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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대격투천재의 탄생-37화 (37/203)

37화_이놈의 인기

1.

“... 어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났더니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풉. 그게 뭐예요. 그나저나. 해서 씨가 왜 여기 있어요?”

“그러는 아름 님이야말로...”

일본 사이타마에서 손아름 님을 만나다니.

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다.

“후움. 저 여기 앞에 아레나에서 콘서트 있거든요. 저한테 관심이 없으시구나.”

“언제요?”

“이틀 뒤에요.”

“저는 오늘 여기 앞에 아레나에서 데뷔전이 있었습니다만... 저한테 관심이

없으시구나.”

“헐. 진짜요? ...죄송해요...”

조금 전까지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온데 없고 풀 죽은 강아지처럼 미안한 기색

을 내비치는 손아름 님.

“하하. 장난이에요. 저도 아름 님 콘서트인 거 몰랐는데요. 뭐. 그보다. 콘서

트 준비 때문에 최근 체육관 안 나오셨구나?”

“네! 일본 단독 콘서트는 처음이라 정말 신경 많이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지

금도 미리 와 있는 거구!”

그러면 충분히 바쁠 만했겠다.

한창 데뷔전 준비로 체육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동안 손아름 님이 코빼기

도 안 보여서 운동 그만뒀나 했지 뭐야.

“그보다. 저기...”

아름 님은 손가락을 들어, 내 뒤쪽을 가리켰다.

“주문... 기다리고 계신 것 같은데.”

“헐!”

그러고 보니 한창 햄버거 주문 중이었다는 생각에 급히 뒤를 돌아보자.

“...”

“...”

웃으며 날 노려보고 계신 아르바이트 분.

올라간 입꼬리에 살짝 경련이 보인 듯했다.

“해서 씨.”

“네?”

“아직 주문 안 했으면. 저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요?”

“...네?”

손아름 님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 하시니 누추한 나는 그저 따를 뿐이지.

주문을 받던 아르바이트 분께 죄송하다는 인사를 연거푸 드리고 나서야 패스

트푸드점을 나온 나는.

“그래서. 뭐 먹으러 갈 건데요?”

“음. 라멘이요!”

뒤늦게서야 행선지를 알게 되었다.

“어. 제가 사실 지금 햄버거가 되게 먹고 싶어서요.”

“이번엔 진짜 맛있는 라멘.”

“아까 저 알바분한테도 미안해서. 다시 가서 주문해야겠어요.”

“이번에도 맛없으면 나중에 해서 씨 부탁 하나 들어줄게요!”

“어디죠? 그 맛집이?”

“...”

아. 왜.

솔직히 아름 씨와 라멘이라니. 별로 긍정적인 기억은 아니잖아.

거기다 시합 끝나고 만난 것까지 똑같네? 헐! 소름!

“응? 왜 그래요?”

“아아. 혹시 지난번에 라멘 먹으러 갔던 거. 기억나요?”

“네? 아... 이번엔 진짜 맛있을 거예요. 인터넷으로 후기 엄청 찾아봤다구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때도 지금도. 제가 시합만 하고 나면 우연히 아

름 님을 만나는 것 같아서요. 그때도 최창우와 시합하고 집에 가던 길이었잖

아요.”

“어라? 그렇네요? 우와! 신기하다!”

...

하. 돌겠네.

아름 님이 정말 신기하다는 듯 날 비스듬히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는데 이런

게 덕통사고인가 싶었다.

“사실 저도 신기해요! 그때도 지금도 혼자 먹으러 가기 좀 그래서 대충 아무

거나 먹고 때우려는 타이밍에 해서 씨 만난 거거든요!”

“인연... 이네요? 하하.”

운명이네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다행히 입 밖으로는 필터링 되

어서 나왔다.

“그러게요. 아! 그리고 우리 동갑이었죠?”

“네? 네.”

“그럼, 말 편하게 할까요?”

... 내가 지난번에 말 놓자고 할 때는 아주 해맑게 ‘헤헤헤. 아니요. 싫은데

요.’라고 말 하셨으면서.

“사실. 제가 어린 나이에 이쪽 일을 시작했다 보니... 나름의 원칙이 있거든

요. 일 관련이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 세 번 이상 얼굴을 봐야지 말을 편하게

하는...”

“아아. 사적으로 세 번. 우리가 만난 게...”

처음 본 게 박기영 선수와의 시합이 끝났을 때. 스토커 잡는다고 만났고.

두 번째가 최창우와의 시합 이구. 집 근처에서 만나서 라멘을 먹으러 갔지.

그리고 오늘이...

“세 번째네요?”

“그러니까요. 체육관 밖에서 사적으로 만난 게 세 번째에요! 약속 잡은 적도

없이! 완전 신기해. 히힛.”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듯 히히거리며 웃는 손아름 님.

정말 좋은 건지 아니면 연예인 특유의 이미지 메이킹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너어무 이쁘잖아.

“흠. 흠. 그래서. 말 놓는 거예요?”

“네! 혹시 불편해요?”

“아니? 완전 편하지.”

“와. 대박 빨라. 그럼 이제 그 손아름 님도 안 하는 거예요?”

“말 놓는데 무슨 님이야.”

“맞아. 맞아. 헤헤.”

그렇게 드디어 만에 말을 놓게 된 우리 두 사람은 유명한 라멘집에 도착할 때

까지 서로의 시합이나 콘서트에 대한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었고.

“... 미안해. 다음에 네 부탁 하나 들어줄게...”

결국, 이번 라멘 집도 실패했다.

*

“야! 혼자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는 거야?”

아주 기름지고 짜고 꼬릿꼬릿한 라멘으로 속을 버린 뒤 도착한 숙소.

안 코치님과 준현이가 날 들들 볶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가 고파서 잠시 뭐 좀 먹으러 나갔다 왔어. 왜?”

“말도 안 통하는 놈이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나려면 어쩌려고? 전화도 안 받고.”

“번역 어플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보다 왜에.”

어이없다는 듯 날 바라보는 준현이를 뒤로하고 안 코치님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셨다.

“브로일러 측에서 계약 연장을 희망했다. 앉아봐.”

“넵!”

어느새 준비해온 태블릿과 서류들을 바탕으로 어떤 선택지를 골랐을 때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설명해주시는 안 코치님.

“이거.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죠?”

“없지. 당장 결정하려고 했으면 내가 말렸을 거다.”

데뷔전 시합이 끝난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아까 찾아봤던 시합의 반응도 이제 갓 올라오기 시작한 것들이었으니, 그 분

위기는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를 거다.

굳이 성급하게 답변을 줄 필요는 없다. 그만큼 브로일러는 조금이라도 빨리

답변을 받고 싶어 할 테고.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까 쉬고. 내일 한국 들어가서 다시 이야기하자.”

“넵!”

자기 전에 훑어보라며 서류들을 테이블 위에 놔두고 방을 나서는 안 코치님과

준현이.

침대 옆 커튼을 열고 낯선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겼구나.”

이 낯선 도시도. 경험도. 그리고 오늘의 승리도. 꿈이 아니었다.

“진짜. 진짜 이겼어.”

생에 첫 데뷔전. 첫 승리.

세상의 모든 처음이 그러하듯. 오늘 밤은 그 낯섦에 조금 더 길어질 것 같았다.

2.

“집 가서 바로 쉬어라. 먹고 싶은 거 맘껏 먹고.”

“넵!”

“사고만 치지 마.”

“넵!”

데뷔전 다음날.

점심 시간대를 조금 넘겼을 때쯤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뭐. 일본이랑 한국은 가까우니까.”

-우드드드득

이제 한낮의 날씨는 ‘덥다’라고 말해도 될 정도의 계절이 되었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한판 하고 나와 침대로 다이빙을 하니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뭐하지.”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 어색했다.

재현이와 기태는 출근했을 테고. 노는 백성은 준현이 밖에 없나?

-슥. 슥.

최근 톡 목록을 올려다보니 연락할 사람이 별로 없었다.

두호 형은 내가 한국 들어오기 전에 미국 네바다주 쪽으로 전지훈련을 떠났으

니 패스.

아름이도 콘서트 때문에 일본에 있으니 패스.

준현이는... 방금 전까지 얼굴 봤는데 또 얼굴 보는 건 좀 아닌 것 같으니 패스.

-임유나

흠.

유나 씨라.

뭐 하는지나 물어볼까?

-해서 : 유나씨!

-해서 : (웃으며 Hi를 외치는 토끼 이모티콘)

-해서 : 혹시 바쁘세요?

톡을 보내고 나니 괜히 심장이 뛰었다.

보내지 말 걸 그랬나? 너무 충동적이었나? 어제 시합에서 이겼다고 너무 들떠

있었나?

별것 아닌 톡 하나 보내놓고 오만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톡!

“왔다!”

-유나 : 해서 씨!

-유나 : 어디에요! 한국이에요?! (눈이 초롱초롱한 검은 고양이 이모티콘)

-해서 : 저요? 네. 지금 집입니다 ㅎㅎ

-유나 : 헐! 대박! 어제 시합 완전 최고였어요!!

-유나 : 어제는 시합 끝나고 정신 없으실까 봐 연락 안 드렸는데! 먼저 연락

주시다니!!

-유나 : (하트 던지는 검은 고양이 이모티콘)

하... 여자 사람이랑 톡 하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그래. 이런 느낌이었지.

시커먼 사내놈들이랑 하는 톡과는 달리 입꼬리가 내려오질 않네.

-Rrrrrrr

-임유나

집이라고 했더니 바로 전화를 하시네.

“여보세요?”

-해서 씨! 전화 가능해요?

“넵.”

-뭐 하고 있었어요? 누워 있는 목소린데?

“네? 아닌데요? 저... 운동. 운동하고 있었어요.”

귀신같네.

누워서 전화 받았더니 바로 눈치챘다.

-흐응. 점심 먹었어요?

“음. 아뇨?”

-나올래요? 점심 사줄게요.

“지금요? 어디시길래요?”

-저 지금 홍대요. 이 근처 사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런 개인적인 것까지 기억해주시고.

이 정도면 그린라이트 아닌가?

심지어 ‘밥 사주세요’ 도 아니고 ‘밥 사줄게요’인데.

어쨌든 유나씨와 약속을 잡고 간단히 옷을 입고 나가려는데.

“어째 옷이...”

죄다 운동복밖에 없냐.

청바지나 셔츠들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헐렁했다.

하긴. 여름옷을 마지막으로 산 게 작년이었으니 지금 와서 맞을 리가 없었다.

홍대 나간 김에 옷이나 좀 살까.

일단 운동복 중 가장 깔끔하고 무난한 놈으로 골라 입고는 집을 나섰다.

최근 한 달간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했더니 이렇게 햇살이 화창한 날에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해서 씨!”

홍대 놀이터 쪽으로 살살 걸어가고 있으니 저 멀리서 유나씨가 먼저 날 알아

보고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아. 유나씨.”

검은 부츠에 검은 스키니진. 위로는 가벼운 검은 반소매 티를 입고 있었는데

유독 하얀 피부가 대비되어 많은 사람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빨리 오셨네요?”

“집이 별로 안 멀어서. 마침 씻고 나왔어서 옷만 갈아입고 나오면 됐거든요.”

“더워서 어디 들어가 있을까 했는데 다행이다. 빨리 가요.”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이 그런가.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유나씨를 만나면 어색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아름이가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라면 유나씨는 통통 튀고 버라이어티한 느낌

이랄까.

“근데. 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우리?”

“덮밥 좋아하세요?”

“전 가리는 거 없어요.”

“제가 덮밥 진짜 맛있는데 알거든요. 거기 가요!”

“아. 덮밥.”

덮밥도 일본 음식 아닌가...

“덮밥... 싫어하세요?”

“하하. 아뇨 그건 아니구요. 어제까지 일본에 있었어서.”

“아! 맞다! 혹시 어제 덮밥 먹었어요? 그러면 딴 데 가구요.”

“아뇨. 아뇨. 어제저녁에 라멘 먹었어요.”

“아아. 라멘. 밥을 드시지 시합 끝나고 든든하게.”

“하하. 뭐. 어쩌다 보니까요?”

아름이는 오늘 콘서트 리허설 한다고 했는데. 잘하고 있으려나?

“맛있게 드셨어요? 라멘 좋아하시나 보다. 저는 일식 라멘이나 계란말이 같은

좀 달고 느끼한 건 영 입에 안 맞던데.”

“저도 뭐. 최근에 라멘을 두 번 시도했는데 두 번 다 실패했네요.”

“그래요? 걱정 마요. 지금 가는 덮밥집 진짜 맛있을 테니까.”

날 보며 큰 눈을 반짝이며 걱정하지 말라는 유나씨.

하. 이런 게 끼라는 건가.

어제는 아름이. 오늘은 유나씨. 요즘 아주 복이 터졌나 보다.

괜히 불안하네 너무 좋은 일만 생기니까.

“어때요? 맛있죠?”

유나씨가 데리고 온 덮밥집은 정말로 맛있었다.

일본식 덮밥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한국인 입맛에 딱 맞춘 맛집이었다.

“여기. 라유를 섞어 먹으면 맛있어요.”

“넵.”

밥이 맛있으니 분위기도 더 좋아진 것 같은 건 착각일까?

지난 시합 이야기와 방송 이야기 등 근황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식사

가 끝나가고 있었다.

“밥 먹고는 뭐 하실 거 있어요?”

“저요? 홍대 나온 김에 옷이나 좀 살까 싶네요.”

“옷이요? 아. 감량을 많이 하셨지. 어제 시합 보니까 너무 마르신 것 같아서

걱정했어요.”

“하하. 그래도 건강해요. 어제 보셨죠? 7초 만에 시합 끝내버리는 거.”

“네! 어제 저 라방하다가 진짜 소리 질렀다니까요?”

어제 시합 이야기가 나오니 아주 신이 났다는 듯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가는 유

나씨.

“그러면. 혹시 옷 사러 가는 가게가 있어요?”

“어... 아뇨?”

“그러면 제가 옷 사는 거 도와드릴게요! 사이즈가...”

헙.

유나씨가 갑자기 팔뚝을 만져서 나도 모르게 팔에 힘이 들어갔다.

“우와. 팔 완전 단단해.”

“우, 운동선수니까요? 하하.”

순간 재현이가 보냈던 계체량 사진이 뇌리를 스쳤지만 애써 지워냈다.

-Rrrrrr

그때 울리는 스마트 폰.

-안 코치님

“저. 잠시만요. 코치님이 전화 와서.”

“네. 편하게 받으세요.”

유나씨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안 코치님의 전화를 받았는데.

“여보세요?”

-해서야. 집이냐?

“아뇨. 잠시 홍대 좀 나와 있어요.”

-안 바쁘면 체육관 좀 들어와라.

“지금요?”

-WFC에서 연락이 왔다.

“... WFC요?”

-그래. 그리고... 레일리가 방문 문의를 해 왔다.

“레일리까지요?”

WFC에 레일리까지.

하필 딱 하루 쉬는 날인데 당최들 날 가만두지를 않네.

하. 이놈의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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