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79화 (79/203)

< 79화_한번 나가볼래? >

1.

-2라운드 2분 47초. 강해서 승리.

-우와아아아아아!!!

“시청자 여러분! 강해서 선수가 또 다시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WFC 데뷔전에서도 KO로 시합을 마무리 지으며 지금까지 피니시율 100프로라는 믿을 수 없는 전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포츠 TV 중계석의 캐스터는 강해서의 레프트가 제이크의 안면에 꽂히는 순간부터 흥분해서는 그 텐션이 내려올 줄을 몰랐다.

“에... 지금 움직임을 보면. 제이크 선수는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불편해 보였어요. 그 상황에서 레그킥에 오른다리 허벅지를 맞고 균형을 잃은 틈을 강해서 선수가 잘 파고들었다. 그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김국현 해설위원은 느린 화면으로 다시보기를 침착하게 해설하며 강해서의 승리 요소를 해설했다.

“지금 제이크 선수가 의식을 찾은 것 같습니다. 닥터 체크를 받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 강해서 선수의 승리 인터뷰가 시작되는 듯합니다.”

한창 강해서의 승리에 목청 높이던 캐스터는 영상에 마이크를 쥔 강해서가 보이자 텐션을 가라앉히고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선. WFC 데뷔전을 PPV 무대로 꾸며준 텔론 회장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쉽게 시합을 가지지 못한 브라이언. 어서 부상 회복하고 케이지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승리 소감임에도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는 강해서. 어느새 MMA에 첫 발을 디뎠던 모습은 사라지고 꽤나 안정된 프로 격투기선수의 태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제 상대 선수였던 제이크. 엄지손가락 병원 가봐야 할거다. 내가 말 했지. 써밍 하지 말라고. 내가 손가락 완전히 부숴버리려다 참았어. 마지막으로 다음 시합에서 만날 두호 형. 형이 날 MMA로 데리고 왔죠. 1년 전에 했던 말. 기억해요? 세계무대로 따라오라고 했던 거. 드디어 만났네요.

-와아아아아아!!!!

최두호와 강해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몰랐던 현지 체육관의 팬들은 강해서의 승리 인터뷰에 미친 듯한 호응을 보였다.

“아. 그렇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강해서 선수는 최두호 선수와 같은 체육관에서 MMA를 수련 했습니다. 지금은 최두호 선수가 체육관을 옮겼지만, 둘 사이의 우정과 유대는 아직도 끈끈한 것 같습니다.”

“그... 지난번 학센과의 타이틀전에서 최두호 선수가 승리 이후 인터뷰를 한 내용이 있어요. ‘타이틀전 마지막 순간. 강해서 선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그와의 첫 스파링이 뇌리를 스쳤고 그게 이번 타이틀전 승리의 키포인트가 되었다.’ 라는 발언을 한 바 있는데요. 이 두 선수의 시합. 정말로 기대가 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댈러스 현지시각으로 토요일 자정을 향해가는 시간.

한국 시간으로는 일요일 점심께를 살짝 벗어난 시간이었다.

“시청자 여러분. 저희는 여기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더 재미있는 경기. 더 나은 해설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포츠 TV는 강해서의 시합이후 남은 WFC264의 메인매치까지 모두 중계한 뒤 방송을 종료했고, 인터넷이 불타기 시작한 건 지금부터였다.

┕OMG! 미스터 강의 인터뷰 봤어? 다음 시합인 미스터 최와의 시합!

┕그는 미스터 강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라고 했어! LOL! 이런 스토리를 가진 파이터들의 시합이라니!

┕WFC에서는 이걸 대대적으로 홍보해야해! 이제껏 이런 스토리를 가진 시합은 없었다고!

┕맞아! 매번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더러운 마케팅만 펼치던 WFC에 이런 훈훈한 스토리라니!

┕MMA로 자신을 이끌어준 선배이자 스승과 같은 존재와 타이틀 샷을 걸고 한판 승부라니! OMG 난 벌써 지려버렸어!

┕그래서 다음 시합은 언제지? 어디서 하는 거야?

┕둘 다 코리안이니 한국에서 시합을 하지 않을까?

┕와우! 난 지금 한국에서 교환학생중이야! 만약 두 사람의 시합이 서울에서 치러진다면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직접 그것을 보러 갈 거야!

특히 해외 채널에서는 강해서의 마지막 승리 인터뷰를 통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된 네티즌들이 벌써부터 꺼지지 않는 장작을 태우고 있었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모습만 가득했던 MMA판에서 꽤나 훈훈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의 비극적인 경기에 대한 떡밥이 핫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와. 해외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지금 강해서랑 최두호 시합 이야기밖에 없넼ㅋㅋㅋ

┕뭔가. 뭔가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거시 국뽕인가...

┕그래서 걔네 시합은 서울에서 함?

┕지난번에 부산에서 했으니까 만약 한국에서 한다면 서울에서 하지 않을까?

┕ㄴㄴ 미국에서 할듯ㅋㅋㅋ 벌써 이렇게 반응 좋은데 미국에서 해야 관중 뽕을 뽑짘ㅋㅋㅋ

┕개소리. 어차피 체육관 수용 인원은 크게 차이 안남. 한국에서 해도 풀방찰텐데 굳이 미국에서?

┕한국 시합은 미국에서 보려면 거의 새벽타임아니냐?

┕어찌됐든 두 사람 중 하나는 타이틀 샷 받는 거잖아? 와. 한국인이 미첼이랑 타이틀전이라니. 이게 사실인가 싶다.

┕최두호는 미들급 도전 때문에 지금 웰터급 방어전 한번 제꼈음ㅋㅋㅋ 텔론 회장이 좋게 봐줘서 넘어간 건데. 만약 미들급 타이틀 따면 웰터나 미들 둘 중 하나 선택해야 할 듯 ㅋㅋㅋ

┕솔직히 최두호도 강해서도 미첼한테 비비기는 어렵지 않냐? 그래도 인간계 최강이라 불리는 미첼인데. 차라리 브라이언이었으면 몰라.

┕솔까말 브라이언 부상 안 당했으면 브라이언이 강해서 최두호 다 잡고 미첼까지 잡는 그림도 가능했음 ㅇㅇ

┕아놔. 왜 꼭 이런 새끼들이 있지? 이럴 땐 그냥 묻따말 한국 선수 응원 좀 해라

한가한 일요일 오후.

해외 격투기 채널들이 불타는 것 만큼이나 한국 격투기 커뮤니티들도 수많은 게시글들을 양산해내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쯤 되면 최두호나 강해서 광고나 예능 같은 거 나올 때 안됐나?

┕너 같으면 이런 중요한 시기에 티비 나오겠냐?

┕ㅇㅇ 나 같으면 나올 거 같은데. 흥행성은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서 바짝 올려야지.

그리고 최두호와 강해서. 두 사람을 향한 대중의 관심은 뜨문뜨문 보이는 게시글의 말처럼 여러 광고주들과 방송가 사람들에게도 이슈가 되기 충분했다.

“최두호 선수는 엊그제 한국 입국했답니다!”

“강해서 선수는 내일 한국 입국 예정이라고 합니다!”

“최두호는 이미 경쟁 업체 광고를 맡고 있는 게 있고. 강해서는 아직 업계 어느 곳과도 접점이 없는 걸로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주말도 잊고 각 기업체와 방송국의 때 아닌 격투기 선수 섭외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

-그러면 내일 바로 한국 들어오는 거야?

“어. 당분간은 해외 나올 일도 없을 것 같아.”

시합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니 스마트 폰에는 열어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많은 톡과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 중 가장 첫 번째 알림부터 처리하다보니 아름이와 제일 먼저 전화를 하게 되었고.

-아! 나도 봤어. 시합!

“아. 진짜?”

-응! 사실 격투기는 막 피 튀고 그래서... 무서워서 너 나온다고 해도 안 봤거든...

“이번에는 네 노래가 입장곡으로 쓰였으니까 봤다?”

-헤헤헤... 꼭 그런 건 아니구. WFC 데뷔전이라며. 야. 나도 콘서트 준비하면서 짬내서 본거거든?

“또 콘서트 해?”

-응. 당연하지. 여름이잖아. 바다 콘서트부터 행사가 얼마나 많은데.

“아...”

한창 훈련에만 빠져살았더니 시간과 계절 감각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춥다’ 혹은 ‘덥다’의 개념은 있었지만 계절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트렌드가 바뀌는 걸 제대로 캐치하질 못했달까.

‘그러고 보니 요즘 인기 있는 영화나 예능이 뭔지도 모르네. 드라마도 그렇고.’

한창 웹소설 작가로 글을 쓸 때는 온갖 컨텐츠와 서브컬쳐. 최신 트렌드와 밈까지 많은 걸 공부하듯 찾아보고 학습하고 했는데. 최근 일 년 사이에는 전혀 그런 걸 찾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해서야? 뭐해?

“어? 아. 어. 뭐 좀 생각한다고. 미안.”

-난 또. 피곤해서 졸았나 했어. 거긴 이제 자정 넘었지?

“어. 이제 새벽이지.”

-피곤하겠다. 얼른 쉬어. 한국 오면 연락하구.

“오케이. 고마워. 나도 네 노래 덕분에 WFC 데뷔전 전혀 떨지 않고 잘 치를 수 있었어. 한국 가면 연락할게.”

-헤헤. 알겠어! 뿅!

그렇게 아름이와 전화를 마치고나니 잠시 멍해졌다.

“요즘 사람들. 뭐하고 살지?”

너무 세상과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크게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와... 이 웹툰 완결 났네? 헐. 이 영화 벌써 개봉했었어? VOD로도 나왔겠네? 어! 이 영화 시리즈 미드로 스핀오프 나왔잖아!”

오랜만에 예전에 자주 찾던 사이트들을 둘러보고 관심사였던 장르들을 훑어보다보니 시합의 고단함도 잊은 듯 늦은 시간까지 폰을 붙잡고 있게 되었다.

-퀭

“... 해서. 너 어제 안 잤냐?”

그러다 결국 날밤을 까버렸다.

“하하... 비행기에서... 자죠 뭐...”

댈러스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직항으로도 족히 13시간은 걸렸다.

비행기에서 자면 돼. 비행기에서.

“그래? 그나저나. 너 기사 봤냐?”

“무슨 기사요?”

“이것 봐.”

필승 형은 스마트 폰을 내게 들이밀었는데...

“죄다 영어네요.”

“아아. 흠. 제이크 관련 기사다.”

“제이크요?”

“그래. 그 자식. 오른쪽 갈비뼈 금갔다더라. 오른손 엄지도 골절이고.”

“아...”

확실히 어제 시합에서 몸통을 조를 때 뭔가 뿌득하는 느낌이 나긴 했었다.

“그래서 1라운드 후반부터 급격히 움직임이 나빠졌나 봐. 레그킥도 못피한 걸 보면.”

꽤나 통쾌하다는 듯 웃으며 제이크의 소식을 전하는 필승 형.

나름 이걸로 복수가 된 듯해서 다행이었다.

어쩐지. 어제 레그킥을 거의 방어 못하고 다 맞아주더라니. 오른쪽 갈비뼈가 금 갔으면 오른다리로 몸을 지탱하기가 어려웠을 거다. 그러면 왼다리가 레그킥 방어를 하기 힘들지.

“흐아암,,,”

나는 피곤한 목소리로 필승 형의 끝없는 수다에 대충 대꾸하며 하품을 한번 크게 했는데.

“... 컨디션 관리도 선수 몫이다. 어제 시합 끝난 놈이 뭐 한다고 잠도 안자고...”

안 코치님까지 결국 한마디 하셨다.

오랜만의 취미생활이라 멈출 수가 없었어요. 죄송함돠.

“그리고. 아침 일찍 두호한테 연락 왔었다.”

“어? 두호 형이요?”

“그래. 그놈은 벌써 한국이라더라.”

두호 형이?

라스베이거스 체육관에서 훈련 중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한국을 가셨나보네?

“우리도 곧 소식을 받겠지만. 아마도 다음 시합 장소는 서울이 될 것 같다.”

“...다음 시합이라 하면?”

“너랑 두호의 시합 말이다. 두호는 이미 타이틀 샷이 걸린 시합 제안서를 받았으니 내용을 알고 있는 것 같더라. 본인 말로는 너나 브라이언 누가 이기든 시합은 서울에서 가졌으면 좋겠다고 WFC에 어필했다는데.”

“아아...”

하긴. 두호 형이나 나나 둘 다 한국인이니. 한국에서의 시합을 충분히 가질 수 있지. 올 초에 부산에서도 시합이 있었으니까.

“그러면 두호 형은 서울에서 지낼 때 어디 체육관에 있는 대요?”

마음 같아서는 같이 운동하고 싶지만, 팀 피스트에서 함께하기엔 걸리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우선 두호 형과 나는 서로 시합 상대이기도 했고, 두호 형은 나름대로의 코치진을 한국으로 부를 테니 서로 부딪치는 부분도 많을거다.

당연히 다른 체육관에서 훈련하겠지.

“... 슈퍼익스트림 짐에서 훈련한다는구나.”

“아아. 슈퍼익스트림 짐이요?”

슈퍼익스트림 짐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네.

슈퍼익스트...

“어? 필승 형?”

“하... 하하...”

슈퍼 익스트림 짐이면 필승 형네 체육관이잖아!

“나도 늦게 알았어. 팀 피스트로 들어오면서 체육관 운영은 완전 일임하고 왔어서.”

“아니 그래도 그걸 모른다는 게...”

“진짜야. 진짜 나도 오늘 아침에 연락 받았어. 그리고 아직 완전히 오케이 한 건 아니다? 나한테 컨펌 들어온 거였으니까. 거절하라 그럴까?”

“... 아니에요. 뭘 또 거절이야. 그냥 놀라서 그랬던 거지.”

난 두호 형과 만전의 상태로 케이지에서 만나길 원한다.

필승 형의 체육관 이름이 나와서 살짝 놀랐던 거지 싫다거나 불편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우린 마포고. 슈퍼 익스트림짐은 강남 쪽이니. 시합 전까지 볼 일은 그렇게 많이 없겠네요.”

“그거야 모르지. 아직 시합 일정도 안 잡혔으니까. 빨라야 올 가을 이후. 겨울쯤에나 잡히지 싶은데. 모를 일이지.”

브로일러에 비해 WFC는 선수층이 두터웠고 시합을 원하는 선수들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시합간의 텀이 상대적으로 길 수밖에 없었는데, 여름의 초입에 시합을 가진 만큼 다음 시합은 안 코치님의 말씀대로 가을이나 겨울쯤으로 예상해야하지 싶었다.

“이 참에 좀 쉬어라. 푹 쉬는 것도 훈련이야.”

“...네?”

“운동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몸도 완성되지 않았으니 스트렝스 코치만 붙이고 나머지 훈련들은 기본기들만 다진다는 느낌으로 하라고.”

“...넵!”

안 그래도 이번에 한국에 가면 조금쯤은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볼까 싶었다.

물론 격투기도 나를 위한 활동이긴 했지만.

“어? 그러면. 해서 너. 예능 같은 거 한번 나가볼래?”

안 코치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필승 형.

“예전에 나 예능 나갔을 때 알게 된 PD가 얼마 전부터 계속 해서 너 좀 연결해달라고 성화였는데. 어때?”

갑자기 예능이라니.

스트리트 파이트의 추억이 떠오르려 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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