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26화 (126/203)

< 126화_테스트 >

1.

-그럼 이제 끝나가?

“어. 이것도 꽤나 지치네.”

예일대에서 진행된 운동능력 테스트는 하루가 아닌 3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웬만한 회화는 되지만 전문적인 어휘는 딸리는지라 정확히 어떤 훈련들인지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뭐 기본적인 신체구성과 무산소운동능력 및 최대산소 섭취량 체크. 복합 운동시 무산소성 파워와 운동능력? 그 외에도 뭐 이것저것 수시로 상태 체크를 해가며 이런 저런 테스트를 진행했다.

-설날 전에는 들어오지?

“하하. 테스트만 끝나면 바로 들어갈 거야. 주말 안에 볼 수 있어.”

-너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 헤헤

“응?”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이나. 내가 고정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 사람들이나.

“어... 하하. 그래. 한국 가서 시간되면 한번 보자. 안 그래도 나도 친구들한테 제대로 너 소개시켜주고싶었어. 체육관은... 하.”

난 아름이처럼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고정예능도 없었고 동료랄 사람들도 별로 없었으니까.

그래도 준현이 재현이 기태. 이 세놈한테는 제대로 소개시켜주고싶었다.

아름이와의 열애 공개 후 이렇다 할 말은 없었지만 꽤나 서운해 할 수 있으니까.

‘아니지. 준현이는 대충 알고 있었고... 기태 놈은 오히려 좋아하는 듯 했는데. 재현이만 별 반응이 없었네.’

-체육관은 왜?

“아니. 아니야. 체육관은 가서 대가리 박으면 될 거야.”

지난 헨더슨과의 경기가 끝나고 아름이를 소개시켜주려 했는데 이런저런 일정들이 겹치며 결국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했다.

어차피 아름이도 우리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관원이니 한국 가서 인사해야지. 진짜 대가리 박아야할지도 모르지만.

-풉. 걱정 마. 내가 그렇게 안 놔둬.

그나저나 오늘따라 꽤 생글생글한 목소리네. 생명력이 넘친달까?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어? 목소리가 되게 좋네?”

-글쎄? 어떨까?

“...뭔 대답이 그러냐?”

-누가 곧 한국에 온다고 해서. 주말에는 얼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기분이 좋아졌나봐.

“...”

꽤나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잘도 하는구나.

이렇게 말 하니 진짜 보고 싶네 또.

“미스터 강? 잠시 이쪽으로.”

“네! 아름아. 나 이제 가봐야 될 것 같아.”

-아! 응! 파이팅하고! 한국 와서 봐!

“응. 아름이도 파이팅!”

아름이와의 전화를 끊고 연구원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예의 그 반대머리 교수님이 앉아있었다.

“오! 어서와요. 미스터 강. 며칠 동안 고생 많았어요.”

“하하. 아닙니다. 교수님이 고생하셨죠.”

이번에 예일대에서 진행한 테스트는 적잖은 돈이 들어가는 테스트였다.

다행히 지난 헨더슨과의 시합으로 파이트머니와 PPV 수당. 베스트 퍼포먼스 상까지 받아 주머니 사정은 꽤나 두둑해졌다지만 그럼에도 만만히 볼 수 없는 금액이었달까.

마침 어떻게 알았는지 레이첼이 이번 테스트에 대한 비용 또한 전액 처리해주기로 해서 알게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어쨌든 그만큼 많은 인력이 들어간 테스트였다. 지난번처럼 교수님과 제자 한두 명으로 진행된 간단한 테스트가 아니었다는 말.

“우선. 미스터 강의 몸은 정말 놀랍네요. 예전 테스트 때도 놀랐었지만 이렇게 정밀 테스트 결과를 놓고 보니 정말 해부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

거 참. 농담도 살벌하게 하시네.

그래서. 맘모스 코치는 어디 있지? 맘모스 코치.

“하하. 농담이 아닙니다. 일단... 근섬유가 늘었어요.”

“네.”

“네. 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근섬유의 개수는 태어나서 생후 일정기간동안 늘어나고 이후로는 변하지 않는다는 게 보편적인 인식입니다. 물론 미스터강 외에도 여러 연구들에서 근섬유의 개수가 늘어난 경우는 있었지만 아주 드문 사례죠.”

“아. 그런가요?”

“예전에는 근섬유의 성장을 확인하려면 근육을 채취해야했기 때문에 제대로 연구를 하기가 어려웠죠. 채취하는 순간 근섬유는 파괴되고 영구적으로 결손이 생기니까요.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채취를 하지 않아도 근섬유의 연구가 가능합니다.”

“그렇군요.”

“어쨌든. 쉽게 말씀드리자면 근섬유는 세포가 분열하듯 ‘증가’하는 게 아니라 그 ‘부피’가 커지는게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몇몇 실험군들에서는 고강도 운동이후 근섬유의 개수가 ‘증가’ 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아주 드물게도 미스터 강은 그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이후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교수님.

대충 요약해보자면 내 근섬유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굵기도 가늘지만 그 개수 또한 운동을 통해 일정량 늘어났다는 게 확인되어 학계에 보고된적도 없는 수준의 몸이라고 했다.

거기에 적혈구 수치와 헤모글로빈 수치. 혈관 확장성과 관절 가동 범위 등 여러 가지 테스트들 또한 수차례에 걸쳐 신뢰성 있는 데이터들을 뽑아냈다고 하니 이 검사 결과를 WFC와 언론에 공개하기만 한다면 앞으로 도핑이라던지 여타 억측들은 모두 사라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집중 모드?”

“아. 네.”

이번 테스트에서 나는 교수님에게만 ‘집중 모드’라 이름붙인 상태를 이야기했다.

이런 종류의 테스트를 또 언제 받아보겠나싶어서였는데, 집중이 오래 지속되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현상이 있어서 혹시나 안좋은 영향이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확실히 미스터 강이 말한 그 집중력이 높아진 상태에서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SMR파가 감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장 박동수가 현저히 느려졌고.”

“혹시 문제가 있는 건가요?”

“사실.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 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없다라고 말을 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아직 다각도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만... SMR파의 밝혀진 속성만을 본다면 그리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진 않아요.”

“심장 박동수는요?”

“사람의 심장 박동수는 느릴수록 좋죠. 다만 과격한 운동을 했을 때는 심장이 빨리 뛸 수밖에 없는데, 어떤 연관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스터 강이 집중을 하게 되면 심박수를 강제적으로 낮추며 혈류를 조절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SMR파가 연관된 것 같은데 저도 이렇다 할 대답을 드리기가 어렵네요.”

“아. 네...”

“다만. 머리가 지끈거리는 문제는 아마 뇌의 산소 공급 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심박 수가 느려진다는 건 혈류 속도가 떨어진다는 말인데 그러면 피가 전달하는 산소의 양도 줄어들게 되니까요.”

“아...”

“한마디로 전천후적인 능력은 아니라는 말이죠. 물론 미스터 강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평균보다 월등히 높고 혈액의 산소 공급량 또한 우수하지만, 격한 운동 도중 갑자기 혈류를 늦춘다는 건 순간적인 체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어요.”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어쩐지.

집중모드를 쓰고 나면 머리도 지끈거리고 체력도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게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마나 대신 체력을 쓰나 싶었다.

그런데 심박 수가 느려지면서 육체에 산소 공급량이 줄어들고 회복력이 떨어지는 종류의 문제였다니.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구만.

“시간이 있다면 더 연구해보고 싶지만... 어렵겠죠?”

“하하. 네. 저도 한국을 들어가 봐야 해서.”

“좋아요. 미스터 강이 해볼 만한 훈련은... 그 집중력을 올린 상태에서 심박 수를 다시 끌어올려보는 것. 심박수가 올라갔을 때도 그 집중력이 잘 유지되는지를 체크해보는거에요. 만약 집중력이 풀린다면, 집중력을 유지하되 심박수를 최대한 올릴 수 있는 중간점을 찾는게 과제겠죠.”

“감사합니다.”

“이번 테스트의 결과는 예일대를 통해서도 발표가 될 거고. 미스터 강 쪽으로도 보내드리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네!”

드디어 끝난 길고 길었던 예일대에서의 테스트.

오늘 저녁 비행기가 있으려나 싶었다.

“끝났어?”

모든 상담을 마치고 나오자 맘모스 코치가 차를 대령하고는 기다리고 있었다.

“뭐하고 있었어요?”

“인터넷 기사를 보고 있었지. 아주 재밌는 상황이야.”

그리고는 내게 보여주는 그의 스마트 폰.

-WFC 라이트헤비급 랭킹1위 핸콕. TWF의 진실을 말하다?

-헨더슨. 그는 가식적인 정치꾼. 옥타곤 보다는 정치판이 어울릴 것?

-핸콕. 헨더슨이 빌리와 나를 섭외한 이유는 미스터 강을 저격해서다? TWF에서 헨더슨의 지령이 담긴 녹취본 공개!

-헨더슨. 빌리와 핸콕. 두 사람 모두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 같다? 녹취록의 목소리는 내 목소리가 아니야.

-끝없는 진실 공방. 텔론 드디어 영상을 공개하다?

-헨더슨이 빌리에게 건네는 약품은? 미스터 강에게 한방 먹일 수 있는 방법?

-WFC측 헨더슨 영구 퇴출 발표. 그는 두 번 다시 WFC의 어떤 무대에도 서지 못할 것?

-WFC. 헨더슨을 향한 소송 진행. TWF 촬영 중 부정행위 및 거짓된 기사로 WFC와 텔론 회장에 대한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죄?

┕LOL!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었군. 헨더슨은 이 사실을 끝까지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이거 제대로 터져나가겠는데? 텔론 회장이 제대로 칼을 휘두르고 있어

┕텔론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어떻게든 헨더슨에게 기회를 주고싶었대. 어찌됐든 그는 WFC를 대표하는 챔피언이었으니까 말이야

┕헨더슨이 그 기회를 발로 차버린거지. 텔론은 그를 지키기 위해 영상의 내용을 언급도 하지 않았던건데. 이번 영상에서 나온 그의 언행들은 역겨워서 도저히 봐줄수가 없는 정도였어

┕이제 헨더슨을 케이지 안에서 볼 일은 없겠군. 그는 지역 갱스터가 되려나? (웃음)

┕소름끼쳐. 나는 이제껏 그가 정의롭고 건전한 사람인 줄 알았어. 이렇게 음흉한 모습이 감춰져 있었다니. 정말 실망이야.

이제는 불탈 장작도 없이 일방적으로 두드려맞고있는 헨더슨이었다.

핸콕의 녹음파일이 공개되었을 때는 반박 기사도 내봤던 것 같지만 텔론의 영상이 공개된 이후로는 이렇다 할 변명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상황이 되었다.

그나저나. 텔론에게 이런 영상이 있으면서도 헨더슨을 지키려 했다니. 마냥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만 충만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나보다. 아니면 사업적으로 아직 헨더슨은 쓸만하다 여겼던 걸까.

‘그럴 수도 있겠네. 약점을 쥐고 흔들 수 있으니. 그런데 그럴 거면 헨더슨에게만이라도 영상을 보여줬으면 됐을텐데.’

쩝. 제 3자인 나는 모르겠다. 텔론이 무슨 마음이었는지. 어떤 의도였는지.

어쨌든 헨더슨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졌고. 나는 모든 의혹을 떨칠 수 있는 결과지를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건 다음 행선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일 뿐이었다.

*

-탁.

꽤나 소리 나게 태블릿 팬을 내려놓는 텔론.

“이것으로 충분하겠습니까?”

“그래. 이렇게 해두지.”

그는 얼마 전 자신의 손으로 아끼던 선수 하나를 잘라냈다.

“멍청한 놈...”

텔론은 헨더슨을 꽤나 아꼈다.

챔피언의 자리를 지킬 정도로 실력도 좋으면서 눈치도 빨랐고 흥행성도 좋은 선수.

이미지 메이킹도 잘 되어있어 WFC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던 선수였다.

이번 논란의 영상이 텔론의 손에 들어왔을 때 그는 많은 고민을 했었다.

헨더슨을 잘라낼것인지. 아니면 이 영상을 빌미로 그를 쥐고 흔들 것인지.

하지만 이번 영상 안에 담긴 그의 모습은 선을 넘어도 너무 넘어있었다.

텔론 스스로가 정한 선을.

“도전자들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비즈니스로 가득찬 WFC와 텔론에게 몇 없는 성지중 하나가 TWF와 그 도전자들이었다.

WFC의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TWF와 도전자들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 그 배를 찢으려는자는 누구든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브로일러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스만 그 놈이?”

“네. 브라이언과 강해서의 챔피언전 관련이었습니다.”

“흐음.”

챔피언전이라.

조금 전까지 굳게 다물어져 있던 텔론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좋아. 오스만에게 일정을 잡아보라 그래. 이참에 보여줘야지. 종합격투기 단체의 넘버원이 누구인지. 그리고 MMA가 합심하면 복싱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야.”

WFC창설 이래 최초로 진행되는 타 단체와의 교류전.

그것도 각 단체의 자존심을 건 챔피언들의 격돌이 현실로 윤곽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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