합은. 손아름 강해서 커플 대 강창익 서연태 커플입니다!

근데 첫 시합부터 서연태 선수가 끼어있는 남남커플이 걸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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