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63화 (63/203)

< 64화_악취가 진동하네 >

1.

“끝나고 바로 올라간다고?”

“네. 내일 바로 출국이라서요.”

근 일 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아버지는 아무래도 조금 어색했다.

다 커버린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란 보통 이러할까.

“오랜만에 왔는데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아냐. 엄마.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

그에 반해 엄마는 일 년 만에 만났어도 역시나 편했다.

흠. 흠. 딱히 아버지를 차별하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작년 이맘때쯤.

설 연휴에 찾아왔던 부산에서의 기억은 썩 좋지 않았다.

꿈도 없이 꿈을 찾는 아들과 그런 아들이 답답한 아버지.

취업부터 공무원 공부 등 진로에 관해 부딪혔던 우리 부자는 그 이후로도 사소한 것들에서 부딪쳤으니까. 엄마가 중간에서 분위기 풀려고 엄청 고생했었지.

나는 자존심과 아집만 남아 모난 성격이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고, 아버지는 그저 못마땅하셨을 테니까.

그리고 약 일 년 만에 찾은 부모님 댁.

아버지와 엄마는 일 년사의 주름이 조금 더 늘어난 듯했고, 흰 머리도 조금 더 풍성해진 듯했다.

“많이 맞지 않게 조심하고. 항상 운동할 때는 네 몸부터 생각해.”

“하하. 걱정 마. 내가 하는 일이 운동하는 건데.”

“해서 네가 이렇게 운동을 잘할 줄 알았으면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시켰어야 하는데.”

“이 사람. 또 그러네. 잘 하고 있는 애한테 이미 다 지나간 걸 왜 자꾸 그래?”

“그냥 미안해서 그러죠.”

이러나저러나 내 걱정과 미안한 감정이 앞서는 듯한 엄마와 그런 엄마를 타박하는 아버지.

오랜만에 내려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니 확실히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떳떳하게 부모님과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 격투기 선수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주었다.

“엄마한테 자주 연락하고.”

“네.”

“그. 큼. 나한테도 톡은 한번씩하고.”

“네? 하하하. 아버지한테도 자주 전화드릴게요.”

아버지의 이런 의외의 모습을 보니 색다르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겨우 일 년만인데 뭐랄까. 부모님이 많이 귀여워지셨달까. 아니면 많이 약해지셨달까.

아마도 부모님은 일 년 전에도 이런 모습이셨겠지. 어쩌면 그 전부터.

점차 나이가 드시면서 조금씩 약해지셨을 텐데 내가 못나서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다는 게 맞을 거다.

이제부터라도 자주 연락드리고 찾아뵈며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야지.

“이제 진짜 가 볼게요! 추운데 들어가세요!”

“그래. 얼른 가. 춥다 너도.”

“네!”

그렇게 오랜만에 가졌던 부모님과의 시간을 뒤로하고 WFC 부산 경기가 열리는 사직동으로 이동했다.

“해서 씨!”

이미 WFC 부산 시합은 다크매치가 한창 진행 중이라 경기장 입장은 3시부터 가능했던 상황. WFC 257이 열리는 사직경기장 앞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 유나씨!”

사직경기장 앞에서 만난 사람은 유나 TV를 운영하는 너튜버 임유나 씨였다.

“어휴.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어려워요? 결국, 부산에서 보네.”

“하하하. 조금 중요한 시기다 보니까요. 시합도 워낙 타이트하게 잡혔고.”

“알죠. 알죠. 그냥 하는 말이에요.”

오랜만에 봤지만 역시나 까만 단발머리에 쌍꺼풀 없이 큰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모습이 고양이 같았다.

“근데. 안 추우세요?”

“부산은 따뜻한데요?”

... 난 추운데.

“어쨌든 빨리 들어가요! 메인 매치 시작 얼마 안 남았어요!”

“넵...!”

유나씨는 지난번 토너먼트 이후 한번 보자 보자 말만 하고는 계속 약속을 미루다가 결국 이번 휴가에 부산을 내려와서 만나게 됐다.

정확히는 필승 형의 시합을 보기 위해 부산을 내려간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다 했더니 자기도 보러 갈 거라고 같이 가자고 했었지.

나는 시합 전날에 내려와 부모님을 만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같이 내려오진 못했고 이렇게 경기장 앞에서 만나게 됐지만.

“박필승 선수랑은 친분이 꽤 있으시죠?”

“음... 그렇죠? 이바노프와의 시합 때도 필승 형이랑 합동 훈련을 했었으니까. 최근까지도 스파링 메이트를 했었고.”

“그러면 오늘 시합은 어떻게 보세요?”

“음...”

솔직히 내가 무당도 아니고 시합의 승패를 가늠할 능력은 없었다.

그걸 정확히 예측할 능력이 있었으면 승부 예측 배팅을 했겠지.

그래도 뭐.

“필승 형이 55대 45 정도로 유리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친분을 떠나서. 순수하게 격투기 선수로서 평가했을 때요?”

“네.”

이번 필승 형의 스파링 메이트를 하며 필승 형의 파이트 수준에 정말 많이 놀랐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감량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제기량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평체에 가까운 나도 버거울 정도로 폼이 좋았으니까.

아무리 복싱 글러브를 끼고 했다지만 정말 100프로에 가까운 스파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리고 가장 마지막 스파링에서는 타격으로 압도하지 못했다.

그라운드의 스페셜리스트인 필승 형을 내가 타격으로 압도하지 못했다는 건 개인적으로 꽤나 충격이었다.

물론 필승 형은 캠프 막바지였고 나는 제대로 폼이 올라오기 전이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와! 사람 많네요.”

“그러게요.”

이번 WFC 부산 시합의 흥행을 두고 많은 말이 있었지만 내가 봤을 때는 꽤나 성공적인 것 같았다.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객석이 꽉 차 있었으니까.

“어! 이제 메인 카드 시작하나 봐요!”

다크매치가 끝났는지 경기장 전광판에서는 WFC의 명물인 The Who의 Baba O'riley가 흘러나오며 하이라이트 영상들이 지나가고 WFC의 오프닝이 나왔다.

“이제부터 방송 되는 거죠?”

“네? 네. 메인 매치부터 온에어 시합이죠.”

다크매치는 방송되지 않는 시합들이었고, 메인 카드부터 중계권을 가진 온에어 시합이었다.

“우와...”

부산 시합의 메인 카드는 총 5개.

그 중 필승 형의 시합은 가장 마지막 시합이었는데 그 전의 메인 카드에도 한국인 선수가 네 명이나 포진되어 있었다.

경기 내내 감탄사를 터뜨리는 유나씨와, 유나씨가 뭔가를 물어볼 때마다 대답을 해주는 내 모습이 꼭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갑자기 귀가 화끈거렸다.

‘그러고 보니 여자랑 격투기 시합을 관람하는 건 처음이네.’

지난 두호 형의 타이틀전 때 아름이와 같이 경기를 보기로 약속했었는데 아름이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 함께하지 못했었다. 결국, 준현이랑 같이 봤었지.

“응? 무슨 생각 하세요?”

“네? 아. 아니에요. 이제 곧 필승 형 시합이구나 싶어서요.”

“그렇죠! 아. 진짜 이겼으면!”

모든 시합들이 그렇겠지만 WFC 시합 또한 경기장 내 카메라 사용을 불허했다.

시합 전 셀카 정도는 몰라도 경기 도중 카메라를 꺼내는 행위는 거의 불가능.

거기다 나와 유나씨가 앉은 자리는 필승 형이 특별히 구해준 케이지 근처의 앞쪽 객석이었기에 더더욱 카메라 촬영이 불가능했다.

그 말인즉슨.

“꺄악! 박필승! 이겨라!”

저 검은 고양이 같은 유나씨가 방송이 아닌 정말 순수하게 격투기를 보기 위해 나와 함께 이 자리에 있다는 말이었다.

너튜버니까 방송을 위해 게스트로 만나는 것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방송이 아닌 일상에서 이렇게 단둘이 있으니까 이상하게 의미부여 하게 된단 말이야.

‘정신 차리자 강해서. 그냥 평소에 격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프로 선수와 같이 직관하러 온 것뿐이니까.’

나는 애써 헛생각들을 치워버리며 입장 통로로 들어오는 필승 형을 바라봤다.

화려한 영상과 함께 필승 형의 메인 음악이 깔리고 열렬한 환호 속에 등장하는 필승 형.

부산 야구의 열기가 여기에도 적용이 되는지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응원이 이곳 사직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쩌네.’

브로일러 토너먼트에서는 케이지 중앙에서 환호도 받아봤다.

두호 형의 타이틀전에서는 WFC 타이틀전 승자에게 보내는 환호도 지켜봤다.

그런데 오늘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박필승~ 가즈아!!!

-마! 다 때리 지기삐라!

-박필승이!! 퐈이팅!!!

이런 모국어 응원을 경기장에서 듣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솔직히 살짝 소름 돋았다.

이 경기장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이 상대방 선수가 아니라 오롯이 나만 응원한다는 느낌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느껴보고 싶었다.

-...

뜨거운 반응에 비해 묵묵히 시합 준비를 하는 필승 형.

조금쯤은 굳어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기색 일도 없이 담담하게 루틴을 가져가는 필승 형을 보면서 이번 시합은 느낌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이제 시작하네요.”

오늘의 메인 매치이자 파이널 매치. 유나씨도 긴장을 했는지 살짝 내 쪽으로 몸을 기대 왔다.

... 긴장해서 그런 거 맞겠지?

-삐!

드디어 시작된 1라운드.

필승 형과 제이크의 시합은 1라운드부터 치열한 양상을 띠었다.

시작부터 공격적으로 치고 나오는 제이크와 타격은 카운터 정도만 던지면서 테이크 다운으로 시합을 풀어나가려는 필승 형.

결국, 제이크는 1라운드에서 두 번의 테이크다운을 당하고 케이지를 한번 짚으면서 경고까지 받은 상태로 라운드를 끝내게 되었다.

“와. 지금 박필승 선수가 유리한 거 맞죠?”

“음. 네. 생각보다 무난하네요. 크게 실수만 안 하면 필승 형이 이기겠어요.”

제이크는 오늘 움직임이 생각보다 조금 굼뜬 듯했다.

벌써 헉헉거리는 것도 이상하고.

어쩌면 감량 후 제대로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필승 형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삐!

그렇게 이어 시작된 2라운드.

이제는 눈으로도 보일 만큼 숨을 몰아쉬는 제이크를 상대로 필승 형은 조급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전략적인 공략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2라운드 첫 번째 테이크다운을 뺏은 후 다시 스텐딩 포지션에서 시작된 대치.

“어?”

그때부터였을 거다. 제이크 놈이 이상한 짓을 시작한 게.

“왜요?”

“아. 아뇨. 제이크 선수가... 펀치를 뻗을 때 엄지 그립을 제대로 안 하는 것 같아서요.”

“엄지 그립이요?”

“하하. 별거 아니에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내 눈에는 제이크와 필승 형의 움직임이 똑똑히 보였다. 조금 전 타격 공방에서도 제이크의 펀치가 조금만 필승 형의 얼굴 근처를 스쳤으면 엄지가 필승 형의 눈을 찌를 정도의 각도였다.

‘... 지쳐서 그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지나가려 했는데.

“아아악!!”

케이지 밖에서도 들릴 정도의 비명과 함께 필승 형이 쓰러졌다.

“저런! 씹...!”

유나씨만 아니었으면 입으로 쌍욕이 나올 뻔했다.

제이크의 라이트 펀치가 필승 형의 왼쪽 관자놀이 근처를 스쳐 지났는데, 오른손의 엄지가 펴져 있어 필승 형의 왼쪽 눈을 찌른 것이었다.

-움찔.

그리고 난 봤다.

제이크 저놈의 입꼬리가 살짝 움찔거리며 미묘하게 올라가는걸.

저건 분명 고의였다.

“헐. 저걸 중단 안 한다구요?”

“... 그러게요.”

필승 형이 육성으로 비명을 지를 정도의 반칙이었음에도 결국 심판은 시합 속행을 지시했고, 2라운드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대망의 3라운드.

필승 형은 왼쪽 눈에 조금의 출혈을 내비치며 반쯤 눈을 감은 채 시합에 임했다.

그리고 그런 필승 형의 왼쪽을 집요하게 노리는 제이크.

시야가 불편한 필승 형은 앞선 1, 2라운드와는 달리 소극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고.

-떠어어억!

서로 지근 거리까지 붙은 상태에서 제이크의 오른손 훅이 필승 형의 턱을 두드리는 걸로 시합이 끝났다.

문제는

“... 저 새끼. 분명 고의였는데.”

제이크의 오른발이 필승 형의 왼발을 밟고 있었다는 거다.

물론 몸을 거의 붙이다시피 한 상태에서 초근접 타격을 주고받다 보면 서로 몸이 엉키면서 발을 밟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번만은 우연이 아닌 고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방금 전. 라이트 훅 날리기 전에 필승 형이 몸을 빼지 못하게 발을 밟았어요. 그래서 필승 형이 아주 잠깐 멈칫거렸고, 그게 피니시가 된 거예요.”

“...발을요? 그게 가능해요?”

“의도적으로 노렸으면 가능할 수도 있죠.”

내가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격투기.

그런 격투기에서 처음으로 지저분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시합을 목격했다.

“제이크 디아즈...”

나는 들것에 실려 나가는 필승 형을 일별한 후 신난다는 얼굴로 승리 인터뷰를 내뱉는 WFC 미들급의 파이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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