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62화 (62/203)

< 63화_WFC IN BUSAN >

1.

“스파링 파트너요?”

-그래.

두호 형의 타이틀전까지 끝마치고 다시 복귀한 일상.

연말 분위기를 느낄 새도 없이 다시 시작된 훈련 스케줄에 녹초가 되어 있는데 필승 형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마땅한 스파링 메이트가 없다. 페이는 제대로 챙겨줄게.

“흠...”

전화의 목적은 바로 다음 달에 열릴 ‘WFC IN 부산’의 메인 매치를 뛰는 필승 형의 스파링 파트너를 해달라는 것.

-일주일에 한 번. 16온스 복싱 글러브로 100프로 스파링. 어때?

“100프로요? 그러면 타격만?”

-테이크 다운까지는 가능. 빡센 스파링이야.

“흠...”

이런 조건이면 당연히 구하기 어려울 수밖에.

필승 형이 암만 레슬링 베이스에 그라운드의 스페셜리스트라지만 WFC 미들급에서 성과를 내고있는 파이터였다. 당연히 타격 또한 수준급이라는 이야기.

그런 필승 형이 전력을 다한다면 아무리 16온스 복싱 글러브라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일단 안 코치님한테 물어봐야 해요.”

-당연하지. 우리 쪽에서도 공식적으로 오퍼 넣을 거고.

“네. 먼저 물어보고 연락 드릴게요.”

-그래. 부탁 좀 하자.

그렇게 필승 형과의 전화를 마치고. 잠시 드러누워 체육관 천장을 바라보며 멍 때렸다.

이제 두 번째 타임 운동이 끝났는데 벌써 지치네.

“읏차.”

날씨가 날씨인지라 가만있자니 몸이 식는 느낌이라 살짝 놓았던 정신을 챙기며 몸을 일으켰다.

연말이라 사람 없이 썰렁한 체육관.

일반부 선수부 할 것 없이 대부분이 연말 분위기에 취해 조금 느슨해진 상태랄까.

“코치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김에 안 코치님이 계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고.

“해서냐? 마침 잘 왔다.”

안 코치님 또한 기다렸다는 듯 날 소파에 앉히셨다.

“코치님. 그... 필승 형한테서 연락이 왔었어요.”

“필승? 박필승?”

“넵.”

안 코치님의 용건이 나오기 전에 내 용건부터 선수 쳤다.

“필승이 그놈이 왜?”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하는 안 코치님.

“하하. 그. 스파링 파트너를 조금 부탁하더라구요.”

“스파링 파트너?”

“네. WFC 부산 시합 때문에.”

“흐음... 하긴. 스파링 파트너 찾기가 쉽지 않겠지.”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말없이 가만히 앉아계시던 안 코치님.

“우선. 이것부터 보고 이야기하자.”

이내 서류철 하나를 들고 일어나서는 내가 앉은 맞은편 쇼파로 자리를 옮기셨다.

“이게...?”

“조금 전 브로일러에서 받은 시합 제안서 내용을 정리한 거다.”

“...시합 제안서요?”

순간 조금 흥분했는지 안 코치님의 손에서 서류철을 낚아채다시피 넘겨받아서 내용을 살폈다.

“... 브로일러 미들급 타이틀전 제안.”

“그래. 해서 네 타이틀전 제안서다.”

“...”

뭐랄까. 느낌이 참 이상했다.

예정되어 있었던 시합이고, 브로일러보다 훨씬 큰 WFC의 타이틀전도 직관하고 왔지만. 뭔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상대 선수는 레이몬드 아파치. 알다시피 브로일러 미들급 랭킹 1위의 선수다.”

“...알고 있어요.”

“실력 때문에 WFC에서 퇴출된 게 아니라, 그 폭력성과 범죄 전과 때문에 축출된 선수지. 성격과는 별개로 그의 실력은 이제껏 네가 상대했던 어떤 선수보다 뛰어날 거다.”

“넵!”

레이몬드 아파치.

토너먼트 우승 이후부터 몇 번이고 그의 영상을 찾아봤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해서 너와 비슷하다. 기존의 무술 베이스 없이 MMA로 처음 격투기를 접한 선수. 변칙적인 공격이 많고 타격과 그라운드를 가리지 않는 공격성이 특징이지.”

레이몬드의 전적 중 패배는 대부분 서브미션에 의한 것이었다.

그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고 침착하게 틈을 찾아 그라운드로 승부 짓는 수비형 그래플러들에게는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 해서 너와 같이 맞상대하는 선수를 상대로는 승률이 9할에 이르는 선수다. 시합 일정은 3개월 후. 레이몬드 측에서 최소 3개월의 캠프가 필요하다고 했다는구나.”

“3개월 캠프요?”

“그래. 아주 작정하고 널 잡겠다는 거지.”

“흠...”

우리 체육관의 사정이야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런 장기 캠프를 차릴 재정적 여유가 있을 리 없지.

“... 두호의 파이트 머니가 들어온 게 꽤 된다. 네가 걱정할 필요 없어.”

“제 시합 하나 치르고 체육관 접을 거예요? 이제 두호 형도 없는데? 이번 타이틀전 파이트머니랑 승리 수당 다 합쳐도 캠프 비용 안 나오지 않아요?”

“그래도 지난번 브래드와의 시합 이후 스폰 제의가 꽤 많이 들어왔어. 광고 의뢰 건도 있긴 한데... 타이틀전이 잡힌 이상 이건 반려해야겠지.”

광고? 그거 돈 되는 거 아닌가?

“당장 돈이 된다고 훈련에 지장 가는 스케줄을 잡는 건 하책이야. 멀리 봐야지. 일단 훈련 일정은 내가 최대한 잡아보마.”

“넵. 저야 코치님만 믿는 거죠. 뭐.”

“... 이제까진 기술적 완성보단 육체적 완성이 먼저였기 때문에 네 훈련을 우리가 맡을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아니야. 전문 코치들을 사 와야 해. 일단은... 필승이의 스파링 파트너. 그거. 한다고 해라.”

“어? 진짜요?”

타이틀전이 잡힌 만큼 필승 형의 스파링 파트너 제안을 거절해야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대신. 빡센 스파링 일정으로 조율해봐야지. 내가 필승이네 체육관이랑 연락을 해보마.”

“아아. 안 그래도 이야기했어요. 주 1회. 복싱 글러브 끼고 100프로 스파링.”

“그래? 좋네. 한국에서 필승이 만한 중량급 스파링 파트너가 없지.”

설핏 중얼거림에서 ‘두호를 빼고는 말이야’라는 말을 들었지만 모른 척했다.

“그리고. 레이몬드 전의 노하우도 조금은 얻을 수 있을 거다.”

“네?”

“레이몬드가 WFC에서 뛸 때 패배를 했던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가 필승이거든.”

아.

침착하게 틈을 찾는 수비형 그래플러.

레슬링 베이스의 필승이 형이 딱 그 케이스였지.

2.

-팡! 파팡!

“스탑! 스탑!”

필승 형의 스파링 제안에 오케이 한 후, 드디어 첫 번째 스파링 날.

오랜만에 찾은 슈퍼익스트림 GYM에서 오랜만에 필승 형과의 스파링을 가졌다.

“허억. 허억. 하... 좀만 쉬자.”

“넵.”

3분 3라운드 스파링을 뛰고 거친 숨을 내쉬며 쓰러지듯 주저앉는 필승 형.

“하체가 많이 부족합니다. 하체 위주의 스트렝스 보강 훈련을 추가해야겠습니다.”

“체력이 떨어지니 레프트 킥을 찰 때 가드가 떨어지고 킥 높이가 낮아져 타점 제약이 생깁니다. 밸런스 조정과 복근 훈련을 강화해야겠습니다.”

땅값 비싼 강남 한복판에 있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슈퍼익스트림 GYM의. 필승 형의 코치진은 장난이 아니었다.

짧은 스파링 중에도 옆에서 지켜보는 외국인 코치들이 여러 명이었고, 물어보니 유명한 주지떼로부터 스트라이킹 코치. 복싱 코치. 스트렝스&컨디셔닝 코치까지.

정말 호화스러운 코치진을 꾸려 훈련하고 있었다.

“후우. 어때? 할만하냐?”

그때 체력이 조금 돌아왔는지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거는 필승 형.

전문 코치진들의 힘인지 확실히 지난번 그래플링을 위해 합동 훈련을 했을 때보다 타격 적인 부분을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졌었다. 그래도 뭐.

“저야 할만하죠.”

아직 감량을 들어가기 전이라 나는 체력이 빵빵했다.

기량의 문제보다 체력 때문에 당장 몇 라운드의 스파링으로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너도 슬슬 감량이 빡센 시기가 올 거다.”

“사실 지난 시합쯤부터 지옥 같았어요.”

“너. 그거 아직 지옥 맛 제대로 본 것도 아냐. 기대해라. 진짜 지옥이 뭔지 곧 알게 될 거야.”

“...”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입을 여는 건 쉬지 않는 필승 형.

필승 형과의 스파링은 생각보다 그렇게 빡세지 않았다. 아무래도 감량으로 인한 체력 저하 때문이겠지. 시합 일자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컨디션은 돌아올 거다.

“그나저나. 레이몬드랑 붙는다며?”

“랭킹 1위니까요.”

“흠. 그 친구. 아주 까다로운 친군데 말이야.”

슬슬 라떼는 말이야. 라는 서두로 투머치 토크의 시동을 거는 필승 형.

하지만 이번 주제는 내 상대 선수였기에 집중해서 들어야만 했다.

“내가 맞붙었던 레이몬드 그 친구는... 뭔가 정형화되지 않은 선수였어. 조금 짐승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지. 짐승보다는 약간 본능이 발달한 사람이랄까?”

“...두 개 차이가 뭐예요?”

“짐승 같다고 하니까 헤비급의 라무차가 생각나서 말이야. 라무차에 비하면 짐승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조금 부족하지. 하위호환이랄까.”

“아...”

라무차 선수.

WFC 헤비급을 휘젓고 다니는 말 그대로 짐승 같은 선수였다.

나도 레이몬드 선수의 영상을 많이 봤지만, 라무차 선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그러니까 본능이 발달한 사람이라고 했잖아. 인지로 움직이기보단 약간 직감으로 움직이는 느낌을 한 번씩 받았어. 시합하면서.”

“직감으로요?”

“그래. 철저하게 셋업 했고, 절대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각도에서 때린 타격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거나, 최소한의 피해로 흘리는 경우가 있었거든.”

“흠...”

나중에 필승 형과 레이몬드의 시합을 다시 한번 돌려봐야겠다.

이런 정보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으니까.

“솔직히 나는 조금 걱정이긴 해.”

“네?”

“지금껏 네가 싸웠던 상대 선수들은 제대로 MMA를 수련한 엘리트 선수들이었다면. 레이몬드는 길거리에서 싸움을 배워 MMA 선수로 전향한 케이스라 정형화되어 있지 않거든.”

“...”

“너도 꽤나 변칙적인 스타일인데. 레이몬드는 그걸 ‘변칙’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애초에 매우 공격적인 선수기도 하고.”

“뭐. 더 쎈 놈이 이기겠죠. 어쨌든.”

“뭐? 푸하하하. 그렇지. 내가 널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내 상대도 만만찮은 놈이니까.”

제이크 디아즈

WFC 미들급 랭킹 8위의 파이터.

이번 WFC 부산 시합의 필승 형 상대 선수였다.

겨우 8위?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WFC 미들급 랭킹 8위라고 하면 적어도 미들급에서는 전 세계에서 8번째로 강한 사람이라고 말해도 납득 할 정도의 위치였다.

결코 쉽지 않은 상대.

“어쨌든. 너랑 두호 형에 이어서 나까지. 어깨가 무겁다. 하하하.”

“잘하실 거예요.”

빈말이 아니라 필승 형은 그라운드의 스페셜리스트인만큼 그래플링으로는 평체인 나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테크닉을 구사했다.

그나마 약세를 보였던 타격 또한 전문 스트라이킹 코치와 복싱 코치들을 고용해 보완 중이었으니 충분히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듯했다.

“내가 마지막인데. 좋은 모습 보여줘야지.”

이번 WFC IN BUSAN에서는 필승 형을 포함해서 메인 카드에만 한국인 파이터가 4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언더카드까지 포함하면 총 6명의 한국인 선수가 출전하는 시합.

최근 한국에서 격투기 붐이 일어 여러 격투단체에서 한국 시장을 노리는 움직임을 보이자 WFC에서는 그런 낌새를 미연에 차단하겠다는 듯 부산에서 시합을 개최했던 것인데 그 메인 카드의 끝자락에 필승 형의 시합이 있었다.

“그래. 읏차! 쉴 시간이 없다! 다시! 시작!”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 2부 스파링으로 넘어가는 필승 형과 나.

그렇게 스파링 첫날은 흘러갔고, 시간은 쏜살처럼 흘러 WFC 부산 시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WFC 257

부산 시합.

나는 필승 형의 시합을 보기위해 빠듯한 일정 중에도 시간을 내 부산으로 내려왔다.

타이틀전을 위해 LA 훈련 캠프를 위해 출국을 해야하기에 설날 전에 부모님도 뵐 겸.

그리고 오늘 시합의 결과는.

-3라운드 3분 27초. 제이크 디아즈 tko승.

3라운드의 혈투 끝에 필승 형은 왼쪽 눈에서 피를 흘리며 들것에 실려 나갔다.

"... 저 새끼. 분명 고의였는데."

상대 선수. 제이크 디아즈의 고의성 반칙 공격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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