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33화 (133/203)

< 133화_커플로 >

1.

-꽈악

WFC Vs. Broiler의 마지막 메인 매치의 승패가 나뉜 뒤.

“좋은 경기였어.”

“나도야. 만약 1라운드가 6분이었다면 승패는 바뀌었을 거야.”

의식을 회복한 브라이언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결국, 실력이야. 아쉽네. 같은 리그였다면 리벤지 기회가 있었을 텐데.”

“하하. 평생 따라다닐 거야. 이번 패배는.”

그렇게 브라이언은 유쾌하게, 또 조금의 여운을 남긴 채 승자를 위해 마련된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제 이 케이지는 오롯이 나를 위한 무대였다.

‘WFC Vs. Broiler’ 는 메인 매치인 나와 브라이언의 챔피언전 외에도 여러 체급의 다양한 랭커들이 맞붙었었다.

단체의 명예를 걸고 맞부딪친 8개의 경기.

챔피언전에서 내가 승리를 기록하며 최종 스코어는 WFC가 5승 브로일러가 3승을 기록하면서 마무리되었다.

브로일러 입장에서도 한 끗 차이로 동률을 기록하지 못한 만큼 충분히 2인자로서의 체면치레를 했다고 볼 수 있었으며 WFC는 종합격투기 1위 단체로서의 위상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냈다.

-미스터 강. 전 브로일러의 미들급 챔피언 출신으로서 현 브로일러 미들급 챔피언이자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인 브라이언과의 시합에 대한 자체적인 평가는 어떻습니까?

“브라이언은 훌륭한 선수입니다. 오늘은 승리의 여신이 제 손을 들어줬기에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승리의 여신이라면 지난 헨더슨과의 경기에서 공개했던 인형 같은 연인을 말 하는 겁니까?

“그렇죠. 브라이언에게도 승리의 여신이 있었다면 승리의 방향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워낙 재미없는 친구라서 언제쯤 승리의 여신이 생길지 모르겠군요.”

-와하하하하하

관중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케이지 아래에서 정리하고 있던 브라이언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인마. 이 형아가 다 너 여자친구 만들어주려고 이러는 거야.

“혹시 누군가 브라이언의 승리의 여신이 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어프로치 해도 될 겁니다. 그의 진지함을 견딜 수 있다면요.”

-하하하. 두 선수의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TWF에 함께 출연할 때부터 두 선수의 조합은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었죠. 미스터 강의 앞으로의 목표는 어떻게 됩니까?

“여러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역시 라이트 헤비급의 타이틀 방어전과 헤비급에 대한 도전입니다.”

헨더슨과의 타이틀전을 꽤나 임팩트 있게 치러냈기 때문인지 아직까진 라이트 헤비급의 타이틀 샷을 원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시합 내용을 보고 타이틀 샷을 외치는 선수들이 생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헤비급. 텔론은 이번 시합에서 내가 승리할 경우 라무차에 대한 타이틀 샷을 걸고 페드릭과 매치업해줄 것을 약속했다.

아마도 라이트 헤비급의 타이틀 방어전보다는 페드릭과의 시합이 먼저 치러지지 않을까 싶었다.

-와아아아아!!!

그때 객석 한쪽이 들썩이며 소란스러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학센! 학센!

-학센이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꽤나 낯익은 얼굴. 학센이 객석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옷을 입고 있었지만, 확실히 조금 더 몸집이 커진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달라진 체구.

-미스터 강! 건방진 네 녀석의 콧대를 눌러주고 싶었는데 미들급 타이틀을 포기하고 도망을 쳐?

언제 마이크를 전달받았는지 학센의 오른손에는 마이크가 들려있었다.

-미들급에서 한판 붙자니까 벨트를 반납하고 윗 체급으로 도망가다니. 역시나 넌 겁쟁이였어. 뭐 나야 고마운 일이지. 그 벨트는 내가 받아 갈 테니 말이야.

두호 형에게 웰터급 타이틀을 빼앗겼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WFC PPV 수익 부문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학센.

확실히 이슈가 될만한 자리를 잘 찾는 것 같았다.

시선을 돌려보니 오스만 회장은 딱히 제지할 생각은 없어 보였고 텔론은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게 아주 신이 난 듯했다.

“아. 아.”

나는 마이크를 한번 체크하며 학센의 도발에 대답할 말들을 골랐다.

“우선. 웰터급에서 두들겨 맞고 도망친 패배자의 도발은 별로 데미지가 없네. 정 붙고 싶으면 라이트 헤비급으로 올라오던가. 아! 키가 작아서 라이트 헤비급은 무리려나?”

학센의 키도 결코 작은 키는 아니었다. 하지만 웰터급-미들급까지는 커버 가능할지라도 라이트 헤비급까지 노리기엔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의 골격은 딱 미들급까지가 한계치랄까.

“그리고. 상식이란 게 있다면 내게 도전하기 전에 최두호 선수부터 꺾어야 하는 게 맞지 않아? 넌 최두호한테 졌고. 난 그에게 이겼으니까 말이지.”

-격투기 케이지 안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지. 내가 그에게 패배한 건 그저 그날의 결과일 뿐이야.

한번 먼저 졌을 뿐 열 번 백번 붙으면 자신의 승률이 더 높을 거라는 식으로 입을 놀리는 학센.

물론 그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모든 스포츠는 실전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었고 종합격투기는 그 변수에 따른 결과 폭이 유독 큰 스포츠였다. 그래서 어떤 복싱 선수는 종합격투기를 보고는 ‘MMA는 개나 소나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만약 네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미들급으로 체급을 올릴 게 아니라 웰터급에서 리벤지 매치를 기다렸어야지. 넌 그냥 두들겨 맞고 도망친 패배자일 뿐이야. 그런데 어떡하나? 최두호 선수도 미들급에 다시 도전한다는 것 같던데. 웰터급에 이어 미들급에서도 벨트를 두고 싸우겠군.”

-나는 한번 먹은 음식에는 관심이 없을 뿐이야. 웰터급 챔피언은 이미 달성했으니 미들급을 먹어 치우기 위해 움직이는 거야. 만약 미스터 최가 내 앞을 막는다면 그것도 좋겠지. 이제는 나와 싸울만한 급이 되었으니까.

쟤는 끝까지 저러네.

예전에 웰터급 타이틀전 때는 두호 형이 급이 안 맞는다며 엄청나게 비하하더니. 이제는 자기를 이기고 벨트를 두른 챔피언이라고 싸울만한 급이 되었다는 발언을 했다.

“글쎄. 어쨌든 최두호부터 넘고 와. 내 입장에선 너는 나와 싸울만한 급이 안되니까. 정 원한다면 왼손만으로 붙어줄 수는 있어. 킥도 그라운드도 안 쓸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더는 설전을 이어가지 않겠다는 표시로 마이크를 케이지 바닥에 던지고는 철창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우리 둘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객석은 그제야 다시 함성을 질러댔고 학센은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원하던 바는 모두 이뤘다는 듯 만족스런 얼굴이었다.

그나저나. 두호 형은 미들급에서도 학센이랑 붙으려나. 우리 두호 형 돈 많이 벌겠네.

*

“와! 이겼다! 이겼어!”

“아름아! 강해서 선수가 이겼대!”

손아름은 한창 고정출연 중인 예능을 촬영하고 있었다.

강해서의 시합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오늘따라 야간까지 촬영이 지속되면서 그의 시합을 실시간으로 챙겨볼 수는 없었다.

“그래요? 이겼어요?”

“그래! 2라운드 KO! 와. 진짜 최고야. 1라운드에 조금 위험하긴 했거든? 그런데 2라운드 들어가서는...”

손아름이 한창 촬영 중인 가운데 같은 고정 출연진 중 운동이나 격투기를 좋아하는 남자 출연자들 몇이 틈틈이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더니 강해서의 경기 결과를 알려줬다.

“잠깐 끊고 갈게요!”

그들 사이의 소요를 읽었는지 제작진 측에서는 잠시 촬영을 끊기로 했다.

“저. 아름 씨.”

그리고는 손아름을 따로 불러내는 프로그램의 담당 피디.

“네. 피디님. 무슨 일 있어요?”

손아름이 고정출연 중인 예능은 주말 저녁에 방영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식스 테이크. 특별한 플롯 없이 6명의 고정출연 멤버들이 그때그때 주어지는 미션들을 해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과정에서 게스트가 등장하기도 하고 서로 경쟁하거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혹시... 강해서 선수 섭외하는 데 아름 씨 도움 좀 받을 수 있어?”

“...네?”

“이번 이벤트 매치도 이겼던데. 다음 시합 일정까지 여유가 있으면 꼭 좀 섭외하고 싶어서.”

“아...”

손아름은 피디가 자신을 따로 불러내기에 뭔가 히든 미션 같은 걸 주는 줄 알았는데 그의 연인인 강해서의 섭외와 관련된 도움을 구해왔다.

“글쎄요... 저도 한번도 이런 쪽으로는 부탁해본 적 없어서. 음...”

꽤나 난감한 기색으로 대답을 하던 손아름은 문득 언젠가 강해서가 유나 TV라는 너튜브에 출연했던 게 떠올랐다.

“일단. 한번 말은 해볼게요. 무슨 특집이에요?”

“레전드 체육인들을 초빙해서 커플 올림픽. 어때? 강해서 씨 섭외하는 데 도움 주면 아름 씨랑 강해서 씨는 무조건 커플로 메이킹 해줄 테니까.”

해서와 커플 출연이라.

손아름은 괜히 귓불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지만 태연한 얼굴로 ‘일단 말해볼게요.’라는 답변을 남기고는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커플 촬영이라.’

손아름은 지난번 강해서가 ‘다음에 한번 같이 방송할 수 있으면 하자’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딱히 강해서에게 뭔가 부탁이나 떼를 써 본 적은 없지만. 이번만은 조금 무리를 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는 그녀였다.

2.

-강해서! 라이트 헤비급의 최강자는 바로 나!

-WFC Vs. Broiler! 역대급 흥행기록을 달성하며 성황리에 종료!

-전체 스코어 5대 3? WFC는 체면을 지켰고 브로일러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강해서의 이벤트 매치를 찾은 학센! WFC의 흥행수표가 그를 찾은 이유는?

-다시 보는 최두호 Vs. 학센의 경기! 미들급에서 다시 한번 맞붙나?

-강해서는 약점이 뚜렷한 선수? 그는 대단한 선수지만 내 재능이 더 빛난다? 헤비급 랭킹 8위 페드릭의 강해서 저격!

-헨더슨과의 설전으로 유명세를 탄 빌리! 체급을 올린 뒤 포텐 터졌다? 랭킹 3위 로버트를 잡아내며 스스로를 증명하다!

-강해서가 포기한 미들급 벨트. WFC 미들급은 다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나? 텔론 회장의 의중은?

└와. 어제는 진짜 강해서 지는 줄 알았음ㅋㅋㅋ

└확실히 강해서는 그라운드가 약점임... 테이크다운 당하니까 어쩔줄을 모르더만

└보통은 테이크다운 들어가기 전에 스텐딩에서 강해서한테 두들겨 맞는데 브라이언이 너무 사기캐였음. 타격 그라운드 다 스탯 맥스를 찍었으니까

└그런 브라이언을 이긴 갓해서 센세이. 스탯창을 뚫었다니까?!

└결국 타격으로 잡아내나 했는데 마지막에 테이크다운으로 찍어버리기 ㅋㅋㅋ 말그대로 피지컬로 찍어누른 거 아니냐고 ㅋㅋㅋㅋㅋ

└앜ㅋㅋㅋ 헤비급 올라가서 라무차랑 붙으면 ㅈㄴ재밌겠다! 라무차도 전략이고 나발이고 없이 그냥 들이받는 스타일이잖앜ㅋㅋㅋ

└강해서가 라무차 같은 스타일은 아니지. 라무차는 그냥 짐승이고...

└그나저나 학센은 왜 저기 가서 입 턴거임? 갓해서는 미들급 벨트 이미 내려놨는데?

└저 챔피언전이 역대급으로 흥했잖아 ㅋㅋㅋ 강해서가 목적이 아니라 저 이벤트매치를 보는 사람들한테 ‘나 미들급 벨트 노린다’ 라고 어그로 끈거지 ㅋㅋㅋ 학센이 저런건 ㅈㄹ 잘함

└그런데 최두호도 미들급 계속 도전하는 것 같던데. 그러면 둘이 붙는 거 아님?

└최두호 vs 학센 2차전 붙겠네 미들급에서 ㅋㅋㅋㅋ 이것도 꿀잼일 듯

이벤트 매치가 끝나고 바로 다음 날 우리는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대기 중이었다.

탑승 전에 한창 스마트 폰으로 어제 시합의 기사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톡!

아름이에게서 톡이 들어왔다.

-아름 : 바빠?

-해서 : 아니? 이제 탑승 수속 다 하고 기다리는 중이야.

어제는 아름이의 예능 촬영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제대로 연락도 하지 못했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느라고 내가 바빴고.

-아름 : 한국 오면 얼굴 보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조금 급한 것 같아서...

-아름 : 너 한국 오면 바로 바빠?

-해서 : 엉? 글쎄? 당장은 뭐 잡힌 일정 없는데... 왜?

-아름 : 예능 한번 출연해 볼래? 내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나랑 커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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