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31화 (31/203)

31화_계약

1.

“합방. 이요?”

“정확히는 저희 너튜브 채널에 출연을 해주셨으면 하는거죠.”

그렇지.

내가 인터넷 방송을 하는 게 아니었으니 합방이라는 말은 조금 애매했다.

그나저나 유나 tv 출연이라.

“지난번 출연 때 반응 좋으셨잖아요.”

“그랬나요?”

분명 지난 최창우와의 이벤트 매치 전에 유나 tv에 깜짝 게스트로 출연한 적

이 있긴 했다.

“이번 최두호 선수님 WFC 시합 리뷰 영상을 올렸는데, 거기에 해서 씨가 나오

더라구요?”

“어? 그거 보셨어요?”

“당연하죠. 저 요즘 격투기 시합 리뷰하는 콘텐츠 많이 하거든요. 해서 씨 제

너튜브 잘 안 보시죠?”

잘 안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안 본다.

지난번 최창우 때 내가 게스트로 나갔던 영상도 안 봤으면 말 다 했지.

“저는 유나 님 영상 다 보고 있습니다!”

“저도요! 해서 쟤 나온 것도 봤어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잘도 대답하는 기태와 재현이.

“어쨌든. 최두호 선수 영상에서 해서 씨를 보고 구독자분들도 근황을 궁금해

하고 있어요. 격투기를 혹시 그만두신 건지. 트레이너로 전향하신 건지.”

“그건 아니구요. 오히려 진지하게 진로를 격투기 쪽으로 잡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준비할 것들도 많고. 바깥으로 내비쳐지는 모습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진짜요? 그러면 프로 데뷔를 준비하시는 건가요? 어디서요? 스트릿 FC? 아닌

데? 스트릿 FC랑은 사이 안 좋다 그랬는데 댓글에서.”

“하하. 스트릿 FC랑은 사이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요. 아직 이렇다 할

확답을 내릴 상황은 아니라서 말씀드리긴 좀 그렇네요.”

브로일러와 WFC에서 오퍼가 오긴 했지만, 굳이 설레발쳐서 문제를 일으키고픈

마음은 없었다. 브로일러는 몰라도 WFC는 아직 확실하게 의중을 내비치지 않

았으니까.

“음. 오케이. 격투기를 그만두시는 게 아니라니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서. 합

방. 아니 게스트 출연 안 해주실 거예요?”

“...콘텐츠가 뭐예요?”

“에이. 해서 씨가 출연하는 것 자체가 콘텐츠죠. 사실 구독자분들이 많이 궁

금해하세요. 해서 씨에 대해서.”

“하하. 제가 뭐라고...”

“예체능. 그중에서도 체육 관련 진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야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이 시대의 프레임이니까요? 적성을 뒤늦게 찾았다고는 하지만 그에

도전할 수 있는 건 쉬운 선택지가 아니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되게 멋있다

고 생각해요.”

되게 고마운 말이었다.

누군가가 이해와 득실을 떠나 날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거. 참 기분 좋은 일이

구나.

“그리 길지 않을 거예요. 어차피 저희 채널 영상들은 대부분 10분에서 20분

사이의 짧은 영상들이니까. 물론 편집을 거쳐서 올라가지만, 실제 촬영 시간

도 한 시간은 안될 거에요.”

“아? 라이브가 아니라 촬영인가요?”

“네. 업로드용 영상도 따로 찍고 있으니까요. 사전에 편집된 영상을 보내드리

고, 원치 않는 장면이 있을 경우 말씀해주시면 당연히 추가편집 해드려요.”

그러면 출연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돌발상황이라는 것도 없을 테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지난번 최창우와의 시합 때 결과적으로 유나 tv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오늘

도 소정의 수익 배분을 받았으니 강호의 도리는 지켜야겠지.

“대신. 당장은 조금 힘들구요. 제가 앞으로의 진로를 정한 뒤라면 가능할 것

같아요. 유나 씨도 조금이라도 더 방송 거리가 풍성한 게 좋을 테고.”

“진로를 정한 뒤라면. 프로 데뷔에 대한 말씀인 거죠?”

“하하. 뭐. 장담은 못 드리지만요. 만약 모든 게 무산된다면 두말없이 바로

출연하겠습니다.”

“믿을게요.”

꽤나 도발적인 눈빛과는 달리 정말 순수하게 믿는다는 표정.

유나 tv의 구독자들이 왜 유나 tv를 보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 유나 씨 잔도 달라고 그럴까요?”

“야! 뭘 물어? 빨리 잔이랑 앞접시 달라고 해야지!”

기태와 재현이는 WFC와 브로일러에서 내게 오퍼가 온 사실을 알고 있었다.

충분히 입이 근질거릴 상황일 텐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 놈들. 저런 가볍지

않은 모습들이 좋았다.

“아. 저는 들어가서 저녁 방송 해야 해서요. 방송 준비 때문에 샵 갔다가 들

어가는 길에 들린 거라 술은 조금...”

“네? 술집에 와서 술은 안 드신다뇨!”

“한잔은 괜찮지 않을까요? 아! 제가 해서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게 있는데...”

야이씨. 앞에 했던 말 취소다 이 자식들아.

“하하. 유나 씨. 쟤네들 말 들을 필요 없어요. 바쁘시면 가셔야죠.”

“음? 해서 씨의 비밀은 궁금하긴 한데. 그건 해서 씨한테 직접 들을래요. 다

른 사람한테서 듣는 비밀은 제 취향이 아니라서.”

생긋 웃으면서 일어서는 유나 씨는, 기태와 재현이가 아무리 장난감으로 유혹

해도 관심도 갖지 않는 도도한 검은 고양이 같았다.

“꼭. 연락 주세요? 저 기다리는 거 잘못하는데. 해서 씨니까 기다리는 거예요.”

“하하. 네. 뭔가 확정되면 유나 씨한테 제일 먼저 말씀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가벼운 인사를 남긴 후 유나 씨는 떠났고.

“야이씨! 그렇게 보내면 어떡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잡아뒀어야지!”

유나 씨를 그냥 보낸 내게 불길을 토해내는 기태와 재현.

“방송 해야 한다잖아. 어떻게 잡아둬?”

“그러니까 잡아둬야지. 예정된 방송 시간만 넘기면 프리해질거 아냐!”

“... 니네들 뇌는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냐?”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네.

그건 그렇고. 준현이가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야. 너는 안주도 안 먹고 뭐 하냐?”

안주빨 준현 선생이 갑자기 무슨 고민이 생기셨나. 갑자기 묵언 수행을 하고

있네?

“해서야.”

“엉?”

“진짜... 저 알바가 나 같은 스타일 좋아할까? 번호 물어볼까?”

에라이. 너까지 왜 그러냐 진짜!

2.

“그래서. 결정했어?”

WFC에서 연락이 오고, 브로일러에서 사람이 온 지도 벌써 며칠.

그 사이 WFC 쪽으로 재접촉해 체급에 관한 문의를 넣었고 답변도 받았다.

“네. 저 브로일러로 가려구요.”

“그래? 맘모스가 좋아하겠네. 역시 데뷔전 때문이냐?”

“그렇죠. 웰터급으로는... 조금 어려울 것 같아서요.”

현재 한창 웨이트 훈련을 병행하는 내 몸무게는 90킬로 후반대로 다시 체중

회복을 했다.

물론 몸무게가 올라간 거지 살이 찐 건 아니었다.

“하긴. 지금 네 평체를 생각하면 미들급이 편하긴 하지. WFC는 미들급으로는

계약 불가를 던졌고 브로일러는 미들급도 오케이라.”

안 코치님은 두호 형 시합이 끝난 후 꽤나 여유로워 보였다. 경제적으로나 시

간적으로나. 그래서인지 내 계약까지 꼼꼼히 챙겨주고 계셨고.

‘참 고마우신 분이야.’

참고로 나와 안 코치님. 두호 형 사이에는 어떤 계약서도 없었다.

당연히 팀 피스트와도 아무런 계약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고맙고 죄송한 거고.

“브로일러 쪽에서는 계약 이후 데뷔 일정까지 최대한 빠르게 진행시켜준다는

조건이 있었어요. 적당한 선수 후보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더라구요.”

“브로일러는 미들급이 약하니까. 정확히는 WFC가 다 빼갔다고 보는 게 맞겠지

만 말이야.”

안 코치님의 말대로 브로일러는 WFC에 비해 미들급에 쟁쟁한 선수들이 많지

않았다. 이번에 계약 오퍼를 계기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지금 브로일러에 남

은 미들급 대부분은 모두 한 번씩 WFC에서 실패를 겪은 선수들이었다.

“아마 널 미들급에 넣고 시험해보려는 걸 거다. 잘하면 흥행 카드가 될 테고,

잘 못 해도 어차피 욕먹는 미들급이니 아쉬울 것 없지. 반면 WFC는 미들급이

한창 전성기니 네 경기 편성 자체가 어려운 거고.”

“넵! 안 그래도 WFC는 미들급에 제 매칭 상대가 없을 거라고 했어요.”

“WFC는 사실 웰터급이 기근이지. 학센 그놈 때문에. 브로일러에선 내심 네가

웰터급을 가지 않고 미들급을 간다고 했을 때 쌍수를 들었을지도 몰라.”

“하하. 그런가요.”

WFC의 웰터급에는 학센이라는 걸출한 챔피언이 존재했다. 그러다보니 웰터급

은 압도적인 챔피언이 없는 브로일러가 오히려 선수층이 다양했고.

물론 그렇다고 WFC의 웰터급 수준이 떨어진다는 건 아니었다. 학센에게 도전

할만한 강자만 남았으니 오히려 진입장벽이 높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런 만큼

새로운 도전자가 없어 WFC 측에선 내게 웰터급을 권했던 거고.

“그래도 경력이 없는 만큼 독점 계약을 권하진 않더라구요.”

“브로일러는 독점 계약 선수에게 경기 수를 보장해주는데, 해서 네게는 경기

수 보장보다는 독점 계약을 포기하는 게 유리하다 생각했겠지.”

WFC에 선수 유출을 많이 당했던 브로일러는 선수 계약 시 WFC로의 이적을 막

는 독점 계약이라는 걸 많이 했는데, 이럴 경우 선수의 기량과 시합 흥행에

상관없이 일정 기간 동안 일정 경기 수를 보장해주는 제도를 가졌다.

만약 브로일러가 내게도 독점 계약을 권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브로일러

와의 계약은 재고도 하지 않았을 거다.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내 목표는 두호 형과의 정상

결전이었으니까. 애초에 WFC로 이적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웰터급 몸을 만들어 WFC로 데뷔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코치님.”

“응?”

“우리. 계약서 쓰시죠.”

“무슨 계약서?”

다 아시면서 의뭉스러우시긴.

“제가 이런 종류의 계약은 처음이라. 브로일러와의 계약에서 놓치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누가 중간에서 좀 챙겨주면 좋을 것 같은데.”

“...”

“그렇다고 또 모르는 사람한테 맡기기엔 그것도 좀 애매하고. 코치님이 좀 도

와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두호 하나로도 피곤한데. 너까지 챙기려면 나 바빠서 죽어. 그것도 하나는

WFC 하나는 브로일러.”

“안 쓰실 거예요?”

“... 우리는 표준 계약이야. 친하다고 챙겨주거나 그런 거 없다?”

“당연하죠!”

싫은 티 내시면서도 엉덩이가 들썩거리셨는지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계약서

를 챙겨오시는 안 코치님.

“이거 쓰면 못 물린다. 지금보다 훨씬 힘들 거야 운동도. 너 내 새끼 아니라

서 살살 봐준 거지 내 새끼였으면 벌써 도망갔다?”

“에이 서운하게. 내가 왜 코치님 새끼가 아니에요? 같이 세컨도 본 사이에.”

“하여튼 입만 살아서는. 내가 입만 산 놈치고 이 바닥에서 크게 된 놈을 본

적이 없다.”

“학센은요?”

“걘 주먹도 살아있지.”

“저도 주먹 살아있거든요?”

계약서라는 게 둘 사이에 놓이니 뭔가 어색한지 나와 안 코치님은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고맙다.”

“네?”

“계약해줘서 고맙다고. 그것도 빅리그와 계약을 앞둔 시점에서.”

격투기 선수도 연예인처럼 보통은 데뷔 전 아직 미래를 점칠 수 없을 때부터

케어를 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한다. 이미 미래가 창창한 선수의 경우 계약금

을 받고 계약을 하고.

아마 나처럼 빅리그 계약을 앞두고 매니저 계약을 하는 경우는 드물 거다. 그

것도 계약금이나 어떤 조건을 걸지 않고.

“에이. 계약서를 쓰는 게 늦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스트리트 파이트

하차하고 팀 피스트 체육관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케어받고 있었

으니까요.”

“... 그래.”

안 코치님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계약서를 챙겼다.

“다행히. 계약하고 좋은 소식 하나를 전할 수 있겠다.”

“좋은 소식이요?”

“그래.”

계약서를 서류철에 넣으신 뒤 종이 한 장을 건네는 안 코치님.

“지난번, 네 타격을 봐줬던 맘모스. 그놈이 지금 코네티컷에서 체육관을 하고

있는데. 해서 네가 브로일러로 길을 정했으면 보내라는 연락이 왔었다.”

....코네....뭐요? 거기가 어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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