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14화 (114/203)

< 114화_첫 시합 >

1.

“뭐야! 무슨 일이야!”

나는 도전자들에게 각자 자리에서 다시 훈련을 재개할 것을 지시한 후 체육관 입구로 뛰어갔다.

“아. 미스터 강. 미안해.”

팀원들이 마실 음료를 챙긴 숄더백을 어깨에 지고는 난처한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는 브라이언.

하지만 아직도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목과 귓불을 보건대 꽤나 심각하게 흥분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그걸 알아야 나도 대처를 하지.”

조금 전 도전자들에게 했던 말을 여기서 또 하네. 그냥 한 번에 좀 말해주면 안되니?

“... 핸콕 저자식이 오코너를 욕보였어.”

“욕보이다니? 사실을 말 한 거지. 헨더슨에게 타이틀을 뺏기고 다음 시합에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무명 선수에게 KO당한 뒤 브로일러로 도망치듯 넘어간 오코너를 말하는 거라면 내가 틀린 말 한게 없는데 말이야.”

... 뭔가 저 대사. 어제도 들었던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오코너는 훌륭한 선수였어. 그에게서 1라운드 만에 승리를 가져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약한 선수는 아니야. 적어도 핸콕 너보다는 훨씬 수준 높은 파이터지.”

“브라이언 네가 했던 말대로 오코너는 지금이라도 TWF에 참가해야해. 아직 수준이 한참 멀었거든. 아! 물론 도널드에게도 질수 있겠지만 말이야.”

어제 브라이언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핸콕.

브라이언은 얼굴이 붉다 못해 터질 듯했다.

프라이드가 높은 브라이언은 그만큼 상대 선수에 대한 리스펙도 강했다. 특히 오코너에 대해서는 요 며칠 사이 여러 차례 대단한 선수라고 언급할 정도였고.

그런데 핸콕이 오코너를 저렇게 깎아내리자 브라이언이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모욕보다는 주변 사람에 대한 모욕을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었으니까.

“오케이. 알겠어. 브라이언. 일단 팀으로 돌아가 있어. 핸콕. 너도 이제 그만해.”

“오케이. 오케이.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고. 저 친구 혼자 풀악셀을 밟은 거지. 내가 브라이언과 싸워서 이긴다고 브로일러 챔피언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발 크게 뒤로 물러서는 핸콕.

브라이언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거칠게 콧바람을 내뿜었지만 다행히 그 절제력 또한 높아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진 않을 것 같았다.

“...이게 또 무슨 일인가?”

때마침 체육관에 들어서는 텔론 회장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체육관 입구였기에 안쪽에 있는 도전자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직하게 분노하는 텔론.

“이런. 결국 또 부딪친 건가?”

그리고 그런 텔론의 옆에서 빙글빙글 웃고 선 헨더슨.

이거. 왠지 계속 엿을 먹고 있는 기분인데? 입이 아주 달다 달아.

*

“내 분명히 말 했지. 또 다시 트러블이 생기면 즉결로 두 사람을 모두 내치겠다고.”

헨더슨과 핸콕. 그리고 나와 브라이언은 텔론 회장을 따라 체육관 2층의 빈 사무실에 모여 앉아 있었다.

“아직 어제의 일도 어떻게 할지 결정이 안 났는데. 바로 이렇게 트러블을 일으키다니.”

어제와는 달리 꽤나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텔론.

하지만 그 모습에서 ‘텔론이 진짜 화가 났다’ 라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는 화가 날수록 침착해지는 스타일인 듯 했다.

“회장님. 저는 정말 시비를 걸려고 했던 게...”

“닥치게.”

“...”

핸콕은 무어라 변명을 해보려 했지만 텔론의 단호함에 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사람. 모두 본인들 체육관으로 돌아가고 싶나?”

브라이언과 핸콕을 둘러보며 말하는 텔론.

브라이언은 텔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만큼 지금 이 순간이 괴로운 듯 했다.

절대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의 심정이 어떤지는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회장님.”

“... 자네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았어. 헨더슨.”

“죄송합니다. 어쨌든 저는 핸콕의 팀 리더니까요.”

“... 말 해봐.”

마뜩찮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텔론은 헨더슨의 발언권을 인정했다.

“어찌됐든 두 사람은 MMA 파이터입니다. 단체는 다르지만 같은 체급의 선수들이죠. TWF의 도전자들과 똑같습니다. 그들도 같은 체급의, 서로 다른 단체에서 모인 선수들이 TWF의 케이지 안에서 강함을 겨룹니다.”

“그래서?”

“어제는 코치진끼리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지만 오늘은 모든 도전자들이 보는 가운데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어떤 매듭도 없이 그냥 하차한다? 이건 TWF의 정신에 걸맞지 않습니다.”

TWF의 정신이라.

앞선 시즌들에서 텔론이 했던 말이 있었다.

‘모든 분쟁은 케이지 안에서’

TWF이 시즌31까지 진행되는 동안 트러블이 있었던 참가자들이 왜 없었을까.

서로 다른 팀에서. 혹은 같은 팀 내에서도 트러블이 생긴 적은 많았다. 하지만 모든 트러블은 케이지 안에서 해결하라는 게 TWF의 기치였고 그로인해 이벤트 매치나 프로그램이 끝난 뒤 따로 매치가 생긴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TWF를 벗어난다면 브라이언은 다시 브로일러 소속으로. 핸콕은 WFC 소속 선수로 돌아갑니다. 두 사람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길은 없어지겠죠.”

“흐음.”

“그렇다고 너무 거창하게 따로 시합을 여는 것도 웃긴 일입니다. 그냥 가볍게 3분 3라운드. 실전에 가까운 스파링 식으로 두 사람의 트러블을 해결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지는 쪽이 TWF를 떠나는 조건이어야겠지요.”

사실 브라이언과 핸콕 정도의 위치면 어떤 넘버링 매치든 메인카드에 설 수 있었다. 이렇게 프로그램 내 이벤트 매치로 소비될 시합이 아니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군.”

하지만 텔론은 헨더슨의 의견이 꽤나 마음에 든 듯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건 브라이언과 오스만의 입장 또한 들어봐야 합니다. 브라이언 입장에서는 그냥 TWF를 하차하는 게 훨씬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일단 그들의 대화를 끊으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브라이언과 오스만으로 주제를 돌렸다.

“나는... 나는 괜찮아. 오스만도 내가 설득할 수 있어.”

하지만 브라이언 이 좌식이 기껏 환기시킨 분위기에 재를 뿌렸다.

“오! 브라이언도 좋다고 하고. 어때. 핸콕. 도망칠 거야?”

“도망이라니. 그건 브라이언이 브로일러로 이적했을 때나 쓰는 말이라고.”

끝까지 도발을 멈추지 않는 핸콕과 그를 부추기는 헨더슨.

“좋아. 마브릭과 도널드의 첫 시합 이후 두 코치들의 스파링 매치를 하도록 하지. 물론 이건 스파링이지만 판정이든 뭐든 지는 사람은 TWF를 하차하는 거야.”

결국 텔론의 결정이 떨어지고 말았다.

브라이언과 핸콕의 시합이라.

나는 브라이언이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헨더슨의 의도였다.

‘헨더슨은 핸콕이 이길 거라 생각하는 걸까?’

핸콕 또한 WFC 랭킹 1위인만큼 대단한 실력을 가진 선수였다.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고, 종합격투기라는 종목의 특성상 시합의 결과는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으니 그의 승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중요한건 확률의 문제였다.

한 번의 매치에서 핸콕이 브라이언을 이길 수는 있었다.

하지만 만약 10번 100번의 시합을 가진다면 브라이언의 승률이 70프로 이상은 될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만큼 두 사람이 최근 경기에서 보여준 기량의 차이는 확실했으니까.

“뭐? 내 의도?”

텔론과의 미팅이 끝나고 1층 체육관 휴게실에서 헨더슨과의 독대를 가졌다.

브라이언과 핸콕은 스파링 전까지는 서로 대화도 하지 말라는 텔론의 엄포를 듣고는 각자의 팀으로 돌아간 상태.

“그래. 헨더슨 너는 핸콕이 브라이언에게 이길 거라 생각하고 이번 스파링을 밀어부친건가 해서.”

“흐음.”

또 빙글빙글 웃으며 날 쳐다보는 헨더슨.

“그게 왜 중요하지?”

“...뭐?”

“그 둘의 승패를 왜 신경 써야 하냐고. 내가.”

“...”

뭔 개소리야.

네가 추진했고 핸콕은 네 팀 소속의 코치니까 그렇지.

“핸콕은 어쨌든 탑 컨텐더야. TWF가 끝나면 내 목을 노리려 하겠지. 아! 물론 그 전에 미스터 강. 자네와의 방어전이 있지만 말이야.”

브라이언과 핸콕의 승패를 물었더니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헨더슨.

“핸콕이 이긴다면. 뭐. 우리 팀의 사기도 오를 테고 내 체면도 살겠지. 오코너를 이긴 브라이언에 대한 거품도 꺼질 테고 그와 나를 비교하는 인간들도 잠잠해질거야. 어쨌든 나는 오코너도 핸콕도 이긴 사람이니까 말이야.”

“...”

“그리고 브라이언이 이긴다면? 뭐. 그것도 나쁘지 않아. WFC의 탑 컨텐더인 핸콕이 브로일러의 챔피언에게 패배했다? 그걸로 끝이지. TWF에서 하차하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 타이틀 샷을 받기가 힘들어질 거야. 브로일러 챔피언에게 진 선수에게 챔피언의 기회를 줄 사람이 아니거든. 텔론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혼자 큭큭 거리며 말을 내뱉는 헨더슨.

한마디로 브라이언이 이기든 핸콕이 이기든 본인 입장에서는 손해 볼게 없으니 그저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는 말이었다.

“... 긴가민가했는데. 너. 쓰레기구나?”

“오우. 그런 심한 말을 하다니. 아무리 시합이 예정되어 있다지만 매너는 지키자고 친구.”

이 정도는 타격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넘기는 헨더슨.

나는 속으로 이 새끼 사이코 패슨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이언과 핸콕에 신경쓰지 말고. 네 말마따나 너와 시합이 예정되어 있는 건 나니까 이쪽이나 신경 쓰시지?”

“하하. 몰랐어? 이게 다 자네를 신경 써서 특별히 만든 판이라고. 아! 그리고 아직 체스 말이 하나 더 남아 있으니. 천천히 즐겨보자고. 이번 TWF.”

끝까지 제 할 말을 다 하며 쿨 한척 손을 흔들고는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는 헨더슨.

대놓고 막말하는 애들보다 저게 은근히 더 기분 나빴다. 그것도 앞으로 몇 달은 저 꼴을 계속 봐야한다니. 당장이라도 저 여유 만만한 얼굴을 울상으로 만들어주고싶다는 생각이 불쑥 치솟았다.

어떻게 해야 헨더슨에게 한방 먹여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 팀 매치. 전승으로 가주마. 과연 전패를 당하고도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을지 한번 보자고.”

TWF는 인기가 좋은 만큼 격투기 커뮤니티에서는 팀 매치에서의 승패 스코어를 기준으로 최악의 코치와 최고의 코치들을 선정하고는 했는데, 헨더슨이 TWF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최악의 코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2.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스팔트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뜨거운 햇살.

라스베이거스의 6월 중순은 살인적인 더위를 품고 있었다.

“와... 너무 덥다. 오늘 기온이 몇 도라 그랬냐?”

“화씨 105도인가. 섭씨 40도가 넘어간다 그랬어요.”

“미쳤구나. 미쳤어. 어휴.”

차에서 내려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짧은 순간에도 라스베이거스의 열기는 우리의 체력과 수분을 앗아갔다.

“애들 컨디션은 괜찮겠지?”

“아침에 연락해봤는데 문제없다고 했어요.”

오늘은 TWF 첫 시합. 도널드와 마브릭의 매치가 있는 날이었다.

“마브릭에겐 안됐지만. 팀 헨더슨의 코가 납작해지는 건 꼭 보고 싶네.”

나는 딱히 팀원들에게 헨더슨과의 이야기를 알리지는 않았다. 팀원들도 브라이언과 핸콕의 시비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다만 훈련 중 우리 팀 도전자들을 통해 팀 헨더슨의 코치진들이 우리 팀을 꽤나 얕보고 무시한다는 사실들을 들을 수 있었기에 상대팀 자체에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걱정 마요. 어제도 지나가면서 봤는데. 마브릭은 못 고쳤어요.”

주짓수 베이스에 타격도 준수한 마브릭이지만, 말 그대로 타격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타격 전문인 도널드가 방법만 알면 충분히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팀 헨더슨의 마브릭.

-팀 강해서의 도널드.

체육관 중앙에 있는 케이지 앞에 모인 16명의 도전자들.

그중 첫 번째 시합의 선수들인 마브릭과 도널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체중계에 올라 계체를 시행했고, 둘 모두 문제없이 계체를 통과하며 곧이어질 시합을 준비했다.

“내가 말 한 것. 그동안 훈련한 것. 잊지 않았지?”

“넵!”

“시합 도중에도 항상 귀를 열어놔. 내 목소리에 집중해야해.”

“넵!”

“혹시 불리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내 목소리를 찾아. 그러면 승리가 보일 거다.”

“넵!”

지난 며칠간의 훈련으로 도널드의 눈에는 신뢰라는 감정이 엿보였다.

선수로서도 그렇지만 코치로서도 초보인 날 믿고 따라 와준만큼 좋은 결과를 선물하고 싶었다.

-레디. 파이트!

도널드와 마브릭이 케이지 안에서 마주했고, 곧이어 첫 시합이 시작되었다.

‘후우...’

내 시합도 아닌데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건 처음이었다.

-투웅. 투웅.

-스슥.

-휘익

-휘잉!

리치가 긴 마브릭과 상대적으로 짧은 리치의 도널드. 그들의 초반 대치가 아주 천천히. 아주 세세히 눈에 들어왔다.

“도널드! 지금!”

그리고 마브릭이 첫 라이트 킥을 뻗으려고 왼다리 허벅지에 근육이 올라오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도널드에게 콜을 날렸다.

-휘익 퍼억!

도널드는 마브릭의 펀치를 피하면서도 내 목소리를 정확히 캐치했는지 마브릭의 킥을 왼손으로 붙잡고는 비어버린 그의 턱에 정확히 라이트를 꽂아 넣었다.

-쿠웅!

-퍼억! 퍼억!

-스탑! 스탑!

“으아아아아아악!!!!”

심판의 스탑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케이지를 뛰어다니는 도널드.

내가 케이지 안으로 들어서자 날듯이 달려와 날 껴안는다.

아... 얘 땀나서 찝찝한데. 감격스런 순간이니 뭐라 하지를 못하겠다.

어쨌든 팀 강해서 Vs. 팀 헨드릭.

그 첫 시합은 1라운드가 시작 된지 채 얼마 지나지 않아 도널드의 KO 승으로 끝이 났다.

“...”

헨드릭의 똥 씹은 표정이라는 포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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