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39화 (39/203)

39화_나의 길

1.

“그래서. 브로일러랑 계약한다고?”

“아직 확실한 건 아니고. 브로일러 쪽 연락받아보고.”

결국 체육관에서 빡세게 훈련 한 타임을 뛰고 나서 친구들의 술자리에 잠깐

들렀다.

물론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정말 잠깐 앉았다 일어날 예정이었다.

“흠. 그래도 WFC가 낫지 않나? 뭐. 트레이너가 전문가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

“그런데 WFC랑 브로일러랑 그렇게 차이가 많이나?”

매사에 깐깐한 성격인 재현이는 이번 계약 건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비쳤고, 기태는 브로일러와 WFC의 차이를 물었다.

“내가 듣기로 WFC 랭커 수준이면 브로일러나 스트릿 FC같은 하위 단체 챔피언

급이라던데? 아닌가?”

기태의 질문에 대답한 건 내가 아닌 재현이었다.

“브로일러정도면... WFC 랭킹 5위 정도면 챔피언 먹을 수 있으려나?”

“그 정도로 차이가 심해?”

“나도 인터넷으로 본거라서. 해서가 잘 알겠지.”

결국 나한테 물어볼 거면 대체 왜 아는 척이냐.

“재현아.”

“응?”

“너 mbti하면 N이랑 T 나오지?”

“어? 몰라?”

언제 한번 친구 놈들 성격유형검사를 한번 돌려봐야겠다.

“여튼. 아까 하던 말 이어보자면. 격투기 판에서 절대적인 건 없어. WFC 챔피

언이랑 브로일러 챔피언이 붙는다고 해서 무조건 WFC가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는 거지.”

“단판으로는 그렇겠지. 확률을 따지려면 대수의 법칙대로 그 표본이 많아져야

지. WFC 챔피언이랑 브로일러 챔피언이 10경기 20경기 붙으면 WFC 쪽이 승률

이 더 높지 않을까?”

“... 지랄.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

“뭐. 불가능하겠지.”

그러니까 불가능한 이야긴데 왜 그렇게 진지하세요.

“근데 웰터급은 몰라도 미들급은 확실히 차이 좀 많이 나지 않냐? 지금 WFC

미들급 엄청 화려하잖아. 브로일러 선수들 다 땡겨가서. 브로일러에 남은 애

들은 WFC퇴출되다시피 한 애들이 대부분이던데. 박필승 정도면 브로일러 챔피

언 먹지 않으려나?”

“넌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찾아보는 거냐?”

“해서 네가 격투기 하니까 친구로서 정보수집 해주는 거지.”

“...고오맙다.”

박필승 선수라.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경기라면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두호 형과 함께 WFC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파이터 쌍두마차 중 하나였으니까.

물론 랭킹은 두호 형보다 낮은 8위인가 9위인가 그랬는데 체급이 달라 누가

더 대단하다고 말하기 애매한 선수였다.

“어쨌든. 답은 실제로 붙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거야. 너희 중 한명이라

도 내가 최창우랑 붙어서 이길 거라고 생각 한 사람 있냐?”

“...”

“결국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야. 특히 격투기의 경우는 상성이라

던지. 그날의 컨디션이라던지. 준비한 전략이라던지. 아주 사소한 요소들로

승패가 나뉠 수 있으니까.”

“... 우리 해서. 전문가 다 됐네. 이열.”

“시꺼 인마.”

기태와 재현이는 끅끅 거리며 웃으면서도 내 말에 수긍했다.

“그나저나. 중요한건 브로일러가 오케이를 해도 해서 네가 올해 말까지 세 게

임을 뛸 수 있느냐와 그 세 게임을 모두 이길 수 있느냐. 그게 중요한 거 아냐?”

“어. 뭐 그렇지.”

역시 날카로우신 준현 선생님.

“이번 시합 감량 때도 스트레스 엄청 받았잖아. 그걸 두 달에 한번씩 해야된

다는건데. 가능하겠냐?”

“...어떻게든 해봐야지.”

사실 이게 걱정이긴 했다.

평체를 줄이는 건 리바운드 폭이 낮아지기 때문에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평체는 유지하면서 시합 전 수분커팅으로 체중을 맞춰야 하는데, 중

요한건 내가 아직 수분커팅만으로 계체량에 나설 정도로 몸이 만들어지지 않

았다는거다.

“일단. 그 걱정도 브로일러 연락이 오고나면 할 일이지.”

“맞다. 맞다. 지금 걱정할 건 준현이와 알바지.”

갑자기 대화 주제를 드리프트 하는 재현이와 기태.

“아.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오냐고.”

“왜 나오긴? 오랜만에 고기나 먹을까 했더니 굳이 여기 오자고 한 새끼가?”

“여기가 아지트잖아.”

“여기서 저녁 먹은 적은 한 번도 없는데?”

“...”

오. 재현이 1승.

오랜만에 준현이가 졌네.

“야. 가서 번호 물어봐.”

“됐어.”

“내가 가서 물어봐줄까? 제 친구가 번호 좀 알려달라는데요. 하고?”

“...하기만 해봐.”

헐. 기태까지 1승.

낯선 풍경이이네 준현이가 이렇게 궁지로 몰리는 장면이라니.

“내가 유나 씨한테 한번 물어볼까? 알바 친구가 혹시 너 기억하는지? 기억하

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 다 꺼졌으면 좋겠다. 시발.”

이럴 때 나도 1승 챙겨야지.

준현아. 너 3패다.

2.

“후욱. 후욱.”

레슬링 훈련을 마치고 체육관 바닥에 누워 있는데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레일리가 다녀간지도 벌써 이틀.

답변이 올 거라면 벌써 오지 않았을까 싶은 시간이었다. 레일리가 한국까지

찾아온 것 치고는 답변이 늦는 것 같았으니까.

안 코치님도 말씀은 안하시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지 아까 사무실에 들렀

을 때 WFC 쪽 사람과의 통화로 들리는 대화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어! 해서야! 안녕!”

체육관 구석에 대자로 뻗어 천장을 보며 멍때리고 있는데 들리는 목소리.

“어. 아름아.”

나는 고개만 겨우 들어서 까딱 고갯짓을 했다.

“왜 그렇게 누워있어? 운동하다 뻗었나?”

“어. 죽겠다.”

그라운드 기술은 배워도 배워도 어렵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상대방의 팔이나 다리가 움직여 날 묶어대니 이

건 절대적인 경험치가 중요한 듯 했다.

코치님이나 창섭이 형 말로는 빠른 속도로 늘고있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프로

무대에서 무기로 쓸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허를 찌르는 한방 정도로 쓸 수

는 있을까.

“어. 아름이 왔냐.”

“트레이너님.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안 코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해서. 안 일어나? 새끼가 빠져가지고.”

“끄응.”

그래. 일어나야지.

그래도 이젠 체력이 조금 돌아왔다.

“아름이는 옷 갈아입고 스트레칭 하고 있어. 트레이너 불러줄테니까.”

“네!”

“해서는 잠시 나 따라 들어오고.”

“넵!”

바로 다음 훈련 들어갈 줄 알았는데 따라 들어오라니.

완전 땡큐지.

“앉아봐.”

사무실로 따라 들어가자 소파에 앉으라는 안 코치님.

‘나이스. 이건 최소 20분짜리다.’

용건이 간단할 때는 앉으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안 코치님의 성격상 이건

간단한 이야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하...”

소파가 이렇게 안락한 거였지.

허리가 녹는 것 같았다.

“브로일러에서 연락이 왔다.”

소파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내는 안 코치님.

“브로일러요?”

“그래.”

그리고 내 앞으로 놓이는 서류 한 장.

“결론부터 말하자면. 브로일러에서 우리 조건을 오케이 했다.”

“오케이 했다는 말은...”

“연말까지 세 게임 승리 시 원-나잇 토너먼트 출전권을 보장한다는 조건. 받

아들여졌다.”

“...”

뭔가 심경이 복잡해졌다.

토너먼트 출전권이라는 건 말 그대로 토너먼트에 나설 자격을 얻는다는 거다.

그 전에 세 번의 승리도 필수다.

“원-나잇 토너먼트 로스터는...”

“8인 토너먼트를 예상한다.”

그러면 토너먼트에서만 하루에 최대 세 번의 경기를 뛰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토너먼트 출전권을 위해 필요한 승리수가 세 개. 원-나잇 토너먼트에서 우승

을 위해 필요한 승리수가 세 개. 그러고 나서 랭킹 1위와 또 다시 타이틀전을

가져야했으니 총 7번의 시합이 더 필요했다.

‘그래도... 타이틀전이라.’

아직은 한참 먼 이야기였지만 목표 설정이 타이틀전이라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호 형과 같은. 타이틀전.’

물론 체급도 단체도 다르지만. 어쨌든 ‘챔피언’ 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잡는

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뭔가 두호 형을 조금쯤 따라잡은 것 같아 기분이 묘해

졌다.

“그리고. 브로일러에서 한 가지 제안을 더 가져왔다.”

그때 또 다른 서류 하나를 더 건네는 안 코치님.

“시합 제안서다. 어차피 올해 말까지 세 게임을 뛰려면 빠르게 매치를 잡는

것도 괜찮겠지.”

“솜차이 워왕남...?”

“종합격투기계에서 보기 드문 태국계 파이터다. 그것도 중량급에서는 정말 희

귀한 케이스지.”

태국인들은 한국 사람이 태권도를 쉽게 접하는 것처럼 무에타이를 생활 속에

서 쉽게 접한다. 그런만큼 격투기 선수로 진로를 정하는 파이터들의 베이스가

대부분 무에타이인 경우가 많았고, 킥복싱이나 입식격투기가 아닌 종합 격투

기 시장에서 태국 선수를 보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승보다 패가 많네요. 이런데도... 계약 해지를 안 당했네요?”

“글쎄. 속사정까지 우리가 알 수는 없으니까. 확실한건 엘런 폰보다도 훨씬

무난한 상대라는 거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스펙만 봐도 엘런 폰보다 떨어졌다.

미들급치고는 작은 키에 전적의 다수가 패배인 선수.

솔직히 재계약을 위해 브로일러가 선물로 준비한 매치인가 싶을 정도였다.

“대신 시합이 바로 한 달 뒤다. 텀이 터무니없이 짧긴 해. 엘런 폰과의 시합

이 끝난 지 이제 일주일인.”

“대신 데미지 누적이 전혀 없으니까요. 저는 괜찮습니다!”

“해서야.”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두며 목소리 톤을 낮추며 날 부르는 안 코치님.

“나는 네가 무작정 두호의 뒤를 쫓기 위해 무리하는 게 썩 좋아보이지 않아.

넌 너만의 속도로 너만의 커리어를 쌓았으면 한다..”

“...”

순간 뜨끔했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주제에 오래전부터 날고 있었던 두호 형을 쫓아 무리하

는 건 아닌지 하는.

“지금도 느리지 않아. 아니. 지나치게 빨라. 그래서 걱정이다. 두호는 두호고

해서 너는 너다. 너는 너만의 역사를 써야지 두호의 뒤를 쫓으려 하는 경향이

너무 강해.”

“...하하. 그렇긴 하죠.”

“두호를 믿어라. 네가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두호는 그리 쉽게 쓰러질 녀석이

아니야. 알잖아.”

“그렇...죠.”

그런가.

어쩌면 내가 너무 조바심을 냈는지도 모른다.

그건 두호 형을 너무 못 믿어서 일수도 있고, 스스로를 과신해서인지도 모르

겠다.

내가 빨리 두호 형의 앞에 서지 않으면 두호 형이 먼저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

던걸까.

“...후. 브로일러. 브로일러로 가죠. 제 보폭에 맞춰서. 그렇지만 느리지 않

게. 그렇게 부탁드려요. 코치님.”

“그래. 그게 내가 하는 일이지.”

이제야 씨익 웃으시는 안 코치님.

선수를 케어하고 모자라고 넘치는 게 있으면 바로잡아주는 게 코치님의 역할

이라면. 내 역할은 걱정 없이 훈련하고 시합에서 승리하는 거겠지.

“그럼. 다음 시합은 한 달 뒤인 거죠?”

솜차이.

태국의 중량급 파이터.

그와의 시합은 브로일러 챔피언으로 가는 내 첫걸음이 될 거다.

*

다시 지옥 같은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그래도 지난번 엘런 폰의 시합보다는 조금은 수월하게 버텨낼 수 있었던 건

내 몸이 점점 적응해가고 있다는 뜻이겠지.

"해서야. 준비 다 됐냐?"

한창 솜차이의 지난 시합 영상들을 보고 있는데 안 코치님이 물으셨다.

"넵. 준비 다 됐습니다!"

몇 번이고 체크했다. 혹시나 빠뜨린 건 없는지.

오늘은 현지 적응과 계체량을 위한 출국 날.

"컨디션은?"

"좋습니다!"

“좋아. 가자.”

“넵!”

솜차이와의 시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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