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_데뷔전 매칭 >
1.
“아이고 반가워요.”
필승 형이 데리고 오신 특별 코치님이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나를 포함한 체육관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한순간에 집중되었다. 심지어 안 코치님 까지도.
“바, 반갑습니다!”
나는 살짝 말을 더듬을 정도로 놀란 상태로 코치님에게 양손을 앞세운 채 마중 나갔다.
“오! 강해서 선수. 반가워요.”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시는 코치님.
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95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금메달.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98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98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금메달.
99 아시아 선수권 우승.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정말 살아있는 레전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선수.
심건오 선생님이 체육관을 찾아주셨다.
“잘 부탁해요.”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맞잡은 손이 작지만 단단했다.
“선생님. 이쪽으로.”
우선은 안 코치님의 안내로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바로 이어진 레슬링 훈련.
바쁘신 분이 귀한 시간을 내주셨는데 이야기만 하고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빠르게 실전으로 들어갔다.
“요즘 시합.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무 타격만 보여서. 일단 수준파악부터 한번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심건오 선생님은 필승 형의 은사라고도 했다.
필승 형의 아버지와도 인연이 깊었고 필승 형이 레슬링 선수로 활동할 때 직접 가르침을 주기도 하며 인연을 이어오셨다고.
“일단. 들어와봐요.”
내 현재 수준을 파악해봐야 하니 들어와 보라고 여유롭게 웃으시는 심건오 선생님.
키 160의 깡마른 몸집이시다 보니 막상 들어가려니 망설이게 된다.
“괜찮아. 들어와 봐.”
내가 주춤거리자 연이어 웃으시며 들어오라고 재촉하시는 선생님.
“흐읍!”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선생님의 오른쪽을 파고들며 왼 팔을 향해 오른 손을 뻗었고.
-텁
선생님은 내 오른 손을 왼 팔로 잡고는 오른팔을 내 오른쪽 겨드랑이 안쪽으로 집어넣으려 하셨다.
“흡!”
오른쪽 넘기기.
이대로 내 오른쪽 겨드랑이에 선생님의 오른 팔이 다 들어오면 왼팔로 잡아당기며 그대로 엎어치기가 들어올 가능성이 높았다.
-슥.
그렇기에 오른팔에 힘을 줘 당기며 스텝을 당겨 오른쪽으로 체중 이동을 하는데.
-팟! 휘익!
내 오른쪽 겨드랑이에 넣었던 선생님의 오른팔은 그대로 둔 채 내 오른 팔뚝을 잡고 있던 왼손을 잡아채며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심건오 선생님.
-휘릭. 쿵!
“...”
“우와아아아아!”
나는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고 주변에서는 환호성인지 감탄사인지 모를 소리들이 들렸다.
“일어나 봐.”
체육관 매트에 대자로 뻗어있는 내게 웃으며 일어나라고 하시는 심건오 선생님.
“내가 거기서 팔 잡고 그라운드 들어갔으면 이건 무조건 탭이야. 알지?”
“넵!”
“너 오른손잡이지?”
“네.”
키 차이만 나랑 약 30센치.
몸무게 차이 또한 대충 봐도 30키로는 넘게 차이나 보이는데. 팔이 잡힌 순간 뭔가 빨려들 듯 매트에 드러누워버렸다.
“야. 필승아. 네가 와서 얘 좀 잡아줘라. 난 체급 차이가 나서 제대로 못 잡아주겠다.”
“네!”
이번에는 필승 형을 내게 붙여 훈련을 계속 진행시키는 선생님.
“야. 야. 자. 봐? 필승이 너도 내가 여러 번 말했지만. 너넨 기술이 어설퍼.”
필승 형과의 훈련을 잠시 지켜보시던 선생님은 이내 코칭을 시작하셨다.
“필승이 너는 안아 넘기기는 좋은데, 하체 공격이 부족해. 항상 말했지. 그리고 해서. 너는 레슬링 누구한테 배웠어?”
어느새 선생님은 내게도 강해서 선수가 아닌 그냥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셨다.
“저...는 레슬링은 거의 필승 형네 체육관에서 배웠습니다. 주짓수는 미국 쪽이랑 브라질 쪽 코치들한테서 배웠고.”
“그럴 것 같더라.”
씨익 웃으시면서 이내 직접 몸으로 시범을 보여주며 코칭을 지속하는 선생님.
“한국 애들은 레슬링을 할 때 보통 그레코로만형이나 자유형. 종목 하나를 정하고 시작해. 필승이 네가 그레코로만형이었지?”
“넵.”
“그레코로만 레슬러들이 안아 넘기기는 잘해. 상체 싸움을 잘하거든. 그런데 하체 싸움이 부족해.”
이어진 설명은 레슬링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그레코로만형은 상반신만 공격할 수 있는 레슬링 종목이었고, 자유형은 상반신 하반신 모두를 공격할 수 있는 레슬링 종목이라고 하셨다.
“자유형만 배운 애들은 하체 공격은 되는데 몸싸움이랑 붙어서 넘기는 그레코로만 쪽 기술들이 약하거든.”
심건오 선생님은 그레코로만에서 자유형까지 레슬링의 두 종목 모두를 석권하신 레전드였다. 그렇기에 이제껏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던 두 종목의 장점들만을 엮어 MMA에 맞게 코칭을 해주셨고.
“스위치를 잘 해야 해. 들어와봐.”
“넵!”
다시 심건오 선생님을 상대로 들어가는 상황.
-휫! 투웅!
이번에는 넘길 것도 없이 바로 팔을 잡고 휙 돌 듯 빠져나오신 뒤 팔을 목에 걸고는 업어치기로 날 넘겨버리셨다.
“와...”
아무리 훈련이라서 힘을 빼고 하고 있다지만 이렇게 쉽게 넘어갈 줄이야.
그것도 나보다 한참은 작고 가벼운 분한테.
이게 클라스인가 싶었다.
“봐. 이번에도 오른쪽으로 들어왔지. 해서 너는 아직 경력도 짧고 그러다보니까 오른손 쓰는 게 너무 편한거야. 수 싸움 할 것도 없이 그냥 오른팔 잡고 돌아나오면 끝이거든.”
“넵.”
“레슬러들은 수 싸움을 해야 해. 상대 선수가 서 있는 게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상체는 얼마나 숙이고 있고 어떤 자세를 잡고 있느냐. 다 생각해야해.”
“넵!”
이후로도 계속된 훈련.
“더 깊게! 교과서적으로 하지 말란 말이야. 시합인데 정석이 어디 있어? 더 쎄게. 더 아프게. 더 버티기 힘든 자세를 잡아야지.”
정말 교과서적인 자세의 필승 형 또한 자세가 너무 정석적이라며 혼이 났고.
“해서 넌 아직 상하체 밸런스. 좌우 밸런스가 너무 안 맞아. 반응은 너무 좋은데, 반응이 좋아서 넘기기가 쉬워.”
“헐... 넵.”
나 또한 탈탈 털렸다.
“후아... 와. 이게 진짜 레슬링이구나.”
“... 난 은퇴 했는데 왜...”
첫 타임 훈련이 끝나고 나서 체육관에 널브러진 나와, 그 옆에 같이 뻗어있는 필승 형.
“인마. 네가 제대로 배워서 해서 코칭 해줘야 할 거 아냐?”
“그냥 형이 와서 가르쳐주면 안돼요?”
“난 바빠서 안 돼. 고정 프로가 몇 갠데.”
“헐...”
필승 형은 심건오 선생님께 형이라고 호칭하며 편하게 이야기 했는데 저게 왜 이렇게 부러운지 모르겠다.
“자. 두 번째 타임에는 레슬링 방어를 알려줄게.”
“넵!”
보통 하루에 훈련은 3-4타임 정도를 한다.
한 타임에 3-4시간 정도를 하니까 보통 10시간에서 16시간 가까이 훈련을 한다는 이야기.
그 중 오늘은 풀타임으로 레슬링 코칭을 받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비틀.
마지막 타임까지 훈련이 끝나고 나니 정말 서있을 힘도 없었다.
“너 엄청 빨리 늘더라. 레슬링 하기에 몸이 좋아. 팔도 길고 미는 힘도 좋아서.”
“감사합니다!”
“필승이 저게 하도 부탁을 해서. 당분간은 일주일에 한번. 이렇게 와서 레슬링을 봐줄 거야. 오늘 배운거 열심히 복습해.”
“넵!”
주짓수가 뱀처럼 엮여서 당기고 조르는 종류의 기술들이라면, 레슬링은 잡고 던지고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밀어내서 당기고 조르는 종류의 기술들이 즐비했다.
오늘. 단 하루의 짧은 훈련이었지만 정말 알차게 꽉꽉 채워서 기술 코칭과 자세에 대한 티칭을 받았다.
이런 코칭을 일주일에 한 번씩 한달만 받아도 그라운드 방어 쪽으로는 어마어마한 성장이 있을 것 같았다.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심건오 선생님이 체육관을 떠나신 후.
“어때? 괜찮았냐?”
필승 형은 선생님이 계실 때는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어후. 당연하죠. 진짜 많이 배웠습니다.”
카이서스가 지금 복싱 계에서 가장 위대한 챔피언이라고 불린다지만.
심건오 선생님 또한 레슬링 계에서는 카이서스에 못지않은 족적을 남기신 분이었다.
48키로 급으로 세계를 제패하신 후 본인 체급이 사라지자 54키로 급으로 다시 한번 세계를 제패.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올림픽까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신 어마어마한 분이었다.
체급이 작아서 그렇지 커리어로만 보면 진짜 어디 만화에나 나올법한 말도 안 되는 커리어를 가지고 계신 분이 심건오 선생님이었다.
-짝!
한창 필승 형과 오늘 훈련 내용과 레슬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맥을 끊는 날카로운 박수 소리가 들렸다.
“둘. 사무실로 좀 들어와라.”
어느새 심건오 선생님을 배웅하고 돌아오신 안 코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소파에 좀 앉아라.”
“넵.”
얼른 씻고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소파라니.
또 최소 20분은 걸리겠구나 싶었다.
“WFC 측에서 연락이 왔다.”
“오! 빠르네요?”
안 코치님의 WFC측 연락이라는 말에 반응 한 건 내가 아니라 필승 형이었다.
"WFC에서도 꽤나 챙기고 있나봅니다. 하긴. 브로일러 챔피언 자리를 마다하고 이적한 건데 당연히 그정도는...“
“야. 넌 좀 조용히 좀 해라. 훈련 할 때도 하루 종일 떠들더니. 입 안아프냐?”
“...”
결국 필승 형의 투 머치 토킹을 끊어내는 안 코치님.
“자. 봐라.”
WFC 측의 시합제안서 정리본.
우리가 한창 훈련 중일 때 왔는지 이미 안 코치님이 깔끔하게 정리를 해두신 상태였다.
“헐. 요즘 누가 이렇게 종이에 정리를 해서 줍니까? 보기 좋게 파일로 딱 정리해서 태블릿으로 보면...”
“너 나가.”
“...네?”
“나가라고! 아니면 입 닫고 있던지!”
“...넵!”
실제로 손으로 입술을 잡는 시늉을 하며 다시 페이퍼로 시선을 돌리는 필승 형.
나는 이렇게 안 코치님이 정리해서 주시는 게 익숙한데 아무래도 필승 형한테는 조금 낯선 모양이었다.
“...브라이언?”
하지만 필승 형의 입술을 잡고 있던 손가락은 채 몇 초를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야 했다.
“지금 이거. 해서 데뷔전 상대로 브라이언 제프를 붙이겠다는 겁니까? WFC에서?”
“... 그래. 뭐. 한번쯤 거절 의사를 비쳐도 되긴 한데. 일단 너희 의견을 들어보려고 불렀다.”
“하...”
꽤나 화가난 듯 한 필승 형과 안 코치님.
“브라이언... 이 선수. 문제 있어요?”
나름 종합격투기계에 뛰어든 이후 브로일러와 WFC를 막론하고 미들급 경기는 다 챙겨봤다.
각 단체의 랭커들도 파악하고 있었고.
그런데 브라이언이라는 선수는 꽤 낯설었다. 한 번도 시합에서 보지 못한 것 같았으니까.
“... 넌 잘 모를 수도 있겠다. 브라이언 제프. 이 친구 최근 일 년정도 시합이 없었거든.”
“아아.”
그러면 내가 모를 수도 있었다.
랭커도 아니고 시합도 없었으면 뭐.
“그런데... 시합이 없었던 이유가 너무 실력이 좋아서야.”
“...네?”
“텔론 회장이랑 사이가 안 좋거든. 최근까지 4연승이었어. 여기서 한두 번만 더 이기면 타이틀 샷을 달라고 어필 할 수 있을정도인데 텔론 회장은 타이틀 샷을 주기 싫었을 테고. 그래서 시합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지 않은거야.”
“헐... 뭐 그런 게 다 있어요?”
“복싱이랑은 다르지. 협회가 없이 단체가 모든 걸 다 총괄하니 이런 일도 생길 수 있어.”
결국 텔론 회장이나 WFC측에 밉보이면 시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다는 거잖아?
“어쨌든. 이 친구를 해서 네 데뷔전 상대로 지목했다는 건······.”
“WFC에서도 꽤나 모험을 걸었다는 이야기겠네요?”
“그렇지. 브라이언과 텔론이 화해를 하지 않은 이상.”
흐음.
일단 실력은 좋다는데 정확히 어떤 스타일인지 아직 영상도 보지 못한 상태라 뭐라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것보다. 이걸 먼저 봐라.”
그때 안 코치님이 건넨 종이 한 장.
“헐... 이거 진짭니까?”
“그래. 텔론 회장이 직접 약속했다.”
종이에 적힌 것은 이번 시합의 조건 중 하나.
“이번 시합에서 이긴 선수에게. WFC 미들급 타이틀 샷을 건 매치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이 말은...”
“말 그대로다. 브라이언과의 시합에서 이기면. 타이틀 샷을 건 시합을 뛸 수 있다. 거기서도 이기면...”
“타이틀전. 인거네요.”
“그렇지.”
브로일러에서 WFC로 이적하고 3경기.
단 3경기 만에 챔피언 타이틀을 딸 수 있는 고속도로가 여기 뚫려있었다.
작가의말
개인적으로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수 중 한 분이 바로 심권호 선수입니다.
예능에서 친근하게 나오시고, 또 체구가 작아 강호동이나 이만기 같은 덩치 큰 체육인들에게 구박받는? 이미지로 나오셔서 그렇지... 정말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를 쌓으신 운동선수라고 생각합니다.
48키로급을 제패하고 54키로급으로 올라가셨는데, 이게 사실은 2체급이라기보단 3체급에 가까운 체급 증량이에요.
특히 경량급에서 6키로그램이라니...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경량급에서는 단 1-2키로 차이로도 힘 차이가 엄청난데 6키로를 거의 근육으로만 늘려 또 다시 세계무대를 씹어드셨죠...
적어도 레슬링에 관해서만큼은 올타임 레전드에 손 꼽힐 수 있는 분이 아닐까. 라고 저는 생각해보았습니다 ㅎㅎ
또한 제 글에는 원래 현실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가 나오지 않지만 심권호 선수님에 한해서는 어레인지를 해서라도 꼭 등장시키고 싶어 이렇게 글을 꾸려보았습니다.
요즘 유튜브에 간간히 나오시는 것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이상 팬심 가득한 자까의 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