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94화 (94/203)

< 94화_어떻게 하지? >

1.

“SM...R... 이요?”

블레이크에 대한 뉴스를 검색하다보니 어느새 도착한 병원.

시합 데미지 정밀 검사를 위해 찾은 김에 지난 검사에 대한 결과도 받기로 했는데.

“네. 생소하실 겁니다. SMR 뇌파에 대한 건 학계에서도 이야기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네.”

“어쨌든. 쉽게 말씀드리자면 강해서 씨는 운동에 집중했을 때 SMR 뇌파가 보통 사람들이 비해 월등히 많이 발생됩니다. 더 디테일하게는 따로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말이죠.”

지난번 카이서스와의 스파링 때부터 느꼈던 집중 상태 때의 두통.

그걸 검사받기 위해 대학병원을 찾아 이런저런 검사를 했었다. 하는 김에 미국에서 했던것과 비슷한 운동 능력 테스트와 뇌파검사 이런 것도 했었는데 그 결과가 오늘에서야 나왔다.

“다만. 이 SMR 뇌파라는 게 급격한 체중감량이나 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합니다. 실제로 체중감량에 의해 SMR파 감소와 High-Beta파 증가에 대한 논문도 있을 정도니까요.”

“하이 베타파요?”

“쉽게 말하자면. 강해서 씨의 뇌파 활동은 급격한 체중감량이나 스트레스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SMR 뇌파는 보통 어딘가 집중하거나 몰입했을 때 발생하는데, 현대에서는 뇌전증의 치료나 ADHD같은 증상에도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고 있는 뇌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몰입. 집중이요.”

확실히 어려서부터 집중력 하나는 좋았다.

예전에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내게 푸념처럼 이야기했듯이 놀 거 다 놀면서도 적당히 시험기간에만 집중하면 평균 이상의 성적은 받았고, 어떤 운동이든 취미도 초반에는 남들보다 빠르게 습득하고 달성했었다.

“어쨌든. MRI나 다른 검사 소견으로도. 강해서 씨에게 눈에 띄는 이상 소견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강해서 씨의 뇌파에 대해서 조금 더 연구해보고싶긴 하지만...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개인적인 부탁을 드리기도 그러네요.”

“네? 아. 하하. 아닙니다.”

“지난 주말. 최두호 선수와의 시합은 정말 잘 봤습니다. 저도 팬이에요.”

뭔가 심각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하다가 주먹을 휙휙 휘두르는 의사 선생님.

교수라는 직함에 맞지 않게 어린아이처럼 ‘저도 왕년에는...’ 이라는 서두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셨다.

‘이거. 필승 형이랑 친하신 이유를 알겠네.’

애초에 이곳 대학병원 원장님을 찾았던 이유가 필승 형과의 친분 때문이었다.

필승 형이 선수시절부터 검진을 받기 위해 자주 찾았던 교수님으로 뇌 의학 쪽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교수님이라고 했다.

“SMR 뇌파가 높은 건 좋은겁니다. 집중도와 몰입도가 좋다는 거니까요. 다만 무리한 체중감량과 수분손실. 스트레스 등은 뇌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아요. 평소와 컨디션이 다르거나 집중력이 떨어진다면 그런 요인들이 있을 테니 주의해야합니다.”

“넵!”

사실 지난 검사 때 집중을 하라곤 했지만 시합 때처럼 ‘집중력 최대 모드’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조금 신경 쓴다는 정도의 집중도?

과연 최고조로 집중했을 때는 어떤 수치가 나올지 궁금했지만 지난번 미국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괜히 말도 안 되는 수치가 나와서 진짜 날 해부하려 들면 안되니까. 물론 진짜 해부를 하진 않겠지만 연구대상이 되긴 하겠지.

‘그나저나. 카이서스의 뇌파도 궁금해지네.’

그가 사는 세상이 정말 내가 보는 세상과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그런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래? 별 이상 없다지?”

“네. 지난번 검사도 다 정상이라 하고, 시합 이후 데미지도 보이는 부분 없다고 하네요.”

교수실을 나서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필승 형이 쉬지않고 말을 걸어왔다.

“우리 오기 전에 두호 형도 왔다갔다더라.”

“두호 형이요?”

“너한테 엄청 두드려 맞았잖아.”

“...”

말을 또 저렇게 하시지.

두드려 맞았다가 뭐야 두드려 맞았다가. 치열한 시합을 펼친 거지.

“두호 형. 지금 슈퍼 익스트림 짐에 있으니까. 거기 담당자가 나 따라서 여기 많이 와봐서 교수님 연락처를 알거든.”

“아아.”

뜬금없이 두호 형 이야기가 나와서 뭔가 했더니. 슈퍼 익스트림 쪽을 통해서 전달받았나보다.

“그래서. 뭐래요? 문제는 없대요?”

“정확한 건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아는데. 당장 보이는 큰 문제는 없었대. 다행이지.”

“네. 다행이네요. 정말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날 시합에서 두호 형의 안면에 제대로 꽂힌 펀치가 한두방이 아니었기에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었다.

“근데 얼굴이 완전 이-따시 만하게 부어가지고. 보러 갈래? 지금 완전 절정이라던데.”

“... 됐어요.”

“야. 야. 이거 사진이라도 봐봐.”

“아! 안 봐요!”

증말.

사람이 못됐어.

어쩜 저렇게 장난치는 걸 좋아할까.

“그래도. 한번은 가봐라. 얼굴 부은 거 다 가라앉으면.”

“...네?”

“두호 형도 기다릴 거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 장난치고 놀리려던 목소리와는 달리 갑자기 진지한 분위기를 잡는 필승 형.

“지금은 퉁퉁 부은 얼굴이라 너한테 보여주기 부끄러울 거다. 두호 형도. 하지만 분명히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자기를 넘어서 타이틀에 도전하는 아끼는 동생을.”

“...넵. 가봐야죠. 안 그래도 가보려고 했어요.”

“그래. 새끼. 아. 이것 좀 볼래?”

그는 내 머리에 손을 올려 머리를 헝클이더니 계속 진지한 분위기로 폰을 들이 밀었다. 장난 끼가 너무 넘치고 말이 많아서 그렇지. 참 좋은 형이란 말이야.

“이게 뭔.... 아! 진짜!”

폰에는 이마와 눈두덩이 볼살까지 퉁퉁 부은 상태로 자고 있는 두호 형의 사진이 떠 있었다.

“푸하하하. 완전 웃기지? 이거 네가 때린거야 인마. 푸하하하.”

...좋은 형이라는 거 취소다. 사람이 정말 못돼 처먹은 사람이다 저건.

*

“... 이상입니다.”

WFC 회장인 텔론의 비서는 간략한 브리핑을 마치고는 정자세로 서 바닥을 보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텔론은 라스베이거스 WFC 본사의 최상층에서 창문을 내려다보며 씹듯이 말을 뱉었다.

“항상 이래왔지. 조금만 크려고 하면. 조금만 기지개를 펴려 하면. 복싱계는 항상 이딴 식으로 태클을 걸어왔어.”

WFC가 지금의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텔론은 미국 복싱협회와 무수히 많은 싸움을 겪어야 했다. 아니, 말이 싸움이지 일방적인 폭력에 버텨야 했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종합격투기의 스포츠화를 반대하며 법안을 발의하고 시합을 신고하는 건 예사였다.

WFC의 중요 이벤트 날에 맞춰 복싱 빅 매치를 성사시켜 같은 날에 무료중계를 한다든지 WFC의 뛰어난 선수들을 프로모터들을 이용해 복싱계로 빼가는 행위 등. 복싱계의 WFC 죽이기는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

비서는 속으로 ‘회장님도 지난 WFC271 시합을 브로일러 미들급 타이틀전과 같은 날에 추진하셨잖습니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말로 옮기지는 않았다.

지금 텔론 회장이 브로일러나 FFC같은 중소 MMA단체에 하는 행위는 지난 세월 WFC가 복싱협회에 당했던 것들과 한 치도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복싱협회보다 더욱 심한 면이 있으면 있었지 모자라지는 않을 정도.

단적인 예로 WFC에서 브로일러로 전향한 브라이언의 미들급 타이틀전은 11월 마지막 주에 싱가포르에서 치러졌지만, 동시간대 한국에서 치러진 WFC271 이벤트로 인해 겨우 기사 몇 줄을 내는 정도로 그치며 PPV 수입에서 처참한 흥행실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한국에서 들어온 소식이 있습니다.”

“한국?”

“네.”

비서는 복싱 계와 블레이크에 관한 동향 브리핑 이후 한국에서 전달받은 내용이 담긴 종이 한 장을 텔론에게 전했다.

“흐음. 그래. 이런 일이 있었지. 강해서와 블레이크에 관한 자료 있나?”

“여기 있습니다.”

한국에서 전달받은 소식은 이번 WFC271의 우승자인 강해서가 블레이크와의 매치를 원한다는 의지였다. 그게 복싱이 되었든 MMA가 되었든. 가능만 하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OK라는.

“이건. 그래. 쓸 만하겠어.”

비서는 강해서의 의지를 전달받자마자 그와 블레이크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을 조사했고, 오픈 워크아웃 때부터 계체량. 시합 이후 블레이크의 SNS 내용까지 모두 보고서로 만들어 두었었다.

텔론 회장은 그 보고서를 보며 아주 흥미롭다는 듯 입 꼬리를 말아올렸다.

“일단. 미스터 강 쪽에 연락 해. WFC는 신경쓰지 말고 도발해도 좋다고. 만약 블레이크나 WBC에서 시합 이야기를 꺼낸다면 우리 쪽에서는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고 말이야.”

“...괜찮겠습니까?”

“무슨 뜻이지?”

“...복싱 시합. 말입니다.”

텔론의 비서쯤 되면 이쪽 업계가 돌아가는 건 누구보다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MMA 선수의 복싱 전향에 대한 이슈 또한 예전부터 파악해둔 바가 있었다.

“강해서 선수는 복싱 베이스 선수가 아닐뿐더러, 복싱에 대한 트레이닝 경력도 거의 없습니다. MMA면 모르지만 복싱 시합은... 괜히 추진했다가 패배하면 저희 입장만 더 우스워 질 수 있습니다.”

“이봐.”

“...네.”

“자네는 말이야. 시장과 데이터를 보는 눈은 훌륭한데. 선수를 보는 눈은 아직 멀었어.”

“...”

“미스터 강은 타고난 타격가야. 복싱? 발차기를 묶는 정도로 블레이크 따위가 덤빌 수 있는 급이 아니란 거지.”

그리고 미스터 강은 애초에 그 카이저에게도 인정받은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야. 라는 말을 삼키며 텔론은 보고서를 테이블에 내려뒀다.

“오히려 자네가 말한 부분 때문이라도 블레이크는 미스터 강의 도발에 쉽게 응할지 몰라. 그나저나. 이거 바빠지겠구만. 미스터 강과 미첼의 시합도 짜야하고 미스터 강의 복싱 시합도 메이드 해야하니.”

텔론은 한국이라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나타난 보석 같은 선수 하나 덕분에 올 연말은 바빠지겠다며 꽤나 좋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뭐. 기분 풀리셨으면 됐지.’

텔론의 비서 또한 블레이크와 복싱계 때문에 오늘 하루 종일 힘든 수행을 해야하나 싶었는데, 밝아진 텔론의 표정을 보며 나름 성공적인 보고였다고 자축했다. 의도적으로 강해서와 관련된 보고를 뒤쪽으로 미뤄뒀던 비서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2.

“WFC 쪽에서 연락이 왔다.”

“허억. 허억. 네?”

“WFC 쪽 연락이 왔다고.”

“아! 네!”

한창 훈련 중인데 안 코치님이 나오셔서는 WFC 쪽 연락을 언급하셨다.

“뭐래요?”

WFC 측에 먼저 연락을 했던 건 우리였다. 정확히는 내 의사를 안 코치님이 전달만 하신거지.

“마음대로 하란다. 만약 시합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WFC는 신경쓰지말라는구나. 텔론 회장이 직접 지시한 모양이야.”

“그러면 복싱 시합을 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래. 텔론 회장도 단단히 화가 났나보다. 블레이크와 복싱협회에 한방 먹일 수만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눈치야.”

“하하.”

블레이크의 SNS에 가서 욕이라도 한바가지 하고 싶었지만, WFC는 이런 저런 제약들이 많다보니 대응 가이드를 잡기 위해 문의를 넣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장려하는 답변이 올 줄이야. 블레이크가 WFC에도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모양이다.

“중요한 건. 이쪽이 어떻게 나가던지 간에 블레이크가 반응을 안 하면 말짱 도로묵이라는거다. 또, 반응을 하더라도 복싱 시합을 하게 되면 네가 불리해. 블레이크는 베이스가 복싱인 선수다.”

“알아요. 블레이크가 복싱 베이스인거. 저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복싱 스파링 꽤 했다니까요?”

“... 넌 아직 복싱을 잘 몰라 인마. 블레이크가 WFC 라이트헤비급 랭킹에는 못 들었지만 그건 그라운드가 전혀 없어서야. 타격. 그것도 복싱만 놓고 보자면 아주 수준 높은 복싱을 구사하는 선수다.”

그랬나...

사실 블레이크의 시합 영상은 제대로 찾아보지 않았었다. 애초에 나와 같은 체급의 선수도 아니었으니까.

너튜브에 몇 개 떠 있는 영상을 보긴 했는데 죄다 테이크다운에 쩔쩔매고 서브미션 패배당하는 하이라이트만 모아놔서 말이지.

“네가 아무리 타격에 강하다 해도. 복싱 룰로 진행되는 시합은 또 달라. 복싱의 메커니즘은 MMA와는 전혀 다르니까.”

“... 스파링 많이 해봤대도요.”

“아니. 이놈이? 그런 이제 갓 프로 데뷔하는 애송이와의 스파링이랑은 차원이 다르다니까!”

보기 드물게 큰 소리를 내시는 안 코치님.

볼튼도 나름 실력 있는 복서이니 카이서스의 체육관에 소속되어 있었던걸 텐데. 너무 선수에 대한 믿음이 없으시네.

“그리고. 블레이크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게 남아있지.”

“네?”

“타이틀전. 미첼 코너 말이다.”

“아.”

블레이크에 집중한다고 잠시 뒷전이 되었지만 당연히 가장 중요한 1순위는 WFC 미들급 타이틀전이었다.

“미첼 측은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방어전이라고 해봐야 벌써 반년 전이니까. 시합 텀은 충분하지. 우리만 준비되면 텔론 회장은 언제든 시합을 잡아주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요?”

미첼 코너. WFC 미들급 챔피언이자 ‘인간계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선수.

블레이크 저 놈도 빨리 처리하고 싶지만, 미첼과의 타이틀전도 미루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의 고민 끝에 내려진 내 선택은.

“안 코치님.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작가의말

오늘 글에 참고 된 논문은 이하와 같습니다.

KCI등재

UCI(KEPA) : I410-ECN-0101-2016-692-001105676

환경에 따른 배드민턴 국가대표 후보선수의 뇌전위 활성과 집중력 차이

KCI등재

UCI(KEPA) : I410-ECN-0101-2015-690-002660887

시합대비 레슬링선수의 체중감량이 뇌파와 훈련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

UCI(KEPA) : I410-ECN-0101-2010-692-003295515

운동선수의 주의집중력에 관한 연구

KCI등재

UCI(KEPA) : I410-ECN-0101-2016-692-002882392

배드민턴 선수의 승부근성과 스포츠집중력 및 인지된경기력

어제 밴과 폴의 경기 이야기를 했었었죠.

흰곰발님 말씀처럼 벤은 신경도 안씁니다 ㅋㅋㅋ 그래서 꿀잼이에요.

패배했지만 이벤트 복싱경기로 번 돈이 현역시절 승리한 경기에서 번 돈보다 많았거든요.

그러다보니 복싱계와 종합격투기계의 페이문제부터 시작해서 많은 잡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참에 백사장이 주머니 좀 풀었으면 좋겠네요!

연애파트는... 하하. 작가의 개인 취향이지만... 작품 중간에 딱! 이어지는 걸 별로 안좋아해서... 하하하. 어쨌든 연애 파트가 중요한 건 아니니 최대한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이야기 만들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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