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44화 (44/203)

44화_첫경험

1.

“말 그대로다. 불시 도핑 테스트를 하러 온다고 하니 자리비우지 마.”

“...네.”

불시 도핑테스트라.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괜히 도핑테스트라는 말만 들었는

데도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왔을 때 미리 알고 있었다는 티 내지 말고.”

“네?”

“브로일러에 친한 친구가 하나 있어 오늘 도핑 테스트가 나올 거라고 말 해준

거니 아는 척 하지 말란 말이야.”

“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불시 도핑 테스트는 말 그대로 ‘불시’에 검사관이 나와서

도핑 여부를 테스트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KADA(한국 도핑 방지 위원회)에서는 불시에 나온다 하더라도 애초에

KADA에 도핑 테스트 요청을 한 USADA나 브로일러에서 이렇게 미리 귀띔을 해

주는 경우가 있는 듯 했다.

“어차피 자리 비우지 말라는 뜻에서 고작 몇 시간 전에 알려주는게 전부다.

그래도 알고 있었던 티를 내서 책 잡혀서 좋을 건 없으니 명심해.”

“넵!”

WFC도 그렇겠지만 브로일러 또한 선수의 거주지와 훈련 체육관. 훈련 시간까

지 정리한 소재지 정보를 분기별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그리고 해당 정보들을 바탕으로 언제든 불시 테스트가 진행될 수 있는데, 이

때 보고된 자리에 선수가 없고, 또 일정 시간 안에 선수가 나타나지 않을 경

우 시합 출전 등에 불이익을 준다고 들었다.

“내부 사람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서 네가 연말까지 3승을 하지 못하게 하

려는 움직임이 보인단다.”

“네?”

“내가 화를 냈던 것도 그것 때문이지. 도핑 테스트는 문제가 안 돼. 해서 너.

불법 약물 복용하거나 주사한 적 있어?”

“아뇨?”

“그래. 불시 도핑 테스트는 그냥 운이 나쁜가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 문제

지. 우린 떳떳하니까. 문제는 이번 테스트가 우리를 지목한 저격이라는 거다.”

브로일러에서 나를 상대로 저격을 했다라.

“만약 훈련을 위해서라던지 감량을 위해서 불법 약물을 사용했었다면 출전 정

지가 걸렸을 거다. 아니지. 오늘 도핑 검사관이 왔을 때 네가 자리에 없었어

도 물고 늘어졌겠지. 빌어먹을 놈들.”

쩝.

그럴 거면 애초에 3승 조건으로 토너먼트 출전권을 준다는 계약을 하지 말던지.

계약은 했으면서 토너먼트 출전은 막으려는 행동들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조금 시끄러운 모양이야.”

“내부적으로요?”

“그래. 계약 내용이야 어쨌든 이제 갓 데뷔한 신인에게 타이틀 도전권을 줄

수 없다는 내부적인 체면 문제겠지.”

사실 토너먼트 출전권을 조건으로 달았다지만 그 전제조건이 연말까지 3승이

었다. 그들 말대로 신인이 달성하기는 쉽지 않은 과제이기 때문에 오케이 했

을 테지만 막상 1승을 챙기고 나니 만의 하나라는 불안감이 생겼는지도 모르

겠다.

“어쨌든. 도핑 테스트도 한번쯤 경험해봐야 할 일이다. 오히려 잘 됐지.”

“잘 되다뇨?”

“시합 전 도핑테스트에 걸려서 멘탈 깨지는 것 보다는 차라리 불시 테스트로

경험을 쌓는 게 나을수도 있다.”

멘탈이 깨지다뇨? 멘탈이 왜 깨져요?

*

“여기 밀봉된 시료 채취 용기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안 코치님이 왜 멘탈이 깨진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손을 씻으시려면 제가 보는 곳에서 물로만 씻으셔야 합니다.”

“아. 네.”

KADA에서 두 명의 도핑 검사관이 체육관에 방문한 건 코치님이 전화를 받고나

서 한시간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용기를 선택하셨으면 용기 내부를 검사하시고.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시면 됩

니다.”

“넵...”

정말 무표정하다는 게 어떤 건지 알려주는 교보재 같달 까.

심지어 말투도 고저가 거의 없는 기계적인 말투였다.

“아무 이상 없어 보이네요.”

“네. 그러면 시료를 여기 보이는 선 이상으로. 90미리 이상 받으셔야합니다.

지금 바로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어... 네.”

다행히 코치님에게 먼저 언질을 받았기에 그 이후로 화장실을 가지 않아 소변

검사를 하는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면 같이 가실까요?”

문제는...

“제가 시료가 채취되는 걸 제가 직접 봐야합니다. 이쪽으로 돌아서 주세요.”

“...”

보통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검사하듯 혼자 조용히 가서 소변 샘플을 받아오는

방식이 아니었다는 거다.

“돌아서 주세요.”

도핑 검사관이 ‘지켜보는’ 와중에 소변 샘플을 받아야 한다는 거였다.

“잠시만요...”

분명 방금 전까지 소변기를 느꼈는데 검사관이 지긋이 내 그곳을 지켜보고 있

으니 갑자기 소변이 안나왔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하게 하세요.”

“...넵.”

전혀 안 편한데 어떻게 편하게 해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남이 보는 앞에서 소변을

보는 경험을 하고나서야 샘플 체취가 끝났고, 그 소변을 나눠 담을 시료 병까

지 내가 직접 선택해야했다.

“그러면 시료를 나눠담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히 시합 직전에 이런 경험을 처음 하게 됐다면 멘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강해서 선수?”

“네?”

“시료 비중 검사를 위한 샘플양이 조금 모자라네요. 조금 더 채취 가능하실까

요?”

“...”

다행이다. 시합 전에 예방접종을 맞을 수 있어서.

*

“흠. 덤덤하네?”

오늘 USADA의 요청을 받아 강해서의 도핑 테스트를 하기위해 팀 피스트의 체

육관을 찾은 KADA의 도핑 검사관은 두 명.

그 중 한명은 강해서를 따라 시료 채취를 위해 시야가 차단된 공간으로 들어

갔고, 나머지 한명은 팀 피스트의 사무실 소파에서 다리를 꼰 채 허리를 파묻

고 있었다.

“안형석 코치님. 이번에도 좋은 선수를 발굴하셨나봅니다. 아주 인복을 타고

나셨어.”

“...고맙습니다.”

“거기다 나 같은 검사관까지 알고지내고. 이게 얼마나 큰 복이야. 안 그래요?”

“...”

KADA의 도핑 검사관 이진상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안 코치를 바라보

며 말을 이었다.

“우사다 얘들은 이게 문제야. 브로일러도 그렇고 WFC도 그렇고. 선수들이 좀

화끈한 시합을 준비하다보면 적당히 약도 쓸 수 있고 그런데 말이야. 굳이 그

걸 잡아내겠다고 불시 테스트까지 하고.”

앞에 놓인 얼음 커피를 한잔 홀짝이며 안 코치의 표정을 관찰하는 이진상 검

사관.

“저희도 죽겠습니다. 아주. 검사 요청이 들어오면 나오긴 해야 하는데, 이게

우리도 업무 리소스만 늘어나는 짓이라는거지. 안 그래요? 코치님?”

“하하. 그렇죠. 수고가 많으십니다.”

검사관만 계속 떠들게 놔둘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한마디 대답을 하는 안 코치.

“그래서. 혹시 뭐 걸리는 건 없어요? 있으면 편하게 말만 해요. 제 선에서 다

처리 가능하니까.”

“...”

“지금 샘플 따러 간 애 있죠? 걔가 내 부사순데 좀 에프엠이라 깐깐해. 그래

서 그냥 가만 놔두면 강해서 선수 검사를 아주 철저하게 할 거라 그거야. 그

래도. 괜찮겠어요?”

당연히 괜찮지 않을 거라는 어투의 이진상 감독관. 안 코치는 그런 감독관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너무 잘 알았다.

“예능 프로그램 스트리트 파이트로 격투기 데뷔. 최창우와 이벤트 매치 이후

브로일러 데뷔 포함 2전 2승. 키야. 거기다 시합 텀이 두 달? 와우. 이거 우

리 코치님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대단하십니다.”

“... 뭐가 대단하다는 겁니까?”

“에이. 다 알면서 왜 이러실까. 약 잘 쓴다는 말이지. 아니면 따로 도핑 디자

이너한테 의뢰라도 한 건가?”

“저희는 불법 약물 사용 안합니다.”

“알만 한 사람끼리 왜 이러세요.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을 구하셨나? 그래도

현장 검사관인 제가 제일 확실한 거. 아실텐데.”

“...”

이진상 담당관은 애초에 강해서가 불법약물을 투약했을 가능성이 100프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팀 피스트 체육관을 오며 부수입이 쏠쏠하게

들어올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안 코치의 반응이 생각과 같지 않으니 조금 당

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최두호 선수야 본인이 워낙 깐깐한 스타일이라 그렇다 치고. 안형석 코치님

은... 전력이 조금 있잖아요? 왜 이제 와서 깔끔한 척이에요?”

“내가 깨끗하다는 게 아닙니다. 해서가 깨끗하다는 거지. 저놈은 시키는 운동

외에는 아무것도 한 적이 없으니까.”

“...”

이쯤 되자 이진상 검사관은 안 코치가 진짜 자신이 아닌 다른 윗선을 매수한

건 아닌지 의심이 되었다.

도핑 테스트를 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확실한 건 사

람을 매수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한국은 태국만큼은 아니지

만 도핑 테스트가 꽤나 널널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처음 왔을 때. 강해서 선수가 그리 놀란 표정이 아니

더군요. 안 코치님?”

조금 전까지 능글능글하던 모습을 지우고는 살짝 굳은 표정에 딱딱한 말투를

내뱉는 이진상 감독관.

“감독관님. 시료 채취 끝났습니다.”

그때 마침 소변 샘플 채취가 끝난 강해서와 다른 한명의 감독관이 돌아왔다.

“농도 체크 해봤어?”

“네. 비중 검사도 완료했습니다.”

“...그래?”

무언가 이해가 되지않는다는 표정의 이진상 검사관.

“강해서 씨.”

“네?”

“저희가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셨죠? 도핑 테스트도 이번이 처음이셨고.”

“네? 아하하. 네.”

“그런데 저희 처음 왔을 때는 별로 놀라신 표정이 아니던데.”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해서의 눈을 바라보며 추궁하는 이진상 검사관.

“놀라야하나요?”

“네?”

“여기가 뭐 가정집도 아니고 체육관인데. 처음 보는 사람이 왔다고 놀라는것

도 이상하죠. 도핑테스트야 뭐. 경기기간 중 검사를 아직 한번도 안받긴 했지

만 언젠가는 할거라 생각했으니 그리 놀랄 것도 없죠.”

“...”

강해서의 대꾸에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진 이진상 검사관은

“크흐음. 여튼. 오늘 체취한 시료는 WADA 인증 시험실로 넘어갈겁니다. 그 이

후로는 저희 소관이 아니구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안 코치를 바라보며 정말 원하는게 없냐는 눈빛을 보

냈다.

“이진상 검사관님. 잠시만 이쪽으로.”

“네! 안 코치님.”

그런 그를 안 코치가 나직이 부르며 귀를 달라는 시늉을 하자 그러면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봐요. 이 진상아. 아까 사무실에서 나눈 대화는 모두 녹음되었으니 괜히

험한 꼴 보기 싫으면 오늘 채취한 샘플이나 안전하게 잘 인계해.”

안 코치의 귓속말에 낯빛이 하얗게 질리는 이진상 검사관.

“흠. 흠. 그러니까. 잘. 좀. 부탁합니다. 검사관님.”

안 코치는 그런 이진상에게 한 발 떨어져 다시 예의 바르게 악센트를 주어 당

부의 말을 건넸다.

“그, 그럼요. 야! 이거 혹시라도 이상 생기지 않게 잘 보관해! 뭐해 빨리 준

비 안하고!”

함께 온 젊은 검사관에게 괜히 목소리를 높이며 다급한 발걸음으로 체육관을

빠져나가는 KADA 검사관들.

“뭘 잘 부탁한다는 거예요?”

“그런 게 있어. 그나저나 어떻디. 할 만하디?”

안 코치는 강해서의 물음에 장난스레 대답하며 생에 첫 도핑 테스트 소감을

물었다.

“저. 좀 울고와도 돼요?”

2.

“오늘 그 친구 온다고 했었나?”

한창 코어 훈련을 마치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던 박필승이 입을 열었다.

“누구? 강해서?”

“그래. 강해서.”

읏샤. 하는 추임새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박필승은 스마트 폰을 꺼내 강해

서의 지난 시합 영상을 재생했다.

“정말 소름끼치는 타격이지. 안 그래?”

“그렇지. 저기서 그라운드까지 완성 된다면. 아니. 디펜스 레슬링만 어느 정

도 숙달돼도 정말 무서울거다.”

“참. 두호 형은 인복도 많지. 이런 후배가 같은 체육관이라니 말이야.”

살짝 굳은 낯빛으로 중얼거리듯 최두호를 언급하는 박필승.

“어디보자. 우리 후배님이 뭘 좀 좋아하려나? 후배님 맞을 준비를 좀 해볼까?”

그러더니 갑자기 인상을 활짝 피며 강해서를 맞을 준비를 하자며 체육관원들

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듣자하니 강해서는 최두호랑 WFC에서 붙고 싶어 한다며? 그러면 어차피 체육

관 옮겨야 할 거 아냐.”

두 팔을 넓게 벌리며 관원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는 ‘슈퍼익스트림’ 짐의 넓은

내부를 둘러보는 박필승.

“이왕 그럴 거라면. 우리 체육관도 좋지 않겠어?

작가의말

어이쿠...

도핑테스트 내용이 나오니 댓글이 많았습니다.

우선 USADA는 실제로도 UFC와 계약을 맺고 UFC에 소속된 선수들을 대상으

로 언제든 불시 도핑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불시’ 입니다.

언제 어느 타이밍에 나올지 알 수가 없어요. 비시즌인 경긱기간 외에도

테스트를 받을 수 있죠. 그래서 비시즌에는 약물을 사용하고 경기 이전에

는 약물을 몸에서 빼내던식으로 훈련을 하던 많은 선수들이 징계처리된

전례가 있습니다.

물론 미국에서야 USADA가 직접 도핑 테스트를 진행하겠지만, 타 국가에

있는 선수들의 경우 USADA에게 위임받은 다른 도핑방지기관에서 대신 샘

플 채취를 하기도 합니다. 물론 시약은 WADA에서 인증한 시험실로 넘겨져

거기서 테스트를 하지만요.

어제 너무 앞뒤 설명 없이 도핑이라는 내용만 보여드려 혼선이 온 것 같

아 죄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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