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49화 (49/203)

49화_라스베이거스로!

1.

“라스...베이거스요?”

“그래. 격투기의 메카라고 불리는. WFC의 본산. 지금 네게 필요한 건 거기 있

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

“납득이 안 되나보군. 이봐. 맘모스. 시범 한번 보여주지?”

두호 형은 내가 잠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바로 맘모스 코치를 불렀다.

“... 무슨 말인지 알겠군. 그거라면 나보다 적임자가 있지. 벤슨?”

“응? 나?”

그리고 맘모스 코치는 벤슨을 불렀다.

“준현아. 지금 맘모스 코치가 벤슨한테 뭐라고 하는 거냐?”

“네 타격을 텔레폰 펀치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며 타격 대처방법을 알려주

고 있는데?”

“...텔레폰 펀치?”

말 그대로 ‘내가 어디를 때릴 거다’ 라고 알려주고 친다는 뜻의 용어였다.

내 타격을 텔레폰 펀치로 만든다고?

“오케이. 한번 해보지.”

맘모스에게 충분히 설명을 들었는지 스파링 글러브를 팡팡 치며 자신 있게 앞

으로 나서는 벤슨.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이제 벤슨과 나는 수준차이가 꽤나 났다. 그것도 타

격만 놓고 보면 심할 정도로 차이가 났고, 그건 맘모스 코치도 익히 알고 있

는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벤슨을 내보냈다 이거지?’

물론 이바노프나 두호 형이 내 타격을 피해낸 건 꽤나 놀라웠다. 습관이랄까.

고쳐야 할 게 있다는 것도 알겠다.

그렇지만 타격의 스페셜리스트라는 솜차이도 피하지 못한 펀치를 벤슨이 단순

히 말 몇 마디 들었다고 피해낸다?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원더 보이. 잘 부탁해.”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와 함께 글러브를 툭 부딪쳐 오는 벤슨.

두호 형과 맘모스 코치가 무얼 보려주려는 건지는 알겠다만. 원하는 대로 검

증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휙. 휙 스팟.

가볍게 던진 원 투.

레프트는 빗나갔지만 라이트는 벤슨의 이마를 살짝 스쳤다.

“휘유. 좋아.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

벤슨이 거리를 벌리며 뭐라고 이야기했지만 별 신경 쓰지 않고 전진스텝을 밟

았다.

-휙. 휘익. 후웅.

원투 컴비네이션에 하단 라이트 킥까지.

모두... 빗나갔다.

“와우. 진짜네. 펀치 날리고 킥 날릴 땐 아래를 바라보잖아?”

뭔가 재미나다는 듯 내 공격을 피한 후 웃어대는 벤슨.

이거. 쓸데없이 자존심 상하네.

“헤이! 벤슨!”

그때 두호 형이 잠시 스파링을 멈추더니 벤슨을 불러 뭔가 귓속말을 했다.

“오? 오케이.”

두호 형의 말을 듣고는 오케이를 외치며 다시 스파링 재개를 위해 다가오는

벤슨.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걸까?

-툭.

다시 글러브를 맞댄 후 이번에는 조금 더 벤슨과의 거리를 좁히며 펀치 셋업

을 시작했다.

-휙. 휘익. 휙.

짧은 연타들로 벤슨의 안면을 노리며 가드와 시선을 펀치로 잡아둔 뒤.

-휘익!

훤히 비어있는 벤슨의 왼쪽 다리를 향해 오른발 킥을 차 올렸다.

-퍼억!

순간 흔들리는 시야.

분명 오른발에 타격감은 느껴졌는데 나도 충격을 받았다.

“...뭐야.”

스파링이라 서로 힘을 실어 타격을 치진 않았기에 빠르게 뒤로 빠져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하. 하하...”

어색하게 웃고 있는 벤슨.

그의 오른팔이 내 왼쪽 관자놀이를 두드린 듯 했다.

“...”

나는 집중도를 한껏 끌어올리며 벤슨의 지근까지 접근했고.

-휙. 휘익. 툭. 투툭. 퍽. 퍼억!

“스탑! 스탑! 어후! 기브업!”

어디 피할 수 있으면 피해보라는 식으로 컴비네이션을 쏟아냈고 결국 처음 몇

번의 헛손질 이후 유효한 타격을 꽂아 넣으며 벤슨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어떠냐? 방금 스파링.”

벤슨의 항복을 받아냈음에도 찝찝함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내게 다가오며

말을 거는 두호 형.

“되게 찝찝하네요. 아까 벤슨한테 뭐라고 한 거예요?”

“별거 아냐. 네가 킥을 차기 위해 시야가 왼쪽이든 오른쪽 아래를 향하면 맞

을 각오를 하고 오버핸드를 뻗으라 그랬지.”

“...”

“순간 시야에서 상대 주먹 궤도가 안보였을 거다. 그러니 타격을 입었지. 그

렇지?”

“...네.”

“솜차이전을 봤다. 2라운드에서 유효 타격이 꽤 있었지?”

“네? 네. 체력이 빠져서 보고 도 못 피한...”

“늦게 본거겠지.”

“... 맞아요.”

정확히는 보고도 못 피했다기보다는 봤을 땐 이미 피하기 늦은 상태였다.

그래도 체력만 쌩쌩했으면 피했을 수도 있는 펀치였는데.

“벤슨은 타격으로만 치면 솜차이보다 못할 거다. 대신 웰터급이니 스피드는

훨씬 빠르지. 약물로 근육을 키우며 스피드를 잃은 솜차이보다 훨씬. 그러니

아예 보지도 못하고 맞았던 거지.”

“...”

“타격만 놓고 보면 벤슨이 이바노프보다 나을 거야. 속도도 그렇고. 만약 이

바노프가 조금만 더 빠르고. 조금만 더 타격이 좋았다면. 과연 어제 시합 결

과는 어떻게 됐을까.”

결국 솜차이도 시합 전에는 몰랐던 내 습관을 1라운드 이후 2라운드부터는 알

아채고 유효타를 넣었다는 말이었다. 그걸 영상분석으로 알아낸 이바노프는

시작부터 내 타격을 봉쇄한 채 그라운드 싸움으로 끌고 갔던거고.

만약 내 상대가 그라운더인 이바노프가 아닌 타격 전문가였다면. 내가 그라운

드 준비를 조금만 더 미흡하게 했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해보니 순간 소름이

오싹 돋았다.

“중요한 건. 해서 너 정도 핸드 스피드에 반응속도라면. 웬만한 선수들은 네

습관을 알아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거다. 최소 브로일러 최상위권. WFC 랭

커급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겠지. 말 그대로 세계 정상급의 선수들 말이야.”

“그러면...”

“벤슨 저 친구 정도면 웰터급에서 꽤나 빠른 선수 같은데. 그래도 결국은 해

서 네 습관을 알고도 타격을 다 피해내진 못했지.”

“그렇죠.”

“네가 이정도 수준에서 만족할거라면. 천천히 경험치를 쌓으면 약점을 극복하

면 된다. 언젠가는 극복하겠지만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

두호 형은 내가 눈이 너무 좋아 생각보다 습관을 고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고 했다. 안 코치님이나 팀 피스트에 소속된 선수들 수준에서는 보고 때리는

지금 내 타격에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제대로 된 연습이 어려울 거라며.

“내가 한국에 있으면 훈련에 도움을 주겠는데. 난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

가야 해. 어찌됐든 내 시합 일정도 잡혀있으니 마무리를 해야하거든.”

“그렇죠.”

내 훈련을 봐주기 위해 두호 형의 일정을 미루고 한국으로 돌아와 달라는 말

을 할 수는 없었다. 브로일러 토너먼트보다 훨씬 큰 이벤트인 WFC 타이틀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라스베이거스엔 해서 네 보고 치는 타격을 잡아줄 수 있는 선수들과 코치들

이 차고 넘친다.”

“저... 형. 제가 라스베이거스를 가기 싫어서 물어보는 건 아니구요. 맘모스

코치정도면 잡아줄 수 있지 않나요?”

그래도 브로일러 최상위권 타격가 출신인데.

“흠. 그건 내가 대답해주지.”

내 말을 적절하게 통역해준 준현이 덕분에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맘모스 코치에

게서 들을 수 있었다.

“일단 대답부터 해주자면. 못해. 난 미스터 강 자네의 타격에 반응까진 할 수

있겠지만 완벽하게 피하며 카운터까지 칠 순 없어. 내가 선수를 그만둔 지 얼

마나 지났는지 잊은 건 아니지?”

“...”

“그리고 애초에 난 스피드가 좋은 선수가 아니었어 현역 때도. 아랫체급의 빠

른 선수의 타격을 보고 반응하라는 건 무리라고.”

하긴. 맘모스 코치가 몸이 날랜 편은 아니었다. 거기다 현역도 아니었고.

“하... 잠시만요. 저만 오케이 한다고 끝나는 상황이 아니어서요. 안 코치님

한테도 물어봐야하고 준현이 일정도 물어봐야하구요.”

두호 형이 하루 종일 날 쫓아다니면서 통역해줄 게 아니라면 준현이가 같이

넘어가야했다. 아무리 준현이와 친하다지만 한 달씩이나 걸리는 일정을 강요

할 수는 없었다.

“형석이 형한테는 당연히 미리 말해뒀지. 잊었나본데. 널 담당하기 이전부터

내 코치. 내 매니저였어. 형석이 형은.”

“나도 괜찮음. 어차피 체류비는 다 제공해줄거 아냐. 라스베이거스는 나도 몇

번 안 가봤는데 완전 땡큐임.”

두호 형은 이미 안 코치님과 이야기가 끝났다고 했고, 준현이도 라스베이거스

일정에 전혀 무리 없다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하... 라스베이거스라.”

가족들과 친구들. 그 외에도 여러 얼굴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래도 일단은 지금 집중해야 할 건 연말 토너먼트지.

“오케이. 콜. 가 봅시다. 까짓 거.”

다음 행선지는 라스베이거스였다.

2.

“은솔 씨! 어떻게 됐어 강해서 선수 인터뷰는?”

‘맨즈 라이프’ 피처 에디터인 류은솔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편집장의 호출을

받아야했다.

“팀 피스트 쪽으로는 연락이 안돼서 개인 연락처로 연락을 해봤는데, 지금 라

스베이거스에서 전지훈련을 들어갔나봐요.”

“라스베이거스? 갑자기?”

“최두호 선수도 라스베이거스에 있잖아요.”

“어?”

류은솔 에디터의 이야기를 듣고선 뭔가 느낌이 왔다는 표정의 편집장.

“이거. 그림 나오겠는데? 인터뷰. 딸 수 있겠어?”

“...지금 라스베이거스까지 가라는 거예요?”

설마? 라는 표정을 지으며 편집장을 바라보는 류은솔.

“아직 여름휴가도 못 다녀왔지 은솔 씨?”

“... 여름 다 지났는데 무슨 여름휴가에요?”

류은솔은 자신이 입고 있는 얇은 가디건을 편집장의 눈앞에 들이밀며 어이없

다는 듯 대답했다.

“라스베이거스는 아직 한창 더울 때지. 이참에 여름 휴가 다녀와. 경비지원

최대한으로 땡겨줄게.”

“... 며칠이나요?”

“인터뷰 일정 빼고 3일 빼줄게.”

“그 사이 제 업무 백업은요? 다녀와서 업무 폭탄일 것 같으면 일 없어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업해줄게. 휴가마치고 왔을 때 쌓여있는 일 절대

없을 거야.”

“흠...”

이건 꽤나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최고의 관광도시중 하나인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휴가라니. 그것도 회사 돈으로.

“대신. 인터뷰 무조건 따와야 해. 최두호 선수까지 딸 수 있으면 더 좋고.”

“최두호 선수는 모르겠고. 강해서 선수 인터뷰는 딸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케이! 바로 비행기 표 알아봐!”

편집장이 이렇게 안달이 난 이유는 지난 이바노프 전 이후 강해서의 몸값이

수직상승한데 있었다.

WFC에 비해서는 한 끗발 떨어진다지만 그래도 세계 2위 단체인 브로일러에서

승승장구하는 한국인 파이터.

그런데 그 스토리가 정말 드라마나 영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나이 서른에 격투기 예능으로 재능을 찾아 세계무대까지 겨우 반년 만에 도달

한 천재.

거기다 세계 2위 격투기 단체의 회장 오스만이 직접 미친 재능이라 격찬하며

연말 토너먼트 출전권을 확정지었다.

최근 이렇다 할 새로운 스포츠 스타가 탄생하지 않은 한국에서 오랜만에 국뽕

차오르는 샛별이 떠올랐다.

당연히 방송가나 광고업계에서도 어떻게든 강해서와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이

바노프 전 이후 바로 라스베이거스 전지훈련을 떠난 강해서에게 접촉 성공한

곳은 없었다.

-떠오르는 격투 신예 강해서. 브로일러 243에서 이바노프를 상대로 1라운드

서브미션 KO를 따내다!

-브로일러 오스만 회장. ‘강해서는 검증이 필요 없는 선수. 연말 토너먼트 진

출을 확정 짓겠다!’

-최두호와 강해서. 그들이 몸담고 있는 ‘팀 피스트’에 대해서!

└진짜 진심 ㅈㄴ 가슴이 웅장해진다. 강해서 그는 도덕책...

└진짜 인자강 그 자체 ㅋㅋㅋ 나이 서른까지 제대로 운동안해봤어도 저 정도

면 10대때부터 운동 했으면 대체 어디까지 올라갔을까?

└진심. 10대때부터 운동했으면 아시아 최초로 중량급 챔피언 볼 수도 있었을

듯...

└왜? 지금도 중량급 챔피언 될 수도 있지

└ㅈㄹ 중량급이 ㅈ으로 보이나... 게다가 강해서는 라헤나 헤비급 가기엔 키

가 작아서 어렵다.

└브로일러 미들급 챔프라도 아시아인. 한국인으로서는 진짜 대단한 성과임.

이건 국뽕 한 사발 들이켜도 됨ㅇㅇ

└진짜 시합 보면 ㅈㄴ 시원시원하게 함. 제발 나중에 사고치거나 약물 이런

걸로 구설수만 안탔으면 좋겠다.

└근데 왜 기사들이 죄다 지난 시합 내용 리핏하는 것 밖에 없냐? 근황이나 인

터뷰 같은 건 없음?

편집장은 류은솔 에디터를 자리로 돌려보낸 후 인터넷 기사란과 격투 커뮤니

티 반응들을 살펴봤다.

인터넷 기사들은 모두 지난 이바노프 전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2차가공해서

내보내는 카피 기사들뿐이었고, 격투기 커뮤니티에서는 강해서의 새로운 소식

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만약 류은솔 에디터가 라스베이거스에서 강해서의 인터뷰를 따온다면 ‘맨즈

라이프’의 인지도 상승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한국뿐만 아니라 강해서를 찾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으니.

“그래? 미스터 강이 지금 라스베이거스에 있다고?”

WFC의 회장이자.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손 중 하나로 손꼽히는 텔론.

“이거. 이 늙은 팬이 라스베이거스에 있다는 걸 알려줘야겠군. 준비하게.”

그가 강해서를 만나기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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