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00화 (100/203)

< 100화_광역 도발 >

1.

-이번 시합은 여러모로 저 스스로에게도 도전과 같은 경기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모든 WFC 팬 여러분들과 텔론 회장님께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것입니다. 저는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길 바랍니다.

스포츠온 TV의 중계 화면에는 WFC 미들급의 새로운 최강자로 떠오른 강해서의 승리 소감이 나오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자랑스런 대한의 파이터! 강해서 선수의 승리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아시아 최초 중량급 챔피언의 탄생입니다! 이건 한국을 떠나 전 아시아의 자랑입니다!”

캐스터는 오늘만큼은 거리낄게 없다는 듯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 시간은 일요일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시간.

TV 오디오 소리가 조금 높아져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시간대라 마음 놓고 흥분하고 있었다.

“에.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 합니다. 중량급의 불모지라고 불리는 아시아에서 WFC 챔피언이 탄생했다. 이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에요. 특히 마지막 수상소감에서 아직도 배가 고프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길 바란다. 이건 강해서 선수의 앞으로의 목표를 말해주는 것 같은데요. 어쩌면 미들급을 넘어 아직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체급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김국현 해설위원 또한 오늘만큼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시합 결과에 대한 해설보다는 강해서 선수 위주의 소감으로 해설 대부분을 채워넣었다.

강해서의 지난 브로일러 챔피언 달성 때도. 최두호의 WFC 웰터급 챔피언 타이틀 달성 때도. 스포츠온 TV 중계석은 이정도로 뜨겁지 않았었다.

“시청자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중량급입니다! 중량급! 드디어 한국에서도 중량급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선수가 탄생했습니다! 앞으로도 강해서 선수의 뒤를 이어. 제2, 제3의 강해서 선수가 나타나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강함을 알릴 수 있는 신호탄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모두가 ‘중량급’이라 인정하는 미들급에서의 타이틀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복싱에서 세계 4대 단체라는 곳에서 세계 챔피언을 여럿 배출한 바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공통된 수식어는 ‘작은 거인’ 혹은 ‘작은 허리케인’과 같은 ‘작다’라는 의미의 단어들이었다.

라이트 플라이. 플라이. 슈퍼 밴텀.

모두 경량급에서 얻어낸 영광들이었다.

또한 유도나 레슬링 또한 세계적인 선수들을 배출해냈지만 그들 역시 경량급의 용사들이었다.

투기종목에 대한 아시아인의 인식은 ‘힘보다는 기교와 섬세함’ 이라고 박혀있을 정도였다.

체급이 올라가고 중량급 이상의 ‘힘과 피지컬’이 필요한 무대에서는 한국인을 비롯해 아시아 선수 자체를 찾아보기가 어려웠으니까.

┕씹... 시합내용이고 뭐고. 일단 외쳐! 갓해서!!!

┕갓해서! 갓해서! 그는 신인가?!

┕존나 국뽕 차오른다 씨바아아알아!!!!

┕와. WFC Apex 케이지 중앙에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걸 보다니 ㅅㅂ.... 나 동네 체육관 등록하러 간다

┕솔직히 오늘만큼은 갓해서 팬이다. 잘했다 갓해서!

┕와. 이 시합 볼라고 아침부터 집안일 다 도와주고 마누라 재워놨는데 그럴만한 보람이 있었음

┕중량급에서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다니. 확실히 시대가 변하긴 했구나

┕조금 아쉽긴 함. MMA말고 복싱을 했으면 확실히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따는 건데

┕22222 게다가 복싱은 체급 간 간극도 낮아서 여러 체급 석권도 가능할텐데

┕ㅅㅂ암만 그래도 복싱이랑 MMA랑 같냐? 강해서가 WFC챔피언 먹긴 했지만 복싱계 넘어가면 세계 랭킹에도 비비기 어려울걸?

┕또 방구석 좆문가 나셨네ㅋㅋㅋ 저런 애들 특. 갓해서 같은 사람 앞에선 한마디도 못한다

┕아니. 솔직히 맞잖아. WFC 챔피언이 세계 챔피언임? 그리고 선수 풀 자체가 달라;;; 시골 분교 전교 1등이랑. 서울 강남 1학군 전교 1등이랑 같은 수준이야?

┕비유 찰지네. 근데 저건 어느 정도 맞는 말임. 종합격투기랑 복싱은 선수풀 차이와 시장 규모 차이가 큼. 전 세계 종합격투기 프로선수 다 모아도 복싱 한 개 체급 프로 선수 숫자보다 적다더라

┕ㅅㅂ 인생 ㅈㄴ 피곤하게 사네. 그냥 이런 날에는 다 같이 축하하면 안 되냐? 꼭 남이 이룬걸 그렇게 깎아먹어야 속이 시원함?

그런 강해서의 중량급 타이틀 획득은 인터넷 반응 또한 뜨겁게 달구기 충분했다.

-1(NEW) 강해서

-2(NEW) 강해서 챔피언

-3(NEW) WFC 미들급

-4(NEW) 강해서 체육관

-5(NEW) 종합격투기

그 영향력을 인증이라도 하듯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두 곳에서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는 모두 강해서와 관련된 키워드로 가득차 있었고 주말 오후임에도 각 뉴스채널에서는 스포츠 채널이 아님에도 강해서에 관한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을 정도였다.

*

“고생했다.”

승리 인터뷰를 끝내고 케이지를 내려오자 가장 먼저 안 코치님이 입을 열었다.

“...네.”

미들급 챔피언.

조금 더 호들갑을 떨며 좋다고 방방 뛰어도 되지만, 벨트의 무게때문인가. 뭔가 차분하게 가라앉고 경건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필승아. 해서 데리고 메디컬 체크 받고 와라. 우리는 정리하고 있으마.”

“넵!”

오늘 시합은 내가 격투기라는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많이 두드려 맞은 경기 중 하나였다.

사실 지금도 살짝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미첼에게 맞은 종아리 레그킥 덕분에 오른쪽 다리 종아리와 정강이쪽이 퍼렇게 부어 있었다.

“자.”

그런 내 오른편으로 다가와 어깨를 내어주는 필승 형.

“하하. 괜찮아요. 뭔 남자끼리.”

“새꺄. 나라고 땀내 나는 너랑 부둥켜 안는 거 좋은 줄 아냐? 이상 없다는 소견 떨어지기 전까지는 만에 하나라도 조심해야해. 그게 프로야.”

“...넵.”

수건으로 대충 닦긴 했지만 지금 내 몸은 진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필승 형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익숙하게 날 부축해서 메디컬 룸으로 안내했고, 나는 의사에게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편하게 혼자 걸을 수 있었다.

“... 고맙다.”

메디컬 체크까지 마치고 라커룸으로 이동하는 짧은 길.

필승 형은 대뜸 고맙다는 말을 던졌다.

“네?”

“고맙다고.”

그러니까. 대체 뭐가 고맙냐고요.

“새꺄. 나도 선수였어. 은퇴한지 이제 일 년이다.”

“...그건 저도 알죠.”

“그것도 지금 네가 벨트를 감고 있는 WFC 미들급 출신 선수.”

“...그래서...요?”

-쩍!

“아! 또 왜 때려요! 방금 시합 끝난 선수를!”

“그래서 머리 안 때리고 등짝 때렸잖아! 으. 끈적끈적해. 너 바로 샤워하고 와 인마!”

“아오! 그래서 뭐가 고맙냐고요!”

“챔피언 먹어줘서!”

...응?

내가 챔피언을 먹었는데 필승 형이 왜 고마워? 잘했다고 칭찬하는 거면 몰라도.

“오늘 네가 딴 그거. 한때는 내 꿈이자 목표였다.”

“...아.”

“아는 뭔 아 야. 당연히 모든 프로 선수들은 최정상을 노리는 거지. 나도 당연히 미들급 챔피언을 꿈꿨고. 현실은 뭐. 랭킹 상위권에 알박기만 하자였지만. 결국은 그것도 못하고 은퇴했고.”

“,,,”

“어쨌든. 같은 한국 선수가. 그것도 내가 케어하고 있는 강해서 네가. 내가 세컨으로 참가한 시합에서 내 꿈이었던 벨트를 들어 올리는데. 왜 내가 눈물이 나는지...”

어라?

지금 저 형 우나?

고개 돌리면서 눈가를 훔친 것 같은데?

“형.”

“...왜?”

“우냐?”

“...”

-뻑!

“아! 머리는 안 때린다면서요!!”

“넌 좀 맞아야 돼 새꺄!”

“울긴 자기가 울어 놓고 왜 나한테 난리야!”

“씻으러 꺼져 인마!”

하여튼 간에 성격 이상한 형이야.

어쨌든. 챔피언 벨트라.

브로일러에 이어서 WFC까지. 내 생에 두 번째 벨트를 획득했다.

필승형의 말마따나 이 벨트 하나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피가. 눈물이 깃들어 있겠지.

문득 예전 스트리트 파이트의 박기영 선수와의 시합 때가 떠올랐다.

그날 시합에서 너무나도 가볍게 승리를 손에 쥐고 케이지를 내려오는데, 무대 아래에서 남몰래 눈물흘리던 박기영 선수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승리의 무게’라는 걸 느꼈었지.

-그러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될 만큼 노력하면 되잖아요. 상대방도 노력했겠지만 나도 노력했다. 그러니 떳떳하다. 라고 말 할 수 있을만큼.

그리고 그날 저녁 우연히 만난 아름이 에게 전해받은 뜻밖의 위로와 응원.

그런 모든 것들이 짧은 순간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며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나. 노력했구나.”

샤워실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문득 자리에 서서 주먹을 쥐어봤다.

“노력했어.”

승리의 무게감이나 상대 선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그만큼 노력했구나 싶었다.

웃긴 일이지만, 케이지에서의 승리 인터뷰 때보다 지금 이 순간. 홀로 터덜터덜 샤워실로 향하다가 문득 ‘진짜 챔피언이 되었구나’ 싶은 실감이 들었다.

“WFC 미들급 세계 챔피언이라. 하하.”

생전 안하던 혼잣말까지 중얼거리게 할 정도로. 그 정도로 좋았나보다.

2.

-블레이크. ‘WFC 274? 역대급 졸전. 미첼은 방심했고 강해서는 행운아?

-WFC 챔피언을 복싱 세계 챔피언과 같은 선상에서 보지말아달라? 평범한 프로 선수 선에서 정리된다? 블레이크의 말. 말. 말.

=지난 일요일 오후(현지 시각 토요일 오후)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서 펼쳐진 WFC 274 이벤트에서 한국인 파이터인 강해서 선수가 미첼 코너 선수를 꺾고 아시아인 최초로 WFC 미들급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격투기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요. 그와 함께 주목을 받은 전직 WFC 선수가 또 있습니다. 바로 WBC 프로 복싱 선수로 전향한 전 WFC 라이트헤비급 파이터인 블레이크입니다.

블레이크는 오늘 오후 자신의 SNS를 통해 ‘강해서는 그저 운 좋은 애송이일 뿐이다. 한국은 그의 업적을 높이 살 필요가 없다. WFC 중량급 타이틀은 세계 타이틀과는 무게가 다르다. 한국의 반응을 보면 아시아 최초로 세계 타이틀을 획득한 듯 말 하는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와 같은 글들을 게시하며 국내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하략)

┕근데 블레이큰지 후레이큰지 저 새끼는 왜 자꾸 나댐?

┕그러겤ㅋㅋㅋㅋ 행운아 좋아하네 지난 서울 시합에서 러키펀치로 겨우 이긴 게 누군뎈ㅋㅋㅋ(영상 링크)

┕강해서만 욕하는 게 아니라 한국을 싸잡아서 욕하네ㅋㅋ 저번 시합 왔을 때 한국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ㅋㅋㅋㅋㅋ

┕근데 솔직히 한국이 오바떠는건 사실임ㅇㅇ WFC 챔피언이 뭔 세계챔피언이냐? 중량급 첫 챔피언이라고 어제 오늘 뉴스고 신문이고 계속 떠들어대는데 내가 다 쪽팔림ㅎ

┕저 새끼 일본인이나 중국인 아님? 지금 옆 나라에서 강해서 까기로 ㅈㄴ 바쁘다던데

┕WFC 챔피언이면 세계챔피언이지 뭐 ㅋㅋㅋ 세계에서 제일 큰 MMA 단체에. 제일 실력 좋은 선수들이 모인 시장인데? 거기서 챔피언 먹었으면 세계 챔피언이지 뭐 ㅋㅋㅋㅋ

┕어쨌든. 미들급에서는 강해서가 세계 최고임. 일단 2위 단체인 브로일러 챔피언도 먹었잖아? 브로일러랑 WFC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이면 적어도 미들급에서는 강해서 까면 안 되지

┕응 아니야~ 아직 브라이언 있어~ 브라이언이 브로일러 미들급 챔피언임~ 브라이언이 WFC 남아있었으면 미첼은 1라운드에 벨트 반납했을거임~

┕아 ㅅㅂ 아까부터 별 벌레 한 마리가 분위기 흐리네. 그러면 넌 브라이언 보러 꺼져 인마

┕블레이크는 강해서가 그렇게 붙자고 할 때는 열심히 도망다니고 말 돌리더닠ㅋㅋㅋ SNS로 똥만 ㅈㄴ 싸네

┕ㄴㄴㄴㄴ 블레이크 방금 글 올림. 갓해서한테 한판 붙자고 도발함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 꿀잼각ㅋㅋㅋㅋㅋㅋ 갓해서님 참교육 함 갔으면 좋겠닼ㅋㅋㅋ

블레이크의 강해서를 비롯한 한국 자체를 향한 광역 도발은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강해서의 승리로 불타고 있던 한국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과 같았으니 말이다.

@wonder_blake

-누가 물어보더군. 미스터 강과 싸우면 누가 이기겠냐고

@wonder_blake

-그래서 내가 말했지. MMA로 붙으면 3라운드. 복싱으로 붙으면 1라운드면 충분하다고 말이야.

@wonder_blake

-내가 미스터 강의 도발에 피해 다녔다고? 잘못은 바로잡고 넘어가자고. 나는 복서로서 자리 잡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야.

@wonder_blake

-그리고 애송이의 타이틀전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선배로서의 배려였지

@wonder_blake

-지금도 생각이 바뀌지 않았으면 언제든 연락해. 애송이 챔피언에게 복싱의 벽이라는 게 어떤 건지 보여줄테니까. WFC 챔피언이라는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건지 알려줄게

그리고 WFC274 시합이 끝난 다음날 올라온 SNS들로 인해 강해서는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를 하루 딜레이 시켜야 했다.

“오. 어서와. 우리 챔피언.”

WFC의 회장 텔론.

그가 강해서와의 만남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시합을 치른 선수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집나간 개 한 마리를 잡아야 하는데. 어떻게. 손 좀 빌릴 수 있겠나 싶어서 말이야.”

강해서와 블레이크. 그들의 이벤트 매치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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