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10화 (110/203)

< 110화_이게 누구야? >

1.

“미스터 강? 라무차가 아니라?”

“그렇다고 방금 WFC 측에서 연락을 받았어.”

라이트 헤비급의 챔피언 데릭 헨더슨.

그는 그의 매니저가 전해준 새로운 소식에 재미있다는 듯 웃음 지었다.

“그래. 그가 미들급을 벗어나 라이트 헤비급으로 올라온다면 단번에 탑 컨텐더의 자리를 꿰찰 만 하지. 다만 다른 녀석들은 꽤나 분통 터지겠어.”

“그렇지. 특히 핸콕의 경우 길길이 날뛰고 있을게 눈에 보여. 이건 텔론이 간접적으로나마 다음 타이틀전의 도전자는 미스터 강이 될거라고 말 하는 뉘앙스니까.”

“라무차는?”

“오호. 그쪽은 나도 무섭다고. 그 짐승 녀석은 관심도 가지고 싶지 않아.”

WFC 라이트헤비급 랭킹 1위이자 가장 타이틀전에 가깝다고 알려진 탑컨텐더 핸콕.

그리고 WFC 헤비급 챔피언이자 통칭 비스트라고 불리는 야수와도 같은 라무차.

그 둘의 이야기가 나오자 매니저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렸다.

“핸콕은 문지기도 넘지 않고 바로 바로 타이틀전을 생각하는 미스터 강에게 화가 나 있을 테고. 라무차 또한 자기 자리를 빼앗겼다 생각할테니 미스터 강에게 화가 나 있겠군.”

“둘 다 멍청이니까. 텔론에게 화는 내지 못하고 그 화살은 미스터 강에게 향하겠지. 재미있어지겠어.”

헨더슨과 그의 매니저는 한 발짝 물러선 포지션에서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생각하며 즐길 뿐이었다.

“미스터 강이 상대 코치로 오면. 그의 체육관 코치들도 합류하겠군?”

“그렇겠지.”

“나야 상관없다지만. 그들의 팀원들이 과연 그걸 반길지는 모르겠군. 모두 아시안일거 아냐?”

“TWF 최초의 아시안 코칭팀의 탄생이겠지. 그것도 볼만하겠어. 우리가 건드릴 것도 없이 알아서 무너질지도 모르겠네.”

헨더슨은 딱히 트래쉬 토크를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시합 전 상대 선수와의 신경전을 펼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상황이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실력은 WFC 최강이지만 살짝 멍청한 라무차의 분노. 탑컨텐더의 자리를 위협받는 핵콕의 분노. 그리고 TWF 최초의 아시안 코치진이 가지는 불안요소.

“텔론이 확실히 판을 잘 짜긴 해. 그러니 WFC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거겠지.”

“확실히 이슈가 되긴 할 거야. 그나저나 다음 시합은 분명 TWF가 방송된 이후가 되겠네.”

“그렇겠지. 굳이 나서서 밥상을 차릴 생각은 없지만. 차려준 밥상을 엎을 필요까진 없겠지?”

“당연한 소리를.”

헨더슨 본인이 나서서 트래쉬 토크를 하거나 상대방을 도발하는 등 ‘흥행’을 위한 퍼포먼스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처럼 ‘흥행’의 요소가 많은 판이 깔려 있다면 그 판 안에서는 적극적으로 놀아줄 용의가 있었다.

“일단. 초청 코치진에 핸콕 명단을 올려봐. 그 외에도 미스터 강에 불만 있는 선수들을 한번 찾아보고. 재미있는 그림 나오겠어.”

TWF는 기본적으로 두 명의 코치. 그리고 코치가 데려온 본인의 체육관 코치들과 외부 코치들로 코치진이 구성된다.

그 중에는 현역 WFC 선수들을 특별 코치 형식으로 초청해 훈련을 하기도 하는데 헨더슨은 그 자리에 핸콕을 비롯한 강해서에게 불만이 있는 선수들을 부를 예정이었다.

“라무차는?”

“... 그 짐승은 내가 컨트롤이 안 돼. 좀 봐달라고.”

“하하하. 오케이. 알겠어.”

딱히 강해서에게 악감정은 없지만 TWF 31의 흥행과 시합의 흥행을 위해. 나름대로 최고의 판을 구상하는 헨더슨과 그의 매니저였다.

*

“후욱. 후욱.”

6월의 라스베이거스는 한국의 여름보다도 훨씬 더운 날씨를 자랑했다.

평균 최저기온이 20도를 넘는 수준이고 최고기온은 38도까지도 기록하는 열사의 도시.

“와. 넌 안 힘드냐?”

“후욱. 후욱. 할 만한데요?”

창섭 형은 시원한 음료수를 입에 달고 살았다.

-꿀꺽. 꿀꺽.

반면 훈련에 지쳤을 때 내가 마시는 건 에너지 드링크나 미지근한 물이 전부.

그래도 충분히 버틸만했다.

“... 쟨 아마 한국인이 아닐 거야.”

“조상님 중에 대체 누가 있어야 저런 몸이 나오지?”

이번엔 필승 형까지 가세해 내 몸을 보며 품평하기 시작했다.

‘흠...’

훈련을 잠시 멈추고 전신 거울 앞에 가서 바디 체크를 한번 했다.

지금 평체는 98키로.

100키로는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감량이 힘들어서 라이트 헤비급으로 월장한 건데 평체가 100키로를 넘기게 되면 또 10키로 가량 감량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니까.

100키로만 넘지 않으면 6-7키로그램 정도의 감량이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런 몸이면 맞으면 아프지 않아요. 형?”

“모르겠다. 나도 저런 몸이었던 적은 없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군살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국내 스트릿FC의 라이트 헤비급이나 헤비급 선수들을 보면 키는 크고 덩치는 있는데 몸이 둥글둥글한 살덩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내 몸은 그런 살덩이들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근육질이었고.

“미국 애들도 저 몸 보면 지리겠죠?”

“에이. 미국에는 저런 애들 많아. 약쟁이들이라 문제지.”

“그래요? 살벌하네.”

“살벌한건 그 약쟁이 몸이 통하지 않는 총이지. 미국에선 몸 좋다고 나대다가 총 맞기 딱 좋으니 조신히 다녀야해.”

“하하. 알겠어요.”

한창 훈련하고 있는데 뒤에서 정신 사납게 수다를 떨어대는 두 형들.

그래도 오늘은 정규 훈련 스케줄이 아니니 별 할 말은 없었다.

“더운데 왜 다들 여기 나와 있어?”

그때 안 코치님이 땀을 흘리며 꽤나 짜증어린 목소리로 우리를 찾았다.

“들어와라.”

“넵!”

오늘이 정규 훈련 스케줄이 없는 날인 이유가 있었다.

“TWF 촬영 일정이다. 코치진 명단은 다 넘겼고 추가로 특별 코치들을 섭외할 경우 미리 WFC 측에 알려주면 돼.”

바로 TWF의 촬영 일정이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라스베이거스에 온 이유는 훈련도 훈련이지만 TWF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촬영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코치 명단이...

“어? 코치님. 명단에 이거.”

“이거가 뭐냐. 두호도 우리 체육관 소속인데 코치로 들어갈 수 있지. 거기다 WFC 웰터급 챔피언인데.”

“그렇긴 한데...”

한국에서 라스베이거스로 넘어올 때 두호 형은 당연하다는 듯 한국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이번 TWF 촬영에는 두호 형을 제외한 나머지 체육관 사람들로 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안 코치님이 준비한 코치 명단에는 두호 형이 올라와 있었던 거다.

“메인코치는 해서 너지만. 그래도 현역 코치가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두호를 불렀다. 필승이 저 놈은 현역도 아니고 랭커도 아니었으니까.”

“끄응.”

안 코치님의 팩트 폭격에 볼멘 신음을 흘리는 필승 형.

하긴. 이번에 우리가 담당하게 될 도전자들은 라이트헤비급과 헤비급 챌린저들이라고 했다.

나야 이번에 라이트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렸다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 코치들은 거의 대부분이 경량급 선수 출신이거나 코치였다. 그나마 미들급 선수였던 게 필승 형. 그리고 웰터급 챔피언이자 미들급 탑컨텐터인 두호 형이었다.

“여튼. 두호는 주말에 맞춰서 들어올 거다. 유안이 때문에 빨리 오기가 어렵다더라.”

“아. 넵.”

유안이. 우리 유안이. 귀여운 유안이. 나를 싫어하는 유안이...

귀여운 볼살을 한번 만져보고 싶었지만 한국을 떠날 때까지 말도 제대로 붙여보지 못했다. 워낙 날 싫어하셔서...

“다들 그렇게들 알고 짐 싸둬.”

“넵!”

격투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니.

괜히 스트리트 파이트가 생각나네.

어떤 도전자들이 내 팀원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누가 되었든 이번 기회가. 내 코치가. 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2.

-브라이언! 브라이언! 시합 끝났습니다! 브라이언 제프! 오코너를 서브미션으로 잡아내며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을 거머쥡니다!“

“말 그대로 쾌속의 질주입니다! 미들급 타이틀 획득 후 곧바로 라이트 헤비급에 도전! 그리고 마침내 라이트 헤비급의 벨트까지 허리에 두르고야 맙니다!”

미국 네바다 주 리노 에번츠 센터.

브로일러 미들급 챔피언인 브라이언 제프가 마침내 라이트 헤비급까지 제패하며 관중들에게 승리의 포효를 내뿐고 있었다.

“와. 진짜 브라이언은 역대급 선수야.”

“저런 선수를 브로일러에 뺏기다니. 이러니 WFC가 요즘 망해간다는 소리를 듣는 거 아니겠어?”

“미들급에는 상대가 없어서 스트레이트로 챔피언 자리에 앉더니. 오코너를 상대로 1라운드 만에 서브미션으로 승리를 가져가네.”

브라이언의 승리를 직관한 격투기 팬들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 여운 속에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만약 브라이언이 브로일러로 넘어오지 않고 WFC에 남아 있었으면 어땠을까?”

“미첼은 브라이언의 상대가 되지 않지. 텔론도 그걸 아니까 브라이언에게 타이틀 샷을 주지 않은 거고. 그와 브라이언은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까.”

오늘 경기로 확실해진 건 역시나 브라이언은 미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선수라는 것이었다. 인간계 최강이라고 하는 미첼이지만, 라이트헤비급을 휩쓴 브라이언은 이미 인간계의 선수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브라이언이 라이트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린 걸 보니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던데?”

“맞아. 미들급보다는 라이트 헤비급이 더 어울려. 브라이언은 이제야 본인 체급을 찾은 거지. 아쉽다. WFC에 있었다면 헨더슨과 브라이언의 시합을 볼 수도 있었을텐데.”

이번에 브라이언이 잡아낸 브로일러의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오코너는 전직 W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출신이었다.

데릭 헨더슨에게 5라운드 판정패로 아쉽게 챔피언 자리를 내준 뒤 급격한 경기력 하락으로 복귀전 패배를 당한 오코너는 브로일러로 이적해 곧바로 챔피언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최근 오코너의 경기력은 전성기 시절의 그것을 되찾았다 할 정도로 물이 오른 상태였고 그런 오코너를 브라이언이 1라운드 만에 서브미션으로 잡아버렸으니 헨드릭과 브라이언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미스터 강도 라이트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렸지 않나?”

“미스터 강? 아! 그렇지. 미스터 강도 브라이언과 붙을 뻔 했었지?”

“브라이언이 부상을 당해서 취소 됐었지. 미스터 강도 강함 그 자체인데. 정말 그때 시합이 무산된 게 아쉬울 뿐이야.”

이제는 격투기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게 바로 강해서라는 아시안 파이터의 이름이었다.

현재 브라이언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브로일러의 전직 미들급 챔피언이었으며, 현직 WFC 미들급 챔피언.

거기다 전직 WFC 라이트헤비급 파이터인 블레이크와의 복싱 이벤트 매치의 임팩트는 복싱 계와 종합격투기계 모두에 충격을 줄 정도였다.

“브라이언은 텔론과 완전 틀어졌으니 다시는 WFC로 복귀하지 못하겠지?”

“브라이언과 미스터 강. 혹은 데릭 헨더슨과의 시합을 보고 싶은데. 그건 정말 꿈이겠군.”

타이틀전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지 팬들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브로일러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전이 끝나고 며칠 뒤 라스베이거스.

“오! 미스터 강?”

TWF 합숙에 들어가기 전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근처 쇼핑몰을 찾았던 강해서는 낯익은 얼굴을 마주했다.

“브라이언? 브라이언이 여긴 어쩐 일이야?”

며칠 전 브로일러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브라이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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