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46화 (46/203)

46화_다른 소식

1.

-찰칵. 찰칵.

이제는 세 번째니 만큼 어느 정도 익숙해질 법도 한 계체량이었지만 매번 그

국가가 다르다 보니 쉽게 적응되진 않았다.

“다행히 이번은 미국이라 편하네.”

통역으로 따라온 준현이는 상당히 편한 듯 이미 적응을 마친 모습이었다.

“저기. 저 사람이 네 상대 선수지? 이바노프?”

“어? 어. 맞는 것 같아.”

지난 솜차이와의 시합도 그렇고. 이번 이바노프와의 시합도 그렇고.

이렇다 할 이슈나 트러블 없이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역시 엘런 폰이나 최창우가 조금 특이한 종자였던 걸까.

“솜차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네.”

“저게 어딜 봐서 조금 다른 느낌이냐. 완전 다른 느낌이지.”

솜차이는 미들급 치고는 상당히 작은 편에 속했고 이바노프는 미들급 중에서

도 큰 축에 속했다.

“해서 너보다 큰 것 같은데?”

“당연하지. 키가 191이라는데.”

WFC와 브로일러에 등록된 선수 평균이 미들급은 185. 라이트 헤비급이 187.

헤비급이 190cm라고 했다.

리치는 미들급이 191. 라헤가 194. 헤비급이 197cm로 나는 미들급치고는 헤비

급 평균 리치를 상회하는 타격 거리를 가지고 있지만(198cm)...

“쟤 진짜 팔 다리 길다.”

“...그러게.”

이바노프는 키 뿐만 아니라 윙스팬. 팔 길이도 나보다 길어 보였다.

레슬링 기반의 그라운드의 스페셜리스트. 나보다 팔다리가 길고 체격도 좋은

상대.

여러모로 유리하지 않은 상황과 조건들이었다.

“рад встрече. Это Иванов.”

한참을 힐끔 거리고 있자 우리를 알아봤는지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이

바노프.

“만나서 반갑대. 이바노프래.”

“나도 만나서 반갑다고 전해줘.”

이바노프와의 대화는 그의 말을 이바노프의 통역관이 영어로 준현이에게 전달

하고, 그걸 내가 다시 한국어로 듣는 방식으로 꽤나 번거로웠다.

“내일 시합에서 좋은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미스터 강.”

“이바노프 씨야말로. 좋은 시합 부탁 드립니다.”

아주 서글서글한 표정에 선뜻 먼저 다가와 말도 걸고. 인싸기질을 타고났나

싶을 정도로 친화력이 좋은 선수였다.

“그런데. 몸은 해서 네가 더 좋은 것 같다. 저 선수는 조금 마른 것 같아. 영

상으로 봤을 땐 몸 되게 좋아 보였는데.”

이바노프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난 뒤. 둘만 남았을 때 준현이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글쎄.”

오늘 본 사람이 내일 케이지에도 똑같이 들어온다면 그럴 텐데 말이지.

*

-풀썩

계체량을 마치고 아레나 근처의 숙소로 돌아와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엘런 폰과의 경기부터 시작해 솜차이 전을 거쳐 내일 있을 이바노프 전까지.

채 반년이 되지 않는 기간에 벌써 세 번째 정식 시합을 치르게 됐다.

솜차이와의 시합 이후로는 정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고된 훈련을

이어왔지만 아직도 시합 당일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꽈악...!

침대에 누운 채 오른팔을 들어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게 누구 팔이야 싶을 정도로 두껍고 단단한 근육에 핏줄이 꿈틀거려 문득

낯설었다.

“몸이. 달라지긴 했구나.”

토하기 직전까지 달리고, 지치면 쓰러지는. 그런 일상을 반복했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내 육체나 기술의 완성을 느끼기보다는 그저 당장 오늘

하루를 쌓아간다는 느낌으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단순 반복 작업을 계속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비록 한참 아래 체급이긴 했지만 주짓수 블랙벨트의 코치

에게 탭을 받아내면서. 그리고 지금 눈앞에 단단하게 수축하고 있는 팔 근육

을 보면서.

이제야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성장했구나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읏-차.”

리게인을 위해 시간 단위로 쪼개서 섭취해야 하는 보충 음료를 하나 챙겨 들

고는 숙소 바깥으로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여긴 이제 선선하네.”

한국보다 조금 더 서늘한 코네티컷의 9월 말 밤공기는 살짝 차갑다는 느낌마

저 주고 있었다.

지난 몇 달.

내 삶에 이렇게 치열하게 달린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달려왔다.

나는 특별할 거야. 나는 남들과 다를 거야.

그 생각 하나로 고교 학창 시절과 대학 시절을 흘려보냈던 적이 있었다.

그저 그런 조연의 삶이 아닌. 누구보다 빛나고 화려한 주인공의 삶을 살 거라

고. 신촌의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입학했을 때만해도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나와 같은 무수한 ‘보통의’ 사람들과 섞여 살다 보

니 내 삶은 어느새 무채색이 되어 있었다.

공무원 준비. 공사. 기업체 면접 준비.

한때는 세상을 바꿔보자는 포부로 뭉쳤던 많은 지인들이 하나 둘 현실에 순응

하며 안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사회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에서 도태되었었는지도 모른다. 끝까지 난 특

별할 거라 자위했지만 결국 내가 택한 건 보편적인 삶의 가이드가 아닌 일탈

에 가까운 선택들 뿐이었으니까.

그 결과 나는 나이 서른에 직장 경험 전무의 웹소설 작가가 되어 있었고, 오

래 사귀었던 여자 친구는 현실에 지쳐 떠나갔었다.

“코네티컷. 브로일러. 격투기라...”

분명 ‘어딘가 난 특별한 구석이 있을 거야’ 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설마

격투기 쪽 이었을 줄이야.

지난 십 년 간 바뀌지 않았던 나의 일상을 겨우 반년 만에 이렇게 바꿔 놓을

수 있다니.

처음에는 호기심에. 그 다음엔 조금쯤 등 떠밀려서. 그리고 이제는.

“내 길...”

나만의 길을 찾아 브로일러에. 토너먼트 출전권과 타이틀전을 위해 달리고 있

었다.

문득 나만의 길을 걸으라던 안 코치님과 체육관 이적을 권유하던 필승 형의

모습이 스쳐 지났다.

격투기라는 놈에게 진심이 될수록.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었다.

“야! 강해서!”

숙소 근처를 한 바퀴 산책하며 상념을 정리한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멀리서 날 부르는 또렷하고 힘 있는 목소리.

“...”

누군가 싶어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고개를 돌렸는데.

“방으로 전화해도 안 받고. 폰도 안 받고. 뭐했냐?”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을 리가 없을. 없어야 할 사람이 서 있었다.

“두호... 형?”

“뭐야?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왜 그래? 내일 시합 땜에 쫄았냐?”

“그런 게 아니잖아요. 형이 어떻게 여길...”

“어떻게는. 비행기 타고 왔지.”

씨익 입 꼬리를 올리며 오른손을 들어 올린 채 다가오는 두호 형.

-짜악!

까만 밤을 깨우는 하이파이브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라스베이거스에 있었지 않아요?”

“있었지.”

라스베이거스는 미국 서부 도시다. 코네티컷은 동부 도시고.

같은 미국 땅이라도 시차가 3시간은 존재하는 거리인데 이 먼 거리를 오다니.

“아끼는 후배 놈이 같은 나라에서 경기 한다는데. 와 봐야지.”

“하하. 고마워요.”

정말 눈곱 만큼의 기대도 없었기에 더욱 고마웠다.

“긴장 되냐?”

숙소 정문 앞. 벤치가 있었지만 두호 형이나 나나 굳이 벤치에 앉지는 않았다.

밤늦게 사내놈들끼리 벤치라니. 그건 좀 아니지.

“아뇨. 사실 시합은 별 생각 없는데. 앞으로의 진로 때문에 생각 정리 좀 한

다구요.”

“흠.”

두호 형은 내가 숙소 밖을 서성이고 있자 시합에 대한 걱정이 있는 줄 알았나

보다.

“생각보다 훨씬 큰 고민을 갖고 있었구만. 시합에 대한 거라면 내가 한 대 때

려서라도 기합을 넣어주려 했는데.”

“하하. 저. 이제는 쉽게 안 맞아요 형. 예전의 제가 아닐걸요?”

“새끼. 형도 예전의 형이 아냐.”

-퍽!

“아! 왜 때려요! 내일 시합 뛰는 선수를!”

“다행히 힘은 넘치네.”

진짜 아프게 내 등짝을 후려치고는 피식 웃는 두호 형.

“이번 시합만 이기면. 브로일러 토너먼트 출전권까지 한 시합 남았나?”

“그렇...죠? 이긴다는 가정 하에.”

“토너먼트는 올 연말이고.”

“넵.”

스읍-하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두호 형.

“후-”

“...”

잠시 후 두호 형이 뜨거운 숨을 내뱉자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밤바람이 조금 서늘해졌다지만 아직까지는 반팔로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따뜻

한 날씨였다. 대체 저 속이 얼마나 뜨거우면 이 날씨에 입김이 나와?

“해서야.”

“네?”

“너. 지금도 충분히 빨라. 그만큼 위태롭겠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듯

이. 한 번 쯤은 멈춰 서서 중심을 잡고 다시 달리기 위한 재정비를 하고 싶기

도 할 거야.”

“...”

어쩜 내 고민을 이렇게 정확히 짚을까.

“그런데. 그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평범한 사람들요?”

“그래. 절대 다수에 속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멈추지 않고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내딛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넘어지고 좌절하

게 되겠지.”

“...”

“하지만 넘어지지 않고 두 발. 세 발을 내딛는 열 중 하나 둘의 사람을 대중

은 우러르고 동경한다. 나는 해서 네가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필승 형도 그렇고 두호 형도 그렇고. 나도 확신이 없는 나에 대해 무얼 보고

저렇게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건지.

“오늘 내가 널 찾아온 건. 내일 있을 네 시합을 보기 위함도 있지만 다른 용

건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널 보니 이 소식이 더 필요하겠어. 너한테는.”

“다른 용건이요?”

내일 있을 시합 말고 다른 용건이 또 뭐가 있을...

“시합이 잡혔다.”

까 싶었는데. 시합이라니?

“학센과의. WFC 웰터급 타이틀전.”

“...”

두호 형은 눈에서 불길이라도 토해내려는 듯 내가 아닌 밤하늘 어딘가를 노려

보며 사자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러니까. 늦지 않게 따라오려면 지금 멈춰 설 시간은 없을 거다.”

“그게 무슨...”

“나는.”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뱉는 두호 형.

“내년 초. 학센을 잡고 WFC 웰터급 챔피언이 된다. 그리고.”

순간. 두호 형의 근처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서늘한 밤바람이

아닌 후텁지근한 라스베이거스 사막의 열기와도 같이 뜨거운.

“과거 실패했던 WFC의 미들급에 도전한다. 그러니. 늦지 말고 쫓아와.”

3.

“반갑습니다. 스포츠 TV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브로일러 243 시합. 자랑스러

운 대한의 파이터. 강해서 선수의 시합이 있는 날입니다. 해설에는 김국현 해

설위원님이 도움을 주시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스포츠 TV 시청자 여러분. 오늘도 강해서 선수의 시합 해설을

맡은 해설위원 김국현입니다.”

한국시간 오전 11시.

코네티컷 모히건 선 아레나에서 펼쳐지는 브로일러 243 시합의 중계가 한창

송출되고 있었다.

“해설위원께서는 이번 강해서 선수의 승률을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에. 저는 사실 이번 경기는 강해서 선수에게 많은 불안 요소가 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우선 강해서 선수와 상대 선수인 아드 릭 이바노프 선수의 경

기 영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중계에서 말투 때문에 많은 악플을 받은 김국현 해설위원은 조금은 어색

하지만 최대한 자신의 말버릇을 줄여가며 해설을 이어나갔다.

“보시면. 이바노프 선수는 키와 덩치. 리치까지 강해서 선수보다 우위에 있습

니다. 아마 계체량 이후의 리바운드에서도 훨씬 유리할 겁니다. 아마 오늘 시

합 당일 체중으로는 두 사람의 체중 차이가 꽤나 많이 날겁니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덩치가 더 클수록 체중 회복에 유리하니까요.”

“맞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바노프 선수는 레슬링을 베이스로 하는 전형적인

그라운드형 파이터에요. 팔다리가 길고 코어 근육이 좋은 선수죠.”

김국현 해설위원은 지난 이바노프의 경기 영상과 강해서의 경기 영상을 살피

며 말을 이었다.

“강해서 선수는 그라운드 영상 자체가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영상은 지난 봄에 강해서 선수가 출연했던 ‘스트리트 파이트’에서 그라

운드 훈련을 하는 영상들인데. 이것만 봐서는 강해서 선수의 그라운드 테크닉

은 아직 많이 미흡하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타격은 뛰어나지만 그라운드 기술이 미흡하기 때문에 이바노프 선

수와의 경기에서 변수가 있을 수 있다.”

“맞습니다. 근력이나 타격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그라운드 테크닉은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바노프 선수에게 잡혀 바닥을 구르게 되면 시

합은 아주 어려워질 수 있으니 어떻게든 타격 전으로 시합을 끌고 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강해서의 그라운드 취약점을 언급하며 최대한 타격으로 몰고 가야 한다는 해

설을 하는 중.

“아! 말씀하시는 중에 강해서 선수와 이바노프 선수의 등장 차례가 되었습니다!”

캐스터는 예비 모니터에 강해서와 이바노프의 등장 차례가 뜨자 곧바로 멘트

를 자르며 영상 교체 타이밍을 잡았다.

“강해서 선수. 솜차이 선수와의 경기 때보다 더욱 다부져진 몸으로 위풍당당

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바노프 선수! 등장합니다!”

가볍게 어깨를 돌리며 등장하는 강해서와. 지난 계체량과는 숫제 다른 사람이

라 해도 믿을 만큼 덩치를 키워 등장하는 이바노프.

브로일러 243. 그 중 강해서의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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