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34화 (134/203)

< 134화_캡틴 코리아? >

1.

-강해서다!!

-저쪽! 저기야 저기!

-오빠!!!!

-해서 오빠!!!

브라이언과의 챔피언 전을 마치고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인천 국제공항.

코치진들과 함께 이동을 하는데 일단의 인파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물고기 떼처럼 우르르 몰려들었다.

“해서야. 너 안 코치님이랑 먼저 가라. 필승 형이 맨날 대기하던데 있을 거야.”

“넵!”

몰려든 사람들은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든 팬들부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일단 창섭 형과 나머지 체육관 사람들이 몸으로 막아주는사이 안 코치님과 나는 개인 짐만 챙겨서는 빠른 걸음으로 필승 형이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이동했다.

“형님 오셨어요? 해서야. 다른 애들은?”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서... 일단 이쪽으로 오긴 할 거예요.”

“그래? 한 바퀴 돌아야겠네.”

차에 타고 나서야 조금 안정이 되었는데 여전히 놀란 가슴이 빠르게 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난번에도 입국 때 사람들이 몰린 적은 있었지만 오늘과 같은 규모는 아니었다.

“당연하지 인마. 지금 어제 오늘 뉴스 보면 네 이름밖에 안보여.”

“그래요?”

“지금 한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를 말해보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게 네 이름이야.”

인터넷으로 나와 관련된 기사나 댓글들은 훑어보곤 했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지는 실감이 나질 않았다.

예전에 아름이와 홍대 쪽을 걸을 때 사람들이 날 알아보긴 했었지만 그것도 몇몇 사람 한정이었고, 막 쫓아오거나 이러지도 않았었으니까.

“서른 살의 늦은 나이에 격투기에 입문해서 몇 년 만에 WFC 미들급,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석권. 브로일러랑 챔피언전 승리. 캬. 뉴스나 언론에서 다루기 딱이지 않냐? 국뽕 지리잖아? 중량급 이상에서 무패행진중인 갓-해서! 요즘은 뭐라더라? 캡틴 코리아라던데?”

필승 형은 창섭 형과 다른 코치일행을 기다리며 공항을 한 바퀴 도는동안 뭐가 그리 신났는지 아주 들뜬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혼자 한국 있으면서 말 할 사람이 없어서 많이 심심했나...

-드르륵

“어휴. 미친 기자들. 엄청 끈덕지네.”

공항을 한 바퀴 돌고난 뒤에야 만난 창섭 형과 코치진들.

트렁크에 짐을 싣고 차에 타자마자 기자들을 향한 험한 소리들을 쏟아냈다.

“해서야. 너 인터뷰 좀 해줘라. 기자들이 미쳤나보다.”

“네?”

“네가 언론에 워낙 얼굴을 안 비치니 공항에서 어떻게든 인터뷰 따라고 내몰렸대. 기자들. 걔들도 울상이더라.”

“아...”

사실 나는 WFC에서 활약하는 선수다보니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활동내역이 없었다. 그러니 별로 언론이나 인터뷰 같은 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말주변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으며, 최근에는 아름이와의 연애를 공개하면서 언론쪽 스케줄은 괜히 더 피하게 된 부분이 있었다.

“해서 너. 지금 한국에서 국민적인 영웅 같은 그런 포지션이라니까? 캡틴 코리아?”

필승 형은 창섭 형의 말에 한마디 더 보태며 국민적인 영웅을 운운했다.

뭘 또 국민적인 영웅까지야. 어느 정도 국위선양을 했다는건 몰라도 그건 좀 너무 갔다 싶었다.

“만약 해서 너 군대 안 갔다 왔으면 군 입대 면제 국민청원도 떴을거다. 아직 네가 네 인기를 실감 못하지?”

“... 뭐 그렇죠. 그냥 반짝이겠죠 뭐.”

“너랑 관련된 다큐멘터리 제작된 거 봤냐?”

“네?”

다큐멘터리? 나와 관련 된?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안 코치님을 휙 돌아봤는데 코치님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어제 너랑 브라이언 시합 끝나고 방송 된거야. 국영방송 1TV에서.”

“제가 모르는 저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라니. 그게 뭐에요?”

“네가 다녔던 초. 중. 고. 대 다 파헤치고 다니고. 학교 선생님들 인터뷰 따고. 네가 살았던 동네 돌아다니고. 장난 아니던데?”

“헐...”

바로 스마트 폰을 꺼내 검색해보니 진짜 필승 형의 말 대로였다.

내가 언론에 노출이 되지 않으니 언론에서는 노출된 내 정보에 대해서라도 최대한 파보겠다는 느낌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 같았다.

“으음. 그래. 그런 내용이라면 전달을 받은 게 있는 것 같다.”

안 코치님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셨다.

“시합 준비 때문에 미국에 있을 때 연락이 왔었어. 선수의 프라이버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선수의 과거 행적들을 되짚어보는 영상의 제작을 해도 괜찮을지에 대해서.”

“그래서요?”

“사실 그건 말이 동의를 구하는 거지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다고해서 어떻게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래서 그냥 그러라고 했지.”

안 코치님의 말씀에 따르면 어제 방영되었다는 다큐멘터리는 나에 대해 다루지만 내가 어떻게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애매하다고 하셨다.

내가 출연하거나 자문한 것도 없어서 출연료를 받지도 못하고, 방송금지처분을 신청하기에도 애매한 내용들. 그리고 내용도 보편적인 수준의 인터뷰와 사실들을 열거해놓는 형식이라 괜히 트집잡아봐야 긁어부스럼일거라고.

“네가 워낙 얼굴을 안 비추니 그렇지. 사람들은 너한테 열광하고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데 방송국에서는 보여줄게 없으니. 해서 네가 작년에 찍었던 스위치 온이 올해 재방송을 몇 번이나 했는줄 아냐?”

“저야 모르죠. 재방하면 재방 출연료 들어오겠다. 고기 사먹어야지.”

“미친놈.”

그나저나 언론 인터뷰라.

아까 비행기 타기 전 아름이가 말 했던 예능 출연이 문득 생각났다.

“안 코치님. 그.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조금 천천히 생각해보고 물어보려 했는데. 이런 분위기면 차라리 빨리 물어보는 게 낫겠지.

“저. 예능 출연해도 될까요? 아름이랑 같이 하는 건데.”

시청자가 나를 원하면. 보여드리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

-톡. 톡

-아름 : 진짜? 진짜 진짜?

-아름 : 꺅!!!(하트 맞고 쓰러지는 토끼 이모티콘)

-해서 : ㅎㅎㅎ 그렇게 좋냐?

-아름 : 당연하지! 너랑 처음으로 뭔가 같이 하는 건데!

-해서 : 엄... 그런가

생각해보니 아름이랑은 사귀면서 뭔가 많은걸 해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말 할 것도 없었고 해외에서도 아름이와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데이트해야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쌓은 추억이라곤 아름이 집과 내 집에서... 흠흠. 뭐. 아름다운 추억이니 넘어가기로 하고.

어쨌든. 평범한 연인들처럼 야외에서 함께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거다. 그것도 햇살 좋은 낮에.

-해서 : 근데 뭐 운동회 같은 거라며?

-아름 : ㅇㅇ! 뭐 커플 올림픽 이런 거라던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아름 : 나 운동신경은 자신 있으니까!(파이팅 외치는 토끼 이모티콘)

체육관에 일주일에 두어 번(나와 공개연애 이후로는 일주일에 다섯 번도 넘게 올 때도 있지만 운동을 하진 않는다)정도 운동하러 나오는 게 다지만 아름이의 실력은 썩 괜찮은 편이었다.

-Rrrrrrrr

한창 아름이와 톡 중인데 울리는 전화 벨소리.

누군지 확인해봤더 유나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빠!

“어. 그래. 유나야.”

언제 들어도 조금 높은 톤의 밝은 목소리.

듣는 사람의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힘이 있는 유나였다.

-오빠 한국 왔어요?

“어. 오늘 왔어. 이제 집 도착했다.”

-아! 왜 연락을 안 해줘요! 한국 오면 말 하라니까!

“깜빡했다 깜빡했어.”

유나랑은 아름이와의 공개연애 이후로도 자주 연락을 했었는데 내 생각보다는 그리 타격이 큰 것 같지 않았다.

아름이와의 연애를 밝히면 유나 혼자 상심하거나 실연의 아픔을 겪진 않을까 했는데 그건 너무나도 자의식 과잉이었던 것 같았다.

-저! 최창우 님한테 연락 왔어요!

“최창우? 최창우. 최창우...”

최창우가 누구였더라...

-스트릿 FC 전 미들급 챔피언이요!

“아아. 최창우. 기억났다.”

지금 필승 형이랑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5 찍고 있는 사람을 말 하는구나.

꽤나 그리운 이름이네. 내가 처음 MMA에 입문 했을 당시 스트릿 FC의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선수. 그리고 나와 이벤트 매치에서 1라운드인가 2라운드 만에 졌었던 선수.

뭐. 딱 그 정도 기억이 남아있었다. 아! SNS로 트래쉬 토크를 되게 잘 하는 선수였다는 것도 기억났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래도 국내에서 격투기 하는 선수들은 최창우 님 누군지 모를 수가 없을텐데.

“나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격투기하는 사람이라 서요. 하하하.”

게다가 격투기 경력도 짧았고 국내 격투기 선수와의 교류도 거의 없었으니 순간 까먹을 수도 있지. 뭐 그런 걸 가지고 이렇게 뭐라 하니. 오빠 서운하게.

-어쨌든. 최창우님이 저한테 연락 왔다니까요?

“그래. 그래. 연락 왔어. 왜 왔니?”

-오빠 섭외하고 싶다고요!

“...뭐?”

-저 너튜브 떡상한 건 아시죠?

“그래. 지난번에 라방이후로 떡상했잖아. 글로벌하게.”

지난번 유나TV에 라이브로 출연하면서 해외 너튜브 시청자들도 유입되어 유나 TV의 현재 구독자는 100만을 넘겼다.

국내에서 100만을 넘긴 너튜버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이제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너튜버가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해외 구독자가 많이 늘긴 했었는데. 영상 조회 수는 들쭉날쭉 했거든요. 근데 요 며칠 오빠 영상들 조회 수 폭발!

“엉?”

-오빠 출연했던 라방들 편집영상 올린 거 조회수가 거의 천만 가까이 되는 것도 있다니까요?

“헐...”

천만이면 뭐야. 우리나라 사람 6명 중 한명은 봤다는 수준이잖아.

물론 허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오빠가 워낙 다른 방송이나 인터뷰를 잘 안하니까 예전에 출연했던 제 방송이라도 들어와서 보려는 사람이 많나봐요. 그래서!

“그래서?”

-방송 한번만 더 하시죠!

갑자기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이렇게 조회 수가 폭발한다는 건 대중이 오빠를 원하고 있다는 반증! 이쯤에서 한번 얼굴 비춰줘야죠!

“... 그렇지. 그래서 안 그래도 예능하나 나가려고 계획 중이야.”

-예능이요?

“어. 리얼 버라이어티 같은 거. 주말 예능. 아직 확정은 아니라 정확히는 말 못하고.”

-어어... 그러면 안 되눈뎅... 힝...

얼라. 얘 보소.

갑자기 말투가 달라지네. 어디서 애교질이야? 미안하지만 나는 아름이의 애교에 단련 된 몸이거든? 안돼. 돌아가.

-일단 들어나 보시면 안 돼요?

“...뭔데?”

-최창우님도 너튜브 하시거든요! 최창우님이 한국의 현역 격투기 선수들 중 라이트헤비급. 헤비급 체급들을 모아 볼 테니 간단한 스파링같은것도 하고 선수들끼리 썰도 푸는 그런 합방을 해보자고 하셔서...

“라헤랑 헤비급?”

-네. 한국에는 고중량 체급 선수가 부족해서 스파링 선수가 언제나 부족하다고. 그런 관련 영상도 만들면서 서로 교류도 가지고 하면 좋지 않겠냐고 전달 좀 부탁한다고 연락 왔었어요.

하긴.

한국은 라이트헤비급이나 헤비급 선수가 활동하기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다.

일단 스파링 파트너를 찾기가 어려웠다.

당장 나만해도 스파링 하려면 해외에서 선수를 구해오거나 아니면 아예 나가서 훈련캠프를 차려야 했으니까.

“일단. 생각은 해볼게. 확답은 아니고.”

-꺅! 네! 알겠어요! 충성! 충성!

“...됐다.”

어떻게든 날 꼬셔보려는 유나와의 통화를 끝냈다.

유나한테는 감정적으로 좀 미안한 것도 있고 하니...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야겠다 싶었다.

게다가 국내 고중량 선수들과의 교류는 나도 원하는 바였고.

그렇게 유나와의 통화를 마치고 얼굴에서 폰을 떼고나니 폰에 기름이 번들번들했다. 통화시간은 28분 32초.

얼마 안했다고 생각했는데 꽤 오래 전화했구나 싶었다.

“헙! 큰일 났다.”

통화 시간을 보고나니 아름이와 한창 톡 하던 중이었다는 게 떠올라서 다급히 톡방에 들어갔는데

-아름 : ?

-아름 : 똑똑?

-아름 : 해서야. 뭐해? 자니?

-아름 : ... 통화중이네?

-아름 : 누구랑 통화해?

-아름 : 안 코치님이나 두호 오빠 필승 오빠는 아닌데...

-아름 : 아직 통화해?

-아름 : 누구랑 통화해?

-아름 : ... 전화 끝나면 바로 전화해라.

아... 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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