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21화 (121/203)

< 121화_Vs.헨더슨 >

1.

-TWF 31 파이널 매치! 헤비급 우승자는 알레이즈 선수입니다!

TWF 시즌이 끝나고 개최되는 동명의 이벤트 매치.

이번 시즌의 우승자는 알레이즈와 가마쉬로 모두 팀 강해서 소속의 선수들이었다.

-삑

싸늘히 굳은 얼굴로 텔레비전을 꺼버리는 헨더슨.

-꿀꺽. 꿀꺽.

리게인을 위한 보충음료를 꽤나 거칠게 마셔댄 그는 오늘 있었던 계체 이벤트에서의 일을 곱씹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헨더슨은 사람들 앞에서 감정조절을 잘 하고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그 자신의 프라이드는 상당히 높은 선수였다.

누군가에게 조롱을 받거나 무시를 당하면 쿨하고 센스 있게 상황을 모면하는 편이지만 속으로는 절대 그 일을 잊는 법이 없었다.

-꾸욱. 꾸욱.

그리고 텔론.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자신과 강해서에게 경고 혹은 조건을 던진 그의 마지막 말에 헨더슨은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이번 시합에서 패배한다면 자신의 커리어가 무너지는 것은 둘째 치고 파이터로서의 목숨까지 간당해질 판이었다.

단순히 타이틀 방어전에서 한번 패배하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고 리벤지 매치를 통해 얼마든지 벨트를 다시 찾아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TWF에서 코치로 참가했던 자신이 상대방 도전자들에게 악의적인 행위를 하려 한 사실이 탄로 난다면? 단순히 타이틀을 빼앗기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게 불보듯 뻔했다.

다행히 텔론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 정확히 아는 사업가였고, 그 이유 하나로 헨더슨은 아직 실낱같은 생명 줄을 잡고 있었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방어전에서 반드시 강해서를 잡아내야했고 자신의 쓸모 가치를 텔론 에게 입증해야했다.

“...빌리. 다 그 자식 때문이야.”

랭킹에도 들지 못했던 놈을 코치로 데려다 방송에까지 출연시켜줬다. 강해서에게 유감이 많다기에 그에게 한방 먹여줄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자신의 뒤통수를 칠 줄이야.

TWF 촬영당시를 떠올려보면 핸콕도 그렇고 빌리도 그렇고. 자신의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우선 핸콕은 브라이언과의 스파링에서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음에도 상대방의 선처로 인해 하차하지 않았고 이후 도전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챙기며 이미지 반전을 꾀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헨더슨이 바랐던 팀 헨더슨과 팀 강해서의 반목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브라이언은 강했고 또 정의로웠으니까.

두 번째로는 빌리. 분명 알레이즈와 가마쉬가 제대로 된 시합을 치르지 못하도록 그들의 도시락에 약을 넣으라고 빌리에게 지시했었는데 결국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시합에 임했고 팀 헨더슨은 전패라는 오명을 써야만 했다.

거기서 그치기만 했다면 또 다행일 텐데 빌리라는 놈은 하필이면 TWF31의 마지막 시합 직전에 자신의 녹취파일이라며 그와의 대화내용을 언론에 공개해버렸다.

“뻐깅.”

한창 시합에 집중해야 할 타이밍에 바깥으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강해서가 호락호락한 상대인 것도 아니었다.

베스트 컨디션에서 붙어도 승부를 감당할 수 없는 강한 도전자. 그런데 자신은 시합에 집중할 수 없었고, 심지어 패배하게 된다면 격투기 선수로서의 모든 게 날아갈 판국까지 와버렸다.

-뿌드득.

“그렇게 바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주지.”

강하게 이를 악다물며 스스로에게 약속하듯이 나직하게 씹어뱉는 다짐.

내일 있을 시합에서. 말 그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하겠다는 그의 집념어린 한마디였다.

*

계체량을 마치고 시합까지의 약 24시간.

이 시간이 어떻게 보면 선수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감량으로 망가진 컨디션을 되돌리고 체중을 리바운딩하며 경기 시작 시간에 맞춰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루틴이 필요한 순간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수면양. 깨어나서 시합직전까지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준비시간까지. 분단위로 리게인을 위한 보충음료를 챙겨가면서 혹시나 몸이나 컨디션에 문제가 없는지 끊임없이 체크하고 문제점을 고쳐나가야 하는 했다.

“컨디션 어떠냐?”

“MMA 뛰면서 오늘보다 좋았던 날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WFC 283 시합을 눈앞에 두고 있는 난 나름 성공적인 루틴을 소화해내며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슬슬 준비하자.”

“넵!”

WFC 283 시합은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모바일 T 아레나에서 개최되었는데 숙소에서 정말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였기에 시합 직전까지 최대한 편하게 휴식을 취하다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지난 6월 달부터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냈기 때문에 현지 시차적응이랄 것도 없었고, 또 감량도 미들급에 비하면 천국이라 생각될 정도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컨디션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쉭. 쉬쉭.

아레나 선수 대기실.

시합 전까지 적당한 열기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시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풀어주고 있었다.

-쾅!

“해서야!”

그때 대기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오는 창섭 형.

거. 참. 선수 놀라서 심장마비 오면 어쩌려고 그렇게 문을 쾅 열고 들어오시나.

“무슨 일 있어요?”

“... 후.”

급하게 달려올 땐 언제고 무슨 일 있냐니 대답이 없는 창섭 형.

“그. 우사다 쪽 사람이 계속 우리 쪽을 어슬렁거리더라고.”

“우사다요?”

우사다면 U.S. Anti-Doping Agency을 말 하는 약자 아닌가?

말 그대로 미국 반도핑기구.

예전에 브로일러에서 활동할 때 경기기간 외 도핑 테스트를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한국 반도핑기구를 통해 꽤나 수치스러운 도핑 테스트를 받았었지.

“WFC 들어오고 나서 불시 검사 한 번도 안받았다 했더니. 오늘이 날인가보네요.”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빡!

대기실 입구에서 걱정어린 표정으로 말을 잇던 창섭 형은 필승 형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인마. 뭐 좋은 일이라고 그걸 시합 전 선수한테 쪼르르 가서 말 하냐?”

“아니. 그래도...”

“괜히 우사다에서 경기기간 중 불시 테스트를 시합 직후에 하는 게 아니야. 도핑을 안했어도 테스트 자체가 스트레스를 줄 수 있어서 경기에 지장을 받는 선수들이 있다고.”

USADA에서 진행하는 도핑 테스트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경기기간 외 도핑테스트라고 예전에 내가 받은 바 있는 불시 테스트였다. 랜덤으로 불시에 테스트하기 때문에 시합 일정이 없는 선수라도 언제든지 도핑 테스트에 당할 수 있는 검사였다.

두 번째가 지금 형들이 이야기하는 경기기간 중 도핑테스트였다. 경기기간중이라고는 하지만 시합이 끝난 직후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도핑 테스트였는데, 이때의 검사 결과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다면 경기에서 승리했더라도 몰수 패를 당하게 된다.

두 가지 종류의 테스트 모두 정확한 가이드 없이 불시에 랜덤으로 진행되는데, 최근 경기력이 지나치게 향상되었다던 지 도핑이 의심되는 선수라면 높은 확률로 도핑 테스트에 뽑히기도 했다.

나는 WFC로 이적한 뒤 운 좋게도 경기기간 중 도핑 테스트를 받은 적이 없었는데 어쩌면 오늘 그 첫 테스트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지난 복싱 시합도 있고해서. 그래서 왔나보죠 뭐.”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미들급 타이틀전인 미첼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과 블레이크와의 복싱 이벤트매치에서 보여준 경기력의 갭 차이. 그걸로 인터넷에서는 내가 약물을 썼네 마네 하는 글들이 한창 올라왔던 적이 있었다.

설상가상 WFC에 이적한 뒤 단 한 번의 약물 검사도 없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고는 일각에서는 나에게 무조건 약물했을거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기회에 그냥 싹 털어버리면 되죠 뭐. 도핑 테스트 명단에 내 이름 있으면 좋겠네요. 차라리.”

“... 너도 어지간히 미친놈이다.”

“하하하. 소변보는 거 누가 본다고 문제 생기는 것도 아닌데요 뭐. 아. 물이나 좀 마셔둘까.”

질렸다는 표정의 필승 형을 뒤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물을 한컵 싹 비워냈다.

“어휴. 됐다. 그보다 준비해라. 이제 곧 메인 매치야.”

“넵!”

도핑테스트고 뭐고. 일단 중요한 건 시합이었다.

데릭 헨더슨. 그의 허리에서 벨트를 뺏어올 시간이었다.

2.

“강해서 선수! 특유의 입장곡과 함께 모바일 T 아레나 체육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네. 강해서 선수. 확실히 미들급 때보다는 체구가 커졌다.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지난 복싱 이벤트 매치 때보다는 조금 작아진 것 같은데요?”

“복싱 이벤트 매치 때는 무제한 급이었고. 또 제대로 몸을 만들지 않고 진행된 말 그대로 이벤트 매치였죠. 오늘 강해서 선수는 복싱 매치 때보다는 체구가 조금 슬림해졌지만 전체적으로 몸을 제대로 만들어 나왔다는 느낌을 줍니다. 사실 저런 피지컬이 국내에서는 나오기 어렵거든요.”

한국에도 스트릿 FC를 비롯한 격투기 단체들이 존재했고 그 외에도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국가 혹은 유럽 쪽에서 활약하는 격투기 선수들이 다수 존재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당연히 라이트 헤비급이나 헤비급에서 활동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체중을 맞추기 위해 올록볼록하거나 둥근 체형의 살집 있는 몸매를 가졌다면, 강해서는 말 그대로 군살 하나 없이 근육질로만 이루어진 몸매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맞습니다. 어제 계체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시청했는데 강해서 선수의 몸은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에 비해서도 부족하지 않더라구요.”

“그거는 말이 조금 이상합니다. 강해서 선수는 이미 세계 최정상급 선수에요. 다른 선수들이 강해서 선수와 비교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종합격투기에서는 강해서 선수보다 위에 올려둘만한 선수가 이제는 없습니다. 전 체급을 통틀어서요.”

스포츠온 TV의 캐스터와 김국현 해설위원은 이제 대놓고 강해서를 칭찬하며 그의 대단함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강해서 선수의 대전 상대. 데릭 헨더슨 선수죠? 전설적이었던 W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오코너를 물리치고 왕좌에 앉아 지금까지 장기집권중인 강자중의 강자죠.”

“맞습니다 .데릭 핸더슨 선수는 특히 발을 잘 쓰는 선수인데요. 날카로운 펀치와 긴 다리에서 뻗어 나오는 킥 견제가 상당히 까다로운 선수입니다. 그리고 예상외로 베이스가 레슬링이에요. 타격을 피해 안으로 파고들면 그거야 말로 데릭 헨더슨 선수가 원하는 그림이 되는 겁니다.”

두 사람은 강해서에 이어 헨더슨에 관한 정보도 설명하며 시청자들에게 경기 관람에 대한 팁을 선사했지만, 정작 시청자들은 그런 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전패의 코치 데릭헨더슨 아닌갘ㅋㅋㅋㅋ

┕헨더슨 좋아했었는데 이번 TWF보고 완전 실뮁함ㅋㅋㅋㅋ

┕갓해서! 외쳐 갓!!!

┕갓!!!

┕코치도 잘보고. 시합도 잘 하고. 해서 오빠 너무 다 가진거 아니냐ㅠㅠㅠ

┕모든 걸 다 가진 강해서도 김해 김 씨 충렬공파 독녀 나 김현서는 가지지 못했지

┕ㅁㄹ

┕근데 강해서 연애는 못하는 거 보니 연애고자인거 아님?

┕해서 오빠는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거구^^ 넌 못하는 거구 ^^

┕헨더슨 쟤는 그거 어떻게 됨? 빌리랑 진실 공방 하는 거?

┕아직 결판 안남ㅋㅋㅋㅋ 근데 어제 계체량에서 강해서가 인터뷰 하는 거 보니 헨더슨이 뭔가 하긴 한 듯ㅋㅋㅋㅋㅋ

┕솔직히 그런 쓰레기짓 하는 인성이면 WFC 차원에서 뭔가 징계같은거 줘야하는 거 아님?

┕증거가 없잖아 ㅋㅋㅋ 증거가 있어도 돈 잘 벌어주는 챔피언이면 징계주기 애매하고 ㅋㅋㅋ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헨더슨과 빌리의 진실공방전. 그에 대한 이야기로 한창 뜨거운 채팅창이었다.

“시청자 여러분. 말씀드리는 동안 두 선수 케이지 안으로 입장했습니다!”

“이제 곧 WFC 283.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전이 시작됩니다. 시청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케이지 중앙에서 강해서와 데릭 헨더슨이 글러브를 터치하며 시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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