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07화 (107/203)

< 107화_블레이크 전 End. >

1.

“이런 미친 새끼.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랬어!”

1라운드가 끝나고 우리 쪽 코너로 돌아오자 제일 먼저 필승 형이 거친 입담으로 반겼다.

“어차피 이벤트 매치잖아요. 어쩌다 한 대 맞아도 승패엔 지장 없었을 테고. 안맞을 자신 있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 아니다. 사실 그냥 좀 놀라서 이러는 거다. 어제 계체에서 도발할때도 혹시나 하긴 했지만 진짜 한 대도 안 맞을 줄은 몰랐으니까.”

“흐흐. 아예 뒷말도 못하게 블로킹도 안하고 다 쳐냈어요. 계약서 그대로 청구해주세요.”

“걱정마라.”

클린히트가 터진 게 없으니 딱히 라운드간 휴식시간에 할 것도 없었다.

땀 좀 닦고 물로 입안을 헹구는 정도가 다랄까. 심지어 땀도 별로 안 났다.

“2라운드에 끝낼 수 있겠냐?”

“당연하죠.”

“그래. 믿는다.”

팡팡 하고 내 등을 두드리는 필승 형.

슬쩍 고개를 돌려 안 코치님을 바라보니 무슨 생각이 그리 많으신지 골똘히 무언가에 집중한 표정이었다.

“안 코치님은 왜 저래요?”

필승 형에게 속닥이며 질문을 던지자 필승 형 또한 귀엣말로 ‘몰라. 아까부터 저러시네.’ 라는 답변을 내놓을 뿐이었다.

휴식시간 종료 예비 공이 울리자 나는 세컨석에서 일어나 2라운드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땡!

이윽고 2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리고 나는 주먹을 한번 꾸욱 쥐어보고는 코너를 빠져나갔다.

-주춤. 주춤.

1라운드 때는 1초가 아깝다는 듯 뛰듯이 달려와 주먹을 날려대던 블레이크가 지금은 주춤거리는 스텝으로 아주 소극적인 전진을 해왔다.

가드 또한 1라운드 때는 아예 방어를 도외시 했기에 올린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주 단단히 끌어올린 게 거의 피커브 스타일에 가까웠다.

-퉁. 퉁.

여전히 뭔가 낯선 링 바닥에 복싱화가 닿는 소리.

그걸 느끼며 가드를 단단히 올린 블레이크에게 다가갔다.

-휙. 휙.

가벼운 레프트 잽 두 방.

정말 가볍게 툭 던진다는 느낌으로 날렸다.

뭐랄까. 이제 진짜 공격을 하겠다는 안내장 같은 느낌이랄까.

블레이크는 피하기보다는 단단한 블로킹으로 잽을 막아냈고 나는 그 위로 라이트 훅을 꽂아 넣었다.

-후웅! 뻐엉!

가드 위로 두드렸음에도 블레이크가 휘청거리며 뒷걸음 칠 정도의 라이트 훅.

애초에 머리가 아닌 가드 올린 왼 팔뚝을 타격 포인트로 잡았기에 아주 제대로 들어간 펀치였다.

단단한 블로킹 사이로 보이는 블레이크의 눈이 조금 커진 것 같다는 건 내 착각일까.

중요한 건 이것도 풀 파워는 아니었다는 거다.

-우와아아아!!

-와 펀치력 뭐야? 방금 블레이크가 뒤로 살짝 밀린 것 같았는데?

-가드 위로 때렸는데도 소리가 샌드백을 치는 소리가 났어!

링 주변에서 들리는 환호성과 놀라움의 반응들.

이정도로 놀라시면 안 되는데. 이번 이벤트 매치는 3분 3라운드 시합이었고, 지금 내 체력은 10분 동안 풀파워로 펀치를 쏟아내도 지치지 않을 정도거든.

‘오늘. 진짜 컨디션 좋네.’

몸에 힘이 넘쳐서 주체를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근육 하나하나에 힘이 충만한 느낌이랄까.

-퉁. 퉁.

별다른 스텝이랄 것도 없이 상체를 살짝 숙여 무게 중심을 바로잡으며 블레이크를 향해 걸어갔다.

라이트 훅에 살짝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던 블레이크는 내 전진을 보고는 다시 몸을 웅크리며 가드를 올렸고 나 또한 내 펀치에 몸이 밀려가지 않게 뒷발 축을 단단히 고정시키며 펀치 거리를 잡았다.

-휙! 펑!

-휘익! 퍼엉!

가벼운 원 투 컴비네이션.

솔직히 블레이크의 복부나 안면. 사이드 측면까지. 빈틈을 찾고 비집어내어 클린히트를 맞추려면 얼마든지 맞출 수 있었다.

굳이 이렇게 단단한 가드 위로 때릴 필요는 없었다.

‘근데. 넌 좀 맞아야 돼.’

내가 풀 파워로 휘두르는 펀치에 블레이크가 단 한 대라도 유효타로 맞으면 그대로 게임이 끝날 것 같았다. 그러면 너무 싱겁잖은가. 이 시합을 보기위해 얼마나 많은 팬들이 기다리고 기대했을 거야.

-훙! 뻥!

-후웅! 뻐엉!

다른 곳은 일체 생각도 하지 않고 블레이크의 안면을 가린 채 블로킹 중인 양팔의 팔뚝만 노린 공격.

이제는 정말 풀 파워에 가까운 펀치를 쏟아내고 있었고 블레이크는 점점 뒤로 밀려 이제는 코너에 몰려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있었다.

-뻥! 뻥! 뻐엉! 퍽! 퍼엉! 뻥! 뻥!

블레이크를 코너에 가둬두고 샌드백 때리듯이 말 그대로 신나게 두드렸다.

감히 반격을 하거나 카운터를 노릴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정말 있는 힘을 쏟아부어 최선을 다 해서 때렸다.

-휘익.

-멈칫.

아직 체력이 쌩쌩했기에 신나게 펀치를 이어가던 중 블레이크의 복부를 오른쪽 이두근을 향해서 뻗던 왼손 펀치를 멈춰야 했다.

-덜 덜 덜

2라운드 시작부터 가드만 올리고 있던 블레이크의 팔이 덜덜 떨리며 본연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

블레이크의 양 팔은 퉁퉁 부어서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밑으로 떨어졌고. 사각링 주변의 객석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래. 지금 이 느낌. 이 공기. 이 분위기. 딱 좋아.’

코너에 박혀있는 블레이크를 뒤로하고 사각링의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링 주변 관객들을 훑어보니 모두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저 이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까딱. 까딱.

링 중앙으로 나와 블레이크를 향해 손을 까딱이며 다시 시작하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지속된 타격에 팔에 충격이야 많이 갔겠지만 팔을 제외하고는 쌩쌩한 블레이크.

내 도발을 보더니 이를 악무는 표정이었지만 그만큼 겁에 질린 표정도 지었다.

아마 고민되겠지. 남은 시합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그래도 지금까지 점수 차이는 별로 안 날거다. 둘 다 클린히트는 없었거든.

물론 못 맞춘 것과 안 맞춘 것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야.

-퉁. 퉁.

특유의 발자국 소리를 내며 다시 앞으로 나서는 블레이크.

저 놈도 앞으로 복싱 선수로 먹고 살려면 질 걸 알더라도 앞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었을거다.

여기서 타월 던지면 그대로 업계 매장일 테니까.

-덜 덜 덜

근데. 저 팔로 시합 계속 할 수 있겠니.

글러브를 낀 주먹을 제외하고 손목 아래부터 어깨까지. 어느 곳 하나 빠짐없이 신나게 두드려줬다.

물론 복싱 글러브는 온스가 높았기에 맨주먹이나 MMA 글러브로 때린 것만큼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겠지만 중요한 건 지금 내 펀치력이었다.

오픈 핑거나 MMA 글러브였으면 블레이크는 지금 저렇게 팔을 들지도 못했을 거다. 장담하는데 피부 밑으로 혈관 다 터졌을테니까.

지금도 봐라. 복싱 글러브를 끼고 때렸는데 벌써 온 팔이 붉고 푸르게 얼룩져서 부어있었다.

“내가 말 했지. 이제 나도 때린다고.”

심판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블레이크에게 한마디 했다.

다가오던 걸음이 살짝 멈칫 거렸지만 별 상관없었다. 아직 때릴 시간은 충분하니까.

-퉁!

-휘이익

-뻐어엉!

꽤나 강하게 대쉬하며 체중까지 실어 라이트 오버핸드 펀치.

복싱에서는 잘 쓰지 않는 MMA형 타격 기술이지만 보기에도 호쾌했고 방어를 도외시하기에 타격력 하나는 좋은 펀치였다.

-쿵!

가드 위로 들어갔지만 그 충격에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블레이크.

아까처럼 코너라도 있었으면 다운은 안 당했을 텐데. 쯧쯧.

-10. 9. 8. 7.

종합격투기와는 달리 블레이크가 다운을 당하자 득달같이 달려와 카운트를 세는 심판.

블레이크는 잠시 바닥에 널부러져 멍 때리는 듯하더니 금새 일어나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그래. 그래야지. 아직 클린히트 한방도 안 맞았는데 포기하면 안되지.

이제 2라운드도 채 1분이 남지 않았다.

이제 다음 단계로 가볼까.

-퉁. 퉁.

심판의 파이트 사인이 나온 뒤 다시 블레이크에게 빠짝 달라붙으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툭. 툭. 뻐엉! 툭. 펑! 툭. 툭. 뻐엉!

집중모드에 들어간 채 블레이크의 비어있는 부분. 왼쪽 옆구리를 오른손으로 툭 쳐준 뒤 그의 비어있는 안면에 왼손으로 툭 터치를 해줬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그의 왼쪽 팔뚝을 있는 힘껏 쳐냈다.

왼쪽으로 휘청거리는 그의 오른쪽 옆구리를 왼손으로 툭 쳐주고는 다시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그의 안면을 가리고 있는 글러브 위로 꽂아 넣었다.

이번에는 뒤로 주춤 주춤 밀려나는 그의 비어있는 안면에 왼손 오른손을 차례로 툭 툭 갖다 댄 뒤 왼손 바디블로우를 그의 오른팔 오금 부근으로 때려 넣었다.

“...”

그리고는 살짝 백스텝으로 거리를 벌인 뒤 어깨를 으쓱하는 포즈를 취했다.

블레이크의 분노가 그의 얼굴에서 느껴졌지만

-우와아아아아아!!!!

-휘익! 휘이이익!

-방금 봤어? 정말 완벽한 컴비네이션이었어!

-완전 블레이크를 갖고 노는데? 저 미스터 강이라는 선수 뭐야? 왜 저런 선수가 MMA에 있는 거야?

주변 반응은 뜨겁기만 했다.

-땡!

그렇게 2라운드가 끝나고.

“야. 왜 안 끝냈어!”

“이제 끝내야죠. 하하.”

“위험하다 너. 자칫하면 스포츠 정신에 위배된다고 난리 칠 수도 있어. 이번에 무조건 끝내고 와.”

“넵!”

하긴. 놀려주는 게 조금 심했나 싶기도 했다.

필승 형 말대로 스포츠 정신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 봤다면 꽤나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수준차이가 많이 나서 신났나보다. 이제 끝내야지.

-땡!

그렇게 시작된 마지막 3라운드.

블레이크는 잠시간 팔에 얼음찜질도 하고 마사지도 하면서 회복을 했는지 두 주먹을 들어올린 채 링 중앙으로 슬금 슬금 기어나왔다.

비장한 표정을 지은 걸 보니 질 땐 지더라도 유효타 한 대 쯤은 날리겠다. 뭐 이런 각오인 듯 했다.

‘어림없지.’

2라운드 목표가 신나게 때려주는 것이었다면 3라운드 목표는 신속한 승리였다.

-퉁! 퉁!

슬금슬금 전진하는 블레이크를 향해 뛰듯이 달려들었다.

놀란 블레이크가 내 전진을 막기 위해 레프트 잽을 뻗었지만.

-휘익.

상체를 왼쪽 앞으로 숙이며 그의 잽을 피해낸 뒤 그대로 라이트 펀치를 그의 안면에 꽂아 넣었다.

“컥!”

3라운드 만에 처음 터지는 클린히트.

-뻐엉!

숙인 상체를 뒤틀며 회전력을 그대로 왼손에 집중시켜 그의 비어있는 복부를 두드렸다.

-커헉!

-툭.

마우스피스까지 뱉어내며 거친 신음을 쏟아내는 블레이크.

그대로 내게 쓰러지듯 클린치를 시도해왔다.

“이거 왜 이래. 게이처럼 들러붙고 난리야.”

나는 클린치를 받아주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그를 밀어냈고.

-쿠웅!

그대로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10. 9. 8.....1. 스탑!

복부를 잡고 쓰러진 블레이크는 결국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그대로 시합은 끝이 났다.

3라운드 11초.

내 생에 첫 복싱 시합을 승리로 마무리 짓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

“... 이런 미친.”

옆에 카이서스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켄달은 커친 소리를 내뱉었다.

‘대체 어디서 저런 선수가 튀어나온 거야?’

분명 강해서라는 파이터의 시합 영상은 켄달 자신도 챙겨봤었다.

카이서스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데다 이번 이벤트 매치의 당사자이기도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 정도는 아니었잖아?’

하지만 켄달이 찾아본 강해서라는 선수의 시합은 ‘대단하긴 한데 아주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닌’ 수준이었다.

타격이 좋긴 한데 받아주는 상대 또한 MMA 수준이라 판가름하기가 어려웠고, 그라운드는 확실히 세계 최정상이라기에는 미흡한 게 켄달의 눈에도 보였었다.

다만 피지컬이 뛰어나 힘과 반응속도가 좋다는 정도가 눈에 띄었는데.

‘이건. 이건 아니지.’

대체 저런 선수가 왜 복싱계가 아니라 MMA에 있냐는 말이다.

‘일단 말도 안 되는 바디 밸런스. 펀치력. 집중력. 반응속도. 핸드스피드....’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켄달 본인이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지만.

-힐끗

순간적으로 그는 저 동양인 선수와 황제 카이서스를 번갈아보며 비교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비록 켄달이 트레이닝 코치는 아니었지만 세계적인 복싱 프로모터로서 보는 눈 하나는 최고라고 자부했는데, 그런 그가 일견하기에도 강해서라는 선수는 카이서스와 비교될만한 재능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툭.

“끝났군.”

강해서의 피니시 장면을 끝으로 승리인터뷰나 이후 중계는 관심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선 카이서스.

“밖에 이야기해서 링 좀 비워놓으라고 해.”

“...뭐?”

“오랜만에. 몸을 좀 풀고 싶군.”

한마디 툭 남기고는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는 카이서스.

챔피언 방어전이 코앞일 때도 링 위에서 훈련은 하지 않았던 카이서스.

그가 무슨 바람인지 몸을 풀고 싶다는 말에 켄달은 잠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앉아서 눈을 끔뻑이기만 했다.

“아, 알겠어! 바로 말해두지!”

그리고는 쏜살같이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가며 생각했다.

‘강해서. 그 친구는 보물이야. 복싱계의 향후 십년 이상을 책임 질 보물.’

강해서를 종합격투기가 아닌 복싱계로 데리고 올 수 있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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