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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대격투천재의 탄생-118화 (118/203)

< 118화_빌리 >

-쾅! 쾅, 쾅!

“후우. 후우.”

최두호와 강해서가 한창 공항으로 향하고 있던 시각.

오랜만의 휴일을 맞이해 모두가 떠난 체육관에 빌리만이 홀로남아 샌드백을 두드리고 있었다.

“뭐야. 아직도 그러고 있었냐?”

그때 체육관 2층에서 내려오는 핸콕.

“너도 참. 적당히 해라.”

“이제 와서 웬 참견이지?”

빌리와 핸콕의 사이는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었다.

핸콕은 TWF에 참여한 뒤 쭈욱 헨더슨과 가까이 지내며 그의 수족 노릇을 해오다시피 했었고 빌리는 팀 헨더슨의 도전자들을 케어하는 포지션에 있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헨더슨과 핸콕은 언제나 빌리를 부려먹거나 자신들보다 밑 사람을 대하는 듯 한 태도를 견지해왔었다.

“그래. 내가 이제 와서 참견 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 하던 거 마저 해라. 그렇게 해서 분이 풀린다면.”

“...너는 아무렇지도 않나?”

빌리는 자리를 떠나려는 핸콕에게 망설이다 한 가지 물음을 던졌다.

“이제는 미스터 강에게. 그의 팀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 같군.”

TWF 초반만 하더라도 헨더슨과 죽이 잘 맞았던 핸콕. 강해서와 그의 팀에 어떻게든 피해를 주며 자신을 어필하려 했던 핸콕이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TWF의 도전자들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심지어 헨더슨과는 무슨 일인지 사이가 틀어진 듯도 했다.

“브라이언에게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했는데 감정이라니. 이봐.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야. 파이터지. 내가 원했던 건 타이틀 샷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물 건너 간 상황이고 나는 내게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됐어.”

“...”

“그러면 주변이 아니라 내게 부족한 부분부터 신경을 써야지. 웃긴 말이지만 난 지금 이대로는 죽었다 깨나도 브라이언을 못이길 것 같거든.”

타이틀 샷이나 강해서 이전에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찾았으니 그것부터 극복해야한다는 핸콕.

“브라이언은 어차피 브로일러 선수인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거지?”

“... 넌 정말 헨더슨에게 신뢰받지 못하는구나. 일은 너 혼자 다 하면서.”

“그게 무슨 소리지?”

“그건 헨더슨에게 직접 들어봐. 그가 우리의 책임자잖아?”

자신만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에 빌리는 가뜩이나 좋지 않던 감정이 더욱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너희들이 날 이용하는 건 알아. 그럼에도 이렇게 참고 있었던 건 그래도 뱉은 말은 지킬 거라는 생각에서다. 더 이상 날 자극하지 않는게 좋아.”

“이봐. 넌 아직 문지기도 넘지 못한 라이트헤비급 듣보잡 파이터. 나는 랭킹 1위. 헨더슨은 챔피언이지. 그런 협박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거야?”

“...”

“그리고 이건 정말 진심에서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너한테 피해를 주고 있는 게 누구인지. 그 가해자가 누구인지. 한번 잘 생각해봐.”

“...뭐라고?”

“미스터 강은 네 형인 클락에게 피해를 줬지만 너랑은 엮인 게 전혀 없지. 오히려 지금의 널 괴롭히고 있는 건 헨더슨 아닌가?”

“...”

빌리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형과 강해서에 눈이 멀어 있는 자신을 이용하고 조종하는 헨더슨의 행태를 자신이 ‘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저 ‘저항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을 뿐이었다.

“모르겠다. 클락은 어쨌든 잘못이라도 했다지만. 넌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당하고 있냐?”

“...”

“난 간다. 주말 잘 보내라.”

화두만 던져두고 체육관을 떠나는 핸콕.

텅 빈 체육관에 정말 혼자가 된 빌리는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다. 그 뜨거운 열기가 모두 식을 때 까지.

*

“미스터 강?”

... 얘가 왜 여기 있어?

게다가 왜 갑자기 아는 척이야?

“어. 빌리. 반가워.”

그리 반갑거나 유쾌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일단 가볍게 손을 내밀며 인사정도는 건넸다.

그의 형이 지난번 라스베이거스에서 길거리 폭행으로 구속된 클락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사실 조금은 부담스럽고 불편한 상황이었다.

“...”

-꽈악.

별다른 대답 없이 내밀어진 손을 꽉 잡는 빌리.

근데 악수 하는 손에 힘이 좀 많이 들어간 것 같다?

“끄흡.”

“흡.”

빌리가 악력을 높이는 만큼 나도 손아귀에 힘을 실었고 결국 빌리가 먼저 항복하듯 손을 빼고 말았다.

“저녁 먹으러 가던 길인가 봐? 난 일이 있어서 그럼.”

아름이와 함께 있는 자리였기에 혹시라도 트러블이 생기지 않게 빠른 안녕을 고했다.

“...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없나?”

그런데 질척거리며 들러붙는 빌리 놈.

“미안한데. 선약이 있어서 말이야. 그치 아름아?”

“어... 레이첼이 아까 전부터 기다리고 있긴 해.”

“들었지?”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 아가씨는 세계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시간이 비싼 아가씨란다. 그러니 괜히 앞 좀 막지 말고 좀 비켜주련?

“... 형과 관련 된 이야기다. 나중이라도 시간이 되면...”

“아름아! 해서 씨!”

빌리의 말을 끊고 들리는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

사복 경호원을 대동하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레이첼이 보였다.

“레이첼!”

아름이는 레이첼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마침 빌리와 마주친 곳이 레이첼과 만나기로 약속된 장소 근처였는데 어떻게 레이첼이 우리를 발견하고 마중을 나온 모양이었다.

“...”

뒤를 돌아 레이첼을 보고 난 뒤 굳어버린 빌리.

설마 한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클리셰는 제발 사양이야. 빌리.

**

“...죄송합니다.”

자리를 옮겨서 레이첼과 만나기로 했던 공간.

어디 커피숍이나 식당 같은 게 아닌 레이첼의 가문이 보유한 건물에 있는 아늑한 룸이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리고 레이첼 앞에서 고개를 박고 있는 빌리.

아까 빌리가 레이첼을 보고 굳어있길래 혹시 첫눈에 반하는 그런 막장 스토리가 전개되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빌리 씨가 한 잘못이 아니잖아요.”

“아닙니다. 언젠가 한번은 찾아뵙고 사과드리고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빌리는 지난번 클락의 길거리 폭행 사건 때 레이첼을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고 했다.

클락이 실질적으로 폭행을 자행했던 행인은 모두 둘. 맨바닥에 꽂아버린 남자들이었다.

멜린가의 변호사들이 출동하고 클락은 현장에서 체포되며 일단락되는 듯 보였던 사건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잡한 내용들이 많았던 듯 했다.

“다쳤던 두 사람도 지금은 건강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레이첼은 클락을 향한 소송을 진행하지 않았고, 그의 사정을 알게 된 후 오히려 피해자인 두 남성에 대한 합의 부분까지 챙겨줬다는 것이다.

“미스터 강. 네가 설마 이분과 아는 사이였을 줄이야. 그래서 클락이...”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그때 당시에는 나와 레이첼은 전혀 모르는 사이가 맞았다. 내가 레이첼과 사적인 친분이 있어서 사건에 휘말린 건 아니었다.

“깊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요. 식사는 하셨어요?”

“아. 아닙니다. 오해라뇨. 제가 그냥 조금. 식사는 숙소에 가서 하면 됩니다.”

레이첼은 무슨 일인지는 깊게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저 덮어두자는 식으로 말을 돌렸고 빌리는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오신 김에 같이 식사나 하시지 그래요? 해서 씨. 아름아. 두 사람만 괜찮다면?”

혼자서 횡설수설 하는 빌리에게 오해가 풀렸든 어쨌든 나는 개인적으로 아직도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우리를 초대한 레이첼이 권한다면 딱히 거절할 생각도 없었다.

“...아닙니다. 이 이상 폐를 끼칠 순 없어요. 저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레이첼의 권유는 더 이상 듣지도 않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허리를 굽히는 빌리.

TWF에서 항상 무언가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샌드백만 두드리던 빌리가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참 의외라는 감정이 앞섰지만 굳이 그를 말려 자리에 앉힐 생각 또한 없었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미스터 강. 조만간... 이야기 좀 하지.”

아까 전보다는 훨씬 누그러진 표정으로 한마디를 남기고는 사라진 빌리.

뭔가 태풍까진 아니고 돌풍정도가 지나간 느낌이었다.

“후후. 이거. 저녁이 너무 늦어졌네요. 일단 식사부터 할까요?”

빌 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시작된 우리 셋의 디너타임.

한 여름 라스베이거스의 밤은 길었고,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서로가 모르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밤을 함께 했다.

2.

-팀 헨더슨 탈락자 6명.

-팀 강해서 탈락자 2명.

총 16명의 도전자 중 살아남은 인원은 8명이었다.

그나마 팀 강해서에서 나온 탈락자는 팀 헨더슨과의 경기가 아닌 같은 팀 도전자들끼리의 시합에서 패배해 탈락했으니 ‘팀 강해서 Vs. 팀 헨더슨’ 의 대결에서는 강해서 팀의 일방적인 승리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쾅!

보기 드물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헨더슨.

“라이트 헤비급 하나. 헤비급 하나. 우리 팀에 살아남은 전력은 이게 다다. 너희 둘까지 탈락하면 이번 TWF는 역태 최악의 팀을 탄생시킨 시즌이 되겠지.”

파이널 매치에 올라가는 건 라이트 헤비급 2명. 헤비급 2명. 총 4명이었다.

한마디로 TWF 31 시즌의 마지막까지 체급별 단 한 번의 시합만이 남아있다는 말이었다.

“빌리!”

“어.”

“전력 분석은? 얘들 훈련은 어때?”

헨더슨은 12월 달에 있을 자신의 타이틀 방어전을 준비하느라 도전자들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팀 헨더슨을 챙긴 건 그의 체육관 코치들과 빌리였다.

“메인 코치가 그 정도는 파악해둬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그걸 파악하려고 너한테 물어보잖아.”

“... 여기 있다.”

어느새 감정을 추슬렀는지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온 헨더슨.

빌리는 헨더슨의 저런 모습이 정말 무서운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흐음...”

헨더슨은 빌리가 건네준 도전자들의 훈련 기록 데이터와 전력 분석 데이터들을 훑으며 고민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애매하네.”

지금까지 팀 강해서와 6번의 시합.

이족이 유리하거나 혹은 비등할거라 생각했던 경기도 막상 시합에 들어가면 말도 안 되게 뒤집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그 이면에는 강해서의 현장 코칭이 있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헨더슨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했다.

“다들 가서 개인 훈련 하고 있어.”

“네!”

전력 분석 데이터를 보다가 도전자들을 모두 돌려보낸 헨더슨.

“빌리. 넌 잠시만.”

그리고는 촬영 팀도 카메라도 없는 방으로 빌리를 데리고 들어갔다.

“...빌리.”

“말해.”

“내가 말 했지? 네게도 기회를 주겠다고.”

“...”

“미스터 강에게. 한방 먹이고 싶지 않아?”

“... 계속 말해봐.”

혹시라도 바깥으로 들릴까 싶어 더욱 목소리를 낮추는 헨더슨과. 그런 헨더슨을 표정 없이 바라보는 빌리.

“미스터 강에게 한방 먹일 수 있는 방법. 내가 알려줄게.”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너. 도전자들 숙소에 자주 들락거리지?”

“... 아무래도 내가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케어하고 있으니까.”

애초에 헨더슨이 빌리에게 맡겼던 포지션이었다.

다른 코치들은 촬영이 끝나면 모두 휴식시간을 가지는데 빌리는 훈련 이후에도 TWF 하우스에서 도전자들을 케어하거나 추가 훈련을 도와주는 등 잔업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었다.

“다음 시합. 그 전에 네가 꼭 해줘야 할 게 있어.”

그리고 헨더슨은 그런 빌리의 포지션을 이용해 다음 시합. 나아가서는 자신의 타이틀전까지 흔들 수 있는 일을 획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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