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64화 (64/203)

< 65화_LA에서 >

1.

“... 괜찮아요?”

나는 유나씨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필승 형이 치료 중인 메디컬 룸에 잠시 와 있었다.

“끄응. 죽지는 않은 것 같다.”

다행히 들것에 실려 나갔던 것 치고는 꽤나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필승 형.

“그나저나. 어떻게 들어왔냐?”

“어떻게 들어오긴. 형네 팀 사람들이 들여 보내줬죠.”

내가 형네 체육관에서 같이 운동한 게 얼만데. 그걸 질문이라고.

“아니 인마. 웬 아가씨라 같이 왔더니 어떻게 혼자 들어왔냐고.”

“어...?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 중계진에 잡혔었어. 시합 대기하면서 봤지.”

“아...”

메인 카드 관람하는 동안 WFC 중계 카메라에 찍혔었나 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브로일러 미들급 타이틀 샷을 거머쥔 입장이다 보니 격투기 쪽에서는 조금쯤 주목을 받는 위치였으니까.

“흐읏-차.”

이미 지혈을 했다지만 왼쪽 눈꼬리부터 관자놀이 부근까지 손톱에 찢기다시피 한 상처와 충혈된 눈동자가 살짝 기괴할 정도로 섬뜩했다.

“안 일어나도 돼요. 누워 있어.”

“아냐. 이제 괜찮아. 시합도 끝났는데 염치가 있지. 내가 나가야 다들 퇴근하지.”

애써 괜찮다는 웃음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필승 형.

-비틀

“에헤이. 자. 잡아요.”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필승 형은 첫발을 딛으려다 휘청거렸다.

“얌마. 배고파서 그래. 배고파서. 감량에 피도 많이 흘렸으니까. 시합도 끝났으니 밥 좀 먹어야겠다.”

“... 병원 가봐요.”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챙겨. 당연히 갈 거다.”

“발목은... 어때요?”

“... 봤냐?”

방금 필승 형이 비틀거린 건 빈혈이나 감량 후유증일 수도 있지만 내가 봤을 땐 아니었다. 마지막 피니쉬를 맞을 때 제이크에게 밟혔던 왼쪽 발목이 문제인 것 같았다.

“일단 부러지거나 하진 않았다더라. 근육이나 인대 쪽이 문제인 것 같은데 병원 가서 검사받아봐야 해.”

“내일 바로 병원 가봐요.”

“걱정 마 짜샤. 내가 너보다 십 년은 더 굴러먹은 베테랑이야 인마.”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필승 형의 왼쪽에 서서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말없이 부축했다.

“... 라커룸까지만. 부탁 좀 하자.”

담담한 듯 말하지만 목소리 가득 느껴지는 답답함과 절망감.

나는 데뷔 이후 연승을 달리고 있었고, 최근 두호 형도 승리했기에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 낯설기만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달까.

“됐어 인마.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쪽팔린다.”

“...”

메디컬 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라커룸 앞.

안에서는 필승 형네 코칭스테프들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고맙다. 부축해줘서. 여기서부턴 내가 알아서 할게. 넌 빨리 가서 같이 온 아가씨 챙겨.”

내가 뭐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괜찮다며 날 떠미는 필승 형.

깊게 심호흡 한번 하더니 어깨를 쫙 펴더니 당당한 발걸음으로 라커룸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하하. 이거. 피날레를 장식해야 하는데 져버렸습니다! 하하하.”

왼발의 불편함 따위는 별것 아니라는 듯.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으로.

그 뒷모습이 LA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필승 형의 모습이었다.

*

“유나씨!”

“아. 해서 씨. 벌써 다녀왔어요? 한참 더 걸릴 줄 알았는데.”

필승 형의 시합이 끝난 건 거의 저녁 11시가 넘어갈 때쯤이었다.

한창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1월의 밤공기는 꽤나 쌀쌀했기에 사직체육관 인근 24시간 카페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유나씨.

예상보다 일찍 나온 날 보며 반가워하면서도 괜찮냐는 눈빛을 보내왔다.

“네. 일단 당장 큰 문제는 없어 보여서요. 제가 오래 있는 것도 서로 부담일 테고.”

“아...”

패배의 경험이 없는 나는 필승 형의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제대로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필승 형에게는 스스로를 다독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알았다.

“우리도 이만 올라가죠.”

“네! 해서 씨 내일 출국이라 그랬죠?”

“네. 서울 도착하자마자 짐 챙겨서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바쁜 남자야 역시.”

날 빤히 바라보며 스트로우를 쪽 빨아들이는 유나씨.

아무리 카페 안은 따뜻하다지만 이 추운 날씨에 아이스 음료라니. 대단하다 싶었다.

“일단. 이번 타이틀전이 끝나면 조금쯤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네요.”

보통 챔피언의 타이틀 방어전은 1년에 많으면 두세 번. 적게는 1년에 한 번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챔피언 타이틀을 따고 난 뒤 계속 브로일러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유 자체는 생길 것 같았다.

“여유 생기면 진짜 한잔. 아시죠?”

“하하. 당연하죠. 제가 먹을 거 얻어먹는 약속은 절대 안 잊어버립니다.”

이미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는 모두 끊겼기에 우리는 고속버스를 타러 노포동으로 이동했다.

“아! 아까 WFC 중계에 우리 나왔대요? 봤어요?”

“아. 말만 들었어요.”

“그래요? 이거 봐요.”

영상 장면을 언제 캡쳐했는지 중계에 잡힌 우리 모습을 보여주는 유나씨.

“오. 생각보다 잘 나왔네요?”

“그쵸? 그런데 이런 영상 찍혀도 괜찮아요?”

“뭐가요?”

“그... 여자친구분이라든지.”

“저 여자친구 없는데.”

“아. 그래요?”

묘하게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웃는 유나씨.

차창 밖으로는 까만 어둠이 내린 거리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서울에 도착하기 전까지. 유나씨와 나는 이제껏 나누었던 대화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부산과 서울의 거리를 좁혔다.

2.

“LA!!!”

“아! 씨바! 깜짝이야!”

나는 갑자기 엘에이를 외치는 준현이 때문에 깜짝 놀라 육성으로 욕을 뱉고 말았다.

“크으. 내가 사랑하는 도시지. LA! 오랜만이다 정말.”

보기 드물게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준현이.

미국 유학 시절의 절반을 LA 쪽에서 보냈던 준현이다 보니 이런 반응이 나오나보다 싶었다.

“어. 여보세요?”

-오빠! 도착했어요?

“응. 이제 막 도착했어.”

-저한테 제일 먼저 전화한 거예요?

“뭐. 그렇지?”

나는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호칭도 정리하고 말도 놓으면서 조금은 가까워진 유나는 미국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연락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한국은 이제 점심쯤인가?”

-맞아요. 안 그래도 이제 밥 먹으려구요. 저는 비빔밥 먹어요. 거기는 이제 밤이죠?

“어. 이제 아홉 시 조금 넘었네.”

LA와 서울의 시차는 16시간. LA가 16시간 느렸다.

-얼른 숙소 가셔서 뭐 좀 챙겨 드시고 쉬세요!

“그래. 그래봤자 식단대로 먹어야 하지만.”

시합 준비 때문에 기내식도 하나 못 먹었다.

나도 슬슬 감량이 힘들어지는 구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에 키를 쟀을 때는 186이었던 키가 191이 떠서 깜짝 놀랐었다.

운동하면서 자세가 잡힌 것만으로 이렇게 키가 클 수가 있나 싶었으니까.

“그럼 나중에 또 연락할게.”

-네!

그렇게 유나와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나자 왠지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 들어서 돌아보니.

“뭐. 왜.”

준현이 놈이 뒤에서 날 째려보고 있었다.

“유나씨랑 말 놨나 보네?”

“어? 어. 나이야 내가 한참 오빠니까. 넌 아직 영은 씨랑 말 안 놨냐?”

“...”

“안 놨네 안 놨어.”

준현이는 지난번 토너먼트전 이후 한국에 들어왔을 때 유나를 통해 친구인 영은 씨를 소개받았다.

물론 내가 중간에서 많은 도움을 줬지만.

“몰라도 돼 인마. 나가자. 창섭 형이 나오래.”

“쑥스러워하기는. 재현이나 기태 말 듣지 말고 내 말만 잘 들어 앞으로. 그래가지고 모쏠 딱지 떼겠냐?”

“아. 좀 닥치라고!”

이번 LA 훈련 캠프는 안 코치님을 비롯해 팀 ‘피스트’의 스태프들이 함께 참여했다.

창섭 형은 지난번 한국 시합 이후 선수에서 코칭스텝쪽으로 완전히 노선을 틀었는지 이번 캠프부터 코치진으로 함께하게 되었고.

“체육관은 미드 시티 쪽에 있어. 숙소는 체육관 바로 근처다.”

“넵.”

이번 브로일러 타이틀전은 LA 메모리얼 콜로세움에서 치러졌다.

유럽에서는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에서의 인지도가 낮아 만 년 2위의 딱지를 떼지 못하는 브로일러가 미국 시장을 노리기 위해 최근 많은 시합을 미국에서 열고 있었다.

그중 한국인 선수인 내 타이틀전을 미국 서부 최대도시이자 최대 한인타운을 보유한 LA에서 오픈함으로써 여러 가지 복합적인 홍보 효과를 노린 것 같기도 했다.

“사이언스 MMA? 체육관 이름이 특이하네요.”

“요즘 꽤 핫한 체육관이지. 한국의 정신론과 달리 미국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으로 훈련을 통제하는 풍조가 있으니까. 그중에서도 과학적인 훈련으로 유명한 체육관이야.”

덧붙여 말하길 체육관 비용이 어마어마한 곳이라고 설명하는 창섭 형.

“후읍-하.”

LA의 1월 말은 한국의 봄 날씨와 비슷할 정도로 따뜻했다.

저녁 9시를 넘긴 시간이었지만 겨울용 외투가 필요 없을 정도의 날씨.

차창을 열고 달리며 크게 LA의 공기를 폐부에 담고 있으니.

“아! 추워 인마! 문 닫아!”

준현이가 춥다고 지랄을 했다.

별로 춥지도 않구만 난리야. 너 그거 운동을 안 해서 그런 거야 인마. 운동해 운동.

*

“밸런스가 엉망입니다. 이런 밸런스로 어떻게 이제껏 시합을 치러왔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근력은 압도적입니다. 어떻게 저 정도 근육으로 이 정도 스트렝스를 발휘하는지 놀랍습니다. 아시아인의 피지컬은 아니군요. 확실히.”

“대근육은 발달했지만, 아직 소근육은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체계적인 트레이닝 커리큘럼이 필요합니다.”

“지근섬유와 속근섬유의 밸런스가 놀랍도록 뛰어납니다. 그리고 근섬유의 효율도 처음 보는 수치를 보일 정도로 뛰어납니다. 근섬유가 놀라울 정도로 얇군요.”

LA에서의 훈련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형태의 그것이었다.

맘모스 코치도 분명 뛰어난 타격 코치였지만 이번 캠프의 스트라이킹 코치는 또 다른 느낌의 훈련법을 제시했고 그 외에 그래플링이나 피지컬 트레이너들 또한 접해보지 못한 방식의 훈련들을 가지고 왔다.

“흐엑. 흐엑...”

정말 근육 하나하나. 손끝부터 발끝까지. 짜낼 수 있는 한계치까지 짜내는 훈련을 하는 느낌이랄까.

한국에서 했던 훈련들은 팔과 가슴 근육은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힘들지만 등 근육과 미는 힘은 조금 남은듯한 느낌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정말 몸 전체의 힘이 골고루 다 소진된 느낌이었다.

“놀랍습니다. 아직 제대로 개발되지 않은 육체에요. 그런데 보여주는 운동능력 수치는 이미 NFL 최상위권 선수들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납니다.”

“종합격투기를 하기엔 솔직히 아까운 신체 능력입니다. 사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미스터 강의 신체 능력들을 정밀검사해보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NFL.

그곳에서도 이곳 체육관으로 훈련을 하기 위해 찾아온다고 하니 그만큼 신뢰는 갔지만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 조금 오버인 듯했다.

LA에 도착해 캠프를 시작한 지도 벌써 6주.

이제 슬슬 캠프 일정도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고 타이틀전 오픈 워크아웃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해서야!”

그때 꽤나 상기된 표정으로 날 부르며 달려오는 준현이 놈.

“왜?”

“이거. 이것 좀 봐.”

그러면서 스마트 폰을 내게 보여주는데

-WFC 미들급 파이터 박필승. 이대로 은퇴하나? 공식 석상에서 은퇴 선언!

-이제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성으로 돌아가고 싶다. 공식 은퇴 선언한 WFC 미들급 파이터 박필승.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필승 형의 은퇴 소식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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