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56화 (56/203)

< 57화_우승 >

1.

-와아아아아!!!!

브래드와 리카르도의 4강전은 2라운드가 끝날 때 까지 승부가 나지 않았고, 결국 판정에 의해서 브래드가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판정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게 리카르도의 눈가 출혈이 너무 심해 ‘서바이벌 룰’에 의해 결승 진출이 어렵다고 판단한 토너먼트 측이 브래드의 손을 들어줬던 거지만.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브래드가 탈락하지 않고 결승에 올라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만약 브래드마저 리타이어 했다면 나는 리저브 매치의 승자와 결승전을 가져야했을 거고, 쌓인 화를 풀어낼 데 없이 혼자 삭여야 했을테니까.

-툭.

드디어 케이지 중앙에서 만나 글러브 터치를 하는 나와 브래드.

불그스름하니 쓸린 듯 한 이마와 어깨.

그라운드가 강한 리카르도와의 4강전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음이 충분히 느껴졌다.

나는 브래드가 알아듣지 못 할 걸 알지만 진심을 담아서 반갑다는 인사를 한 뒤 뒤로 훌쩍 물러섰다.

드디어 시작된 결승 1라운드.

시합직전까지 흥분되었던 마음은 케이지 안에 들어선 뒤 되려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무리 토너먼트 4강전을 편하게 올라왔다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결승 무대가 거저먹는 시합인 건 절대 아니었다.

브래드는 결코 만만한 선수가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단순 랭킹만 보자면 오늘 토너먼트 참가자들 중에서 리카르도가 3위로 가장 높았지만 결국 브래드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톰슨과 비슷한 수준의 타격을 구사하는 복싱 베이스의 파이터.

5분 1라운드씩 총 3라운드.

총 15분이라는 짧은 순간으로 오늘 이 케이지 안에서 희비가 갈릴 것이다.

그만큼 상대도 나도 모든 걸 불태울 것이고.

-슥. 휘익.

내가 멀리서 스텐스를 유지하며 거리를 보고 있자 결국 브래드가 먼저 들어왔다.

영상과 아까 4강전 리카르도와의 시합에서 봤듯 복싱 특유의 스텝과 펀치 라인이 담긴 움직임. 물론 정통 복싱이라기에는 부족했지만 확실히 이제껏 상대했던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움직임이었다.

앨런 폰은 딱히 베이스를 구분 짓기 애매한게 종합격투기로 운동을 시작한 케이스였는데, 굳이 따지자면 타격이 조금 더 강한 선수였다.

솜차이는 말 할 것도 없이 무에타이를 베이스로 한 선수였고, 이바노프는 레슬링이 베이스였다.

톰슨은... 뭐. 넘어가자.

어쨌든 복싱 베이스의 MMA 파이터와의 시합은 처음이었는데 그 움직임의 동선이 꽤나 짧고 경쾌했다.

‘거기에 레슬링이라.’

MMA 1티어 조합이라는 복싱+레슬링의 조합이 브래드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파이팅 스타일이었다.

-휙. 탓!

나는 왼손을 앞으로 끊임없이 뻗어대며 견제를 들어오는 브래드의 공격에 한 번씩 걸려주며 시선을 계속 움직였다.

‘헷갈리지?’

분명 내 습관을 파악하고 왔을 테지만 4강전에서 톰슨을 상대로 보인 모습에서 ‘혹시 습관을 고쳤나?’ 하는 의심이 생겼을 거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1라운드 초반은 빌드업이라 생각하며 브래드의 공격을 ‘보고’ 피하는 모습을 보이며 틈이 나면 ‘보고’ 때린다는 작업을 꾸준히 쌓아나갔다.

“후욱. 후욱.”

1라운드 시작할 때만 해도 충분히 휴식을 취했는지 호흡이 안정적이었던 브래드.

하지만 라운드 시작 2분을 넘겨가자 슬슬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휙. 툭. 퍽!

엇박도 치면서 연타를 때려보던 브래드의 스텝이 잠시 멈춘 틈을 타 왼손을 얼굴 쪽으로 살짝 던지며 오른손으로 브래드의 복부를 찌르듯 치고 뒤로 쭉 빠졌다.

“큽!”

복부 정 중앙을 때렸기에 충분히 견딜 만 할 거다. 아프긴 하겠지만.

-부웅! 붕!

한방 먹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거친 숨소리보다 더욱 거칠게 치고 들어오는 브래드.

나는 그의 왼손 펀치를 피해내고 오른손 펀치를 왼팔로 막아내며 몸을 부딪쳤다.

-쿵!

몸과 몸의 부딪힘.

아무리 4강전 이후 휴식을 취했다지만 100프로 회복되었을 리가 없었다.

리카르도와 2라운드 내내 땅바닥을 굴러다녔으니 당연하겠지.

이전의 시합에서는 내가 먼저 피해 다녔던 그림을 지금은 내가 직접 그리고 있었다.

“흐읍...!”

서로 몸을 맞대고 온 몸에 힘을 주어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한 몸싸움을 시작했다.

-퍽!

붙어있는 상태에서 무릎을 올려 차며 내 복부와 옆구리를 두드리는 브래드.

어떻게든 날 떨어뜨리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브래드의 오른쪽 어깨에 내 오른쪽어깨를 맞대고 있는 상황. 나는 브래드가 날 감싸기 위해 들어 올리는 왼팔 손목을 오른손으로 잡아 바깥으로 진행방향을 틀었다.

-퉁!

그런 뒤 순간적으로 어깨를 밀어 브래드와의 틈을 만들고 살짝 무릎을 꿇으며 그의 열린 왼쪽 겨드랑이 안쪽으로 머리부터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브래드의 몸통을 안고 있던 왼팔을 이용해 몸을 뒤집으며 브래드를 집어 던지면.

-후웅. 쿵!

이렇게 보기 좋게 케이지에 내리 꽂을 수가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설명은 길었지만 정말 한호흡만에 일어난 테이크다운.

벌써 몇 시간째 메인카드와 언더카드가 오가는 시합의 릴레이였지만 관중들의 환호는 전혀 지치지 않은 듯 했다.

“와아아악!!”

나는 바닥에 쓰러진 브래드를 뒤로한 채 오른손 검지를 펼쳐 하늘로 뻗으며 소리 질렀다.

“헤이! 미스터 강!”

그렇게 잠시 멈춰서 손을 들고 있자 날 부르는 심판.

아직 시합은 끝나지 않았었다.

원래라면 테이크다운을 뺏은 뒤 바로 그라운드로 들어가 시합을 속행했어야 하지만 나는 바닥에 쓰러진 브래드를 신경도 쓰지 않았기에 시합은 스탠딩 포지션으로 다시 속개되었다.

“...”

날 향해 파이팅 포즈를 잡는 한껏 일그러진 브래드의 표정에서 그의 분노가 느껴졌다.

이정도로 그런 표정 지으면 안 되지.

-통. 통.

나는 그의 스텝을 흉내라도 내듯 평소와는 다른 복싱 스텝에 가까운 리듬으로 움직임을 바꿨다.

볼튼이 이렇게 했던가?

-툭. 툭. 툭툭.

1라운드가 얼마 남지 않은 순간. 브래드는 이미 체력이 많이 떨어져 움직임이 무거웠다.

나는 왼손으로 브래드의 오른쪽 관자놀이 근처를 노리듯 지속적으로 잔 펀치를 날렸는데, 그의 오른쪽 관자놀이 근처를 ‘바라보는 것’도 당연히 빼먹지 않았다.

-스윽. 뻐억!

어느 정도 타이밍을 잡았는지 왼손 잽 타이밍에 맞춰 내게 몸을 던지듯 상체를 붙이며 레프트를 뻗는 브래드.

아니, 정확히는 뻗으려 했던 브래드는 내게 몸을 던짐과 동시에 내 라이트에 왼쪽 안면을 정통으로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방금 전 라이트는 1라운드 내내 깔아뒀던 ‘보고 때리는’ 펀치가 아닌 주변시를 이용한 펀치였기에 브래드는 전혀 예상도 못한 채 일격을 허용해야만 했다.

-와아아아아!!!

이번에는 검지와 중지까지 펼쳐 손을 뻗은 뒤 케이지 밖 객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휘이이익!

이게 정말 오늘 경기의 마지막 시합이 맞을까 싶을 정도의 환호와 열기가 객석으로부터 전달되었다.

-비틀.

심판은 스탑 사인을 내리지 않았고, 브래드는 다시 한 번 일어나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후우...”

나 또한 몸을 돌려 브래드를 보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남은 시간은 1분여간.

이미 승부의 추는 기울어졌고 여기서 굳이 2라운드까지 질질 끌 것도 없었다.

-통. 통.

잔망스럽게 발재간을 선보이며 브래드의 주변을 반 바퀴 돌며 왼손 잽을 던져보지만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억지로 파이팅 포즈를 잡았지만 브래드의 얼굴에 전의는 사라진지 오래.

나 또한 이쯤하면 됐다는 생각과 함께.

-쩌억!

브래드의 왼쪽 허벅지에 라이트 킥을 한발 꽂아 넣은 후.

-턱.

왼손으로 그의 오른손 가드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듯 펀치를 휘둘렀다.

펀치를 막기 위해 안면 가드를 올리며 몸을 숙이는 브래드.

-뻐억!

내려온 그의 안면에 라이트를 한방.

-턱.

그 충격에 다시 펴지는 브래드의 상체를 내려찍는 듯한 왼손 오버핸드 펀치로 원상복귀 시킨 후.

“뻐억!

이번에는 라이트 펀치를 의식해 올린 가드 덕분에 텅 빈 그의 왼쪽 옆구리에 온 체중과 허리의 회전까지 실은 바디 블로를 한방 우겨넣어줬다.

-쿵!

“스탑! 스탑!”

복부를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상체를 숙인 채 바닥에 무릎 꿇은 브래드.

심판은 스탑을 외치며 나와 브래드 사이를 파고들었고 나는 눈앞에 무릎 꿇은 브래드를 내려다보며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 약지까지 핀 채 하늘 위로 뻗었다.

*

“저게 뭔가요!”

브로일러 248 시합을 중계하던 스포츠 TV의 김국현 해설 위원은 방송중임에도 순간 입에서 험한 말을 내뱉을 뻔 했다.

브로일러 248 원-나잇 토너먼트의 마지막 매치.

미들급 타이틀전이 걸린 결승 무대.

그곳에서 지금 황당하고 어이없는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4강에서 체력 소모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브래드는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강자. 그렇기에 결승 시작 전부터 김국현 해설위원은 강해서 선수가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빌드업을 쌓으며 브래드의 체력부터 빼는 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가야 할거라고 해설을 한 바 있었다.

“아아! 강해서 선수의 라이트 펀치에 안면을 가격당한 브래드 선수! 그대로 쓰러지고 맙니다!”

“강해서 선수! 이번에도 후속타를 날리지 않고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데요! 저는 격투기 해설을 하면서 이런 종류의 장면을 처음 해설해 봅니다! 마치 마이클 선수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브로일러 248의 피날레인 원-나잇 토너먼트의 결승전이. 전혀 긴장감 없는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무게가 기울어져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두 번의 다운을 당했던 브래드는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의 얼굴은 한껏 주눅 들어 있었고.

-턱. 뻑! 턱. 뻐억!

잡고 치듯 브래드가 도망가지 못하게 압박한 뒤 뻗어낸 강해서의 라이트 펀치가 안면에 한 대. 그리고 복부에 한 대.

그게 끝이었다.

-스탑! 스탑!

“스탑 사인이 나왔습니다! 강해서 선수! 결국 해내고 맙니다! 브로일러 248 원-나잇 토너먼트의 주인공은 자랑스런 대한의 파이터! 강해서 선숩니다!”

김국현 해설위원은 오랜만에 격투기 해설을 하며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인 선수가 중량급에서 이토록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니.

“피니시 장면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에 들어간 바디 블로가 결정적인...”

그렇게 김국현 해설위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결승전 시합 영상을 다시 한 번 짚으며 해설하고 있을 때. 김국현 해설위원만큼이나 인터넷 방송과 격투기 관련 커뮤니티의 반응도 뜨거웠다.

“와. 난 솔직히 이길 거라고는 생각 했는데. 이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길 줄은 몰랐습니다. 행님덜.”

너튜브에서 격투기 전문 채널 ‘므마TV’를 운영 중인 채성욱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연신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시박ㅋㅋㅋㅋ 첫 테이크다운 잡았을 때 왜 마운트 안 잡나 했더닠ㅋㅋㅋ

┕22222 아직 그라운드 약해서 안들어간건줄 알았는뎈ㅋㅋㅋ

┕약해서라니? 강해서거든?

┕ㄴㅈ

┕마무리 세레머니봐라 ㅋㅋㅋ 빵형 무릎 꿇고 빌고있는 것 같지 않냐 ㅋㅋㅋㅋ

┕ㄹㅇ;;; 강해서는 내려다보고 있고 브래드는 무릎 꿇고 고개숙이고 있으닠ㅋㅋㅋ

┕ㅈㄴ 뽕이 차오른다! 국뽕!! 한국인이 브로일러 토너먼트에서 유효타 한 대도 없이 우승하다니!!!

“진짜 행님들. 이거 진짜 대단한거에요. 우리나라가 복싱이나 레슬링. 유도. 이런 종목에서 경량급은 좋은 성적 많이 거뒀지만 중량급은 아직 이렇다 할 성적이 없거든요?”

┕왜 최두호도 있고 박필승도 있고 한데.

┕에이 최두호는 웰터급이잖아. 중량급이라고 말 하긴 애매하지

┕ㅋㅋㅋㅋ야 복싱 웰터랑 종합격투기 웰터랑 같냐?

┕어쨌든 중량급은 미들급부터라고 보는 게 맞다. 미들이 왜 미들이냐? 중량급 나뉘는 체급이니 미들이지.

┕최두호는 애매하다 쳐도. 박필승은 WFC잖아. 박필승 성적 무시함?

“그런 게 아니죠 행님덜. 박필승 선수 대단하죠. 바로 다다음달인가? WFC 부산 경기 메인카드로도 나오고. 얼마나 대단합니까. 중요한건 타이틀 말하는 겁니다 타이틀.

채성욱은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들과 소통하며 현재 세계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일단 최두호 선수는 바로 며칠 뒤에 있을 타이틀전. 에... 이 타이틀전이 조금 애매한데. 학센이라는 폭군을 상대로 최두호 선수가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냐. 그게 기대되구요. 당연히 승리해서 한국인 첫 WFC 챔피언이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솔찌 최두호도 이제 너무 늙었음;;; 저까지 올라간 게 대단하다고 생각함

┕학센이 맨날 언론플레이하고 도라이짓 해서 이미지가 별로 안 좋아서 그렇지 실력 하나는 진짜임

┕학센은 올라운더인데... 올라운더가 ㅈㄴ 애매한 게 타격이나 그라운드 하나가 특출난 상대면 몰라도 같은 올라운더 상대로는 하위호환이 상위호환을 절대 못이기는 구도임

┕ㅇㅇ맞음 최두호도 올라운더 스타일인데 학센에 비하면 좀 하위호환 느낌이지. 타이틀전 걱정된다.

“하하. 행님덜. 어쨌든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최두호 선수 응원해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기든 지든 최두호 선수의 타이틀전은 한국 격투기 역사에 큰 족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오늘 시합의 주인공. 강해서 선수.”

┕강해서도 다음 시합이 타이틀전이지 이제?

┕와... 그렇게 생각하니 ㅈㄴ 빠르네. 최두호는 십몇 년을 저바닥에서 구르고 이제 첫 타이틀전 가지는데 강해서는 일 년도 안돼서 타이틀 전 치르고

┕뭔 개솔? 최두호가 일본에서 첫 챔피언타이틀 딴게 언젠데. WFC에서 첫 타이틀전인거지. 최두호가 아예 타이틀전이 처음이냐? ㅉㅉㅉ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쨌든 ㅈㄴ 빠른 건 맞잖아. 그것도 군소단체도 아니고 브로일러 타이틀전인데.

┕이러다 진짜 챔피언 먹는 거 아니냐? 사실 따지고 보면 아직까지 제대로 고전한 시합도 없잖아? 오늘 4강전도 30초도 안돼서 초살하고

연말이라는 시기는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거나 갑작스런 좋은 소식이 들려 올 것만 같은.

그런 시기에 한국인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뉴스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강해서의 토너먼트 우승 소식과 바로이어 치러질 최두호의 타이틀매치 소식이었다.

연말 회식부터 송년회까지. 남자들 둘셋 이상 모인 자리라면 빠지지 않고 나왔던 강해서와 최두호의 시합 이야기.

그 중 첫 번째 주제였던 강해서의 원-나잇 토너먼트가 그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는 이야기는 아직 주말이 끝나지 않은 한국의 오후를 시끄럽게 만들기 충분한 이야깃거리였다.

2.

“강해서 선수. 우선 토너먼트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처음으로 선 파이널 매치 무대.

토너먼트 결승전이 오늘의 마지막 시합이었기에 승리 인터뷰 또한 충분히 여유 있게 진행되었다.

“데뷔 일 년도 되지 않아 믿지 못할 업적을 세우고 있다. 오늘 토너먼트의 우승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 한다면?”

준현이는 전날 브래드에게 위협을 당한 바 있기에 내심 걱정했지만, 내 걱정은 필요도 없다는 듯 태연히 케이지로 들어와 능숙하게 통역가 역할을 수행했다.

“우선 내가 뛸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준 브로일러와 오스만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번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어주신 오스만 회장님께는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결승전에서의 퍼포먼스는 어떤 의미였나요?”

그리고 마침내 나온 결승 매치의 이야기.

“특별한 의미는 없었습니다. 오늘 저와 시합을 치른 브래드는 바로 어제. 지금도 제 통역을 맡아주고 있는 제 친구를 위협하고 공격했습니다.”

“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격투기 선수로서 시장을 더 활성화 시키고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퍼포먼스를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 파이터가 일반인을 상대로 힘을 행사하고 위협을 가한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당연하다는 듯 내 말에 동조하며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제스처를 취하는 진행자.

마지막 시합은 인터뷰도 참 여유롭구나 싶었다. 아니면 토너먼트 우승자라서 그런 건가.

“저는 브래드를 이번 시합에서 처음 만났지만, 그는 이제껏 제가 싸워온 파이터들과는 달리 전혀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시합에서 그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의 다운을 봐준 것 자체가 그를 존중하지 않아서였다. 그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파이터로서 그보다 치욕스러운 게 없을테니까요. 지금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를 상대하면서 단 한 번도 긴장하거나. 불안하거나. 진심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는 그저 일반인에게 힘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양아치수준. 딱 그 정도였습니다.”

-휘익! 휙!

-와아아아아!!!

그렇게 승리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퇴장 로로 향하는 길에서도 날 향한 환호와 박수 세례가 끊이질 않았다.

“야. 승리 인터뷰 너무 쎄게 한 거 아냐?”

준현이는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길에 승리인터뷰 내용이 걱정되었는지 물어왔지만.

“이거 좀 봐.”

나는 브래드의 어제자 인터뷰 기사와함께 너튜브로 찾아본 다른 격투기 선수들의 신경전 영상을 보여줬다.

“...기사는 본거고. 너. 이런 거 찾아보냐?”

너튜브 검색 목록을 보더니 한심하다는 듯 날 바라보는 준현이.

-WFC 난투극

-욕설. 비방. 격투기계 라이벌들의 신경전

-계체량 레전드

“왜. 뭐.”

이런 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잖아. 보고 배울게 너튜브 밖에 없다고...

*

“나는 내일 아침 라스베이거스로 먼저 넘어간다.”

브로일러 248 원-나잇 토너먼트가 끝나고 난 뒤.

안 코치님과 스텝진 대부분은 다음날 가장 빠른 비행기로 라스베이거스로 향해야 했다.

“저는 일단 조금 쉬고. 오후비행기나 모레 쯤 해서 준현이랑 같이 넘어갈게요.”

아무리 유효타격 없이 끝났다지만 하루에 두 번의 시합을 뛰었다.

분명 정신적으로 지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기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 푹 쉬고. 움직일 때 연락해라.”

“넵!”

안 코치님은 내일 아침에 인사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오늘 저녁에 미리 말해둔다는 말을 남기고 짐을 정리하기 위해 숙소로 들어가셨다.

“코치님도 힘드시겠다.”

“뭐. 그렇지. 다행히 두호 형이 계속 라스베이거스에 있어서 날 중점적으로 캐어 해주셨지만. 두호 형 복귀하면 난 창섭형이나 다른 코치님이 맡으시겠지.”

안 코치님이 내일 첫 비행기로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이유도 두호 형 때문이었다.

나와 딱 일주일 차이로 두호 형의 타이틀전이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두호 형님. 문제없겠지?”

“당연한 소릴 하고 있냐.”

지난번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진이 빠질 만큼 스파링을 뛰어봤지만, 그 아저씨가 누군가에게 진다는 건 도저히 상상이 안됐다.

안 코치님이 먼저 숙소에 들어가시고 나와 준현이는 로비에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토너먼트 우승이라.’

개인 숙소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 스마트 폰을 켰다.

사실 당장 막 피부로 와 닿을 만큼 실감이 나진 않았기에 내 기사나 관련 게시 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

안 코치님도. 코치진과 스텝들도. 모두 오늘의 토너먼트를 위해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내 우승에 누구보다 기뻐해줬고.

다만 영세한 체육관이다보니 바로 1주일 차이로 잡힌 또 다른 빅이벤트. WFC 타이틀전의 준비를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했기에 오롯이 내 승리를 축하만 할 수는 없었다.

뭐. 그게 서운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뭔가 제대로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느낌이랄까.

-Rrrrrrrrr

그 미묘한 감정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스마트 폰으로 열심히 자기 검색중일 때 울리는 전화 벨소리.

저장되지 않은 국제발신 번호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해서냐?

통화 버튼을 누르니 들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

“형! 어쩐 일이에요?”

-어쩐 일은. 오늘 토너먼트 우승한 거 축하한다고 전화한거지.

“헐. 타이틀전 이제 일주일 밖에 안 남았는데 제 시합 볼 시간이 어디있다고.”

전화 발신자는 다름 아닌 두호 형이었다.

-야. 타이틀전 일주일 남았어도 밥도 먹고 똥도 싸고 다 해 인마.

“하하하하. 뭐. 그건 그렇죠.”

-잘 했다.

“...”

두호 형의 잘 했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고생했어. 정말 빠르게 달려왔다.

“...네.”

시합이 끝났다는 마침표 보다는 그간 달려온 내 몇 개월을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형석이 형이랑은 내일 온다던데. 너는 어쩔 거냐?

“전... 저도 내일 오후나 모레쯤 가려구요.”

-다음 주 수요일이 오픈워크아웃이다. 금요일이 시합 전 기자회견이고.

“알고 있어요.”

-오픈워크아웃 전에는 와라. 이번에는 내 차례니까.

브로일러 원-나잇 토너먼트 시합이 끝난 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내게서 바통을 받아간 두호 형의 전화.

-풀썩.

그 전화를 끊고 나니 뭔가 맥이 탁 풀렸다.

내가 주연인 순간은 벌써 끝인 건가? 하는 심정이랄까.

-Rrrrrrrrr

그때 다시 울리는 스마트 폰.

역시나 저장되어있지 않은 국제 발신 번호였다.

“여보세요?”

두호 형이 뭔가 못한 말이 있어서 전화를 했나 싶었는데

-여보세요? 해서야?

스마트 폰 너머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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