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77화 (77/203)

< 77화_WFC 264 >

1.

“미스터 강?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댈러스에 위치한 한 체육관.

내가 훈련 중인 체육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브라이언이 있었다.

“무슨 일은. 다쳤다고 해서 와봤지.”

나는 준현이와 필승 형을 데리고 브라이언을 보기위해 그의 체육관을 들렀다.

물론 사전에 브라이언 측에 연락해서 방문에 대한 허락을 구한 상태였고.

그런데 얘는 왜 이렇게 삐딱하냔 말이지.

“시합을 코앞에 두고 다친 멍청한 선수를 놀리러 온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돼. 지금도 충분히 힘드니까.”

내가 얘한테 너무 심하게 장난을 쳤나 싶을 정도네. 브라이언한테 나는 대체 어떤 이미지인거야?

“그런 거 아니다. 단순히 같은 MMA 파이터로서 부상 입은 선수 위로차 왔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뭐시냐. 용건 중에는 사과에 대한 것도 있고.”

“...사과?”

“그래. 사과.”

사과 몰라? 먹는 사과 말고 apology 말야.

“... 그래.”

그런데 브라이언은 낯빛을 굳히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꽤나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금전적인 손해가 있었다.”

“...”

사과하러 왔더니 사과를 받아버렸다.

내가 아까 ‘이 곳에 온 용건 중에는 사과에 대한 것도 있다’를 사과 받으러 왔다고 받아들였나보다.

“아니. 아니. 앉아봐.”

나는 브라이언의 어깨를 잡고 억지로 그를 다시 자리에 앉혔고.

“준현아. 정확하게 전달해줘. 나는 사과를 받으러 온 게 아니고 사과를 하러 온거라고.”

이번에는 정확히 내 의사를 전달했고

“...사과를 하러 왔다고?”

“그래. 어찌됐든 브라이언. 네게는 무례한 행동들을 보였으니 말이야.”

나는 브로일러에서 WFC로 넘어오게 된 경위. 그리고 흥행 성 없는 선수들에 대한 WFC의 처우. 이런 것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내가 그에게 했던 행동들에 대한 변명과도 같은 사과를 건넸다.

“그러니까. 날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은 게 아니다?”

“당연하지. 네 앞손 습관. 펀치 빈도. 영상이 닳도록 보고 또 봤어. 단지 쇼였을 뿐이야. 인터뷰는. 퍼포먼스지.”

“... 난 그런 걸 잘 못해. 그리고 잘 이해도 못하고 잘 알아차리지도 못하지. 그래서 썩 좋아하지도 않아.”

응. 그런 것 같아. 너 되게 재미없는 친구야.

“하지만. 그만큼 지금 네가 하는 말도 거짓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그냥 믿는 거지.”

-척.

그러면서 왼손 주먹을 슬쩍 들어 올리는 브라이언.

-툭

나는 그의 왼손에 같은 왼손 주먹을 슬쩍 맞대며 그저 웃었다.

“어쨌든. 미안하다. 3일 남은 시점이라 대체 선수를 구하기는 무리일 텐데. WFC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군.”

내 용건이 끝나자 다시 본인의 잘못을 미안해하는 브라이언.

사실 원래라면 이렇게 미안해야하는 게 맞긴 하다.

브라이언의 실수는 브라이언뿐만 아니라 상대방 선수인 우리 쪽에도 막대한 손실을 입힐 수 있는 그런 것이었으니까.

“아아. 괜찮아.”

하지만 이번은 조금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텔론 회장이 극적으로 대체 선수를 찾은 모양이거든.”

이번에는 브라이언과 같이 비즈니스적인 쇼로 대할 상대가 아닌. 조금 제대로 때려잡아야 할 선수로 말이야.

*

-WFC264 브라이언 제프의 부상에 대한 대책은? 제이크 디아즈!

-제이크 디아즈. 브라이언의 부상으로 WFC 264 이벤트를 3일 앞두고 참전.

-제이크. 감량 준비가 완벽하지 못하기에 계약체중으로 시합 원해.

-큰 그림? 단 2전으로 타이틀전을 꿈꾸는 제이크 디아즈?

=어제 오후(텍사스 주 댈러스 현지시각 17시) WFC 264에서 강해서 선수와의 매치가 예정되어 있었던 브라이언 제프 선수의 훈련 중 부상으로 WFC에는 비상이 걸렸다. 자칫하면 시합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 다행히 WFC에서는 대체선수로 미들급 랭킹 8위의 제이크 디아즈 선수를 급히 투입했으며...(하략)

=WFC 미들급 왕좌를 노리는 제이크 디아즈? 제이크 디아즈 측에서는 이번 WFC264를 통해 최두호 선수와의 매치를 기대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미첼 코너를 꺾고 미들급 왕좌를 노리겠다는 의지를 전해왔다. 제이크 디아즈는 지난 WFC IN BUSAN에서 써밍으로 노 콘테스트를 받으며 타이틀전과는 거리가 멀어졌으나...(하략)

┕와... 갑자기 제이크랑?

┕근데 이러면 서로 ㅈㄴ 애매하겠다 ㅋㅋㅋ 강해서는 브라이언 맞춤으로 훈련했을 거 아냐?

┕ㅇㅇ 그렇지. 근데 제이크가 브라이언보단 확실히 좀 떨어지는 편이라 괜찮지 않을까?

┕제이크는 거의 평체로 나오는 거 아님? 3일전인데 ㅋㅋㅋㅋ

┕WFC265에 출전하려고 한창 캠프 중이었다는 기사가 있는데? 이러면 감량만 안했을 뿐 만전 아니냐?

┕와 근데 3일전에 선수를 구하네ㅋㅋㅋㅋ 그걸 오케이 한 제이크도 대단하다 ㅋㅋ

┕제이크 SNS봐바 ㅋㅋ 한국 선수는 참 쉽다? 미스터 박. 미스터 강. 미스터 최를 잡고 나는 왕좌에 도전할 것이다?

┕어 씨발. 재이크면 필승 형 눈 찌른 그 새기 아님? 우리 필승형 은퇴시킨 새기

┕ㅇㅇ 맞음. 더 재밌는 건 지금 박필승이 강해서 코치진에 들어가 있다는겈ㅋㅋㅋ

┕와... 솔찌 브라이언전보다 이게 더 재밌겠넼ㅋㅋㅋㅋㅋ 어이어이 해서쿤! 필승 형의 복수를 해달라쿠!

잠시 휴식 중에 인터넷 반응을 보니 한창 시끌시끌했다.

그 중에는 필승 형과 제이크의 악연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WFC 공식 매거진에서도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형. 갑자기 형이 막 떠오르는데요?”

“그치? 아놔. 내가 다시 복귀해야하나?”

“푸하하하.”

필승 형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처음 WFC에서 대체선수로 제이크 디아즈 선수를 제안 받았을 때는 모두가 멈칫했었다.

아무래도 필승 형의 은퇴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선수였고, 그 영향 자체가 더티한 플레이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제이크 디아즈 그렇게 쉬운 놈 아니다. 조심해야해.”

“알아요. 그날 시합 직관 갔었잖아요.”

“아! 그래. 그러고 보니 그때 같이 왔던 여자 친구랑은 잘 지내냐?”

“... 여자 친구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새끼. 부산까지 같이 왔을 정도면 인마. 어? 네가 애도 아니고. 흐흐흐.”

...이 형 걱정을 한 내가 등신이지.

나는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계속 들러붙는 필승 형을 뒤로하고 다시 땀을 빼러 움직였다.

필승 형이 괜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더 이상한 농담을 던지는 걸 알았으니까.

어쨌든 나한테는 고마운 기회였다.

지난 한달 반가량의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해줘서.

이번 시합을 준비하며 들인 노력과 돈을 날리지 않게 해줘서.

무엇보다.

그 더럽고 악취 났던 기억을 잊게 해줄 상대가 제 발로 걸어와줘서.

너무 고맙다.

WFC264 계체까지 반나절. 시합까지는 하루를 앞두고 있었다.

2.

-찰칵. 찰칵.

-여기 좀 봐주세요!

-강해서 선수다!

-필승 선수는 어디 있어? 찾아봐 빨리!

계체장에 들어서니 완전 난리 통이었다.

확실히 브로일러와는 주목도 자체가 다른 느낌.

거기다 어제와 오늘에 거쳐 WFC에서 제이크와 필승 형의 스토리를 팔아가며 꽤나 열심히 홍보 했는지 어찌된 게 나보다 필승 형이 인기가 더 좋은 것 같았다.

“이거. 나 대신 형이 리벤지 뛰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럴까? 그때 써밍만 아니었으면 내가 잡는 거였는데 말이야.”

“오늘은 제이크 감량 거의 없었을 텐데. 가능하겠어요?”

“뭐 인마?”

큭큭거리며 웃으며 말을 주고받았지만 제이크가 필승 형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는 절대 아니었다.

제이크가 대체선수로 선정되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상대 선수에 대한 기량 파악이었다.

지난 부산 시합에서의 제이크는 감량 이후 컨디션 회복에 실패해 체력도 기량도 상당히 떨어졌던 상태. 거기다 시차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후일담도 들려왔었다.

필승 형은 선수로서의 본인을 추켜세우기 보다는 코치로서 정확한 기량 진단을 내렸는데, 형의 말대로라면 제이크는 필승 형보다 확실히 앞선 기량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고 했다.

뭐. 영상만 봐도 제이크가 만만한 선수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너도 계체가 편해져서 다행이다.”

“그러게요.”

제이크는 시합 3일 전에 투입된 만큼 미들급 한계 체중을 맞출 수 없다며 계약 체중을 제안했고, 미들급 최대 체중인 185파운드가 아닌 195파운드 계체를 제안했다.

195파운드면 라이트헤비급 체중에 가까웠는데, 킬로그램으로 계산하면 88.5키로 정도가 됐다.

“안 그래도 수분 커팅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는데. 다행이에요.”

“그만큼 상대 선수도 컨디션 좋을 거야. 부산에서 네가 봤던 제이크라고 생각하면 안 돼.”

“넵.”

제이크 측이 요구한 건 두 가지.

195파운드의 계약체중. 그리고 승자에 대한 조건은 이전과 동일하게.

이게 무슨 말이냐면, 계약체중으로 시합을 치르더라도 승자는 동일하게 두호 형과 타이틀 샷을 걸고 싸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말이었다.

시합이 펑크 나는 것 보다는 나은 상황이라 WFC도 나도 당연히 OK를 했고

“나는 그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그의 코치인 옛 동료에게도. 이렇게 알아서 타이틀전으로 향하는 길을 가져다주다니.”

그 결과 제이크는 저렇게 뻔뻔한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

필승 형은 제이크 디아즈가 계체를 마치고 한창 인터뷰중인 것을 보며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는 없겠지.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미스터 박은 내게 패배하고 은퇴한 뒤 미스터 강을 내게 데려왔고, 미스터 강은 나를 미스터 최에게로 인도할 것이다. 미스터 최는 나를 타이틀전으로 데리고 갈 것이고, 나는 미들급 왕좌에 앉을 것이다. 한국은 정말 나를 사랑하는 나라인 것 같다.”

쟤는 뭔 개소리를 저렇게 쳐하는지 모르겠다.

아. 갑자기 브라이언한테 또 미안해지네.

내가 도발할 때는 몰랐는데, 상대방이 도발하니 역시 기분이 더러웠다.

뭐. 대신 때릴 때 일말의 미안함도 느낄 일은 없을 것 같다만.

-194.2파운드. 계체 통과.

제이크 다음으로 이어진 계체. 나 또한 계약 체중 커트라인 안으로 계체를 통과했고, 마이크를 든 진행자가 내게 다가왔다.

“미스터 강. 먼저 브라이언의 부상으로 예기치 못하게 상대 선수가 바뀌게 되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사실 앞선 인터뷰와는 달리 나는 브라이언과의 시합을 진지하게 준비했었다. 그는 훌륭한 파이터이며 전사였다. 그와의 시합을 고대하고 있었던 입장에서 부상으로 인한 상대 선수의 교체는 사실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상대가 저 계집애 같은 제이크라니.”

나는 굳이 sissy 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며 인터뷰에 대답했다.

“와하하. 제이크는 한국 선수들이 자신을 WFC 미들급 왕좌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했는데. 이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음. 그보다. 그는 이미 앞선 시합에서 반칙으로 인해 노 콘테스트를 받지 않았나? 다행히 징계가 없었나보다. 있었다면 나는 이번 시합을 치르지 못하고 많은 돈을 손해 볼 뻔 했다. 당부하고 싶은 건, 이번 시합에서는 눈을 찌르거나. 꼬집거나. 머리를 뜯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는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는 곧잘 반칙을 하니 걱정이 많다.”

이번에는 앞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던 기자들 사이에서도 꽤나 큰 웃음소리들이 들렸다.

먼저 무대를 내려가 날 기다리고 있는 제이크는 얼굴이 붉어졌고 말이야.

“눈 찌르기 하니까 이야기해본다. 미스터 강의 팀 코치 중 WFC 전 미들급 선수인 미스터 박이 있다. 그는 제이크와의 시합으로 은퇴를 하게 되었는데 그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나?”

“음. 박필승 선수는 내가 존경하는 파이터다. WFC 부산 시합 때 나 또한 현장에 있었다. 박필승 선수는 시종일관 유리한 시합을 이끌고 나갔고, 제이크의 저열한 반칙이 없었다면 그날의 승자는 박필승 선수가 되었을 거라고 자신한다. 아. 오늘은 제이크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승자가 바뀔 일은 없을거다.

내가 뱉은 말을 준현이가 한창 통역하고 있는데

“퍽! 그건 실수였고, 그 실수가 없었어도 그는 내게 이길 수 없었어! 나는 저자식의 이의제기에 승리를 빼앗겼지. 내일은 네놈의 얼굴을 두들겨 패고 내 커리어에 승리를 하나 더 추가할거야!”

제이크가 발작을 했다.

실수 좋아하네. 완전 고의적이었던 걸 내가 다 봤는데.

“자. 두 분 선수. 파이팅 포즈만 취해주시죠.”

개별 인터뷰가 끝나고 무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시간.

사이가 나쁘지 않다면 악수정도는 할 법도 한데, 나도 제이크도 그럴 생각은 없어보였다.

-척.

굳은 낯빛으로 날 바라보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제이크.

그는 나보다 약간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는데, 파이팅포즈까지 취하자 눈높이가 평소보다 더 밑으로 내려갔다.

“...”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살짝 내려다보며 팔짱을 꼈다.

-찰칵. 찰칵. 찰칵.

플래시 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제이크의 눈동자는 살짝 당황한 듯 흔들렸지만, 지금 와서 파이팅 포즈를 푸는 것도 우습다고 생각했는지 자세를 유지했다.

진행자는 재미있다는 듯 내 행동을 말리지 않았고, 나는 마치 제이크를 깔아본다는 듯 고개를 치켜세우며 더 도발적인 모습을 취했다.

WFC264까지 이제 꼭 하루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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