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15화 (115/203)

< 115화_목표 >

1.

“첫 시합의 승자는 팀 강해서의 도널드!”

텔론의 첫 시합 승자확정 선언 후 우리 팀 도전자들은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을 표출했다.

“코치님. 정말 고맙습니다.”

까만 피부이기에 흰 눈동자가 더욱 돋보이는 도널드가 아직도 승리에 대한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 얼른 정리하고 가봐. 인터뷰 기다린다.”

“네!”

TWF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는 해도 TV쇼라는 특성상 훈련 중이나 시합 전후로도 제작진의 호출에 인터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진짜 될 줄이야.”

“그러게요.”

필승 형과 창섭 형은 도널드의 승리가. 정확히는 승리의 과정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제가 된다고 했잖아요.”

지난 훈련 중에 도널드는 전반적인 MMA 수련과 함께 레그킥에 대비한 훈련에 집중했었다.

마브릭의 킥이 오른쪽에서 날아오든 왼쪽에서 날아오든 즉각적으로 반응한 뒤 바로 달려들어 그의 턱을 노릴 수 있는 훈련을.

그리고 그 훈련의 성과는 오늘 분명히 빛을 발했다.

“네 지시가 있어서야. 마브릭의 킥이 닿기도 전에 해서 네 콜이 떨어졌기 때문에 완벽한 타이밍에 도널드가 마브릭의 턱을 노릴 수 있었어.”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마브릭이 킥을 날릴 거라는 걸?”

승부를 가른 타이밍 싸움에서 이긴 비결을 알려달라는 필승 형과 창섭 형.

이건 비결이 아니라 피지컬적인 부분이라 어떻게 알려줄 수가 없네.

“난 텔론한테 좀 다녀올게”

“오케이.”

첫 시합의 결과가 나오며 제작진들은 인터뷰를 따며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나는 텔론과 따로 독대의 시간을 가졌다.

“오스만이?”

“네.”

텔론은 독대를 신청한 용건을 듣자 대뜸 오스만 회장을 언급했다.

“그놈 머리에서 나오진 않았을 테고. 미스터 강. 자네 생각인가?”

“뭐. 그렇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나는 복싱 이벤트 매치의 경험으로 타 단체와의 이벤트 매치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깨달았다.

“... 그건 쉽게 답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야.”

“텔론도 이번 스파링이 TWF의 시청률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지 알잖아요?”

“알지. 중요한 건 TWF는 도전자들의 무대이지 자네들의 무대가 아니야. 파이터들의 무대는 경기장이지.”

흠. 의외로 텔론이 TWF에는 까다로운 편이란 말이지.

“텔론. 저 또한 격투기 관련 TV쇼 출신이에요.”

“...”

“그래서. 저. 지금 많이 참고 있어요. 텔론의 말마따나 도전자들 때문이죠.”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에 참가했을 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참가자가 아닌 단체와 코치. 제작진 위주로 돌아가는 현장 분위기였다.

참가자들은 그저 도구나 부속품이라는 느낌으로 스트릿 FC와 스트리트 파이트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 굴러가는 시스템.

그게 싫었기 때문에 TWF에 코치로 참가한 뒤에는 최대한 분란과 트러블을 피하며 참가자들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애쓰고 있었다.

“...끙. 하지만 미스터 강. 자네 말대로 TWF의 시청률로 인해 브라이언이 얻는 것 또한 생각해야 해.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TWF의 시청률이 브로일러의 메인 이벤트보다 높지. 이번 시즌으로 인해 브라이언에 대해 모르던 시청자들도 모두 그의 이름을 알게 될 거야.”

“이건 프라이드의 문제죠. 텔론. 우린 전사잖아요. 텔론이 처음 날 영입할 때 했던 말을 기억해봐요.”

“...”

“누구보다 싸움에 열광하는 격투기 팬이라는 텔론의 그 말. 그 말이 절 움직였어요.”

내가 지금 텔론을 설득하는 내용은 별것 아니었다.

브라이언과 핸콕의 하차를 건 스파링. 앞서도 한번 말했지만 그들은 겨우 이런 TV쇼에서 소비될 선수들이 아니었다.

만약 이렇게 소비가 되어야 한다면 그만큼의 이득이 있어야겠지.

처음 텔론과의 미팅 때는 살짝 격앙된 마음에 스파링에 동의했던 브라이언도 이후 내 설득과 오스만과의 연락 이후 약간의 스탠스 조정을 했다.

“그리고 그 조건이라는 거. 그렇게 나쁠 것도 없잖습니까.”

“끙...”

사실 지금 이 제안은 오스만 또한 그다지 내켜 하지 않은 사항이었다.

“우리 WFC는 창단 이후 단 한 번도 타 단체와 교류를 한 역사가 없어. 그건 알고 있지?”

“그러니까 고여있다는 말을 듣는 겁니다. 한국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죠. 고인 물은 썩는다는.”

“...”

나와 브라이언이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

나와 브라이언의 공식 이벤트 매치.

브라이언의 부상으로 한번 시합이 엎어지고, 이후 브라이언이 브로일러로 이적하며 인연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매치를 성사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그 조건은 브라이언이 핸콕을 이기고, 이후 내가 헨더슨과의 타이틀전에서 승리해 챔피언의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두 단체의 챔피언끼리 붙는 챔피언전.

격투기 커뮤니티에는 언제나 꺼지지 않는 장작이 하나 있었다.

WFC와 브로일러 중 어느 단체가 더 수준이 높냐. 누가 더 쎄냐 라는 원초적인 질문.

단체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선수의 질이 무조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브로일러가 더 강한 체급이 있을 수 있고 WFC가 더 강한 체급이 있을 수 있었다.

단체의 강함이나 단체의 우수성이 단 한 번의 승부로 판가름 나는 건 아니었지만, 명색이 종합격투기 1, 2위 단체이다 보니 두 단체의 챔피언이 맞붙는 꿈의 매치는 언제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골 소재였다.

“오스만. 그 친구가 그걸 수락하던가?”

“어... 절반 이상은요?”

처음 브라이언을 통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오스만은 거의 펄쩍 뛸 만큼 기겁을 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챔피언이란 해당 단체의 자존심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챔피언들끼리의 매치란 이기면 영광되지만 졌을 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오스만이 설득된 부분은 얼마 전 있었던 블레이크와의 이벤트 매치였다.

올해 최대의 빅매치로 아직도 관련 글들이 쏟아지는 이벤트 매치.

단 한 번의 경기로 이 정도 흥행몰이를 할 수 있다면 승패를 떠나 한 번쯤 던져볼 만한 배팅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우리 쪽이 얻을 게 없어.”

“아니죠. 지금 종합격투기는 어떤 의미로 복싱계와의 전쟁 중이잖아요.”

나와 블레이크의 이벤트 매치 이후 종합격투기 선수와 복싱 선수 간의 언쟁은 세계 각지에서 불 번지듯 피어오르고 있었다.

크게는 WFC 소속 탑랭커 MMA 파이터와 복싱 4대 기구 랭커들 간의 설전부터 작게는 중소 MMA 단체의 프로 파이터와 중소 복싱협회 소속의 프로 복서들의 신경전까지.

너튜브나 SNS 등을 보면 지금은 바야흐로 MMA와 복싱계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련 떡밥들이 많이 나돌고 있었다.

“이럴 때 MMA 1위 2위 단체가 이벤트 매치를 통해 교류한다. 이건 의미가 깊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선봉에는 복싱을 눌렀던 제가 있구요.”

“... 그럴듯한 궤변이군. 이벤트 매치가 MMA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늘어난 파이에서 브로일러가 가져가는 부분이 너무 많아. 잠재적인 적의 성장을 도와주는 격이라는 걸 알아야 해.”

확실히 이런 부분을 보면 텔론은 전형적인 사업가였다.

WFC의 성장세가 더디더라도 브로일러의 성장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뉘앙스였으니까.

“... 처음 계약서를 쓸 때. 텔론은 MMA를 미국 4대 스포츠에 더하여 5대 스포츠로 만들고 싶다고 했죠.”

“확실히 그런 말을 한 것 같군.”

“그리고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도 성장 중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텔론. 지금 제 목표가 뭔지 아십니까?”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가득한 텔론.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인 부분보다는 조금은 이상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격투기라는 운동을 접한 이후. 프로에 데뷔하고 브로일러를 거쳐 WFC 챔피언의 자리에 앉기까지.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 없는 다소 허무맹랑할 수도 있는 내 목표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 뭔가?”

“세계 최고.”

“뭐?”

“아니. 조금 더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인류 최강... 일까요.”

“...”

내가 내 입으로 말하고도 조금 낯부끄럽다.

인류 최강이라니.

“말 그대로예요. 사람들은 가십거리로 한 번씩은 이야기하죠. 지구상에 존재하는 전 인류를 싸움 실력으로 한 줄을 세웠을 때. 가장 앞에 누가 설 것인지. 그리고 그 답은 분분할 거예요. 각자가 생각하는 최강의 기준은 다르니까.”

“...”

“제 목표는. 그 질문이 던져졌을 때 고민 없이 가장 먼저 제 이름이 나오는 거예요. MMA뿐만 아니라 복싱이든 레슬링이든 주짓수든. 그 어떤 격투기든. 그 어떤 체급이든. ‘사람 중에는 강해서가 가장 쎄지’라는 평가를 받는 것.”

중간중간 어휘나 단어가 헷갈려 떠듬거리기는 했지만 내 의도는 정확하게 텔론에게 전달된 듯했다.

말하는 나도 귀가 뜨거웠는데, 듣는 텔론 또한 낯간지러웠는지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 같았다.

“하. 하하. 푸하하하하.”

그리고는 한참을 크게 폭소하는 텔론.

“내가 MMA에 몸 받친 지 20년이 지났지만. 이토록 허무맹랑한 소리를 들은 건 지금이 처음이야.”

“...”

“본인 체급의 챔피언이 되겠다는 포부도 아니고. WFC 최강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MMA 최강이 되겠다는 의지도 아닌. 그저 가장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니.”

“하하...”

내 입으로 말한 내용이지만 이렇게 텔론에게서 다시 한번 확인받으니 제정신이 아닌 발언 같았다.

“그런 평가를 받기 위해 거쳐야 할 검증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은 해봤나?”

“어... 음. 뭐. 하하.”

그냥 나보다 강하다고 평가받는 선수들을 하나둘 쓰러뜨리면 되지 않을까.

사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만큼 내 안에서도 막연하게 자리 잡고 있던 추상적인 개념의 목표였다.

텔론을 설득하기 위해 단어로 정립해 말로 내뱉는 순간 신기하게도 내 안에서도 추상적이었던 목표가 구체적이고 또렷해지긴 했지만, 아직 그 방법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좋아. 나는 도전자들을 좋아하지. TWF에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17번째 도전자가 있었어. 허무맹랑한 목표라고는 말했지만 자네는 이미 최소한의 자기 검증을 해낸 선수지.”

“네?”

“내가 말 했었지. 자네의 가치는 커리어에 1패가 생기기 전까지는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분명 첫 계약 때 텔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무패의 챔피언이 하는 말을 내가 어떻게 감히 흘려듣겠나. 좋아. 헨더슨을 이기고 라이트 헤비급의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면. 오스만 그 친구가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선에서 브라이언과의 매치에 최대한 협조적으로 응할 것을 약속하지.”

“...진짜요?”

“당연히 계약서를 쓸 거야. 그건 비즈니스의 기본이니까.”

반쯤. 아니. 어쩌면 십중팔구는 성과를 얻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텔론의 설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

“...진짜야?”

“그러면 거짓말을 하겠어?”

텔론과의 미팅 내용을 서면으로 정리까지 마친 뒤 다시 찾은 체육관.

한창 도전자들과 훈련 중이던 브라이언을 불러 미팅 결과를 공유했더니 그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텔론이? 거짓말 같아.”

“대신 그 조건은 알지? 네가 핸콕을 상대로 승리하고. 나는 헨더슨을 상대로 승리해야 해.”

“그건 알고 있지.”

담담하게 대답하는 브라이언.

사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물고 왔다지만 브라이언을 이런 무대에 세운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꽤나 미안했다.

“무슨 말이야? 너튜브로도 꽤나 전력을 다한 스파링 같은 건 많이 찍어봤어. 아무리 조건이 걸리더라도 스파링은 스파링이지. 시합과는 그 무게가 다르니 걱정 마.”

“... 너 너튜브 해?”

“요즘 너튜브 안 하는 사람도 있나?”

“...”

이 새끼. 고지식한 척은 혼자 다 해놓고 갑자기 너튜브라니.

“난 구독자 10만명이 넘지. 미스터 강 너는 구독자가 몇 명이지?”

“어? 어... 나도 쫌 돼...”

“언제 한번 합동 훈련을 하면서 콜라보 할까? 만약 정말 매치가 이뤄진다면 아주 좋은 콘텐츠가 될 것 같은데?”

“... 다음에. 나중에 한번 생각해보자...”

“채널명이 뭐지? 이참에 구독을 눌러줄게.”

“...”

이 새끼. 일부러 이러는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너튜브 계정을 만들어야 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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