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_다시 한 번 말해봐 >
1.
“그러니까. 겨우 그런 일로 다투고 있었다는 건가?”
체육관에 들어온 뒤 브라이언과 핸콕의 시비에 대해 전달받은 텔론은 생각보다 많이 언짢아 보였다.
평소 이미지라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오히려 부추길 것 같았는데 의외랄까.
“이봐. 핸콕.”
“...네.”
“그리고. 브라이언.”
“...”
“두 사람 모두. 원래라면 코칭 스텝으로 참여할 수 없을 뻔 한 걸 특벽히 넣어준 것. 알고 있겠지?”
브라이언과 핸콕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나저나. 브라이언이야 WFC에서 퇴출되듯 이적했고 현재 브로일러에서 활약하는 선수니 그렇다 쳐도 핸콕은 왜 참여에 제한이 있었던 거지?
“사정을 봐줘서 코칭스텝으로 참여하게 해줬으면. 맡은 바 일에 집중을 하란 말이야! 코치로서!”
꽤나 진지한 얼굴로 소리치는 텔론.
꽤나 기회주의자 기질에 흥행과 돈이 되는 이슈라면 조금쯤 손가락질 받을 일도 서슴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어쩐 일로 이렇게 화를 내는 건지 궁금했다.
“내가 두 사람을 코칭 스텝으로 받아준 건. 이러니저러니 해도 도전자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였어! WFC 라이트 헤비급 랭킹 1위! 브로일러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단순히 헨더슨에게 부탁을 받아서. 미스터 강과 오스만의 제안에 넘어가서가 아니었다고!”
“...”
“...”
지금 텔론은 꽤나 감정적이게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그 말이 너무 정론이라 딱히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저 도전자들이 어떤 심정으로. 어떤 각오로 이 자리에 섰을지 생각이나 해봤어? TWF는 도전자들을 위한 무대야. 내가 아무리 흥행과 이슈에 목을 매지만 적어도! TWF만큼은 그 모든 걸 제치고 도전자들을 위해 마련한 무대라고! 그리고 그게 내가 TFW는 직접 진행까지 하며 챙기는 이유고!”
속내야 정확히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하는 말 만큼은 너무나 정상적인 발언이라 변명도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수밖에.
“미스터 강!”
“넵.”
“헨더슨”
“네.”
“두 사람은 나 좀 따로 보지.”
브라이언과 핸콕에게 향했던 분노가 결국 우리에게도 불똥 튄 듯 했다.
“... 브라이언과 핸콕. 둘 중 하나는 이번 TWF에서 빠져야겠네.”
텔론을 따라 조용한 장소로 자리를 이동한 뒤 텔론이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였다.
브라이언과 핸콕 둘 중 한명의 하차.
“텔론. 오늘은 첫날이라 조금 트러블이 있었을 뿐이고...”
“그만. 헨더슨. 난 자네가 핸콕을 데리고 온 이유를 모르지 않아.”
“...끙.”
헨더슨은 텔론에게 뭔가 어필해보려 했지만 중간에 커트 당했다.
“이번 일 또한 핸콕이 시발점이 된 문제지. 그래서 액면만 보자면 핸콕이 나가는 게 맞아.”
오늘따라 텔론이 옳은 말을 많이 하네?
“하지만 핸콕은 WFC 파이터지. 우리 식구를 내치고 브로일러의 챔프를 데리고 있을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도 있긴 해.”
앞에 한 생각은 취소다. 역시 텔론은 텔론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납득할 수 있을만한 답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둘 다 내치던지. 아니면 둘 중 하나가 하차하더라도 인정할만한 조건이 있어야겠죠.”
헨더슨은 마치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매끄럽게 말을 이었다.
“오히려 도전자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지 모르죠. 그들은 탈락하더라도 하우스를 떠나지는 않으니까.”
“흐음.”
헨더슨의 말에 고민의 기색이 역력한 텔론.
TWF는 내가 한국에서 참여했던 스트리트 파이트와는 달리 경기에서 패배해 파이널 매치에 출전하지 못한다고 해서 중간에 하차를 하지는 않았다. 부상이나 특별한 결격 사유가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끝까지 팀원으로서 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뭐. 그 방법이야 텔론이 알아서 잘 생각해내겠지만. 예를 들면... 파이터들 끼리 서로 납득할 수 있을만한 조건이 따로 있을까요. 한판 붙는 거지.”
결국 대화는 브라이언과 핸콕이 한판 붙는 방향으로 이끌려갔다.
“브라이언은 WFC 소속도 아닌데 핸콕과의 대결이라니. 그건 조금 아닌 것 같네요.”
나는 헨더슨의 제안에 일단 한발 빼기로 했다.
브라이언의 실력을 못 믿거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WFC보다 규모가 작다지만 브라이언은 브로일러라는 하나의 단체를 대표하는 챔피언이었다. 가벼운 시비 정도로 소비되어도 좋은 선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날 믿고 TWF에 참가해준 브라이언이나 참가를 허락해준 오스만을 생각해보더라도 지금 이 그림은 아니었다.
“WFC 소속으로 싸우라는 게 아니지. 어쨌든 우리는 지금 TWF라는 울타리 안에 있고, 그 안에서 분쟁을 해결하자는 거잖아. TWF의 규칙이 싫고 TWF가 싫으면 브라이언이 떠나야겠지.”
“TWF의 규칙에 언제부터 코치간의 트러블을 경기로 풀었는지 모르겠군요.”
“나야 그런 건 잘 모르지만 말이야. 단 하나는 알고 있지. TWF의 규칙은 단 하나. 텔론의 의지라는 거야. 안 그래요? 텔론?”
마치 자신은 이래도 상관없고 저래도 상관없다는 듯 쿨한 모습으로 할 말을 다 하는 헨더슨.
대놓고 태클을 걸거나 시비를 거는 건 아니었지만 저런 식의 말투와 스탠스는 은근히 신경에 거슬렸다.
“... 그리 쉬운 게 아니야. 흠. 흠. 브라이언은 어찌됐든 그 오코너를 1라운드에 잡아냈으니.”
오코너. WFC 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으로 데릭 헨더슨에게 왕좌를 내준 후 브로일러로 이적해 다시금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사내다.
“오코너는 이미 맛이 갈대로 갔었죠. 나와의 시합이 그의 전성기였습니다.”
“어쨌든. 그리 단순하게 두 사람의 시합으로 끝낼 일은 아니야. 이번 일에 대한 후속 조치는 내 따로 생각해볼 테니 두 사람은 코치들 단속에 조금 더 신경 써주게. 또 이런 일이 있을 경우엔 그 자리에서 바로 두 사람 모두 내칠 테니까.”
헨더슨은 텔론을 조금 더 설득해보려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텔론은 단호하게 판결을 내리고는 자리를 떴다.
“이거. 우리 코치 때문에 괜한 분란을 만든 것 같아 미안하네.”
“하하.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쩝. 그러게. 왜 WFC도 아닌 브로일러 선수를 코치로 데려와서 말이야. 아시안 코치로도 말이 많을 텐데 타 단체. 그것도 WFC에서 퇴출된 놈을 데리고 오다니.”
뒷말은 아주 혼잣말 같으면서도 내게 충분히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이야기 했는데 거기에 대꾸하려하니 이미 헨더슨은 돌아서서 자신의 팀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런 씹...”
미안하면 미안한 거 하나만 하면 안 되나? 미안하다면서 뭔 사족이 저렇게 많아?
*
“헤이. 브로. 어떻게 됐어? 또 텔론이 히스테릭을 부리던가?”
브라이언은 한때 자신의 적수였다가 지금은 업계 동료로서 친분을 키워가는 강해서 에게 조금은 미안한 어조로 물었다.
“아아. 아니야. 일단 텔론이 화가 나긴 했는데 당장 이렇다할 움직임은 없어보여. 다만 앞으로는 저쪽 팀과의 마찰은 조금 주의해줬으면 하는 정도?”
“당연하지. 나도 괜히 분위기를 망치거나 미스터 강 네게 피해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
브라이언은 돌려 말 하는 걸 잘 하지 못하고 대화 속에 다른 뜻을 숨긴 채 말 하는 것을 잘 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타인의 말에 숨은 진의를 파악하는 일에도 서툴렀는데, 사실 이런 부분이 텔론과의 마찰을 일으켰던 시발점이었다.
“그나저나. 브라이언 네가 그렇게 말을 잘 하는 줄 몰랐어. 대단하던데?”
엄지를 치켜세우며 브라이언을 향해 웃어 보이는 강해서.
“응? 내가 그랬나?”
“아까 핸콕에게 쏴댈 때 아주 멋졌다고. 그 정도면 트래쉬 토크도 충분히 잘 하겠던데?”
“글쎄. 난 그냥 사실만 이야기 했던 건데.”
브라이언은 진심으로 핸콕이 실력이 부족해 강해서 에게 타이틀샷을 뺏겼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의 모가지를 비튼다거나 도널드에게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발언 또한 순도 100프로의 진심이었다.
“...어... 그래. 하하. 그래. 그게 네 장점이지.”
브라이언의 등을 팡팡 두드리는 강해서.
“일단. 우리 목표는 첫 시합에서 도널드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거니까. 일단 거기에 집중하자고.”
“오케이. 걱정 말라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마무리 되는 듯 한 브라이언과 핸콕의 신경전.
하지만 그런 브라이언과 강해서를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는 핸콕의 시선을 두 사람 모두 눈치채지 못했다.
2.
-팡! 팡 팡! 뻐엉!
펀치 컴비네이션에 이은 킥.
TWF의 둘째 날부터는 제대로 된 훈련이 시작되었다.
“엉덩이가 너무 빠져 있어. 킥을 찰 때도 허리와 코어를 신경 써야 한다고.”
전반적인 코칭은 팀 피스트의 코치들과 브라이언이 맡아주고 있었고 나는 팀 전체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수정 점을 잡거나 조금 더 키웠으면 하는 장점을 알려주는 식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이봐. 도널드?”
“예.”
“첫 시합이라 부담되나?”
“...”
도널드는 헤비급 치고는 조금 작은 체구인 187의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진 흑인이었다. 프로필 상 마브릭의 키가 198인 걸 생각하면 두 사람의 키 차이는 10센티가 넘게 났고 리치의 차이는 그보다 더 심할 듯 했다.
“도널드. 네가 마브릭에게 이기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 리치의 우위를 가져가지 못하게 내 거리에서 싸워야 합니다.”
“오케이. 정답이야.”
사실 경력만 놓고 보자면 도널드는 20대 초반부터 종합격투기 선수로 뛰었던 베테랑이었다. 이제 겨우 3년차가 된 내가 정답을 알려준다는 식으로 뭔가 코칭을 한다는 게 참 어색한 상황.
“분명 마브릭은 긴 팔다리를 이용해 네 접근을 막고 이득을 보려 할 거야. 중요한 건 도널드 네 베이스가 복싱이라는 거지.”
도널드가 주짓수나 레슬링이 좋았다면 차라리 전략 짜기가 쉬웠을 텐데 그의 파이팅 스타일은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였다. 반면 마브릭은 주짓수가 베이스이면서 타격 또한 준수한 편.
조건만 나열해놓고 봤을 때는 마브릭이 너무나도 유리한 상황이었고, 그걸 도널드와 나머지 팀원들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죽지 마. 나는 개인적으로 어정쩡한 포지션 보다는 하나에 특화되어 있는 파이터의 강점을 좋게 생각하니까.”
“고맙습니다.”
“그리고. 마브릭에게도 약점은 있거든. 그리고 그걸 공략하는 방법을 이제부터 네게 알려줄 거야.”
“...네.”
음. 영 반응이 시원찮네.
-스윽.
도널드와의 대화가 잠시 끊긴 타이밍에 팀 강해서의 도전자들을 한번 쓰윽 훑어봤다.
체육관 반대편에서 열심히 훈련 중인 팀 헨더슨.
그리고 우리 팀 강해서의 도전자들.
‘제대로 된 훈련 첫날부터 분위기가...’
저쪽 팀은 으쌰으쌰가 있는데 우리 팀은 뭔가 축 쳐져 있는 느낌이었다.
-짝! 짝! 짝!
“자! 다들 하던 훈련을 모두 멈추고 이쪽으로 모여봐!”
결국 나는 우리 팀 도전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너희.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아니면 훈련이 힘들어? 왜 이렇게 파이팅이 없어?”
“...”
팀원들을 모아두고 가벼운 분위기로 대화를 이끌었지만 이렇다 할 대답은 없었다.
“이봐. 우리는 너희를 돕고 싶어. 하지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을 해주지 않는다면 도와줄 수가 없다고.”
어제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는데. 대체 왜이래?
“...숙소에서 저쪽 팀원들과 가벼운 언쟁이 있었어요. 솔직히 말해 코치진과 팀 훈련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는 절박해요. 이 자리에 오기까지 몇 년이 걸렸는지 모릅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시키는 대로 따르긴 하지만 이 팀이 과연 우리에게 최선이었는지에 대한 의심을 하게 돼요.”
그리고 하나 둘 터져 나오는 진심들.
내 앞에 모인 8명의 참가자들은 모두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모습을 3년 전 스트리트 파이트에 참가했던 내가 봤다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을 정도로 ‘종합 격투기’에 진심인 표정들.
“후우. 오케이. 코치진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훈련에 대한 확신도 없다.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네. 팀 헨더슨과 팀 강해서의 차이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불안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정도면 양반이었다.
사실 체육관 사람들과 TWF 촬영 전 회의에서는 우리 팀이 된 도전자들이 훈련을 보이콧 하거나 코치들을 무시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거든.
다행히 도전자들은 모두 WFC라는 무대가 간절한 만큼 코치진에게 무례한 행동을 보이는 일은 없었는데, 그렇다고 불신까지 지워주진 못한 듯 했다.
“오케이. 도널드. 앞으로.”
“...네.”
“그리고... 존. 앞으로.”
“네.”
헤비급의 도널드와 라이트 헤비급의 존.
둘 다 복싱이 베이스인 타격이 강점인 선수들이었다.
“자. 양 옆에서. 날 공격해봐.”
“...네?”
“때려보라고.”
“...”
다짜고짜 날 때려보라니 우물쭈물 하는 도널드와 존.
“불안을 해소하는 데는 눈으로 보는 게 최고지. 펀치도 좋고 킥도 좋아. 나는 방어와 회피만 하도록 할게.”
“...말도 안 됩니다 이건.”
“한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고요.”
상식적으로 펀치만 날리는 게 아니라 킥까지 섞은 두 선수의 타격을 피해낸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내 컨디션은 그게 충분히 될 것 같거든.
“만약 한명이라도. 한 대라도 날 타격할 수 있으면. 한 대당 1000달러를 주지.”
“...”
“진짭니까?”
돈 이야기에 눈을 번뜩이는 두 사람.
MMA 선수들은 대체로 가난했다. 그건 WFC에서 활약하는 선수라도 다를 바 없었는데, 최상위 랭커거나 PPV 수입이 좋은 흥행 선수가 아니라면 16위권 안에 드는 랭커라도 부업이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WFC가 아닌 중소단체의 선수들은 말 할 필요도 없겠지.
“들어와.”
나는 눈을 번뜩이는 두 사람에게 손을 까딱이며 말했고.
-휘이익!
-쉬익!
도널드는 내 안면과 바디를 노린 펀치를. 존은 내 하체를 노린 레그 킥을 대답 없이 뻗어왔다.
‘후우...’
아까부터 조금씩 끌어올렸던 집중력은 지금 이 순간 최고조라고 할 만큼 높아졌다.
정확히 이게 왜. 어떤 이유로 이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게 도널드와 존의 움직임은 정말 초고속 카메라로 찍어내는 듯이 느리게 보였다.
그들의 자세와 밸런스. 잘못된 축발. 벌어진 겨드랑이.
어디를 어떻게 공략해야할지. 반대로 어디를 어떻게 고쳐줘야 할지도 한눈에 파악되었다.
마브릭의 습관과 공략법 또한 이 집중모드로 파악해 낸 것이었으니 어쩌면 이 능력은 선수로서도 좋은 능력이지만 지도자로서도 최고의 능력이 아닐까 싶었다.
-휙. 휙.
설명은 길었지만 정말 찰나라고 할 만한 순간에 도널드의 펀치와 존의 킥을 피해냈다. 그것도 정말 솜털을 스칠 정도로 아슬아슬한 거리로.
-후웅! 휙!
-쉬이익! 쉬잉!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릴 정도의 펀치와 킥이 다시금 날아들었지만 지금의 내겐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물론 시합이 아니기에 이들의 타격에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았고, 그렇기에 스피드가 떨어지고 타점이 흔들리는 것도 있었다.
-휘 휘 휙! 탁!
어쨌든 지금 나는 거의 기예에 가까울 정도로 그들의 타격을 아주 조금의 위치이동만으로 전부 피해내며 막아내고 있었다. 상체 컨트롤과 스텝. 그리고 가벼운 패링까지.
-우오오오오오!!
짧은 공방이 지나가고 우리의 묘기를 보던 6명의 도전자들의 입에서 일제히 감탄사가 터져 나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 도널드와 존이 움직임을 멈췄다.
“자. 물론 내가 강하다고 해서 내가 하는 훈련이 좋은 훈련이라는 건 아니야. 좋은 선수가 꼭 좋은 코치라는 법도 없고. 하지만 그건 우리나 헨더슨 쪽이나 마찬가지지. 중요한건. 나는 이기는 법을 알아. 그리고 그걸 너희에게 알려줄 거고. 그러니 의심없이 따라만 온다면 난 결과로 너희들에게 보여줄거야.”
“...”
-짝짝짝짝짝
그리고 말없이 이어지는 박수소리.
별다른 대답은 없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우리 팀 도전자들의 눈에 빛이 돌아왔으니까.
“우선. 그 첫 번째인 도널드의 첫 시합 승리부터...”
-뭐라고? 왓 더 퍽!!
훈훈하게 마무리를 지으려는데 체육관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꽤나 격앙된 목소리.
-다시 한 번 말해봐!
브라이언의 목소리였다.
-못할 건 없지. 오코너는 이미 맛 간 퇴물이었어. 그런 한물 간 약쟁이를 이긴 주제에 너무 으스대지 말라고.
그리고 이건 핸콕의 목소리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