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_타이틀전 일정 >
1.
-WFC 271의 승자 강해서! 내년 봄 미첼과의 타이틀전 결정?
-미첼 코너. 내년 봄 최강의 도전자와의 방어전을 희망한다.
-강해서. WFC 271 이후 3달의 경기 텀. 이대로 충분한가?
=지난 WFC IN SEOUL. WFC 271 시합의 메인 매치에서 WFC 웰터급 챔피언이자 베테랑 파이터인 최두호 선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 강해서 선수. 강해서 선수는 현재 WFC 미들급 타이틀전에 도전할 수 있는 타이틀 샷을 가지고 있으며, 현 WFC 미들급 챔피언인 미첼 코너는 강해서 선수와의 시합을 내년 봄쯤으로 희망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강해서 선수는 지난 11월 말 WFC 271 시합을 치른바 있으며, 미첼이 원하는 2-3월 사이 타이틀전을 치르게 될 경우 경기 텀이 너무 짧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대로 미첼의 경우 지난 3월달에 방어전을 마지막으로 휴식기를 가져왔으며 강해서 선수를 대비해 벌써부터 혹독한 트레이닝 캠프에 들어갔다는 관계자의 인터뷰를 엿볼 수 있었다.
┕바로 내년 2-3월? 너무 빠른 거 아님? 벌써 12월 말인데?
┕ㅇㅇ 타이틀 샷이 쉽게 쥐어지는 게 아닌 만큼 철저히 준비해서 일정 잡는 게 좋을 듯
┕아직 확정인 건 아니?
┕ㅇㅇㅇ 미첼이 원한다고만 했음.
┕챔피언이 개양아치네ㅋㅋㅋ 캠프기간은 줘야 될 거 아냐
┕미첼 입장에서도 시합이 너무 없었으니 이해는 감ㅋㅋ 일 년에 한경기 뛰어서 뭐먹고 사냐;;;
┕그건 그럼ㅋㅋㅋ WFC 돈 짜게 주는 걸로 유명한데. 미첼 지난 방어전에서도 35만 달러인가? 4억도 못 벌지 않음?
┕ㄹㅇ... 딸린 식구가 몇 명이고 캠프에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일 년에 한겜 뛰어서 답 안나오지
┕그래도 내년 봄은 말이 안 됨. 강해서도 준비기간은 있어야할거 아녘ㅋㅋ 저러고 지면 또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이지랄 할 텐데
인터넷을 보니 한동안 잠잠하던 격투기 커뮤니티에서는 나와 미첼의 이야기로 한창 시끌시끌했다.
WFC에서 보내준 시합제안서에는 미첼과의 매치가 가능한 시합과 날짜들이 몇 개 있었는데, 미첼은 그 중 가장 빠른 일정의 시합에서 나와 붙길 원한다는 의사표현을 공개적으로 해버린 것이다.
“아이고. 우리 선수님. 쉬고 계셨습니까!”
“... 고만 좀 해요.”
“뭘 그만해요. 우리 선수님. 아니. 우리 프로님한테 당연히 공손해야지.”
“...”
필승 형은 며칠 전 슈퍼 익스트림 짐에 두호 형을 보러 갔을 때 이후로 계속 저러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진짜 스파링을 가졌고, 필승 형은 오랜만에 찾은 본인의 체육관에서 나한테 신나게 두드려 맞았으니까.
“별 쎄게 때리지도 않았구만.”
“뭐 인마? ”
“차라리 쎄게 때릴걸 그랬나.”
“... 왐마. 이 자슥 보소. 행님을 그래 때리고 싶어서 어째 참았대? 쳐. 쳐 인마. 쳐!”
“진짜 쳐도 돼요?”
-후다닥
주먹을 들어 올리자 후다닥 도망가는 필승 형.
“인마. 너 그러는 거 아냐. 현역이 은퇴한 형한테 주먹 쓰고 그러는 거 아니다?”
“알겠으니까 이리 와요.”
그제야 빙글빙글 웃으며 다가오는 필승 형.
나날이 날 놀리는 실력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안 코치님은. 아직 고민 중이세요?”
“그래 인마.”
아마 필승 형도 안 코치님이 보내서 왔을 거다.
“불안요소가 많아. 뭐가 그렇게 급하냐. 내년 5월쯤에 붙어도 충분해.”
“하하하.”
역시나. 다음 시합인 미첼과의 시합 일정 때문에 온 게 맞았다.
WFC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이벤트를 가지고 있는데, 이 이벤트란 경기 시합을 말했다.
지난번 두호 형과 내 시합이 있었던 것과 같이 숫자가 붙은 시합은 ‘WFC 메인이벤트’ 라고 해서 PPV 이벤트에 속했는데, 다른 PPV 이벤트에 비해 WFC와 연계되어 있는 방송국들 중 가장 메이져한 방송사들을 통해 중계를 했다.
한마디로 가장 돈이 많이 되는 시합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인기 좋고 이슈 되는 선수들간의 매치들만이 흔히 ‘WFC 넘버링 시합’ 이라 불리는 이벤트에 설 수 있었다.
그 외에도 WFN이라고 해서 WFC FIGHT NIGHT라던지. TWF라고 해서 THE WORLD FIGHT. WFC와 제휴 맺어진 각 개별 방송사에 제공하는 WFC ON TV 같은 이벤트도 있었다.
WFC에 소속된 선수는 6개 체급. 여성 선수 4개 체급까지 모두 포함해서 총 700여명이 조금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700명의 선수들이 각 체급으로 공평하게 나뉘어 소속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미들급은 WFC에서도 가장 선수층이 두꺼운 체급 중 하나였고, 소속된 미들급 선수만 120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그 뒤를 이어 헤비급이 100여명. 라이트 헤비급이 약 70여명 쯤 되고.
“5월 달도 확실하지가 않잖아요. 라무차 방어전이 그때로 잡히면 더 뒤로 밀려야 한댔잖아요.”
“안 잡힐지도 모르지.”
“잡힐지도 모르구요.”
“끙...”
중요한 건. 이 많은 선수들이 단 하나의 단체에서 활동한다는 거였다.
700명의 선수가 있다는 건 단순 계산으로 한 선수가 한 번의 시합만 가진다 하더라도 총 350개의 시합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보통 하나의 이벤트에는 메인카드 다섯 개와 언더카드 네 개에서 다섯 개 정도 배정되는게 보통이었는데, 그러면 넉넉잡아도 총 10개의 시합이 잡힌다. 단순 계산으로 보면 1년에 약 35개의 이벤트를 열어야 350번의 시합. 약 700여명의 선수들이 한 번씩이라도 시합을 치르게 된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난해 WFC가 오픈한 이벤트는 총 42회.
그것도 넘버링 시합과 WFN, TWF, 개별 채널 이벤트까지 모두 포함한 횟수였다.
한마디로 한명의 선수가 연 평균 2회를 뛸 수 없을 만큼 이벤트의 수가 적다는 거였다.
“2월에 있을 넘버링 시합 아니면. 5월. 길면 6월 이후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거니까요. 그럴 바엔 차라리 2월달이 낫지 않겠어요?”
“저쪽은 애초에 그걸 염두에 두고 벌써 캠프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어. 괜찮겠냐.”
“하하. 뭐.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는데요. 저라고 이제껏 놀다가 갑자기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텔론 회장의 업무이자 가장 큰 권한이 선수들의 시합 일정을 짜는 거라 들었다.
브라이언이 일 년 넘도록 시합을 뛰지 못한 것이라던지.
누군가는 시합을 뛰어도 PPV 수당이 큰 넘버링 이벤트에는 뛰지 못하고 파이트 나잇이나 채널 시합을 뛰어야 하는 것.
이런 모든 시합의 흥행도를 분석하고 메이드 하는 게 텔론 회장의 권한이었고, 권력이었다.
내게 주어진 선택권은 2월 말에 예정된 넘버링 시합과 5월 넘버링 시합.
넘버링 시합이라는 메인 매치는 한 달에 한번, 일년에 14번 내외로 개최되는 이벤트로 내년 2월 말의 이벤트 메인카드가 비어있었고 그 다음으로 비어있는 게 5월 이라고 했다. 그나마도 5월 메인이벤트는 현 WFC 헤비급 챔피언인 라무차의 타이틀 방어전이 잡힐 경우 그 이후로 다시 잡아야 할지도 모르고.
-끼익.
“해서야. 필승아. 둘 다 잠시 들어와.”
“넵!”
“네에.”
한창 필승 형과 타이틀전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열리며 안 코치님의 호출이 이어졌다.
“앉아라.”
역시나 푸욱 꺼지는 사무실의 소파 가운데 자리.
언제 한번 소파나 바꿔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안 코치님이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자. 일단 이것들을 봐라.”
안 코치님이 건넨 자료는 미첼 코너에 관한 자료들과 2월 시합일정으로 진행했을 시 고려해야 할 훈련 및 캠프 스케줄들이었다.
이건 또 언제 준비하신 걸까.
“우선. 미첼 코너는 해서 네가 브로일러에서 마주했던 레이몬드 같은 얼빠진 선수와는 차원이 달라.”
“넵.”
“WFC에서도 가장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는 미들급. 그곳에서 왕좌를 지켜내고 있는 선수다. 괜히 인간계 최강이라고 불리는 게 아냐.”
확실히 안 코치님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미첼의 시합은 몇 번이고 돌려봤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미첼이 인간계 최강이라 불리는 이유. 미들급 왕좌에서 장기집권을 할 수 있는 이유.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
“올라운더. 그리고 철저한 분석과 대비... 아닌가요?”
“...맞다. 그래도 나름 파악은 하고 있었구나.”
“하하하.”
안 코치님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셨다.
내가 했던 말마따나 미첼은 정말 카멜레온 같은 선수였다.
올라운더로서 타격과 그라운드가 모두를 최상위 수준으로 구사했는데, 그의 지난 시합들을 찾아보면 매 시합마다 조금씩 그 움직임이 달랐다.
“요즘도 복싱 쪽이랑 시끄럽지?”
“하하. 블레이크 이놈이 계속 미꾸라지처럼 도망치네요.”
갑자기 복싱 이야기를 꺼내는 안 코치님.
안 그래도 블레이크와의 이벤트 매치를 한번 열어보고자 했는데, 복싱계로 넘어간 블레이크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정작 시합에 관한 이야기에는 답을 하지 않으며 피해 다니고 있었다.
“복싱에는 장기집권 챔피언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종합격투기는 그렇지 않다. 왜일까.”
“...변수. 때문일까요?”
종합격투기는 복싱에 비해 고려해야할 게 너무 많았다. 펀치. 킥. 팔꿈치. 무릎. 그라운드 등등.
그러다보니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처럼 누가 봐도 쟤가 이기겠다 했던 선수가 어이없는 펀치나 킥 한방에 쓰러져 패배하는 경우도 왕왕 존재했다.
“반은 맞았다. 반은 틀렸고 말이지.”
“음... 넵.”
“일단 변수 때문인 건 맞다. 종합격투기는 가위바위보처럼 선수간의 상성이 있지. 같은 베이스의 선수라고 다 똑같은 것도 아니고. 예를 들어 복싱 베이스 선수가 레슬링 베이스 선수에게 약하다지만, 복싱 베이스이면서 레슬링 방어도 우수한 선수는 오히려 타격으로 레슬링 베이스 선수를 잡아낸다.”
“그렇죠.”
“중요한건 상대방이 일으킬 수 있는 ‘변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하느냐다. 그런데 MMA는 워낙 변수를 창출해내는 부분이 많으니 그걸 모두 통제하기가 어렵지.”
“...”
“미첼은 그걸 해내는 선수다. 복싱. 킥복싱. 주짓수. 레슬링. 훈련 중독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모든 분야를 섭렵한 미첼은 상대 선수의 변수를 억제하고 자신이 의도한 방향대로 시합을 이끄는 걸 잘 하는 선수야.”
미첼의 시합을 보면 타격이 강한 선수에게는 타격에서 이득을 보지 못하게 탄탄한 타격 방어를 선보이며 그라운드로 시합을 풀어간다. 그라운드가 강점인 선수에게는 정 반대로. 또, 자신과 같은 올라운더 파이터에게는 그나마 상대방이 약한 구석을 찾아 압도한다.
타격도. 그라운드도. 힘과 스피드 또한 모두 최상급 수준이기에 인간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챔피언. 그게 미첼 코너였다.
“나는 이미 그를 한번 겪은 바 있지.”
“아! 두호 형님이랑 처음 WFC 갔을 때죠? 기억하죠. 크으.”
한창 조용히 있던 필승 형이 신나게 입을 열었다.
“그때 진짜 아쉬웠는데. 완전 박빙. 저는 두호 형님이 이기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래. 두호도 따지고 보면 올라운더형 파이터지. 같은 성향의 선수끼리 맞붙으면 상위 호완인 선수가 하위호완인 선수를 잡아먹기가 훨씬 쉽다.”
“그 말인즉슨. 두호 형과 미첼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 말이죠?”
“그래.”
두호 형이 미첼이랑 붙었던 적이 있구나. 들어보니 아깝게 패배한 것 같았고.
“난 오히려 잘 됐다고 본다.”
“...뭐가요?”
“만약 지난 시합에서 해서 네가 지고 두호가 타이틀 샷을 얻었다면. 아마도 최악의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결과라면...”
“두호가 아무것도 못해보고 일방적으로 패배하는 결과 말이다.”
“...”
같은 올라운더라면 더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상대적으로 모자란 선수를 제압하기 훨씬 쉽다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지금은... 두호 형과 미첼의 차이가 그만큼 심해졌다는 건가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십년 전에는 비등했지만, 그때 미첼은 20대 초반이었고 두호는 30대 초반이었으니까.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서로가 성취하는 것과 잃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어.”
“...”
“둘 다 값진 경험이라는 걸 쌓았지만, 신체적인 부분에서 보면 미첼은 성장했고 두호는 퇴보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클거야.”
두호 형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만 이 부분은 어떻게 할 말이 없었다.
세월이라는 것은. 육체적 전성기라는 것은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차라리. 해서 너처럼 한쪽으로 특화된 스타일이 미첼을 잡기에는 좋을 거다.”
그러면서 종이 한 장을 훈련 스케줄 표를 보여주는 안 코치님.
“2월 시합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있지. 그곳에서 네 타격을 완성시켜보자. 그러면 이 시합. 우리가 가져올 수 있을 거다. 챔피언 벨트와 함께.”
그곳에는 훈련을 위한 라스베이거스 캠프가 될 체육관 리스트와 코치진. 그리고 비행기 티켓 내역까지 있었다.
“정 2월 달 시합을 해야겠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지. 올 연말은 없다고 생각해라.”
공식적으로. 팀 피스트의 WFC 미들급 타이틀전 대비 캠프의 일정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