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69화 (69/203)

< 69화_못 먹어도 고 >

1.

“... 자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잠시간의 침묵 뒤 먼저 입을 연 건 텔론 회장이었다.

“사실. 독점계약을 전제로 하는 곳은 WFC가 유일하잖습니까?”

“그만큼의 메리트를 제공하고 있으니까.”

순간 안 코치님과 테론 회장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듯했다.

사실 독점계약이 기본이라고 했지만, MMA 단체 중 독점계약을 명시하는 곳은 WFC 한 곳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독점계약이 기본이라고 말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WFC가 거대했기 때문이다.

2위 단체인 브로일러와 3위 단체인 FFC의 지난 한 해 매출을 모두 합해도 WFC의 한해 수입의 20분의 1 정도라는 데이터가 있었으니 말 다 했지. 그만큼 WFC의 기본 스텐스가 MMA의 기본 스텐스라고 받아들여지는 게 현 종합격투기 시장이었다.

“사실. 브로일러의 경우 챔피언에 한정해서만 WFC 이적이 금지되는 독점계약을 맺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으음. 맞네. 우리는 선수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지 않아. 다만 저 텔론 회장이 우리 챔피언들을 빼가는 데 혈안이 되어있어 챔피언에 한해서만 WFC로의 이적을 막고 있지.”

이번에는 오스만 회장의 입이 열렸다.

사실 이게 문제였다. ‘챔피언의 WFC 이적 금지’

물론 나는 가장 최근 계약에서 해당 조항이 없었다는 걸 확인했지만 세간의 눈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MMA라는 스포츠. 아니. 종목은 아직 그 역사가 채 30년도 되지 않았지. 90년대 초반. 말 그대로 ‘싸움대회’에서 시작되었던 그 출발선을. 나는 기억해.”

많은 격투기 팬들에게 쓴소리를 듣기도 하는 텔론 회장이었지만 그의 업적 또한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일본에서 처음 시작된 입식 타격. 그리고 서로 다른 무술들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이종격투기’. 그 과도기들을 거쳐 Mixed Martial Arts. MMA라는 단어가 생긴 지는 이제 정말 몇 년 되지 않았지.”

아까의 흥분은 이미 가라앉은 것인지. 아니면 폭발 직전의 고요함인지.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텔론 회장이었다.

“북미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복싱계와 악전고투하며 쌓아 올린 WFC네. 인간 닭싸움이라는 말과 포르노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MMA를 스포츠화하기 위해 20년을 바쳤어.”

WFC는 90년대 초반 탄생했지만, 텔론 회장이 사령탑에 올라 경영을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었다.

일본에서 시작된 MMA의 인기는 순식간에 전 세계를 강타했지만, 그만큼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싸움’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많은 비판과 질타 또한 뒤따랐다.

그런 MMA 시장을 ‘스포츠’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WFC의 현 회장. 텔론이었다.

복싱계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복싱과 같이 체급을 세분화시키고 룰을 만들며 체계화시킨 게 바로 WFC와 텔론의 업적이었다.

그것이 WFC가 업계의 표준이 될 수 있는 이유였고.

“일본의 라이벌 단체가 야쿠자와의 커넥트로 무너졌을 때도. 복싱 협회가 PPV 시합 날짜에 거대 프로모션을 개최했을 때도. 오롯이 혼자서 모든 걸 헤쳐내고 이 자리까지 왔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시장을 나눠 먹자?”

“...”

“이봐. 매니저. 그리고 미스터 강. 나는 누구보다 ‘싸움’에 열광하는 격투기 팬이기도 하지만. 또한, 비즈니스맨이라네. 내가 미스터 강에게 호감을 가진 이유는 뛰어난 파이팅 실력도 있지만, 그가 뛰어난 상품성도 가지고 있어서야.”

텔론 회장의 한마디 한마디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었기에 오스만 회장 또한 별말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나는 미스터 강. 자네가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하지만. 그 가치는 앞으로 1패를 하기 전까지만 유효할 거야. 첫 패배를 당하는 순간 자네의 가치는 급락하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나에게 이런 조건을 제시할 만큼 대단한 선수가 아니야.”

“...”

묵직한 팩트 폭격을 날리는 텔론 회장의 말에 안 코치님 또한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하긴. 마르크 캅이나 피데르 같은 2000년대 중후반의 전설적인 선수들 또한 WFC와의 독점계약을 이유로 많은 잡음을 냈었다.

내가 어제부로 브로일러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지만 아직 커리어 자체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데뷔 이후 전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지만 그래봤자 시합경력 총 6전인 신인인 것도 사실이었다.

“아직. 위대한 선수들과 비교를 하기엔 무리가 있겠죠.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요. 라고 좀 말해줘라. 준현아.”

잠시 대화가 단절된 틈을 타 안 코치님 뒤에서 세 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하던 내가 앞으로 나섰다.

“텔론 회장님이 말씀하셨죠. 앞으로 제 전적에 1패가 생기는 순간. 제 상품 가치는 떨어질 거라고. 그렇다면. 제가 앞으로도 패하지 않는다면 제 가치는 끝없이 상승할 수도 있겠군요.”

“... 선수로서는 뛰어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아직 철부지와 다름없군. 세상에 패배하지 않는 선수는 없어.”

“정확히는. 아직까지는 없었다. 가 맞겠죠.”

“앞으로도 없을 거네.”

단호한 표정으로 단정 짓는 텔론 회장.

이렇게까지 강경한 입장이니 나도 살짝 뻘쭘하네.

“좋습니다. 그러면 이런 건 어떨까요? 오스만 회장님?”

“말하게.”

“브로일러 챔피언은 WFC로 이적할 수 없다는 독점계약 조항. 저는 사실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맞죠?”

“흐음... 계약서상으로는 그렇지만 관행이라는 게...”

“어쨌든. 계약서상으로는 문제가 없으니 계약된 경기를 모두 치른 제가 WFC로 이적을 하더라도 문제는 없죠?”

“끄응...”

사실 이 자리에서 오스만 회장이 할 수 있는 발언은 별로 없었다.

그저 함께 텔론 회장을 설득하는 포지션으로 불렀다고 봐야겠지.

“텔론 회장님.”

“말하게나.”

“처음 저를 만나셨을 때. 기억하십니까?”

“미스터 강. 자네를 처음 봤을 때?”

아직 여름의 열기가 한창이었던 뜨거웠던 라스베이거스.

카이서스의 체육관에서 스파링을 마치고 나가려던 나는 갑작스런 텔론 회장의 방문에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었다.

“그날 저에게 물어보셨었죠. 카이서스의 체육관에는 무슨 일이었냐고.”

“그랬지. 볼튼이라고 했나? 카이서스 체육관의 선수와 스파링을 위해 찾았다고 했었지.”

볼튼의 이름까지 기억하다니. 정말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날은 그랬죠. 그리고 일주일 뒤. 제가 카이서스를 만났다는 사실은 혹시 알고 계십니까?”

“... 그 카이서스를. 정말인가?”

“네.”

아까 안 코치님이 두 집 살림하겠다는 발언 이후로 처음으로 표정을 굳히는 텔론 회장.

복싱계에 대한 텔론 회장의 경쟁심과 자격지심은 이미 업계에 유명한 일이었다.

“그가 그러더군요. 자네는 나와 같은 세상을 살아. MMA는 자네와 어울리지 않으니 복싱계로 넘어와.”

“... 자네가 하는 말이. 자네가 말하는 카이서스가. 진짜 내가 아는 그 카이서스가 맞나? 그가 직접 그렇게 말을 했다고?”

“네. 그에게 직접 확인을 하셔도 되고 그와의 스파링을 지켜봤던 볼튼이라는 선수에게 확인하셔도 됩니다.”

“맙소사! 카이서스와 스파링을 했다고!”

이번에는 이전의 어떤 순간보다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엉덩이를 들썩이는 텔론 회장.

“지금 이 자리에서 날 꾀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그 말들을 철회해야 할거네. 만약 그렇다면 난 내 모든 힘을 쏟아서라도 자네를 이 업계에서 매장시켜버릴 테니까.”

“... 굳이 카이서스와의 스파링을 꾸며낼 필요가 있을까요? 그와 가벼운 스파링을 가졌었고, 그가 직접 내게 말 했었습니다.”

“맙소사...”

텔론 회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인지 잠시 양손을 들어 그의 눈을 가리고 침묵에 빠졌다.

“미스터 강. 자네. 카이서스의 스파링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군?”

“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은 순간 오스만 회장이 입을 떼고 대화의 흐름을 이어받았다.

“카이서스는... 웬만해선 스파링을 하지 않아. 심지어 본인의 타이틀 방어전이 잡혀도 스파링을 가지는 경우가 드물지. 특히 최근에 그가 스파링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네?”

복싱 선수가 스파링을 가지지 않는다니. 무슨 그런 개똥 같은 말이 다 있어?

“그는... 내가 종합격투기 쪽에 종사하지만, 그저 한 명의 사내로서 동경하고. 경외하는 선수야. 카이서스는 말 그대로 황제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수지. 아까 내가 세상에 패배하지 않는 선수는 없다고 했지?”

이번에는 잠시 눈 마사지를 하던 텔론 회장이 오스만 회장의 말을 받았다.

“나는 어떤 선수도 상황과 시합의 흐름에 따라 패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유일하게 ‘도저히 패배할 것 같지 않은 선수’라고 생각 하는 게 바로 카이서스네. 그는... 그는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세상을 사는 선수야.”

이어지는 텔론 회장의 설명.

미국이라는 넓은 땅덩이의 모든 체육계 유망주들은 NHL, NBA, NFL, MLB 로 구분되는 4대 스포츠 리그로 몰린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수많은 재능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복싱계였다.

그리고 카이서스는 그 복싱계에서도 단연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재능은 흡사 태양과 같아서 주변의 다른 선수들을 한낮의 별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라고 했다.

그 압도적인 강함 덕분에 이제는 제대로 된 시합 준비를 하지도 않는다고.

‘헐. 그게 제대로 훈련한 지 오래된 상태였다고?’

짧은 공방이었지만 카이서스와의 스파링은 내가 겪었던 모든 시합과 스파링을 합쳐도 가장 강렬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것 또한 상당히 풀어져 있던 상태라니.

“그런 카이서스가 자신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표현을 했다라. 복싱계는 따분하고 지루한 곳이니 미스터 강 자네가 복싱계로 넘어왔으면 한다고. 그렇게 말을 했다 이거지?”

“...네.”

“그래. 카이서스와의 스파링이라. 그 결과는 어땠나?”

“어... 결과랄 건 없고. 사실 1라운드도 안될 만큼 짧은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서로 유효타는 성공시키지 못했습니다.”

“서로 유효타를 성공시키지 못해?”

나는 카이서스와의 스파링 당시 상황을 꽤나 자세하게 텔론 회장에게 설명해야 했다. 텔론 회장이 복싱계에 혹시 가지고 있을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을 건드리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야기의 핀트가 카이서스로 맞춰져 버렸다.

“푸하하하하. 이거. 이게 진짜라면. 그래. 미스터 강. 자네가 카이서스 그와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내 자네가 요구하는 조건. 최대한 수렴해보지.”

“...!”

이번에는 나와 안 코치뿐만 아니라 오스만 회장까지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종합격투기 시장에 카이서스와 같이 빛나는 재능이 나타난다면. 이번에야말로 MMA가 복싱 협회에 한 방 먹이며 미국 4대 스포츠를 5대 스포츠로 만들 기회가 되겠지.”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이번 대화의 실마리를 찾은 상황.

안 코치님 또한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돼 신중한 표정이었다.

“다만. 자네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은 뒤따라야 할 거야. 그 정도 각오는 있겠지?”

“... 당연하죠.”

”좋아. 그러면 적어도 카이서스와 같은 커리어는 충분히 쌓을 수 있겠지. 브로일러 타이틀 방어전에 한해서 연 최대 2회까지 제한적인 시합 허가를 명시해주겠네. 대신!“

아주 재미있다는 듯 날 바라보며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는 텔론 회장.

”앞서 말했듯 1패. 단 1패라도 하면 자네는 WFC와의 영구 독점계약이야. 은퇴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그게 어떤 스포츠든. 어차피 대부분의 격투기 선수들이 WFC에서 활동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불리한 조건만은 아니지. 어떤가?“

아니. 텔론 회장님.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참 극단적이시네.

나는 안 코치님을 흘낏 바라봤지만 당장 어떤 답변을 내리긴 어려웠는지 난감해하는 표정만 보일 뿐이었다.

하. 그래. 이럴 땐.

”콜!“

못 먹어도 고지.

작가의말

실제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 가능하기에 소설 아닐까요... 하하.

그래도 실제 크로캅은 ufc 계약이 남은 상태에서 k1이나 타 격투기 시합에 출전을 했었고, 효도르의 경우 삼보 시합 출전이 가능한 조항으로 계약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ㅎㅎ

소설속 wfc는 현실의 단체와는 다른 평행 세계의 이야기이니 조금은 너그럽게 봐주십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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