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_진화
1.
“다시! 한 번 더!”
후우.
이젠 훈련에 있어서는 준현이의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아주 귀에 딱지
가 앉을 정도로 반복되는 훈련들이었으니까.
“헤이! 또 그러잖아! 허리에 조금 더 힘을 주고 펀치를 짧게!”
“오케이!”
지난 앨런 폰과 솜차이 전. 그리고 이바노프 전까지.
브로일러 데뷔 후에는 타격보다는 언제나 그라운드를 중점으로 훈련했었다.
당장은 타격의 디테일을 손보기 보다는 한참 레벨이 떨어지는 그라운드를 끌
어올리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라운드를 내려두고 다시 타격으로 돌아왔다.
일단 이번 한 달간은 타격에 집중하며 내게 있는 문제점을 최대한 고치기 위
해서였다.
“헤이. 미스터 강.”
훈련 한 사이클을 끝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자니 백인 트레이너 하나가
다가와 날 불렀다.
“저기 옆 동네 카이서스의 체육관에서 스파링 상대를 구한다는데. 어때? 한번
뛰어볼래?”
“...카이서스의 체육관?”
나는 지금 두호 형의 추천으로 라스베이거스의 MMA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두호 형은 첫날은 함께 훈련했지만 둘째 날부터는 다른 체육관의 코
어강화 프로그램을 받으러 갔고.
“그래. 카이서스의 체육관. 물론 카이서스의 스파링 상대를 구하는 건 아니
야. 그의 체육관에서 케어하는 선수 중 하나의 스파링 상대를 찾는다더라고.
헤비급 상대로 여러 명을 찾는다 하니. 어때?”
“흐음...”
카이서스의 체육관이라면 복싱 체육관일거다.
한국에서야 비인기 비주류 종목이지만 이곳 미국 땅에서는 종합격투기보다 훨
씬 인기 있는 스포츠가 복싱이었다.
그리고 카이서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프라고 불리는 복싱계의 레전드였고.
“너무 심각할 필요 없어. 가벼운 스파링 상대로 여러 명을 구한다고 하니까.
미스터 강. 네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그럴까?”
복싱이라.
사실 격투기도 머리털 나고 처음 해봤는데 복싱이라고 해본 적이 있을 리 없
었다.
그나마도 격투기 입문 정말 극 초반에 타격의 종류들을 훑으며 복싱과 격투기
의 차이점을 배울 때 잠깐 맛본 게 다였다.
“야! 무조건 가야지! 카이서스 볼 수도 있는데!”
복싱 스파링이라는 말에 잠깐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통역을 도와주던 준
현이가 갑자기 급발진을 걸었다.
“너 카이서스 팬이었냐?”
“미친. 카이서스 팬 아닌 사람이 있겠냐? 몸값이 얼만데. 멀리서 보기만 해도
개이득임!”
“...그래.”
친구야. 네가 맨날 보고 있는 사람들이 다들 격투기 쪽에서는 한 끗발 날리는
사람들인 건 알고 있지? 카이서스에 너무 열광하면 이 친구는 섭하다 인마.
“스파링 모집 이야기 듣는 순간. 미스터 강 자네가 바로 생각났지. 자네 그
습관을 고치는 데는 아마 이번 스파링이 큰 도움이 될 거야.”
트레이너가 이렇게까지 말 하는데 거절하기도 조금 그렇지.
“오케이. 알겠어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줘요.”
*
“후아! 여긴 아직 여름이구나. 확실히.”
류은솔 에디터는 편집장에게 라스베이거스 출장 지시를 받고는 가장 빠른 비
행기로 한국을 떴다.
-Rrrrrrrr.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자마자 류은솔이 가장 먼저 전화를 건 곳은
-...여보세요.
맨즈 라이프 편집장의 번호였다.
“여보세요? 편집장님. 저 이제 막 라스베이거스 도착했다고 보고전화 드립니다.”
-... 너 일부러 이러지?
“어머. 해외 출장에서 보고전화는 필수덕목 아닌가요?”
류은솔은 이제 막 점심시간을 지난 라스베이거스의 뜨거운 햇살에 선글라스를
꺼내며 생글생글 웃었다.
-...여기는 새벽 네시야아. 은솔아. 제발...
“저는 우리 편집장님이 부하직원이 잘 도착했나 노심초사 잠도 못 주무실 줄
알고 연락드린 건데...”
-하아. 그래. 알겠어. 앞으로 보고는 모두 톡으로. 오케이?
“넵!”
자신을 이역만리 타국으로 보낸 상사에게 소심한 복수를 성공한 류은솔은 편
집장과의 전화를 끊은 뒤 바로 이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일전에 연락드렸던 맨즈 라이프 류은솔 에디
터라고 합니다. 네. 네. 제가 막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해서요. 네. 그러면 연
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마치 상대방이 앞에 있기라도 한 듯 연신 고개를 숙여대며 전화를 받는 폼은
조금 전 편집장과의 통화와는 사뭇 다른 그림이었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야
숙였던 허리를 펴며 기지개를 켜듯 몸을 스트레칭을 하는 류은솔이었다.
“어디보자. 저녁까지라. 일단 할 수 있는 조사들을 조금 해볼까?”
그녀는 아까 꺼내둔 선글라스를 멋들어지게 착용하며 콧노래와 함께 라스베이
거스 시내로 향했다.
2.
“누구야? 류은솔 에디터?”
“어? 어. 일단 저녁에 너 훈련 스케줄 다 끝나고 난 뒤로 이야기 해놨어.”
“오케이.”
준현이는 미국 훈련에서 거의 내 전담 매니저에 가까운 포지션으로 날 서포트
해주고 있었다.
연락이나 스케줄에 관련된 부분들도 준현이가 챙겨주고 있었는데 조금 전 전
화 내용을 들어보니 맨즈 라이프 류은솔 기자님이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듯
했다.
“그런데.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인터뷰는 조금 불편하지 않냐?”
“응?”
“훈련에 방해되지 않나 싶어서.”
이제는 진짜 매니저처럼 내 컨디션까지 챙기는 준현이 놈.
“괜찮아. 예전에 빚진 것도 있고. 애초에 격투기로 성공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유명해지고 싶었던 것도 있으니까.”
“하긴. 기태보다 네가 더 관종기질이 심했지.”
관종이라니.
사람이 적당한 물욕과 명예욕이 있는 건 당연한 거지.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내가 인터뷰를 하러 한국까지 가지는 못하지만 굳
이 라스베이거스까지 찾아와 인터뷰를 해준다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라스베이거스에서 운동하는 중에도 짬짬이 스마트 폰으로 내 이름이나
기사들을 검색해 봤다. 놀랍게도 팬 카페도 생겼더라. 회원 수는 이제 겨우
세자리를 넘긴 수준이지만.
그런데 기사라고 올라오는 것들이 죄다 이바노프 전 이후 오스만 회장의 발언
과 관련된 기사거나 추측성 기사들이 대부분이어서 조금 속상했는데 그 타이
밍에 딱 은솔 에디터님한테 연락이 왔던 거다.
“어? 여기다.”
그렇게 준현이와 저녁에 있을 인터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도착한 곳.
-Kaisus Boxing GYM
정말 심플하게 본인 이름을 내건 체육관이었다.
“들어가자.”
준현이는 앞장서서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더니 능숙하게 방문 목적을 이야기했
고, 덕분에 나는 편하게 체육관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미리 들으셨겠지만 볼튼의 스파링은 오후 2시 부근에 시작될 예정이니 가볍
게 몸을 풀며 준비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체육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오늘 있을 스파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
고는 자리를 떠났다.
“진짜 괜찮으려나?”
“뭐가?”
“너 복싱 거의 안 해봤잖아.”
“아아.”
준현이가 뭘 걱정하는지 알겠다.
익숙하지 않은 종목으로 해당 종목의 프로와 맞붙는 일은 사실 부담스러운 일
이긴 했다.
“그래도 라스베이거스 와서는 복싱이나 킥복싱 타격도 많이 배웠으니까. 오늘
도 배운다 생각하면 되지.”
“뭐. 트레이너들이 다 생각 있으니 추천했겠지?”
“그렇지.”
의미 없는 걱정만 늘어놓을 시간에 땀 한 방울이라도 더 흘리고 몸 한 번 더
움직이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조금 후에 있을 스파링을 위해서라도 주변의 복싱 훈련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움직여야지.
“근데. 이렇게 더운데 준현이 넌 왜 살이 안 빠지냐? 매일 나랑 같이 다녀서
뭘 많이 먹지도 않을 텐데.”
“...닥쳐.”
*
스파링은 아까 체육관 직원이 알려준 대로 오후 2시가 조금 넘어서 진행되었다.
“미스터 강?”
“아. 네.”
내가 잠시 멍때리고 있자 날 부르는 체육관의 트레이너.
-팡. 팡.
복싱 글러브야 그리 낯설지 않을 정도로 자주 사용했었지만 이걸 착용하고 스
파링을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스트리트 파이트 오디션 때 이후론 복싱
글러브를 끼고 사람과 붙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으니까.
“서로 너무 강한 타격은 지양하고. 스파링은 3분 3라운드로 진행합니다.”
“넵!”
심지어 사각 링은 태어나 처음 올라와봤다.
스트리트 파이트 때부터 케이지 안에서만 싸웠으니까.
복싱링은 정말 좁았다. 거기다 사각형이라 원으로 돌 수 있는 공간은 더 작았
고..
그리고 그런 사각의 링에서 내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
저 사람이 내가 오늘 스파링을 할 복싱 선수 ‘볼튼’ 이었다.
“동양인에. 브로일러? 그러면 MMA 선수라는 거야? 아무리 매스 스파링이라도
수준은 맞춰야 할 거 아냐?”
사각 링에 올라 스파링 시작만 기다리며 코너에 서 있는데 상대방 선수가 상
당히 불만스런 표정으로 뭐라고 했다.
“준현아. 뭐라고 하는 거냐?”
“수준이 안 맞다는데? 복싱선수도 아니고. 아시아인이라고.”
“이런 써글.”
암만 종목이 달라도 그렇지. 이렇게 대놓고 무시를 한다고?
그래도 스파링을 무르지는 않을 생각안지 심판의 지시에 따라 링 중앙에서 주
먹을 맞대고 스파링은 시작됐다.
-꽈악.
헤드기어를 쓰지 않았기에 시야는 불편하지 않았다.
마우스피스를 악물고 가볍게 볼튼을 향해 가는데.
-휙! 퍽!
정말 섬광처럼 상대방의 왼손 잽이 날아들었다.
다행히 글러브를 낀 손으로 막아냈기에 타격은 없었지만 놀라는 것만큼은 어
쩔 수 없었다.
‘진짜 사전 동작이 거의 없네.’
-휙. 휙 휙.
그리고 바로 이어서 뻗어오는 연타에 피하기보다는 팔을 올려 가드하기를 선
택했다.
확실히 제대로 된 복싱선수와 스파링을 가져보니 MMA와 복싱의 차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발목부터. 골반. 허리. 어깨의 회전이라. 군더더기가 거의 없네.’
얇은 오픈핑거 글러브를 쓰기 때문에 펀치의 데미지가 크고 KO율이 높은 MMA
에서는 안정적인 연타보다는 상대방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펀치 기술들이
발전했다. 반대로 상대방의 펀치를 한 대만 맞아도 큰 데미지를 입을 수 있기
에 복싱보다 훨씬 먼 타격 거리를 확보하게 되었고.
‘이정도 거리에서 이런 펀치들을 날려대니 링이 이렇게 좁아도 싸울 수 있는
거구나.’
MMA처럼 휘두르는 펀치나 동작이 큰 펀치가 거의 없었다. 어깨부터 내 얼굴까
지 가장 짧은 거리로 뻗어오는 펀치.
종합격투기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더 빠른 펀치를 날려대니 피하기가 어려
웠다. 거기다 글러브도 커서 피해야 하는 면적도 더 넓었고.
-휙. 휙. 휘익! 턱.
어느 정도 볼튼의 리듬이 익숙해질 때 쯤. 거리를 벌리려고 하는데 등 뒤로
뭔가 걸렸다.
‘...링?’
벌써 이렇게 뒷걸음 쳤나 싶었다. 링 중앙에서 시작된 공방이 어느새 사각 링
코너까지 몰렸으니까.
‘피할 데가... 없네?’
사각링 코너의 각은 90도. 코너 구석에 몰리자 당장 볼튼의 공격을 맞지 않고
는 나갈 길이 없었다.
케이지는 원형이든 8각형이든 움직임이 자유로웠는데 복싱은 링이 작고 사각
이라 도저히 적응이 되질 않았다.
-휙. 휙.
정말 시합 때처럼 집중력을 끌어올려 볼튼의 공격을 겨우 피해내고는.
-훅! 훅! 휘익!
나도 볼튼의 공격에 맞춰 주먹을 뻗어냈는데, 속도가 달랐다.
볼튼의 움직임은 훤히 보였는데, 내가 그리는 펀치의 궤적은 크고 낭비가 많
았다면 볼튼의 주먹은 짧고 간결했다. 그러니 볼튼의 펀치가 내게 먼저 닿을
수밖에.
-퍽! 퍼퍽!
다행히 14온스 글러브에 볼튼 또한 힘을 뺐는지 그리 타격이 크진 않았지만.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슥. 휙. 휘익!
글러브를 끌어올려 볼튼의 펀치를 막아냄과 동시에 비어있는 그의 복부를 향
해 펀치를 뻗었는데
-퍽.
볼튼의 가드에 허무하게 막혀버렸다.
“응?”
그리고는 뭔가 아리송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볼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방심하지 않고 코너를 빠져나오며 연타를 뻗
어냈다.
-휙. 휘익. 휙. 휙.
모두 빗나갔다.
볼튼의 눈은 나를 또렷이 주시하고 있었는데, 뭔가 낱낱이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이제 라스베이거스에 온지도 일주일가량이 돼 가는데, 아직도 타격 지점을 확
인하는 버릇은 고쳐지질 않았다.
복싱 스파링을 추천해준 트레이너가 그랬지.
복싱은 MMA처럼 고려할 요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내 습관이 더 불리하
게 작용할 거라고.
눈으로 어딜 타격할건지 확인한 후. 휘두르듯 궤도가 큰 MMA 펀치를 뻗어낸다.
이건 일류 복서 정도 되면 맞고싶어도 맞아줄 수 없는 펀치라고 했는데, 아니
나 다를까. 오늘 스파링에서 볼튼에게 단 한 번의 유효타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땡!
예비 종소리는 듣지도 못한 것 같은데 1라운드가 끝났다.
“후우. 빡세네.”
“괜찮아? 신나게 두드려 맞는 것 같던데?”
“신나게 두드려 맞기는. 탐색전이지 인마 탐색전.”
코너로 돌아와 잠시 쉬면서 준현이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내 머
리는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이러든 저러든 아시아인과 MMA를 무시하는 듯 한 발언을 한 볼튼에게 어떻게
한방이라도 먹여볼까 싶어서.
-땡!
30초의 짧은 휴식이 끝나고 돌입한 스파링 2라운드.
-퍽. 퍽. 툭. 퍽.
이제 볼튼은 아주 샌드백 치듯 내게 달라붙어 얼굴을 막고 있는 내 가드를 두
드린 후 바디에 주먹을 툭 갖다 댔다가 떼고를 반복했다.
매스 스파링이니 봐준다. 이런 느낌인데. 아주 기분 별로였다.
“후우...”
처음 격투기를 배웠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주변시’를 이용하라는 거였다.
주변시를 이용해야 상대의 움직임 전체를 관조하기 쉽고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나는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그냥 보면 되는 걸 굳이 주변시인가 뭔가
를 훈련해가며 반응해야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었으니까.
‘... 까짓것 해보지 뭐.’
주변시라는 게 별 거 없었다.
보기는 상대 선수의 눈을 바라보며 상대방의 움직임을 주변시로 파악해낸다는
게 요지인데. 나는 이제껏 상대방이 움직이는 움직임을 쫓아가며 싸우는 편에
가까웠다.
-부릅.
상대방을 바라보며 주변시만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면 텔레폰
펀치라는 오명도. 약점이 되어버린 습관도 없앨 수 있겠지.
-휘익. 휙. 퍽!
볼튼의 눈을 바라보며 그 주변의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려 했는데, 뭔가 뚜렷
하지가 않았다.
왼손 잽이 날아오는 걸 어렴풋이 보긴 했는데 억지로 그쪽을 보지 않고 볼튼
의 눈을 보며 주변시만으로 피하려다가 한 대 맞고 말았다.
예전 같으면 잽이 날아오는 걸 어렴풋이 본 순간 시선을 저쪽으로 돌려 궤도
를 파악하고 완벽하게 피해냈을 거다. 그런데 그게 습관이 되니 결국 이런 약
점이 생겨버린 거다.
-휙. 휙. 퍽. 휙. 퍽.
아우. 이거. 뇌가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었다.
펀치를 맞아서가 아니라 주변시만으로 볼튼의 움직임을 캐치하려니 눈보단 머
리가 더 피로한 느낌이라는 거다.
-땡!
주변시를 사용해 볼튼의 움직임을 파악하느라 신나게 두드려 맞기만 했던 2라
운드가 끝났다.
“해서야. 괜찮아?”
1라운드보다도 더 무기력하게 두들겨 맞은 2라운드. 준현이는 걱정이 되는지
표정이 꽤나 굳어있었다.
“어. 괜찮아. 가볍게 툭툭 건드리는 정돈데 뭐.”
매스 스파링이라 다행이지.
그래도 집중도는 확실히 일반 훈련보다 훨씬 높았으니 썩 만족스러웠다.
-땡!
잠시 눈을 감고 눈과 뇌에 휴식을 취하는 사이 30초가 지났고 마지막 3라운드
공이 울렸다.
-툭.
링 중앙에서 주먹을 맞대고는 바로 서로에게 접근하는 나와 볼튼.
-휙. 휘익. 휙. 스팟.
이번에는 맞지 않았다.
점점 볼튼의 모습이. 주변시가 뚜렷하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집중하자. 조금만.’
딱 한걸음만 더 내딛으면 뭔가 될 것 같은 느낌.
나는 펀치를 뻗을 생각도 하지 않고 볼튼의 펀치를 주변시로 피해내기만 했다.
-휙. 휘익. 훅. 휙. 휙.
이제 펀치를 피해내는 건 크게 무리가 없었고.
-찌릿.
뭔가 찌릿한 느낌이 눈인지 머린지 알 수 없는 어디선가 느껴졌고.
“와...”
나는 육성으로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스으윽
분명 볼튼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슬로우 모션 같이 볼튼의 어깨와 다리
근육의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