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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대격투천재의 탄생-72화 (72/203)

< 72화_전담 팀 >

1.

“그래서. 메세나인가 뭔가. 후원을 받았다고?”

“어.”

사실 WFC로 넘어가면서 최대의 고민거리 중 하나가 돈이었다.

생각보다 WFC가 브로일러보다 이것저것 제약이 많아 파이트 머니 외에는 금전적 이득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흥행성적이 좋아 PPV 수당을 추가로 받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오히려 브로일러 선수가 WFC 소속 선수보다 주머니 사정이 좋은 경우가 많았다.

“다행이네. 너 그 뭐냐. 스폰서 업체들도 다 떨어져 나갔다며.”

“떨어져 나간 게 아니라. WFC는 선수 개인의 스폰서를 많이 제약하더라고.”

한국에 돌아와 정말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중이었다.

시합 준비를 한다고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친구 놈들도 만나고 정말 오랜만에 치팅데이도 가지고 있었다.

“WFC는 선수 개인 스폰도 터치하는 거야?”

“어. 조금 그런 경향이 있더라. 옷도 WFC가 공식 후원을 받는 업체 옷만 입어야 됨.”

재현이의 질문에 대답한 건 내가 아니라 준현이었다.

“WFC 공식 의류 스폰서 업체가 있어서 단체에서 챙겨주는 파이트 머니가 적은 선수들은 따로 생계형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수준이더라.”

“헐. 세계 1위 단체가 뭐 그따위야?”

“쩝. 세계 1위 단체니까 가능하지. 그런 대우를 받더라도 남아있으려 하니까.”

“허얼.”

기태와 재현이는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듯 연신 놀라는 중이었고.

“진짜 다행이지. 안 그래도 스폰서 다 끊길 판이었는데. 진짜 쉬는 동안 CF나 방송 활동 빡세게 돌아야 하나 했다.”

이번에 대답한 건 준현이가 아니라 나였다.

아닌 말이 아니라 WFC와의 계약서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으니까.

두호 형이 괜히 체육관을 옮긴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스폰서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애초부터 체육관이 돈이 많거나 선수 자체가 돈이 많아야 했다. 아니면 PPV를 빵빵하게 받거나 따로 운동 외 다른 활동을 해야 했다.

선수들의 활동비용은 대부분 스폰서 업체로부터 나온다.

단체에서 챙겨주는 대전료는 한계가 있고, 거기서 세금 떼고 캠프 비용 떼고 체육관이랑 나눠 먹기 하면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거의 없거나 심하면 적자까지도 생긴다.

그걸 채워준 게 기업들의 스폰서인데 특정 스포츠 브랜드의 의류나 운동화를 신거나, 팀복에 특정 기업체의 로고가 박히는 등이 그 일환이었다.

WFC는 그런 선수 개개인의 스폰서십을 많은 부분 통제하며 자체적으로 스폰서십을 맺은 브랜드의 옷을 입도록 강제했다.

“킥. 해서 너도 예능 나갔으면 재밌었을 것 같다.”

“그래. 평생 격투기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예능 같은데 좀 나오고 해서 인지도도 올려두고. 나중에 은퇴하면 방송하면서 살면 좀 편하지 않겠냐? 요즘 운동선수 출신 방송인들 많잖아. 얼마 전에 보니까 박필승도 예능 나오던데.”

재현이와 기태는 내가 CF나 예능 출연을 고민했다고 하니 꽤나 진지하게 그쪽 진로도 놓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일단 내 앞가림부터 하고. 아직은 딴 데 한눈팔 틈이 없다. 이제 진짜 출발선이야.”

“크으. 우리 해서. 언제 이렇게 다 컸냐. 맨날 우리한테 술 얻어먹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러게. 우리 해서. 이제 좀 30대 같네.”

친구들끼리 모이면 진지한 이야기는 언제나 건실한 회사원이던 기태와 준현이의 몫이었다.

나는 그런 진취적인 대화에 끼기에는 조금 상황이 좋지 않았었다. 어쩌면 약간의 열등감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고.

그나마 서브컬쳐에 관심 있는 재현이 놈이 항상 나와 장단을 맞춰 이런저런 취미 이야기나 게임 이야기 등을 했었지.

사실 해외를 다니면서 준현이 놈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그렇지 원래는 재현이랑 제일 가까운 편이었는데. 요즘 친구 놈들한테 꽤나 뜸했던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Rrrrrrr

“아. 잠시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여보세요?”

-해서 오빠!

유나의 전화였다.

-오빠 어디에요?

“나? 지금 친구들이랑 홍대에서 한 잔... 너. 영은 씨한테 들었지?”

-네? 어... 흐흐. 네.

“어쩐지.”

너무 타이밍 좋게 연락이 왔다 싶었다.

유나의 전화를 받으며 술집 내부를 훑는데 저 멀리 우리 테이블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영은 씨가 보였다.

“누구야? 유나씨?”

“오라 그래! 오라 그래!”

재현이와 기태 놈은 이 시끄러운 술집에서도 유나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귀신같이 들러붙었다.

-풉! 오빠 친구들이 저 보고 싶다는 것 같은데요?

“너 오늘은 방송 안 하냐?”

-오늘은 휴방입니다!

“그래? 흠...”

잠시 말을 멈추고 테이블을 둘러보는데... 재현이와 기태 놈은 그렇다 치고 준현이까지 뭔가 간절한 눈빛이었다.

저놈. 저것도 영은 씨랑 뭐가 있었지.

유나가 오면 자연스럽게 영은 씨까지 합류할 수 있는 분위기니, 준현이의 눈빛이 저따위인 것 같았다. 망측한 놈.

“오는 데 얼마나 걸려? 영은 씨는 오늘 늦게 마치나?”

-바로 가면 10분이면 가죠! 영은이요? 아아. 준현 오빠도 있죠?

“어.”

-영은이 아마 오늘 마감 아니라 조금 있으면 마칠걸요? 뒤에 약속 있다 해도 제가 붙잡아둘게요! 걱정 마세요!

“오케이. 그러면 천천히 준비해서 와.”

-네!

유나는 고양이 같은 외모와는 달리 의외로 강아지 같은 성격이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연락하기가 참 편하달까.

“온대? 온대?”

“야 이 병신아! 천천히 준비해서 오라고 했잖아! 왁스 있냐?”

“포마드 있음. 스프레이도.”

“콜.”

이번에도 어김없이 의기투합해서는 화장실로 들어가려 하는 재현이와 기태.

이럴 거면 애초에 좀 꾸미고 나오면 안 되냐.

“야. 나도 같이 가.”

“엉?”

“나도 그. 머리 좀 만져줘 봐.”

“...”

헐.

준현이 너마저...

-휑

결국, 준현이까지 기태 재현이와 함께 자리를 비우고 나니 조금 전까지 비좁던 4인용 테이블이 갑자기 휑해졌다.

“쩝...”

나도 같이 가서 머리에 뭐라도 바를까 싶었지만 시커먼 XY 네 마리가 같이 화장실에 가는 꼴은 생각만 해도 토 나오니 어쩔 수 없었다. 천하대장군의 마음으로 자리를 지켜야지.

“해서야!”

그때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

“...?”

“나야. 나!”

얼굴을 가리듯 푹 덮어쓴 모자에 마스크까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 누군가 했지만 이내 목소리로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헐. 아... 아니. 너 왜 여기 있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름이었다.

“나? 아는 언니랑 잠깐 맥주 한잔하러 왔지.”

“아는 언니? 아. 안녕하세요.”

-꾸벅.

아름이의 소개에 그 뒤에 서 있던, 마찬가지로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여성분에게 인사를 하니 말없이 꾸벅 인사만 받아주셨다.

“우린 이제 나가는 길이라서. 친구들이랑 놀러 왔어?”

“어? 어. 일찍 왔었나 보네 너넨. 안쪽에 있어서 못 봤나 보다.”

사실 바깥쪽에 있어도 알아봤을까 싶었다. 워낙 얼굴을 다 가리고 있어서.

“헤헤. 여기 안쪽은 룸이 있어서 언니랑 가끔 오거든. 근데 우리 진짜 동선이 많이 겹친다. 그치?”

“그렇네. 동네에서도 자주 보고. 해외 나가서도 우연히 마주칠 정도니까.”

이상하게 아름이랑은 약속을 잡지 않아도 한 번씩 마주쳤다.

얘는 톱스타라는 애가 뭘 그리 빨빨거리고 잘 돌아다니는지.

“아. 나는 언니 때문에 먼저 가봐야 될 것 같아. 다음에 체육관에서 봐!”

“어? 어. 들어가. 들어가세요.”

“응! 빠이!”

-꾸벅.

작지만 파이팅 넘치게 빠이를 외치고 술집을 나서는 아름이와 아까전과 같이 고개만 꾸벅 숙여 인사하고 나서는 여성분.

저렇게 가린 거면 아마 저분도 연예인이겠지? 누군지 궁금하긴 하네. 아름이랑 친한 여자 연예인이 누가 있지?

그렇게 아름이가 나가고 나서도 몇 분 정도 혼자 스마트 폰을 보고 있자니 나름 꽃단장을 마친 남정네 셋이 자리로 돌아왔다.

“유나씨는 아직 안 왔어?”

“우리 테이블 옮겨야 하는 거 아냐?”

혼자 남아 휑했던 자리는 다시 친구들로 소란스러워졌고 우리는 곧 도착할 유나를 생각해 6명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오빠!”

마지막 안주까지 자리를 옮기고 나니 딱 도착한 유나.

“유나씨!”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내가 반기기도 전에 재현이와 기태가 먼저 나서서 유나를 챙기며 자리로 인도했다.

“아. 잠시만요. 저 영은이 좀 데리고 올게요.”

“응? 아직 알바 중이지 않아?”

“이제 끝날 시간 다 됐을 거거든요.”

그렇게 유나는 영은 씨를 데리러 카운터로 가더니 술집 사장님과 웃으며 한동안 수다를 떨었고.

“아... 안녕하세요.”

결국, 알바 마치는 시간보다 30분 정도나 빠르게 영은 씨를 데리고 우리 테이블로 돌아왔다.

“어. 안녕하세요. 영은 씨.”

영은 씨가 테이블에 합석하자 눈에 띄게 굳어버리는 준현이.

“풉!”

“푸하하하하! 저 샊... 쟤 왜 저러냐?”

재현이와 기태는 그런 준현이가 낯선 듯 한바탕 신나게 웃으며 준현이를 놀렸고, 그렇게 오랜만의 술자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아까. 손아름 씨 맞죠?”

영은 씨가 한 마디를 꺼내기 전까지는.

“네?”

“우리 술집에 가끔 오시거든요. 손아름 씨. 알바들은 다 알거든요.”

“아... 네.”

“아까 해서 오빠랑 한참 이야기 나누시길래. 놀라서요.”

영은 씨가 아까 나랑 아름이가 이야기하는 걸 본 모양이었다.

“헐! 아름 씨도 있었어? 왜 말 안 했어!”

“너넨 화장실 갔었잖아.”

“전화를 해서라도 불렀어야지! 아놔. 내가 아름 씨랑 같은 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었다니.”

기태는 유독 아쉬워하며 영은 씨에게 아름이가 앉았던 테이블이 어디였는지 물었다가 재현이에게 꽤나 험한 욕을 먹었다.

“흐음. 손아름이랑 친해요? 오빠?”

아직 술도 한잔 안 했는데 꽤나 빤히 날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는 유나.

“어? 음. 같은 체육관이니까? 나이도 같고.”

“손아름이 오빠랑 같은 체육관이에요?”

“어? 어. 내가 말 안 했었나?”

안 했던 것 같다.

그나저나. 나한텐 오빠라 그러고 아름이한테는 이름을 부르니 뭔가 중간에서 되게 어색하고 뻘쭘하네.

“... 거기 일반인도 운동 할 수 있어요?”

“어? 글...쎄? 코치님한테 물어봐야 되는데...”

나는 뭔가 도움을 바라는 눈빛으로 재현이와 기태를 바라봤지만 저 자식들은 그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이었고

“...”

준현이는 영은 씨 때문에 바짝 굳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술이나 한잔하자.”

“오빠 손아름이랑 술 마신 적. 있어요?”

“엉? 아니?”

같이 밥이나 커피는 마신 적 있지만, 술을 마신 적은 없었다.

술 같은 건 안마실 것 같은 이미지라 아까 술집에서 봤을 때 엄청 놀랐었지.

“그래요? 오키. 짠!”

어느새 살짝 기분이 풀린 듯한 유나는 잔을 들며 짠을 외쳤고.

“짠!!”

나 또한 부디 오늘의 술자리가 무난하고 편안하게 넘어가길 바라며 잔을 맞댔다.

2.

“읏차!”

-쿵!

“반갑습니다!”

뭔가 무거운 걸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팀 피스트’ 체육관을 깨우는 인사.

“어. 왔냐.”

안 코치님은 꽤나 시크하게 인사를 받아주셨고.

“필승 형! 왔어요!”

나는 아주 반갑게 인사를 받았다.

“그래. 이 몸이 행차하셨다!”

내가 한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전담 코치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번 훈련 캠프에서 ‘제대로 된’ 코치진과 트레이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느꼈으니까.

“자. 이제 내가 왔으니 걱정은 붙들어 매.”

“하하. 든든해요. 필승 형.”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게 바로 필승 형의 영입이었다.

정말 얼마 전까지도 WFC 미들급에서 뛰었던 선수인 데다가 해외의 유명 코치들이나 체육관들도 많이 알고 있어 내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물론 ‘슈퍼 익스트림 짐’과의 관계 정리부터 해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 부분은 쉽게 정리가 되었다. 애초에 슈퍼 익스트림 짐의 관장이자 대표가 필승 형이었으니까.

저 형. 생각보다 부자였다.

“뭐 한다고 이렇게 늦었어? 오전에 오기로 한 놈이.”

안 코치님은 틱틱 대시면서도 필승 형의 짐을 받아 들어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난 WFC 부산 대회 이후 안 코치님과 필승 형은 따로 만나 소주 한잔을 걸치셨다고 했다. 필승 형이 지면 소주 한잔 사달라고 했던 이야기를 안 코치님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 그래도 제가 또 빈손으로 올 수는 없잖습니까. 왜 안 오시지? 주차만 하고 오신다 그랬는데.”

필승 형은 체육관 문을 힐끔거리며 안 코치님의 말을 받았고, 마침 체육관 문이 열리며 어디선가 뵌 듯한 분이 들어오셨다.

“제가 진짜 사정사정해서. 당분간 해서 그라운드를 좀 봐주시기로 했습니다.”

“...!”

그리고 필승 형이 데려온 특별 코치님은 정말 전혀 예상치 못한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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