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_오픈 워크아웃 >
1.
오픈워크아웃.
간단하게 말하자면 팬서비스 차원에서 시행하는 공개훈련 같은 개념이었다.
물론 브로일러도 WFC와 마찬가지로 오픈워크아웃 일정을 소화하지만.
“와아...”
이건 규모가 달랐다.
“확실히. WFC랑 브로일러는 차이가 많이 나는구나.”
준현이 또한 별세계를 보듯 WFC 256 오픈워크아웃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아레나에서 펼쳐질 WFC 256.
오픈워크아웃 또한 MGM 그랜드에서 개최되었는데 지난 브로일러 248과도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당연하지. 일단 여기는 라스베이거스니까 말이야.”
우리의 감탄사를 듣고 있던 창섭 형이 한마디를 보탰다.
“산호세도 큰 도시지만. 라스베이거스에 비할 바가 아니지. 애초에 도시의 기능 자체가 다르니까.”
“뭐... 그건 그렇죠.”
세계적인 관광과 도박의 도시.
컨벤션과 엔터테인먼트의 천국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타지인 이고 관광객인 도시의 중심지에서 이토록 성대한 이벤트가 열리니 당연히 수준이 다를 수밖에.
“그나저나. 두호 형은 어디 있어요?”
“공개 훈련 이벤트 때문에 안에서 준비 중이셔.”
오픈워크아웃은 말 그대로 공개훈련이었기에 관객들이 보는 무대와 같은 공간에서 시합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가벼운 훈련을 보여주는 이벤트들이 있었다.
때로는 관객 참여 이벤트로 선수들과 가벼운 맞잡기를 하는 이벤트가 있을 때도 있었고, 보통은 평소에 하던 훈련 중 일부를 가져와 가볍게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후. 우리도 좀 들어가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래. 따라와라.”
나와 창섭 형을 따라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을 넘어 두호 형이 있는 대기실로 들어갔고 준현이와 창섭 형은 다시 오픈 워크아웃을 구경하러 나갔다.
“형!”
계체량을 대비해 한창 수분커팅을 하고 있는 두호 형.
몸의 수분을 배출함으로써 중량을 낮추는 수분 커팅은 시합 당일을 기준으로 약 일주일 여간 동안 단기간에 체중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었다.
계체량은 이틀 뒤인 금요일이었으니 지금이 가장 힘든 고비의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 해서야. 왔냐.”
대기실 안쪽은 아무리 겨울이라고 해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공기가 후끈거렸는데, 라지에이터를 비롯해 실내 난로 등 난방기구들이 몰려있어 불이 나지 않을까 겁날 정도였다.
“구경 좀 하고 왔어?”
“네? 아. 넵.”
“보면 할리우드 배우들도 많이 오고 유명한 샐럽들도 많이 오고했을 텐데.”
“하하. 별로 그런데 관심이 없어서요.”
나는 두호 형의 맞은편에 앉으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엊그제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해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 더 푸석해진 얼굴. 쏙 들어간 눈두덩이. 아직 몸이 다 만들어지지 않은 나와는 달리 두호 형은 순수 근육만으로도 웰터급 최대 몸무게에 아슬아슬할 정도로 완성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감량의 고통은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그것이겠지.
“새끼. 뭘 그렇게 안쓰럽다는 듯 쳐다봐?”
“에이. 안쓰럽게 쳐다보다뇨. 설마요. 저는 웰터급 안가길 잘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 인마?”
그제야 한바탕 웃으며 내 어깨를 퍽! 소리 나게 때리는 두호 형.
이 양반 팔 힘 보니 아직 힘이 남아도는구만.
“저는 미들급 한계체중도 사실 빡세거든요. 아직은 태울 지방이 조금 남아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이제 그것도 거의 없어서 수분컷팅의 지옥을 조금씩 맛보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씩 프로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이번엔 작게 피식 웃으며 스트레칭을 시작하는 두호 형.
나는 잠깐만 앉아있었는데도 12월 말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땀이 흘렀는데 두호 형은 거의 땀이 나지 않은 듯 했다.
수분이 말라가면서 점점 근육의 선명도가 올라가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한 단단한 근육들의 꿈틀거림에서 활화산과 같은 역동적인 힘이 느껴졌다.
“두호야. 슬슬 준비하란다.”
그때 안 코치님이 대기실로 들어오며 두호 형을 부르셨다.
오랜만에 짧은 셔츠에 팔다리에 타격 훈련을 위한 미트를 착용하신 모습으로.
“형. 저는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요.”
“그래.”
나는 코치님과 두호 형이 편하게 준비를 마무리하고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대기실을 나와 공개훈련 무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와. 연예인들 엄청 많음. 아까 조쉬 보넷도 봤음.”
대기실에서 나오자 한창 회랑을 구경하고 다니던 창섭 형과 준현이 타이밍 좋게 돌아와 있었다.
“공개훈련은 어디서 해?”
“저기 센터 쪽. 따라오셈.”
이미 홀의 구조를 빠삭하게 파악해둔 준현이 덕분에 편하게 찾은 메인무대.
그곳에는 두호 형에 앞서 공개 훈련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 학센이네.”
“그러게. 두호 형보다 앞 타임에 공개훈련 했구나.”
이번 주말. 두호 형과 WFC 웰터급 챔피언 벨트를 두고 맞붙을 상대. 학센이었다.
-뻐억! 퍽! 퍽! 퍼퍽! 뻑!
오른발 레그 킥과 펀치 컴비네이션. 이후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무릎 올려 차기까지.
호쾌한 미트 소리가 울려 퍼지며 학센의 타격 훈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찰칵. 찰칵.
그런 공개훈련 무대를 둘러싸고 연신 터지는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음과 관객들의 스마트 폰 카메라 소리.
실제 훈련보다 훨씬 가벼운 강도로 진행되는 보여주기 식 타격에 가까웠지만, 눈앞에서 직접 본 학센의 타격은 내가 이제껏 보아온 MMA 타격 중에서도 수위에 드는 수준이었다.
‘역시 WFC고 웰터급인가.’
몇키로그램 차이나지 않지만 미들급에 비해서 확실히 가볍고 빠른 움직임이었다.
거기에 더해 절망적인 수준이라는 브로일러 미들급 파이터들에게 익숙해진 상태에서 WFC 웰터급 챔피언의 테크닉을 보게 되자 더욱 놀라운 것도 있었다.
“자. 공개 훈련은 이것으로 끝마치도록 하고. 간단하게 학센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우리가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끝난 학센의 오픈 워크.
저 멀리 두호 형이 안 코치님과 함께 무대 뒤쪽으로 이동하는 게 보일 때 쯤 학센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이번 주말이면 다섯 번째 방어전을 치르게 되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소감? 그런 게 있을 리가. 지금은 연말이고. 나는 빠르게 시합을 끝낸 뒤 파티에 참석하고 싶은 생각 밖에 없어.”
“이번 도전자인 최두호 선수는 경력 14년의 베테랑 선수인데 이번 시합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준비한 전략이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나요?”
“내 상대는 40살이 넘어가는 노장이야. 그의 오랜 경력을 존경하지만 그건 그가 내 상대 선수가 아닐 때의 이야기지. 케이지 안에서는 경력은 필요 없어. 오로지 실력만 중요할 뿐. 내가 걱정하는 건 그의 늙어버린 뼈마디가 내 펀치를 감당할 수 있을 지야. 그렇다고 상대방을 살살 때리는 훈련을 할 수는 없잖아?”
준현이의 통역을 듣고 있자니 아주 신나게 개소리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공식 시합 전 기자회견도 아닌 자리에서까지 이렇게 입을 털어대다니.
갑자기 브래드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그리고. 최두호 선수는 사실 내게 있어 썩 달갑지 않은 선수야.”
“왜 그렇죠? 상성이 좋지 않나요?”
“노. 그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선수며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선수거든.”
“그게 문제가 될까요?”
“나는 돈을 벌기위해 WFC에서 경기를 뛴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합은 퍼킹 시간낭비 경기지. 그는 이슈를 만들 줄도 모르고 도발에 응할 줄도 몰라. 실력이 없으면 흥행성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는 양쪽 모두 아니라고.”
한마디로 이번 시합을 준비하면서 두호 형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건드렸지만 별 반응이 없어 시시했다 그거였다. 시합 당사자인 두 사람이 설전도 하고 싸우기도 해야 WFC INSIDER 같은 곳에도 나가고 경기의 흥행에 도움이 되는데 두호 형은 그런 부분은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학센의 추가적인 입장은 이틀 뒤 기자회견에서 다시 들어보도록 하죠.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후 다음 오픈 워크. 도전자 최두호 선수의 훈련이 있겠습니다.”
그렇게 학센이 내려가고 우수수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사람들.
물론 그래도 남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지만 뭔가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학센 공개훈련이 끝나니까 가는 사람들이 되게 많네.”
“... 휴식시간이라잖아. 훈련 시작하면 다시 오겠지.”
나는 준현이의 말에 애써 긍정적으로 답했지만 그다지 긍정적인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잠시 뒤 시작된 두호 형의 공개 훈련은 프레스 명찰을 단 기자들을 제외하고 일반 관객의 참여도는 꽤나 저조한 편이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많은 거지. 메인카드니까.”
곁에서 함께 공개 훈련을 지켜보단 창섭 형은 학센의 인기가 비정상적일정도로 좋았던 거지 지금 두호 형의 공개훈련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숫자도 결코 적은 게 아니라고 말했다.
흠. 확실히 PPV로 급을 나누는 WFC에서는 조금 더 도발적이고. 조금 더 자극적인 퍼포먼스와 입담이 중요하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WFC의 악동이라 불리며 갖은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학센이지만 그래도 WFC의 PPV 수입 랭킹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고 팬층 또한 두터웠으니까.
“자. 슬슬 나가자. 다 끝나고 움직이면 사람 많아서 불편해.”
어느새 두호 형의 공개훈련은 별 트러블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너넨 어쩔 거야? 오픈워크 끝나고 두호 형은 바로 체육관으로 갈 것 같던데. 너넨 밥 먹고 와라.”
한창 감량중인 두호 형의 곁에 붙어있는 코치진들은 몸에 작은 음식냄새도 베이지 않기 위해 식당을 가지 않고 숙소나 체육관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 샐러드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부러운 눈빛으로 다녀오라 말 하는 창섭 형을 뒤로하고 나와 준현이는 잠시 나가서 식사를 한 뒤 체육관으로 가기로 했다.
“하아. 배고프다. 뭐 먹지?”
준현이는 MGM 그랜드를 벗어나는 길에 연신 배가 고프다며 주변의 먹을 곳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슬쩍 스마트 폰을 보니 죄다 영어라서 그냥 알아서 고르게 내버려뒀다. 입맛은 비슷하니 어련히 맛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겠지.
-꺄악!
MGM을 나서 트로피카나 호텔 앞쪽을 지날 쯤 들리는 날카로운 비명소리.
“야. 저기 싸움 난 것 같은데?”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몰려있는 와중에 화가 난 듯한 남성의 목소리와 그를 말리는 듯 한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섞여 들려왔다.
“가보자.”
“아. 배고픈데.”
나는 배고프니까 그냥 가자는 준현이를 잡아끌고는 소란의 중심으로 빠르게 발을 옮겼다.
“네까짓 게 사람을 무시해? 너흰 사람 잘못 건드렸어!”
그곳에는 덩치 좋은 짧은 머리 백인 남성 한명과 그에 대치하고 있는 마찬가지로 몸 좋은 백인 남성 둘이 있었다. 그 뒤로 아까 들었던 비명의 주인공이라 예상되는 백인 여성 한명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괜히 시비에 불똥이 튈까봐 멀리서 그들을 지켜만 볼 뿐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리는 사람들은 없었다.
“대충 보고 가자. 여긴 한국 아님. 괜히 시비에 끼어들었다가 총 맞을 수도 있는 동네임.”
“...”
나름 격투기 선수라는 자부심으로 싸움 구경을 하러 왔는데 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급격히 자신감이 사라졌다.
그렇지. 이 동네는 잘못하면 총 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동네였지.
“저런 길거리 싸움은 흔해. 특히 좀 못사는 동네나. 아니면 이렇게 체육관이 많은 동네는 더 심하지.”
“흐음.”
아무래도 저기 시비가 붙은 사람들도 오늘 있었던 오픈 워크아웃을 보러 온 사람들 같았다. WFC 로고가 박힌 굿즈들이 주변에 굴러다니고 있는 걸로 봐서는 확실하겠지.
“덤벼봐! 이 머저리 같은 새끼들아!”
그때 2대1로 대치 중이던 남성들 중 짧은 머리 백인 남성이 갑자기 튕겨나가듯 상대방 남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야. 저거 위험하겠는데?”
“어? 냅둬. 저러다가 인실좆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아니. 저 남자 말고. 상대편 남자 둘 말이야.”
준현이는 지금 달려드는 짧은 머리 남성이 당할 거라 생각하고 대답을 했지만 내 생각은 정 반대였다.
“저 남자. 귀가 완전 까졌는데?”
짧은 머리 남성은 내게서 보이는 왼쪽귀가 완전 까진 만두 귀였다.
아무래도 취미가 아닌 전문적인 MMA 수련을 쌓은 사람으로 보였다. 달려드는 폼도 무작정 뛰어드는 게 아니라 자세를 낮추고 상대방 남성 중 하나의 측면을 파고들 듯 달려들고 있었다.
-퍼억!
“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 남성들도 꽤나 운동을 했는지 몸은 좋았지만 짧은 머리 남성이 작정하고 달려들자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다. 결국 두 명의 남성 중 한명이 짧은 머리 남성에게 다리를 잡혀 들린 뒤 아스팔트에 등부터 떨어졌고 의식을 잃었는지 움직임을 멈췄다.
“헐. 야. 저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저러다 큰일 나겠는데?”
저 짧은 머리 남자는 MMA를 수련한 것 같았는데도 조심성 없이 일반인을 아스팔트에다 패대기쳤다.
잘못하면 척추를 다쳐서 평생 후유증이 남거나, 머리부터 떨어졌다면 뇌진탕이나 뇌출혈 까지 올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오 마이 갓! 이봐요. 괜찮아요? 오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백인 여성은 쓰러진 남자에게 달려가 그를 흔들어 보지면 의식을 잃었는지 미동이 없는 듯 했다.
나머지 한명의 남성은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는지 주춤 주춤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지만.
“너도 이리 와! 감히 날 무시해? 내가 누군지 알아!”
짧은 머리 남성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나머지 한명의 남성에게도 달려들 태세였다.
“하. 야. 주변에 경찰이나 누구 좀 불러봐.”
“뭐 어쩌게?”
“일단 막아야지. 다행히 총은 없어 보이니까. 안 그러면 진짜 큰일 나겠다. 내 폰으로 동영상 좀 찍어주고.”
나는 동영상 촬영을 킨 뒤 준현이에게 스마트 폰을 넘기고는 빠르게 짧은 머리 남성에게 달려갔다.
“헤이! 헤이! 캄다운! 캄 다운!”
짧은 영어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겨우 이 정도였지만, 그 의도는 정확히 전달 된 듯 날 보고는 멈칫하는 짧은 머리 남성.
“넌 또 뭐야? 안 비켜?”
“노. 노. 캄다운. 릴렉스. 캄다운.”
뭐라는 지는 모르겠고. 일단 진정 좀 하라고 이 친구야.
“이젠 개나 소나 다 날 물로 본다 이거지? 안 비키면 너도 저놈이랑 똑같은 신세가 될 거야!”
아. 뭐라는 거야. 진정하라는데 왜 나한테까지 화를 내는 건데?
“으아아아!!”
짧은 머리 남성을 말려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그는 괴음을 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쿵!
“큭...!”
남성의 키는 190정도 될까? 나보다는 조금 커 보였다.
아까 2대 1 대치 상황 때 웃옷을 벗으면서 나타난 그의 몸은 풍선처럼 빵빵한 근육질에 의미를 알 수 없는 타투들이 몸 여기저기를 채우고 있었다.
“뻐킹! 너 뭐야!”
태클을 시도하는 남성의 양손 팔목을 잡은 채 어깨를 맞대고 힘 싸움에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상대방이 덩치도 더 커 보이고 근육도 더 많아보였지만, 생각보다 힘 싸움에서 밀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걸 어쩐다.’
아스팔트 위라 뭔가 큰 기술을 걸기엔 위험했다.
-휙!
나는 잡고 있던 남성의 왼쪽 손목을 순간적으로 뿌리치듯 놓으며 오른 손목을 잡아당겼다. 물론 상체는 뒤로 살짝 빼면서..
“...!”
어깨를 맞댄 채 힘싸움을 하던 남성은 순간 휘청이듯 내 쪽으로 상체를 쏟았고.
-파팟!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왼팔로 상대방의 오른팔 겨드랑이 안쪽을 위에서 감았고 오른팔 겨드랑이 안쪽으로 상대방의 목을 감았다.
“크윽...”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들어간 목감기.
-뿌득. 뿌득.
상대방 또한 어떻게든 그립을 풀어보려 애를 썼지만 나는 왼발을 상대방 오른 발 앞쪽으로 집어넣으며 목 감아 넘기기를 시도했다.
-퉁!
아스팔트에서 펼쳐도 그나마 큰 부상을 주지 않을 정도의 기술.
“크륵... 크륵...”
-탁. 탁 탁.
남성은 결국 목조르기를 버티지 못하겠는지 다급하게 아스팔트를 손바닥으로 세차게 두드렸고.
“후우...”
나는 그제야 목을 감고 있던 팔에 힘을 풀고 남성의 백 포지선을 제압한 뒤 경찰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해서야!”
그때 도착한 폴리스 차량과 함께 뛰어오는 준현이.
짧은 머리 남성은 경찰들까지 오고 나니 분노조절장애가 치료됐는지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였고 처음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던 남성 또한 정신을 차렸는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마이 갓. 너무 감사합니다. 은인이 아니었으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준현이가 경찰들에게 현장이 촬영된 동영상을 보여주며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있는 동안 시비의 당사자였던 여성분이 내게 다가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해서야.”
여성의 계속된 인사에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우물쭈물 대고 있는데 경찰과의 대화가 끝났는지 내 쪽으로 다가오는 준현이.
“다행히 별 문제 없이 넘어갈 것 같아. 저 남자 쪽도 자기 잘못 인정했고.”
“경찰서 가야해?”
“가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별 문제는 없을 거야. 상대방도 격투기 선수라고 하는 것 같으니까.”
“그래?”
쩝. 어찌됐든 결국 경찰서는 가야하는거네.
일이 이정도로 커졌으니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저... 한국. 분들이세요?”
그때 약간은 어색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발음으로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백인 여성.
“경찰서. 안가도 될 거에요. 저희 쪽 변호사가 곧 도착할거에요.”
이제는 놀란 가슴이 조금 진정됐는지 꽤나 차분하게 한국어로 말을 하는 그녀였다.
K-POP이 인기라지만 라스베이거스 한복판에서 만난 백인 여성이 이렇게 한국어를 잘 한다고?
“어...? 그러고 보니. 혹시... 레이첼... 아. 아닌가...”
그런 백인 여성을 뚫어져라 보던 준현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가 말을 줄였다.
“저를 알아보시는 분이 계시네요! 맞아요! 저 레이첼입니다!”
“헐! 대박!”
웬만해선 잘 놀라지 않는 준현이가 이렇게까지 놀라다니.
그래서 레이첼이 누군데?
작가의말
오늘 작가의 말은 몰라도 되지만 알면 더 재미있는 TMI 방출입니다!
1. 손아름과 전화에 등장했던 백경/서하늘. 그리고 오늘 등장한 레이첼은 제 전작인 ‘천만 안티 팬 배우님’에 등장했던 인물입니다.
2. 전작 이후로 차기작인 ‘딱대’ 에서도 비중있는 역할을 맡은 인물은 ‘손아름’ 과 ‘레이첼’ 단 두명입니다.
3. 레이첼은 전작 ‘천만 안티 팬 배우님’에서 주인공의 회귀에 대한 단서 파편을 가진 인물이었고, 특별한 능력은 없는 ‘아주 아주 부잣집 딸’ 입니다. 설정상 미국 4대 가문 중 하나인 ‘멜린 가’의 독녀입니다.
4. 레이첼은 모종의 이유로 한국에서 아이돌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서툴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압니다.
5. 레이첼은 손아름과 백경을 만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왔습니다. 그녀는 사복 경호팀이 있지만 백경을 만날때는 경호팀을 거의 대동하지 않습니다.
6. 러브라인... 은 사실 종목 밖입니다. 다만 이 글은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이기 때문에 격투 내용 외에도 일상적인 내용이나 약간의 청춘물과 같은 내용도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다루며 사람으로서의 성장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분량 조절을 잘 하여서 메인 줄거리인 ‘격투기’ 에 대한 본질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내용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7. 이번 글도 조금 깁니다. 오늘 올린 글을 다 합치면 4-5연참 정도는 될거에요... 연참이 너무 적다고 혼내지 말아주세요.
8. ㅅrㅈr 님! 소중한 후원 감사합니다! 덕분에 커피 마시면서 즐겁게 글 썼습니다! 댓글은 모두 읽어보았고 삭제하신 댓글도 이미 다 읽었습니다만. 작가는 전혀 기분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셨고, 또 앞으로의 내용을 기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댓글 달아주세요!
이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