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32화 (132/203)

< 132화_Vs.브라이언 제프 End >

1.

“고생했다.”

“쓸린 덴 괜찮아?”

1라운드 종료 신호가 울리고 세컨 석으로 들어오자 코치형들이 몸을 닦아주고 입 헹굴 물을 줘가며 사기를 북돋울 수 있는 말들을 쏟아냈다.

“네. 괜찮아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하며 케이지를 붙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그라운드에서 힘 싸움을 하는 중에 집중력을 끌어올리면 그 반동이 생각보다 컸다.

체력도 정말 깎여나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빠르게 빠져나갔고 두통도 빠르게 찾아왔다.

그래서 1라운드 끝자락엔 꽤나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깨지면서 브라이언에게 틈을 보였고 브라이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 하체를 묶으며 허리를 봉쇄한 채 풀마운트를 가져갔으니까.

그대로 경기가 진행되었다면 꽤나 큰 손해를 각오해야 했을 터다.

“브라이언은 확실히 밸런스가 좋아. 예전에 네가 상대했던 타격의 스페셜리스트나 그라운드의 스페셜리스트들에 필적하는 타격과 그라운드 실력을 갖추고 있다.”

“...네.”

“하지만 결국 승자는 모두 너였다. 브라이언의 타격이 뛰어나다지만 해서 너보다 좋진 않아. 타격으로 풀어야 한다.”

“넵!”

“무리하지 말고 타격으로 이득 보면서 최대한 테이크다운을 방어하는 방향으로 가자. 그라운드로 들어가면 우리가 불리해. 브라이언이 테이크 다운을 노릴 때는 계속 네 얼굴 쪽으로 펀치를 던져. 효율적으로 움직이다가 비효율적인 펀치가 상체로 집중되면 테이크 다운을 조심해.”

“넵!”

짧은 휴식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겨우 1라운드 5분을 뛰었을 뿐인데 이렇게나 체력이 떨어지다니.

예일대 교수가 말했듯이 집중력을 유지하면서도 심박 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삐-

-툭.

2라운드를 알리는 신호음과 함께 케이지 중앙에서 글러브 터치를 가졌다.

브라이언 특유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을 보자니 묘한 압박감이 전해졌다.

물론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처음으로 핀치라고 할만한 상황까지 몰렸다 보니 조금은 신중해졌달까.

아무리 이벤트 게임이라지만 무패행진을 이어오던 입장에서 1패의 위협이라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퉁!

-휘익

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잠깐. 아주 잠깐 집중력을 흩뜨린 그 타이밍을 잡아내고는 브라이언이 달려 들어왔다.

“흐읍.”

꽤나 다급하게 그를 맞으며 시합에 집중했다.

-꿈틀

그라운드 때와는 달리 브라이언의 움직임이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모두 보였다.

1라운드에서는 스탠딩 상태에서 이 정도로 집중력을 끌어올리진 않았었다.

가벼운 초반 탐색전을 펼칠 생각이었으니까 오히려 가볍게 사고가 나지 않을 정도의 집중력만 끌어올렸었지.

그러다 더블레그 테이크다운을 당하고 그라운드에 돌입하고 나서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고는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올렸었다.

그 덕에 아슬아슬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위험한 상황들은 모면할 수 있었지만, 이런저런 상황들이 겹치며 체력과 집중력 모두를 잃고 핀치에 몰렸었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조금 무리하더라도 전력으로 간다.’

다시 테이크 다운을 당한다면 그거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될 터였다.

지금은 그라운드 상황에서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몇 분이나 비벼댈 능력이 안 됐으니까.

-후웅.

브라이언의 라이트 펀치가 크게 휘둘러지는 궤적을 보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내며 그의 비어있는 안면으로 왼 주먹을 뻗었다.

-스팟.

-휘익. 턱!

내가 뻗은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틀어 피해낸 브라이언은 그대로 휘둘렀던 오른팔과 왼팔로 내 몸을 부둥켜안고는 안아넘기기를 하려는 듯 힘 싸움을 걸어왔다.

1라운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만, 그때는 힘 낭비를 하기 싫었는지 쉽게 떨어져 나갔던 브라이언. 하지만 이번에는 꽤나 힘을 썼음에도 브라이언은 떨어지지 않았다.

“흐읍!”

아무래도 힘 싸움을 하면서 체력을 조금 더 빼두고 천천히 테이크다운으로 끌고 가려나 본데. 미안하지만 그냥 힘만 쓸 때는 집중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없거든.

나는 전력으로 브라이언의 팔을 풀어내며 그를 밀어냈고.

-휘익. 뻐억!

“큭!”

그대로 그의 얼굴에 이번 경기 처음으로 클린 히트를 꽂아 넣었다.

어휴. 제대로 들어갔나 보네. 브라이언의 큰 코에서 붉은 피가 내비쳤다.

-후웅!

미안하지만 코피 정도로 유리한 상황을 넘길 수는 없어서 말이야.

나는 안면에 데미지를 입고 뒤로 살짝 주춤한 브라이언을 향해 로우킥을 야무지게 찼지만

-떠억.

데미지에 주춤거리면서도 브라이언은 로우킥의 타점을 흩뜨리며 정석적인 킥 방어를 해냈다.

확실히 이제껏 맞붙었던 다른 선수들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났다.

정말 ‘있는 힘을 다해’ 부딪쳐야 한다는 느낌이랄까.

미첼이나 두호 형. 헨더슨과 같은 선수들과의 시합에서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조금 헤맸지만 금방 답을 찾아내고는 그때부턴 일방적인 시합을 가져갔으니까.

“후우. 후우.”

거리를 벌리고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파이팅 포즈를 조금 수정하는 브라이언.

이전보다 몸을 조금 더 세로로 세우며 앞 손을 더 쭉 내 뻗은 자세였다.

이건 내 타격을 조금 더 조심하겠다는 뜻이었다.

내 공격을 일차적으로 받아낼 앞 손을 더 앞으로 내 뻗으며 몸을 세로로 세워 무게중심의 이동으로 언제든 뒤로 빠질 수 있는 활로를 열어두겠다는 뜻.

내 입장에서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저 모습은 타격에 방어하는 자세이기도 했지만, 브라이언이 테이크 다운을 시도하기도 어려운 자세였으니까.

아마 지금의 데미지를 회복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내 타격을 피해 다닐 생각인가 본데...

“스읍-하.”

난 벌써 1라운드에 잃었던 체력을 상당 부분 회복하고 있었다.

헨더슨 전 이후에 기사는 봤지? 내 헤모글로빈 수치가 살짝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다는 거. 집중력만 끌어올리지 않으면 체력 회복 속도는 아마 내가 너보다 훨씬 빠를걸?

-툭. 슥. 슥 – 툭.

2라운드는 초반에 타격으로 내가 이득을 본 뒤 한동안은 지루할 정도로 서로 견제하며 제대로 된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브라이언이 어느 정도 데미지를 회복하고 그 앞 손을 당겼을 때.

나도 1라운드에서 손해 봤던 체력을 모두 회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먼저 들어가 줘야지.

-퉁! 후웅!

나는 속된 말로 슈퍼맨 펀치에 가까운 오른손 주먹을 날리며 날 듯이 브라이언에게 달려들었다.

-파스스

그러면서도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브라이언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살짝 뛰어서 펀치를 뻗어내는 찰나의 순간.

브라이언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순간 판단이 흔들렸고 반 박자 정도 늦게 오른쪽 뒤로 빠졌지만 내 주먹은 그의 왼쪽 어깨 부근을 가격할 수 있었다.

이대로 바닥에 착지하면 무리한 공격에 대한 리스크로 균형이 무너질 수 있었다.

브라이언은 그걸 노렸는지 왼쪽 어깨를 내주면서도 그리 뒤쪽으로 빠지진 않았고 오른손을 끌어올려 펀치를 날리려는 예비 동작이 보였다.

-후웅. 뻐억!

비록 균형이 무너지는 걸 막지는 못했지만, 브라이언의 라이트 펀치가 뻗어오는 타이밍을 잡아내고는 그의 팔이 미처 다 뻗어지기 전에 이마를 그의 글러브에 받아버렸다.

모든 타격은 타격점에 도달했을 때 가장 강한 힘을 낼 수 있도록 훈련한다.

물론 그 궤적에서도 무시 못 할 힘을 품고 있겠지만 저 팔이 다 펴지고 정확한 타점이 되었을 때 맞는 것과, 아주 조금이라도 타점을 흩뜨리는 것은 데미지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궤적을 다 그리기도 전에 맞을 걸 각오한 이마로 펀치를 받아버리게 되면 그 데미지는 생각보다도 높지 않았다.

“...”

순간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치켜뜨는 브라이언.

표정은 변화가 없었지만, 눈은 속일 수가 없었나 보다.

-후웅!

나는 머리로 브라이언의 오른 주먹을 받아냄과 동시에 왼손을 아래에서 위로 수직으로 올려 쳤다.

-뻐억!

살짝 짧긴 했지만, 꽤나 느낌 있게 들어간 훅이 브라이언의 턱을 두드렸고 브라이언은 처음으로 양팔을 크게 휘저으며 뒤로 휘청거렸다.

“흐읍!”

그대로 전진 스탭을 밟으며 따라붙자 브라이언은 그 와중에도 안면과 상체를 방어하며 양팔을 끌어올렸다.

맷집도 맷집이지만 정말 얼마나 많은 반복훈련이 되어야 저런 무의식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나 감탄이 나왔다.

‘그런데. 왜 당연히 타격일 거라고 생각한 거야.’

브라이언만큼 올라운더는 아니라지만. 나도 그래플링을 전혀 못 하지는 않았다.

특히 최근엔 심건오 선생님께 레슬링을 개인 교습까지 받아 가며 꽤나 그 숙련도를 늘렸다.

내가 심 선생님께 중점적으로 배운 건 디펜스 레슬링이 아니었다.

내 스타일은 곧 죽어도 공격이라서 말이지. 죄다 공격적인 기술들만 배웠거든.

“흣차-!”

뒤로 물러서는 와중에도 타격을 방어하기 위해 가드를 끌어올리느라 비어있는 양 다리오금을 양팔로 단단히 잡아냈다.

내가 오히려 테이크 다운을 걸어올 줄은 몰랐는지 순간 당황한듯한 브라이언.

온몸으로 그의 반응을 느끼며 그를 들어 올린 뒤 채 반응해내기 전에 빠르게 케이지 바닥에 찍어버렸다.

-후웅-

-쿠우웅!!

“컥!”

숨이 막히는지 억눌린 신음을 내뱉는 브라이언.

나는 다른 생각 할 것도 없이 그대로 브라이언의 상체에 올라타 안면에 망치질을 하듯 펀치를 내리꽂았고.

-스탑! 스탑!

꽤나 고전을 예상했던 브라이언과의 시합은 단 한 순간의 판단 차이로 생각보다 빠르게 끝이 났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찰칵. 찰칵.

사방에서 체육관이 떠나가라 울려 퍼지는 환호성.

“으아아아아!!!”

나는 단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기합을 내지르며 내 머리 위에 있는 WFC와 브로일러의 로고 중 WFC를 가리키며 관객들을 둘러봤다.

-WFC! 최고다!

-WFC!

=WFC!

-강! 강! 강!

-강! 강! 강!

이내 체육관을 울리던 함성은 WFC와 날 향한 연호로 바뀌었다.

2라운드 2분 3초.

정식 시합은 아니지만, MMA 역사에 한 획을 그을 WFC와 브로일러 두 단체의 챔피언전에서 내가 기록한 승리 레코드였다.

*

“에이.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네요.”

꽤나 앳된 얼굴에 그렇지 못한 우락부락한 몸뚱이.

패드릭은 강해서와 브라이언의 경기가 끝난 티비를 끄며 심드렁하게 말을 내뱉었다.

“브라이언이 괜히 조심한다고 2라운드 초반에 뒤로 빼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해볼 만했어요. 1라운드 후반에는 게임 거의 끝낼 뻔하기도 했고. 한두대 맞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서 그라운드로 끌고 갔어야지.”

종합격투기의 다음 세대를 이어갈 재능이라 평가받는 패드릭.

그는 이번 WFC와 브로일러의 챔피언전이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그나저나. 미스터 강이라는 선수. 저 실력으로 라무차에게 덤비겠다고? 에이. 안될 것 같은데.”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전담 코치를 향해 웃음 짓는 패드릭.

“그 전에 나한테도 못 이길 것 같은데. 체력이 왜 저렇게 없어? 1라운드에 그라운드 깔짝 했다고 헉헉거리기나 하고. 이번 시합 이기면 헤비급 왔을 때 나랑 붙여준다길래 봤더니 눈만 버렸네. 오히려 브라이언이 훨씬 수준 높았어.”

젊은 나이에 짧은 경력으로 높은 곳에 올라온 만큼 그는 거침없고 안하무인인 성격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는 강해서의 시합도 썩 성에 차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빨리 올라왔으면 좋겠네. 저 아저씨만 이기면 바로 라무차랑 싸울 수 있는 거잖아?”

강해서와 같은 해에 데뷔해 WFC 헤비급 랭킹 8위라는 커리어를 쌓은 뒤 아직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 중인 괴물.

패드릭은 한시바삐 강해서와의 시합이 잡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