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23화 (123/203)

< 123화_공개 >

1.

-와아아아아아!!!!

-미스터 갓!!!

-멋있어!!!

-최고다!!

주변에서 들리는 환호성.

그리고 어느새 일어났는지 절뚝거리는 다리로 내게 걸어오는 데릭 헨더슨.

“좋은 시합이었어. 내가 평생 맞아본 레그킥 중 오늘이 최고였어.”

“마찬가지야. 좋은 시합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

카메라가 찍고있어서 하는 말일수도 있고, 어쨌든 시합이 끝났으니 더 이상의 대립은 필요 없기에 둘 사이의 매듭을 풀려고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먼저 악수를 청하는데 내 쪽에서 쳐내기도 뭐 한 상황이라 적당히 받아주며 그를 가볍게 안아줬고 헨더슨은 그대로 케이지를 떠났다.

-미스터 강! 아니지. 지금 관중들은 미스터 ‘갓’ 이라고 부르네요. 오케이. 미스터 갓?

“아. 네.”

-오늘 경기로 드디어 WFC 2개 체급 제패를 달성했습니다. 그것도 아시안 으로서는 정말 최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오늘 시합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 해주시죠.

승리 인터뷰를 위해 케이지로 올라온 진행자와 카메라들.

“어... 우선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텔론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제 TWF31에서 우승을 거머쥔 알레이즈. 가마쉬. 격전을 벌이고 힘들었을 텐데도 오늘 제 시합을 응원하기 위해 자리해줘서 너무 고맙다.”

-예에에에!!

-미스터 가-앗!!!!

관중석 제일 앞자리에 앉아있던 알레이즈와 가마쉬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얼굴로 웃으며 환호하고 있었다.

-오늘 시합은 전문가들 또한 그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죠. 라이트 헤비급에 올라와서의 첫 시합을 타이틀전으로 가졌고 그걸 압도적인 승리로 가져갔습니다. 어떤 준비를 하신건가요?

“압도적인 승리는 아니었습니다. 헨더슨과 저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고 누가 이기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다만 결과적으로 제가 이겼고 눈에 보이기에는 압도적으로 보였을 뿐이죠.”

-그래도 미스터 강은 유효타격을 거의 입지 않았습니다. 방금 시합을 치른 사람이라고는 볼 수가 없겠는데요?

방송 시간이 애매한가. 오늘따라 승리 인터뷰가 꽤나 긴 느낌이었다.

질문 중에 알레이즈와 가마쉬를 둘러보다가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조금 신경 썼습니다. 최대한 맞지 말자. 맞더라도 얼굴은 맞지말자. 라구요.”

-무슨 이유에서죠?

“오늘 이 자리에는 제게 소중한 사람이 와 있거든요.”

-소중한 사람이요? 여자 친구입니까?

“네. 제 여자친구가 오늘 처음으로 제 시합을 보러 와 줬습니다. 그 첫 경험을 남자친구의 엉망이 된 얼굴로 기억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와아아아아아!!

-휘이이익!!!

그냥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기가 개방적인 나라여서 그런지. 관중들의 환호가 장난이 아니었다.

-오케이. 오케이. 그러면. 여자친구분이 어디 있는지 저희한테 알려주실 수 있어요? 아! 만약 밝히고 싶지 않다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메라맨과 진행자는 은근한 표정으로 물어왔고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일단 아름이의 반응부터 살펴봤다.

-끄덕 끄덕

목덜미까지 빨개진 게 눈에 보였지만 확실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아름이.

수천수만 관객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그녀도 이런 종류의 노출은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어... 저기. 관중석 제일 앞줄의 인형처럼 예쁜 소녀가 있죠? 그녀가 나의 피앙세입니다.”

-우워어어어어어!!!

카메라가 아름이를 비추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했지만 그를 피하지 않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정말 인형 같은 소녀군요! 이거. 미스터 강의 타이틀 획득보다 피앙세에 관한 기사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가 길어졌군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경황이 없어 생각 정리가 안 되네요. 이것 하나만 말 할게요. 텔론. 이번 시합이 끝나면 다음 시합은 브라이언과의 챔피언전이라고 했죠? 그리고 그 외에도 이번 승리에 걸려있는 약속들이 많았어요. 그 모든 약속을 꼭 지켜줬으면 합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나는 브라이언과의 시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그 외에도 헨더슨의 영상 공개라던지 부차적인 약속들을 꼭 지켜달라는 말을 했다.

경기가 끝나고 포옹 한번 했다고 앞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잖아?

-브라이언? 브라이언 제프를 말하는 거야?

-브로일러 라이트 헤비 챔피언?

-드디어 WFC와 브로일러의 챔피언전이 성사되는 건가?

꽤나 큰 폭탄이었는지 환호성보다는 웅성거림이 더 커진 관중석.

“텔론은. 이번 시합에서 제가 타이틀을 획득할 경우 지난 WFC 264에서 성사되지 못한 브라이언과의 시합을 추진해주기로 약속했었습니다. 모두들 기대해도 좋습니다. 브라이언이나 저나. 그때보다 훨씬 향상된 기량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우와아아아아아아!!!!

-대박! 최고야진짜!!!

-미스터 강 사랑해!!!

확실히 못을 박고 나서야 울려 퍼지는 환호성.

나는 관중들의 함성을 뒤로하고는 케이지를 내려왔다.

꽤나 길었던 이번 타이틀전까지의 여정이 이렇게 마무리...

“미스터 강?”

“...네?”

“USADA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가실까요?”

“...”

쩝. 순탄하게 마무리 되었으면 했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

“...”

“...”

여기는 경기장 화장실.

틀림없이 경기장 화장실이다.

그럼 왜...

이렇게 됐지?

“긴장하지 마시고. 마음을 느긋이 가지세요. 물이라도 드릴까요?”

“아... 아뇨. 물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타는 마음을 달래려 미리 챙겨온 물통의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

WFC 283에서 2라운드 TKO로 호쾌한 승을 챙겼지만 지금 내 미션은 소변을 보는 것이었다.

내 눈 앞에는 USADA에서 나온 검사관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아! 저. 신호가 오는 것 같습니다...”

“오우. 다행이네요. 드디어 저도 주말을 즐길 수 있겠어요.”

그러기에는 시간이 이미 자정에 가까운뎁쇼.

KADA에서 나왔던 한국 감시관은 얼음장 같은 표정에 감정이 없어 보이는 말투 등 뭔가 무기질적인 느낌이 강했다면, 눈 앞의 USADA 직원은 아주 표정이 다양하고 감정이 풍부한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괜히 더 창피하달까.

“샘플 통을 미리 체크하시고. 마음에 드는 샘플 통을 선택해서 소변을 보시면 됩니다. 정량 미달이 되면 다시 체취 해야하는 건 아시죠?”

“...네에.”

역시.

누군가 보는 앞에서 소변을 본다는 건 도저히 적응이 되질 않았다.

영화나 만화책 같은 것 보면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노상방뇨도 하고 하던데. 나는 그런 경험도 없을뿐더러 그럴 생각도 없었다. 소변을 왜 같이봐 대체?

“아. 됐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빠르게 소변이 나와서 다행이었다.

대기실에서는 팀 피스트의 사람들이 날 죽일 기세로 기다리고 있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아름이도 기다리고 있었다.

-끼익.

도핑 테스트를 마치고 선수대기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나? 왜 이렇게 조용하지?

일단 대기실 안쪽으로 들어가 스마트 폰부터 챙겨야겠다.

아름이의 연락이 와 있을 텐데 케이지에서 내려오자마자 USADA 검사관한테 끌려가느라 미처 확인도 못하고 있었으니까.

-딸깍.

그때 등 뒤로 들리는 무언가 잠기는 소리

나는 휙 소리가 날 만큼 빠르게 뒤를 돌아봤는데

“여어. 강해서. 아주 그냥 입이 입 꼬리에 걸렸어?”

뭔가 아주 뒤틀린 표정의 필승 형과

“아름씨라니. 아름씨... 이런 천하의 때려죽인 놈.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감히 아름씨를?”

눈이 살짝 맛이 간 창섭 형이 대기실 문을 잠그고 있었다.

“어... 형들. 그게 아니라. 말 하려고 했는데...”

“시끄러 인마! 일단 좀 맞자. 맞고 시작하자.”

“저 이제 방금 시합 끝났는데요?”

“그러니까 지금 맞아야지! 너 쌩쌩하면 우리가 어떻게 때려!”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지금도 그렇게 지치진 않았거든요?

아무래도 그건 형들이 맞는 말일 것 같은데...

“와! 이놈 보소! 아름씨 사귄다고 형들한테 막 힘도 쓰네!”

“동네 사람들! 손아름이랑 사귀는 양아치 놈이 사람 팬다!”

“아! 형들이 먼저 시작해놓고 왜 이래요!”

때리려는 거 조금 반항했다고 이러기 있네 진짜.

“필승 형! 아름이 주변에 예쁜 언니들 많다던데! 창섭 형! 여자친구 분한테 다 이를거에요?”

“진짜?”

“...”

극명하게 갈린 반응.

-퍼억!

“짜샤. 넌 동생이 연애를 한다면 응원해주고 그럴 줄 알아야지. 뭐? 부러우니까 맞아? 넌 여자 친구도 있는 놈이. 하여튼간에 있는 놈들이 더해요.”

“아! 형!”

필승 형은 정말 순식간에 태세 전환하여 창섭 형의 뒤통수를 때리며 그를 나무랐다.

“해서야. 내 의견 아니었다? 이거 다 창섭이가 하자고 한 거야.”

“헐. 형이 먼저 꼬셔놓...”

“여튼. 해서야. 창섭이는 내가 책임지고 교육시켜둘테니까. 아름씨한테 말 좀 잘 해줘. 알겠지?”

“하하... 네...”

난 아름이 주변에 예쁜 언니들 많다고만 했을 뿐 어떻게 해드리겠다는 말은 안했는데. 여튼 참 소란스러운 형들이야.

그렇게 필승 형이 창섭 형을 끌고 나간 뒤 텅 빈 선수 대기실.

체육관 사람들은 짐을 정리해 차에 옮겨둔다고 자리를 떠났다.

-아름 : 챔피언 축하해! 완전 최고였어!

-아름 : 시합 끝나고 정리하는데 얼마나 걸려?

-아름 : 아직 폰 못 보나?

-아름 : 나 체육관 앞 카페테리아에서 기다릴게!

-아름 : 오래 걸리는구나. 괜찮아! 천천히 와!(당찬 토끼 이모티콘)

시합이 끝나고 부모님부터 준현이와 재현이 기태. 유나 등 많은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지만 내 눈에는 아름이의 톡 밖에 보지일 않았다. 어무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해서 : 이제 끝났어. 쏘리. 바로 갈게!

나는 안 코치님과 필승 형에게 이야기를 해두고는 제대로 씻지도 않고 한달음에 카페테리아로 뛰어갔다.

씻는 거야 뭐. 숙소 가서 씻으면 되니까. 흐흐흐.

*

-아시아 최초의 중량급 챔피언 강해서! 미들급을 넘어 라이트 헤비급까지 제패하다!

-라이트 헤비급 제패! 아시아 최초 WFC 2개 체급 석권! 중량급에서도 빛나는 한국의 재능!

-갓해서! 그의 연인은? 여신 손아름? 신계의 만남!

-강해서와 손아름의 열애! 언제부터일까? 그들의 달달한 러브스토리!

-복싱 동양챔피언 조던 리. ‘강해서? 그는 그저 싸움꾼일 뿐이다. 사각링 안에 그가 설 곳은 없다.’ 발언

-WFC 웰터급 챔피언 최두호. 첫 방어전 일정 조율 중?

-전 웰터급 챔피언 학센. 체급을 올려 미들급 탑 컨텐더가 되기까지.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을 거머쥔 강해서. 그의 앞으로 행보는?

-WFC 283 시합 그 이후. USADA의 시합중 도핑테스트를 받은 강해서. 그 결과는?

-강해서 Vs. 브라이언. 드디어 성사되는 꿈의 매치? WFC Vs. 브로일러. 과연 최강은 누구일까?

-WFC 텔론 회장의 불편한 심기? 조만간 폭탄 발언이 있을 예정?

┕와. 가슴이 웅장해진다 증말. 한국인이 중량급 챔피언을. 그것도 미들급 라헤급 두 체급을 동시 석권하는 걸 내 눈으로 볼 줄이야.

┕진짜. PPV고 나발이고 이건 실시간으로 못보면 뭔가 시대에 낙오되는 느낌이라 의무적으로 사봤음

┕강해서는 진짜 ㅈㄴ 난놈이야. 몸부터 탈 아시안급 피지컬임 ㅋㅋㅋ 스트릿 FC에 살크업으로 라이트헤비급 헤비급 나오는 애새끼들이랑은 차원이 다름

┕근데 이번 도핑 테스트. 괜찮겠지?

┕솔찌 격투기 선수들 중에 약 안하는 놈이 어디있냐? 재수없으면 걸릴수도 있다고 봄

┕텔론 회장 심기가 불편하다고. 며칠 안에 폭탄발언 한다고 하던데. 설마 강해서 이야기는 아니겠지?

┕킹리적 갓심 인정. 약물 안쓰고 저렇게 잘 칠수가 없지. 그리고 미첼전이랑 이번 헨더슨 전이랑 기량차이가 너무 남. 나도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약빤거 맞을 것 같음

┕그럼 어케 되는거야? 타이틀 몰수당하나?

┕경기 출전정지먹고. 이번 시합은 패배처리될거고. 그러면 ㅅㅂ 손아름만 불쌍하게 되는거지

┕근데 강해서 정도면 손아름이랑 사겨도 괜찮지 않음?

┕갓해서! 갓해서!

┕죽창! 죽창을 들어라! 어디서 근육밖에 없는게 우리 손아름님을!!! ㅠㅠㅠ

┕근데 진짜 걱정되네. 별 일 없겠지?

인터넷에서는 강해서의 2개 체급 제패에 관한 이야기와 손아름과의 열애 이야기. 그리고 도핑관련 이야기들로 한창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자칭 전문가라고 떠들어대는 네티즌들의 뜨거운 갑론을박이 오가는가운데 터진 기사.

-WFC회장 텔론. 입을 열다. ‘헨더슨은 거짓말쟁이. 지난 TWF31의 영상이 입수되었다. 그에겐 1년의 출전정지 처분이 기다리고 있을 것?’

-USADA 공식 입장. 강해서의 도핑 정황은 없으나 높은 헤모글로빈 수치로 또 다른 편법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

뜨겁던 격투 커뮤니티에 좋은 땔감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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