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09화 (109/203)

< 109화_TWF >

1.

-WFC 미들급 챔피언 강해서. 라이트 헤비급에 도전하다?

-복싱계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강해서가 WFC에 남아있는 이유?

-브라이언. 브로일러 미들급 제패 후 라이트 헤비급 정벌. 강해서의 행보와 같나?

-라이트 헤비급 첫 무대는? 텔론 회장의 즐거운 고민.

-지난 이벤트 매치로 다시금 불거진 WFC 파이트머니 논란. 복싱계와 왜 다른가?

-WFC 헤비급 챔프 라무차 입을 열다. 강해서 라이트 헤비급이 아닌 헤비급으로 올라와라?

-WBC 산하 OPBF 헤비급 동양 챔피언 조쉬 팩. 강해서의 복싱? 복싱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복서를 만나면 탄로 날 것.

“벌써 미스터 강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군.”

“그만큼 업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종합격투기뿐만 아니라 복싱계에서도 예의주시 중입니다.”

“그거야 잘 알고 있지.”

텔론 회장은 태블릿으로 WFC 관련 기사와 이슈 사항들을 수시로 보고받고 체크했다. 그리고 최근 받은 보고에서 가장 많이 보인 이름을 꼽으라면 단연 강해서였다.

“준비는 어떻게 된다던가?”

“라이트 헤비급에 걸맞은 몸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만 전해왔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강해서는 MMA 무대에 데뷔 이후 지금껏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최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이제 3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세계 최정상급이라는 자리에 앉았으니 급할 것도 없었다. 천천히 몸을 만들어 제대로 도전하는 게 맞았다.

“중요한 건 이렇게 이슈가 있을 때 최대한 써먹어야 한다는 건데 말이야.”

“그리고. 미스터 강에 관련된 보고가 있습니다.”

“응?”

강해서와 관련된 보고라는 말에 또 무슨 일인가 싶었던 텔론.

하지만 비서가 전달한 보고 파일을 확인하고는 단번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빌리?”

“...네. 일전에 미스터 강이 미들급으로 첫 데뷔할 때부터 매치를 원했던 선수입니다.”

“그런데 또 왜 이래? 최근 시합 보니까 잘하고 있더니.”

텔론은 WFC 대부분의 선수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하는 정도의 차이야 있지만 이름과 경기력들의 이미지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상태. 그가 기억하는 빌리는 괴물 같은 힘을 가진 우직한 파이터의 이미지였다.

“클락과 관련된 문제로 파악되었습니다.”

“클락? 빌리의 형제 클락? 폭행으로 수감된?”

“네. 클락이 폭행으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었던 일행 중에 미스터 강이 포함되어 있었던 거로 확인되었습니다. 정확히는 미스터 강이 클락의 폭행을 보고 그를 저지했다고 합니다.”

“저런. 쯧.”

텔론은 빌리와 마찬가지로 클락도 기억하고 있었다. 라이트 헤비급에서 꽤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선수. 다만 과하게 다혈질에 감정 컨트롤에 문제가 있어 경기력의 기복이 있는 선수였다. 결국, 길거리에서 일반인을 폭행한 건으로 법의 심판을 받는 중이었고.

“분명 클락이 잘못한 일인데. 그 분노의 화살은 미스터 강에게 향하고 있다. 뭐 이런 건가?”

“저희가 파악하기론 그렇습니다.”

“쯧. 반려해.”

“네.”

사정은 충분히 알겠고 스토리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의 급이 맞질 않았다.

강해서는 현 미들급 챔피언이자 블레이크 전 이후 복싱계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떠오르는 신성이었다.

그에 반해 빌리는 미들급에서 라이트 헤비급으로 체중을 올리긴 했지만, 아직 랭킹에도 들지 못한 파이터였다.

한마디로 두 사람의 시합은 전혀 돈이 될 구석이 없다는 거였다.

“아. 그러고 보니. 클락과 빌리. 두 사람 다 TWF 출신이지?”

“네.”

The World Fighter. 줄여서 TWF.

WFC에서 진행하는 격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WFC에 진출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종합격투가 지망생들이 라스베이거스 외곽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경쟁을 펼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TWF라. TWF... 이봐.”

“네.”

“이번 시즌 TWF 메인 코치가 누구누구지?”

“라무차와 헨더슨으로 내정되어 있습니다.”

“라무차와 헨더슨이라. 전달은 된 상태인가?”

“네.”

헤비급 챔피언인 라무차와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인 헨더슨.

TWF는 일 년에 두 번. 한 번에 총 12회로 구성되는 시즌제 프로그램이었는데 두 명의 코치가 1-2개 체급의 선수 16명을 뽑아 두 팀으로 나누어 훈련시킨 후 WFC 진출을 두고 경쟁시키는 내용이 주였다.

이번 TWF 31의 선정 체급은 라이트 헤비급과 헤비급. 그렇기 때문에 각 체급의 챔피언들이 코치로 내정되어 이미 전달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라무차에게 양해를 구하고. 미스터 강을 코치로 올려보지.”

“네?”

“우선. 미스터 강의 의사를 먼저 확인해봐.”

“...괜찮을까요.”

“라무차보다는 미스터 강이 훨씬 뜨겁지. 거기다 헨더슨과 미스터 강은 어차피 부딪힐 상대니까 말이야. 구도 잡기에도 좋지.”

어차피 체급을 올리기 위해 당분간 훈련에 매진하며 경기를 가지지 않을 생각이라면 이런 식의 이슈 소비라도 시키는 게 이득이라는 텔론의 비즈니스적인 판단이었다.

*

“TWF요?”

“그래.”

갑자기 TWF라니.

“일체의 경비 및 촬영 외 훈련에 관한 지원까지 명시해뒀더라.”

“그거. 저뿐만 아니라 우리 체육관 코치들 다 같이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맞아.”

어쩐지.

그래서 필승 형과 창섭 형이 저렇게 눈을 반짝이고 있었구나.

“해서야. 한국의 스트리트 파이트 출신 파이터가 TWF에서 헤드 코치 되다. 이거 그림 나온다야.”

“나도 WFC 공기 좀 맡아보자. 제발!”

필승 형과 창섭 형은 TWF 이야기가 나온 순간부터 날 설득할 마음 만반이었다.

“그거 가면 거기서 합숙해야 하죠?”

“당연하지.”

“음...”

아름이한테 뭐라고 말하지?

예능 찍으러 미국 간다고 하면 잘 다녀오라고 하려나.

“아마 다녀오면 체육관 이전도 끝나있을 거다. 지금 체육관보다는 WFC에서 제공하는 체육관이 훨씬 좋을 거야. 물론 이전하는 체육관은 우리도 꿀리지 않겠지만.”

“라이트 헤비급으로 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인데. 지금 TWF에 나가는 게 괜찮을까요?”

“남을 가르치는 것만큼 도움 되는 것도 없지. 나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 상주하는 유명 코치들을 고용할 수 있으니 네 훈련에도 도움이 되겠지.”

안 코치님까지 이렇게 말씀하시면 꽤나 고민되는데 말이지.

“언제까지 답변 줘야 해요?”

“빠를수록 좋겠지. 그리고 만약 오케이 하면 상대 코치는 헨더슨이다.”

“데릭 헨더슨이요?”

“그래.”

데릭 헨더슨. W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원래 TWF는 서로 트러블이 있는 선수들을 코치로 두거나, 빅매치가 예정된 선수들을 코치로 두곤 하지. 아마 이번 기회에 해서 너와 헨더슨의 대결 구도를 잡아두고 TWF 이후 대대적으로 타이틀전을 마케팅하려 할 거다.”

“그러니까.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 전에 사전 격돌. 뭐 그런 거군요?”

“그렇지.”

하.

아름아. 미안한데 이건 가야겠다.

상대 코치가 데릭 헨더슨이라는데 꼬리 빼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잖아?

2.

“그래서. 라스베이거스로 간다구?”

“...응.”

아름이는 일과 관련된 문제로 눈치를 주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지만, 괜히 내가 찔려서 눈치를 보게 됐다.

“흐음. 그렇구나. 며칠이나 가는 거야?”

“엄...”

며칠이 아니라 오는 6월부터 촬영에 들어가서 방영은 올해 말에 된다고 들었다.

아마 촬영 기간만 몇 달은 걸리는 거로 아는데...

“그렇게 오래 가?”

“응. 한 시즌이 12부작이니까. 방영 기간만 3개월 가까이 걸려. 촬영 기간도 그 정도 걸린다고 들었어.”

“올여름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내겠네?”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아.”

“흐응.”

가벼운 콧소리와 함께 생각에 빠지는 듯한 아름이.

“그럼. 이번 여름 휴가는 라스베이거스로 가야겠다.”

“응?”

“내가 보러 가면 되지 뭐. 문제 있어?”

“아. 아니.”

너무 당연하다는 듯 날 만나러 라스베이거스까지 오겠다는 아름이.

분명 사귀고 있는데도 아직 현실감각이 떨어지다 보니 이런 종류의 발언이 있을 때마다 조금은 놀라곤 했다.

“헤헤. 그래도 라스베이거스면 조금 편하게 만날 수 있겠다.”

“...”

신경 쓰고 있었구나.

처음 아름이와 사귀기로 하고 가장 먼저 했던 게 공개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아름이는 공개 연애를 해도 상관없으니 편하게 만나자는 주의였고, 나는 아름이의 이미지나 이런 것을 고려해 굳이 밝히지는 말고 조심하자는 입장이었다.

아무래도 격투기 선수인 나와 연예인인 아름이의 직업상의 차이 때문에 공개 연애의 리스크는 아름이 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하자.”

“헤헤. 잘됐다. 매니저님한테 연락해서 일정 잡아야지.”

참고로 아름이의 소속사에서는 나와 아름이의 교제를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언제 나가는 거야?”

“어... 다음 주?”

촬영 일자까지는 기간이 좀 남았지만, 미리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적응도 하고 훈련도 할 생각으로 빠르게 움직일 예정이었다.

“아! 그리고. 레이첼 씨가 미국 들어오면 연락하라고 해서. 이번에 들어가면 한번 볼 것 같아.”

“레이첼이?”

“응.”

지난 복싱 이벤트 매치 이후 레이첼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메세나가 끊기나 싶어 마음졸이며 전화를 받았지만 아주 밝은 목소리로 복싱 매치의 승리를 축하해주며 미국에 들어올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는 당부를 남겼었다.

“우움. 아무리 레이첼이라도. 조심해야 해.”

“...엉?”

“걔는 미국 애라 개방적이니까. 알지?”

“어... 어.”

이렇게 예쁜 애가 내 품을 파고들며 이런 말을 하면 정말 현실감각이 떨어졌다.

“나 안 본다고 한눈팔고 그러면. 알지?”

“...네.”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는데. 왜 이렇게 무섭냐...

*

-쾅!

“... 그래서?”

“... 미안하다.”

빌리는 존이 가져온 소식에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

-꽝!

“퍼킹!”

-쾅!

“그만! 너 또 주먹 다쳐!”

“이런 젠장! 샌드백이라도 치지 않으면 정말 이러다간 그냥 그 개자식을 찾아가서 때려버릴 것만 같다고!”

“...”

WFC에서는 빌리와 강해서의 매치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저 조금 부정적인 정도가 아니라 현재로서는 거의 가능성이 없다는 수준.

“... 일단 빌리 네 랭킹부터 올려야 해. 적어도 타이틀 샷에 가까워진 수준은 되어야 그와의 시합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SNS나 언론에 뿌리면 어때?”

“뭘? 강해서와 네 악연을? 그러면 오히려 클락의 이미지만 나빠지겠지. 미스터 강의 이미지는 좋아지고.”

“...씨발.”

붙고 싶은 상대가 있는데 붙을 수 없는 현실에서 오는 허탈함과 분노. 그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인 욕지기를 한마디 내뱉으며 빌리는 털썩하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빌리와는 다른 이유로 분노를 표출 중인 사내가 한 명 더 있었다.

-쾅!

“뭐? 다시 이야기해 봐.”

WFC 헤비급 챔피언인 라무차였다.

“그 동양인 파이터 놈 때문에 내가 밀려났다고? 내가?”

분노의 이유는 다르지만, 그 원인은 빌리와 같았는데 바로 강해서였다.

“아무래도 그는 요즘 한창 뜨거운 선수니까. 이번에 라이트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리면서 헨더슨과의 대립 구도를 잡기도 좋을 테고. 텔론다운 선택이지.”

“퍽! 아무리 그래도 이건 챔피언에 대한 예우가 아니지! 내가 이번 TWF를 준비하려고 일정 조절을 어떻게 했는데!”

“... 어쩔 수 없어. 아무리 아니꼬와도 WFC와 척을 질 수는 없으니.”

더럽고, 치사해도 WFC는 세계 최고의 종합격투기 단체였다.

챔피언인 라무차가 WFC를 뛰쳐나가 어느 단체를 가더라도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경기를 치를 순 없었기에 억울해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동양인 꼬마 새끼가...”

다만 그 분노의 표출이 WFC가 아닌 강해서에게 향하는 것까지 그의 매니저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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