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29화 (129/203)

< 129화_4번째 봄 >

1.

-WFC 헨더슨 방출? 악의적인 헨더슨의 언행에 소송 중!

-강해서 도핑? 천연 로이더라고 들어는 봤나? 70억분의 1의 피지컬!

-강해서 Vs. 브라이언 제프! 5월 마지막 주 출격! WFC와 브로일러의 첫 정상 결전! 그 화려한 라인업!

-MMA? 그건 복싱을 할 줄 모르는 얼간이들이나 하는 것. 스포츠라고 할 수도 없다. 길거리 양아치가 올라가더라도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근본 없는 운동. 조던 리의 말말말.

-WFC 미들급 타이틀 내려놓나? 방어전과는 인연이 없는듯한 강해서. 과연 벨트의 차기 주인은?

-바야흐로 종합격투기의 전성시대! 더욱더 새롭게 돌아온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5! 화려한 코치진을 살펴보자!

-최두호 출격! WFC 웰터급 첫 방어전! 전문가가 알려주는 이번 방어전의 승률은?

└헨더슨 인실좆이네 진짜 ㅋㅋㅋㅋ 텔론이 제대로 물고 늘어질 것 같던뎈ㅋㅋㅋ

└그나저나 강해서 저거 구라아님? 저게 사람 몸뚱이라고?

└저 정도 피지컬 되니까 몇 년 만에 세계 최정상에 서는구나... MMA 아니라 다른 운동 아무거나 했어도 올림픽 금메달은 쌉가능이었겠는데

└재능 낭비 오졌네. 솔직히 저런 하드웨어를 가지고 나이 서른까지 운동 안 했다는 게 말이 됨? 무슨 서프라이즈야?

└가끔은 현실이 드라마나 소설보다 더 개연성 없을 때가 있지. 저런 국보급 몸뚱이를 가지고 웹 소설이나 쓰고 있었다니ㅋㅋㅋㅋ

└심지어 늦게 시작했어도 세계 최정상들 다 씹어먹음 ㅋㅋㅋ 대체 얼마나 재능충인 거야... 가슴이 웅장해진다.

└NFL이나 각종 스포츠 국가대표 선수들보다도 우월한 지표가 많음 ㅋㅋㅋ 제발 꽃길만 걷자. 약하고 음주운전하고 여자 문제 일으키고 이런 것만 없으면 앞으로 최소 십 년은 한국에서 강해서는 갓 해서로 통할 거다

└여자 문제? ㅅㅂ 아름이 놔두고 여자 문제 일으키면 내가 가만 안놔둘거임

└가만 안놔두면ㅋㅋㅋㅋ 70억분의 1이라는데 니깟게 어쩌게ㅋㅋㅋㅋ

└그나저나 스파 5에 박필승 나오던데. 팀 피스트 코치들 나오고. 이러면 최두호나 강해서 깜짝 등장 기대해볼만하지 않냐?

└ㅇㄱㄹㅇ 시즌2에는 최두호가 깜짝 등장했고. 시즌 3에는 강해서가 깜짝 등장했었는데. 시즌 4는 심심했지. 시즌5는 좀 터지려나ㅋㅋㅋ

└그보다 3월 최두호 방어전에 5월 강해서 브라이언 전. ㅈㄴ 행복하다. 한국에서 이렇게 격투기를 응원하면서 볼 일이 생기다니

오늘도 격투기 커뮤니티는 분 단위로 새로운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나와 관련된 글이었고 나머지는 WFC와 헨더슨. 그리고 두호 형의 타이틀 방어전에 관한 글이었다.

“후욱... 후욱... 뭐 보냐?”

“아. 잠깐 폰 좀 봤어요. 벌써 끝났어요?”

“벌써라니. 죽을 것 같은데.”

아직 찬 공기가 가시지 않은 날씨였긴 하지만 두호 형은 온몸으로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3월 타이틀 방어전까지 이제 보름도 남지 않은 상황. 한창 마지막 훈련에 열을 올릴 시기였다.

선수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보통 시합 열흘 정도 전부터는 과한 운동은 자제하며 컨디션을 체크하고 계체에 맞춘 감량 루틴으로 들어가니 지금이 마지막 스퍼트 기간이었다.

“... 보는 것만으로도 진 빠져요. 웰터급이라니. 우웩.”

웰터급 최대 체중은 77.1킬로그램.

나는 중학교 때 이후로 찍어본 적이 없는 몸무게였다.

“나도 힘들어 인마. 미들급으로 만들어뒀던 몸을 웰터급으로 낮추는 건.”

“그래도 구간이 적잖아요.”

미들급 한계 체중은 83.9킬로. 웰터급 최대 체중과는 약 7킬로 정도 차이로 숫자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라이트 헤비급 한계 체중이 93킬로그램으로 미들급과 9킬로 정도 차이가 나는 걸 생각하면 일견 쉬워 보이기도 했다.

“90킬로대에서 2킬로랑. 80킬로대에서 2킬로가 같냐. 어휴...”

“형은 군살도 좀 있었으니. 충분할 것 같은데.”

“뭐 인마?”

“하하. 장난이에요. 장난! 장난!”

평소 사람 좋은 두호 형도 이 시기에는 인정사정 없으시구만.

뭐. 말은 저렇게 하셔도 두호 형의 의지력은 정말 보는 내가 감탄할 정도로 대단했다. 열심히 쌓아 올렸던 것들을 과감히 포기하며 근육을 줄이고 다시 웰터급에 맞는 아슬아슬한 한계치까지 체중을 조정하는 모습. 나는 절대 해내지 못할 종류의 노력이었다.

“넌 미들급이 힘들었지? 라이트 헤비급은 좀 편하고?”

“네.”

“난 미들급이 편해. 윁터급은 지옥이지. 가뜩이나 나이도 있는데 이 체급에 머물러 있다가는 정말 조만간 은퇴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인마.”

“하하하...”

웃으면서 서늘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두호 형.

하긴. 두호 형은 나보다는 작다지만 180이 훌쩍 넘는 키에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미들급 한계 체중을 맞추기도 어려운데. 두호 형에게 웰터급이 어떻게 다가올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졌다.

“벨트. 내놓기로 했다며?”

“미들급이요? 하하. 저는 도저히 형처럼 할 자신이 없어서요.”

꽤나 엄살이 섞인 대답에 피식 웃는 두호 형.

“걱정 마라. 그 벨트. 팀 피스트를 떠나진 않을 거다.”

“네?”

“나도 웰터급 벨트랑 미들급 벨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미들급 벨트가 편해서 말이야. 너만 없으면 다시 노려볼 만하지.”

“엄...”

확실히 두호 형과 미첼. 둘 모두를 상대해본 내 입장에서는 말을 아끼게 됐다.

미첼과 붙을 때는 내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어서 객관적인 전력을 분석하긴 애매했지만...

‘백중세.’

두호 형과 미첼의 실력은 정말 엇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중요한 건 그사이 얼마나 격차가 벌어졌느냐인데...

두호 형은 어느새 나이가 40대 초반의 끝물이었다.

유안이가 남편감을 데리고 올 때까지는 팔팔할 거라 이야기하지만 그건 일반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고, 격투기 선수로서 두호 형은 안타깝지만,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지난번 나와의 시합 이후 두호 형의 기량이 얼마나 성장했을까. 오히려 퇴보하진 않았을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미첼은 아직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나이대였기 때문에 아주 조금이지만 더 발전했을 텐데.

“갑자기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네? 아. 아니에요.”

“왜. 걱정돼? 방어전에서 질까 봐?”

“아뇨!”

“그럼? 미들급 가서 미첼한테 발릴까 봐?”

“에이. 발린다뇨.”

“어쭈? 부정은 안 하네?”

“하하. 아니라니까요.”

역시. 나이가 늘면 눈치만 는다더니. 두호 형은 내가 걱정했던 부분을 정확하게 찔렀다.

“난 해서 너처럼 괴물 같은 몸뚱이를 가지고 있지 못해. 물론 평균보다야 훨씬 좋은 조건이겠지만.”

“...”

“대신. 나는 그걸 잘 관리하고 가꾸어왔다. 아직 쓸만해. 앞으로 2-3년은 문제없다.”

“2-3년 뒷면 형 40대 중반이에요. 으웩. 은퇴하고 지도자 길이나 알아보시죠?”

“뭐 인마?”

“하하하하.”

장난처럼 받아넘겼지만, 두호 형의 저 눈빛은 진짜였다.

몇 번이고 본 적 있는 뜨거운 불길을 머금은듯한 눈빛.

농담이 아니라 두호 형은 정말로 아직 자신의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다는 듯 스스로의 발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벨트. 형이 저한테 넘겨줄 거라고 하셨었는데 어쩌다 보니 제가 형한테 넘겨주는 그림이 되네요. 그럼.”

“... 그렇게 되나?”

“미들급 벨트 받으면 선배님이라 부르세요. 그건 제가 선배니까.”

“뭐 인마?”

“하하하. 제가 반납한 벨트. 꼭 형이 가져와 주세요. 그러면 저는 헤비급 벨트 하나를 더 가져올 테니까.”

“... 미친놈.”

“하하하하.”

한국의 종합격투기 선수가.

아니. 아시아 국가의 종합격투기 선수가 WFC에서 미들급부터 시작해 라이트 헤비급과 헤비급을 차례로 격파한다.

그냥 말만 들으면 무슨 만화나 소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두호 형이 미친놈이라고 할 만도 하지.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 두 가지를 뽑으라면. 하나가 유안이 엄마를 만난 거고. 두 번째가 널 이 바닥으로 데려온 거다.”

“...”

“넌 할 수 있을 거야. 말 그대로 미친놈이니까. 세계에 알려줘라. 한국의 미친놈이 얼마나 무서운지.”

“... 응원이에요 욕이에요?”

“뭐.”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시 훈련하러 이동하는 두호 형.

어느새 휴식 시간이 모두 지나갔나 보다.

“한국의 미친놈이라.”

그래. 요즘 말로 K-파이터의 힘을 세계에 보여줘야지.

일단은 브라이언과의 이벤트 매치부터 완벽하게 준비해야겠다.

2.

“체육관에서 이렇게 있어보긴 처음이다. 그치?”

“어. 뭐. 그렇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팀 피스트의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두호 형은 첫 웰터급 방어전을 준비하느라 어느 순간부터는 말도 붙이기 어려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여줬고 필승 형은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5의 메인 코치로 나서며 그에 관련된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안 코치님과 창섭 형은 두호 형을 케어하는 쪽으로 붙었는데, 다행히 나와 브라이언의 매치가 정식 시합이라기보다는 이벤트 매치에 가까웠기 때문에 조금은 느슨한 감이 있어서였다.

물론 시합을 치르는 내 입장에서는 전혀 느슨한 느낌이 없었다. 심 선생님께 주 2회 레슬링 코칭을 받으러 다니면서 기본 훈련량 또한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집중력을 높인 상태에서 심박 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면 하루가 30시간이라도 모자랄 것처럼 느껴졌다.

“시작한다!”

“잠깐만. 마실 것 좀 갖다줄게.”

“응!”

오늘은 그런 일정 중 딱 하루. 특별히 휴식을 취하기로 정해둔 날이었다.

두호 형의 첫 번째 방어전이 있는 날이었으니까.

안 코치님을 비롯한 다른 스텝들 대부분이 두호 형의 시합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

일요일 오후라 딱히 다른 사람들도 없어서 아름이와 나만 오붓하게 상담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틀고 두호 형의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호 오빠가 이기겠지?”

“모르지. 케이지 안에서는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 변수라는 부분을 빼고 본다면 실력만으로는... 두호 형이 질 일 없을 거야.”

두호 형의 첫 방어전 상대는 토미슨이라는 웰터급 랭킹 3위의 파이터였다.

학센이 챔피언일 때는 타이틀 샷을 달라는 어필을 거의 안 했던 걸로 아는데 챔피언이 두호 형으로 바뀌고 나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타이틀 샷을 원한다고 떠벌리고 다녔던 선수.

이번 방어전 전에도 꽤나 입을 털었는데 동양인에게 중량급 타이틀이 두 개나 가 있느니 뭐니 하며 WFC가 망해간다는 소리까지 지껄였었다.

물론 그에 걸맞은 실력도 갖춘 선수였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엔 두호 형의 압승이 예상되는 시합이었다. 토미슨의 경기 영상을 두호 형과 같이 본 적이 있는데 영 수준 이하였거든.

“아! 시작한다!”

-스포츠온 TV 시청자 여러분! 드디어 자랑스런 한국의 파이터! 최두호 선수의 윁터급 방어전이 시작됩니다!

드디어 시작된 두호 형의 첫 방어전.

-최두호 선수!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치고 나갑니다!

-난타전! 압도적인 기량으로 젊은 도전자에게 노장의 파이팅을 보여주네요!

-아! 이건 제대로 들어갔습니다! 토미슨 선수! 데미지가 있어 보이는데요!

-다운! 다운입니다! 그대로 최두호 선수 파운딩! 파운딩! 아! 심판의 스탑 사인이 떨어졌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그 기다림은 꽤나 길었지만, 두호 형의 시합은 아름이가 음료를 한 모금도 채 마시기 전에 끝이 났다.

1라운드 21초 TKO.

케이지 한복판에서 거칠게 포효하는 저 사내를 두고 누가 40대의 아저씨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었다.

“우와... 두호 오빠 짱이다! 한 대도 안 맞고 순식간에 끝냈어! 봤어? 봤어?”

“... 봤지.”

“해서는 막 엄청 맞고 그랬는데...”

미첼 전만 좀 맞았지... 헨더슨 전에선 별로 안 맞았거든?

“1라운드 만에도 끝나는구나...”

내 최고 기록이 1라운드 7초거든? 그것도 데뷔전에? 물론 WFC가 아니라 브로일러였지만. 타이틀전도 아니고 일반 매치였고.

“해서가 저런 두호 오빠를 이겼다니. 신기하네.”

“... 나도 거의 안 맞는 편이거든?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두호 형을 깎아내리고 싶진 않지만, 괜히 자존심 상하네 이거.

“에이. 우리 해서 삐져떠?”

“...”

“삐져떠? 삐져떠?”

아.

아름이의 혀짧은 소리라니. 이건 반칙이잖아.

“웃었다! 웃었다! 헤헤.”

“참 나. 그래. 웃는다 내가.”

아름이와 실없는 장난을 치는 동안 어느덧 TV에서는 두호 형의 승리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음 목표는 다시 미들급입니다. 벌써 두 번이나 미끄러졌지만. 한국에는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죠. 괴물 같은 후배 놈이 두고 간 벨트. 제가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

두호 형의 승리 인터뷰와 함께 스포츠온 TV의 캐스터와 해설자도 흥분해서는 두호 형의 미들급 타이틀 도전에 대한 가능성을 점치며 남은 방송 시간을 알차게 때우고 있었다.

어쨌든 두호 형은 최소한의 증명을 해냈다. 이번 웰터급 방어전을 치르며 요행으로 벨트를 거머쥐었다는 말이 쏙 들어갈 만한 기량을 선보였달까.

이제는 내 차례겠지.

“... 다음 주에 간댔지?”

“응?”

“현지 훈련하러.”

“아. 어.”

어느새 3월의 끝자락.

5월 말에 예정된 브라이언과의 시합을 준비하기 위해 다음 주면 다시 미국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면 또 한동안 못 보겠네.”

“5월 말이나 돼야 보겠지...?”

“그럼... 오늘은 나 너희 집에 갈래.”

“...응?”

“한번도 못 가봤단 말야. 너희 집 갈래.”

... 빨래를 했던가?

방 상태가 지금 어떻지...?

훈련에 정신이 팔려서 집 상태가 어떤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안...돼?”

아름이의 저런 표정을 보고 안된다고 할 수는 없지...

“...돼.”

대신 나한테 5분만 시간을 주세요. 제발.

3월의 마지막 주말.

아름이는 처음으로 내가 사는 곳에 발을 디뎠고 우리는 새로운 추억 하나를 쌓아갔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5월.

“강해서. 오늘 체중은?”

“94.5킬로입니다!”

“목표까지 2킬로라 생각하자.”

“넵!”

브라이언과의 이벤트 매치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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