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35화 (35/203)

35화_누가 주인공이야?

1.

“지금요?”

-네. 저 오늘 격관 라방 할 거거든요.

... 내가 지금 들은 게 한국어 맞지? 순간 잘못 들었나 했다.

-...아저씨 같아. 격투기 관람 라이브 방송이요.

“아아.”

알쥐 알쥐.

그러니까, 격투기 영상을 관람하는 라이브 방송을 한다는 거 아냐?

...그런 걸 왜 하는데? 그런 것도 찾아와서 보는 사람들이 있나?

-뭐.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는 조금 민망해지는데... 격투

기 경기 보면서 리액션도 하고... 시청자분들이 정보도 알려주시고 뭐 그런

거죠. 일상 소통이랄까?

격투기 시합을 보는 게 일상 소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딱히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기에 오케이를 외쳤다.

-참고로. 오늘 방송은 수익금 배분이 없어요. 요즘 격투기 관련 콘텐츠 진행

할 때 들어오는 수익금은 전액 기부하고있거든요. 형편이 어려운 격투기 선수

지망 청소년들한테.

“괜찮아요. 어차피 돈 보고 출연하는 거 아니에요. 나중에 뭐 밥이나 한 끼

사줘요. 아니면 술 한잔도 좋고.”

-어머. 저 술 잘 안 마시는데.

엄... 그러시구나.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술집에서 봤을 때도 방송하러 가야

한다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었지.

-애매하게 마실 거면 안 마셔요 저. 죽을 각오로 달릴 생각 있으시면 콜이고.

“콜!”

-...대답이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흠. 흠. 요즘 조금 쌓여서...”

-쌓... 여요?

“아뇨! 아뇨! 그. 스트레스가 조금 쌓였다구요! 너무 앞뒤를 잘라먹었네. 어

쨌든 나중에 가서 이야기하시죠! 전 다시 훈련 해야해서...”

-...네. 나중에 끝나고 연락 줘요.

“넵!”

그렇게 얼른 유나 씨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니

“... 뭐가 쌓여? 유나 씨가 누구냐?”

“나중에 이야기해? 어디 가게? 뭐 드실라고? 강해서 씨?”

창섭 형뿐만 아니라 어느새 안 코치님까지 와 있었다.

“어... 그. 저 예전에 최창우 선수랑 시합할 때 나갔던 인터넷 방송 있잖아

요. 거기 진행자에요. 그리고 아무것도 안 먹습니다! 코치님!”

“최창우랑? 이, 있어봐.”

창섭 형은 내게서 스마트 폰을 뺏어가더니 지난 최창우와의 경기 때 찍었던

영상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진짜 아무것도 안 먹어?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거 아니지?”

“넵! 그. 실시간 방송이라니까 확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합 전에는 항상 조심해야한다. 사소한 시비부터 작은 감정 소모까지도. 모

든 에너지 모아서 시합 당일에 터뜨린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해.”

조금은 걱정된다는 듯 말씀하시는 안 코치님.

사실 나도 유나 씨의 연락에 살짝 고민하긴 했었다.

바로 내일이 시합인 건 아니지만, 한창 시합 준비 기간이었으니까.

‘그런데. 판이 재밌는 것 같은데 나만 빠지긴 아쉬우니까.’

엘런 폰의 인터뷰에 최창우의 도발성 SNS까지.

시합 당사자인 내가 가만 있는 것도 너무 없어보이잖아?

“와! 대박! 야! 완전 이쁘잖아? 언제 가는데? 어디로? 나도 데려가면 안 되냐?”

나는 뒤에서 들러붙는 창섭 형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다시 훈

련에 매진했다. 저녁에 잠시 일탈을 하려면 그만큼 지금에 집중해야 하니까.

*

오후 훈련까지 모두 끝내고 방송을 위해 유나 씨의 집을 찾았다. 정확히는 방

송용 쉐어 하우스를.

사실 지난번 최창우와의 경기 전에 처음 초대 받았을 때는 많이 놀랐었다.

밖에서 방송을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집을 알려줬으니까. 이

거 그린라이트인가? 하고 착각을 할 뻔 했다는 건 비밀이다.

-아. 여기는 공유 하우스에요. 파프리카나 너튜브 하는 친구들 몇 명이서 각

출해서 월세 내는.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장비들 갖춰놓고.

집을 알려줘도 되냐는 질문에 유나 씨는 살짝 놀라는 듯하더니 웃으며 저렇게

대답했었다.

게스트 초대나 조금 지저분한 콘텐츠. 어지르거나 시끄러운 콘텐츠. 이런것들

을 찍을 때 주로 사용한다면서.

“감량중이셨구나. 죄송해요. 말씀을 하시지... 오늘 촬영은 괜찮으신 거예요?”

“괜찮아요. 어차피 라이브 방송은 그렇게 오래 안하지 않아요?”

“맞아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렇게 시간 많이 뺐지 않을 거예요. 시

간보다도 미안해서 그러죠. 저녁이라도 대접할까 했는데.”

“아까 밥 말고 술에 콜 했는데. 이번 시합 끝나고 술 사줘요.”

“풉. 오케이. 알겠어요.”

공유 하우스에는 유나 씨 뿐만 아니라 유나 tv의 작가와 프로듀서도 함께 있

었는데 유나 씨와 함께 오늘 있을 실시간 방송에 관해 간략한 브리핑을 해주

셨다.

“오시기 전에 해서 씨 관련으로 검색을 해봤거든요. 어제 오늘 사이에 조금

재밌는 일이 있더라구요.”

“재미있는 일이요?”

“네. 이번에 브로일러에서 데뷔전을 가지시는 것. 상대 선수인 엘런 폰 선수

와 스트릿 FC의 챔피언인 최창우 선수의 SNS 말싸움까지. 어쩜 제가 해서 씨

한테 듣지 못한 이야기들만 가득하더라구요.”

“하하하. 죄송해요. 대신. 오늘 유나 tv에서 처음으로 이번 데뷔전에 대한 공

식 발언을 할게요.”

“데뷔전 공식 발언이요?”

“네.”

난 SNS를 잘 하지도 않고 팔로워도 거의 없거든.

그런 내가 엘런 폰과 최창우의 사이에 뭔가 던져놓을 방법으로 유나 씨의 너

튜브 외에 생각나는 게 없었다. 갑자기 은솔 에디터에게 연락해서 인터뷰 좀

해달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까 엘런 폰과 최창우의 SNS 설전 보셨다고 하셨죠?”

“아. 네.”

나는 스마트 폰을 꺼내 최창우의 SNS계정과 엘런 폰의 SNS 계정을 검색했다.

[email protected]

뭐 주워 먹을 거 있다고 일본까지 기어와? 브로일러 일본시합에 뛸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닌가? 폰하다 알렌 추. 갈 데까지 갔구나.

[email protected]

야. 너 나한테 고마워해라. 나 때문에 지금 너 한국에서 핫해.

[email protected]

이야. 실검에도 올라갔네. 알렌 폰. 이정도 인지도면 한국 와서 개그맨 하는

게 돈 더 많이 벌겠다 너는

[email protected]

열 받으면 덤벼. 타격이 자신 있다고? 글러브 없이 맨주먹으로 붙어줄게. 입

식 룰로

알렌 폰의 계정은 검색은 했지만 영어도 아닌 다른 글로 써져있어서 무슨 말

인지 모르겠다. 저게 스페인언가?

어쨌든 최창우의 글들만 봐도 이게 일방소통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을 정도

였다.

알렌 폰도 최창우의 글에 무언가 반응을 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실제로 최신

글들이 몇 시간 전부터 몇분 전까지 올라와 있었으니까.

“저도 이 사이에 끼어볼까 싶어서요. 아무래도 이건 제 싸움인데 초록창 보면

제 이름보다 최창우 이름이 위에 올라가 있더라구요.”

실제로 지금은 내려왔지만 아까 초록창 실검에 최창우와 알렌 폰의 이름이 내

이름보다 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건 좀 아니잖아?

*

“엘런. 이것 좀 보겠어?”

창밖으로 이미 까만 밤이 찾아온 시간.

엘런은 이번에 있을 [Broiler In Japan]을 위해 이미 일본에서 현지 적응 훈

련을 하고 있었다.

“또 뭔가 있어? 그 한국의 챔피언?”

이번 시합은 엘런에게는 중요한 시합이었다.

브로일러와의 4경기 계약 중 마지막 매치. 앞선 경기 두 번을 별다른 경기내

용 없이 패배했기에 이번 시합에서도 질 경우 브로일러와의 계약 연장이 어려

울 것 같다고 했다.

“아니. 이번엔 그가 아니라 네 시합 상대인데?”

엘런은 그의 매니저가 건네는 스마트 폰을 받아 들었다.

스마트 폰 속 영상에는 꽤나 익숙한 얼굴의 동양인이 등장했는데, 과연 매니

저가 말 한대로 브로일러 인 재팬에서 그와 맞붙을 상대 선수였다.

“뭐라고 하는 거지?”

“기다려봐. 한국어 되는 사람을 데려 올 테니까.”

매니저가 통역을 데리러 간 사이 엘런의 시선은 스마트 폰에 고정되었다.

사실 엘런은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들었다.

처음엔 일본에서의 시합이라기에 브로일러가 자신을 버리는 패로 사용하는가

싶어 화가 났던 엘런이지만 상대 선수의 프로필을 보는 순간 화는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다.

중요한 계약 마지막 시합에서 브로일러가 엘런에게 매치업시킨 선수는 프로전

적이 전무한 애송이였는데, 심지어 이번 시합이 데뷔전인 초짜중의 초짜였으

니까.

“거기다 한국의 챔프도 도와주고 있고.”

최창우인지 뭔지 하는 한국의 격투기 단체 챔피언이 계속해서 엘런을 언급하

며 트래쉬 토크를 걸고 있었다.

평소 트래쉬 토크를 즐기지 않았기에 인지도도 흥행 파워도 크지 않았던 엘런

인데, 한국의 챔프 덕분에 처음으로 한국을 넘어 일본의 언론사에서도 자신에

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애송이는 뭐라고 하는 거야? 빨리 통역이 왔으면 좋겠군.”

이 모든 감사한 상황을 만들어준 고마운 희생양의 영상을 보며 엘런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엘런! 데리고 왔어!”

마침 매니저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데려왔고

“가감 없이 직역 부탁해요.”

“네.”

엘런은 한국인 선수와의 시합이기에 스페인어와 한국어가 가능한 통역을 대동

했고, 덕분에 강해서가 하는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동시통역 받을 수 있었다.

“... 나는 엘런 폰이 누군지 잘 알지 못한다. 그의 영상은 찾기가 아주 어려

웠다.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지난 시합 영상을 보는 순간.

난 그가 보물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는 내게 승리수당을 안겨줄 보물 고블린

이다. 여기서 보물 고블린은 게임 같은데서...”

“됐으니 일단 계속 통역해줘.”

“시합 시간이 스페인 시간으로는 새벽인 걸로 알고 있다. 다행이다. 엘런의

굴욕적인 패배를 실시간으로 볼 스페인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 사실.

브로일러도 스페인도 엘런에게는 아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는 아무것

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아! 그리고 이미 내게 패배한 최창우는 제발 입 좀 닫

고 기도나 해라. 내가 엘런을 너보다 빠른 시간 안에 때려 눕히기를.”

“...”

엘런은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귓불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mierda!! 이런 앞뒤 분간 못하는 똥 덩어리 같은 녀석이!”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한 엘런.

“아직 프로 무대를 밟지도 못한 놈이 뭐가 어째? 이봐! 아까 보물 고블린이

무슨 뜻이라고 했지?”

“어... 게임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고블린은 게임에서 아주 약한 몬스터로 나

오는데, 그 중 보물을 가지고 있어서 만나기만 하면 쉽게 보물을 얻을 수 있

는... 이벤트성 몬스터로...”

-쾅!!!

“오스만 그 늙은이가 아주 재미있는 상대를 붙여줬군. 어린 병아리가 투계 판

에 뛰어들면 어떻게 되는지. 아주 제대로 보여줘야겠어.”

원래도 질 생각 따위 없었던 시합이지만. 아주 잔인한 시합을 보여줘야겠다

고. 이를 갈며 다짐하는 엘런이었다.

2.

“83.1!”

“확실해? 한 번 더 재봐.”

“두 번 쟀어요!”

시간은 흘러 엘런 폰과의 시합 전날.

꽤나 아슬아슬하게 미들급 한계 체중 안으로 세이프 했다.

“좋아. 컨디션은?”

“뭐. 나쁘지 않습니다.”

“오케이. 가자.”

“넵!”

브로일러 인 재팬의 계체량까지 남은 시간 6시간.

내 데뷔전까지 30시간이 남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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