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28화 (28/203)

28화_갑자기?

1.

“코치님. 괜찮아요?”

두호 형과 WFC 주최 측까지 케이지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진정된 소란.

학센은 끝까지 두호 형과 토마의 경기를 비하하며 진행 팀에 끌려 나가다시피

퇴장했지만, 문을 나서기 전까지 두호 형과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두호 형은 이해하겠는데 왜 나까지 째려봐?

“괜찮다. 뭐 어디 맞거나 부딪힌 것도 아니니까. 애초에 학센이 시합 중에 소

리 질렀을 때부터 뭔가 일이 터질 거라 예상했어.”

안 코치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이 바닥은 정말 어메이징하지.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고, 별의 별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뭐, 그래도 오늘 일은 조금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말이야. 그

래도 카메라 들이밀 땐 발언 수위 조정하는 것 보면 참 대단한 놈이지.”

두호 형이 승리했기 때문일까. 안 코치님은 조금 전 학센의 해프닝을 비롯해

종합격투기 시장에서 일어나는 믿지 못할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쏟아냈다.

“그래. 그러니까 계체량에서 싸우는 경우도 있고, 시함이 끝나고 다시 싸우는

경우도 봤다니까?”

“맨주먹으로요? 그건 격투기가 아니라 그냥 싸움이잖아요?”

“그런 종자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옥타곤이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요?”

한참 종합격투기 세계에 대한 썰을 듣고 있으니 어느새 옷까지 갈아입고 나온

두호 형.

“아아. 별거 아니야. 해서 이놈한테 아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담을 나눠

줬지.”

“또 이상한 말 한 거 아냐?”

“이상한 말이라니!”

두호 형이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자 발끈하는 안 코치님.

“지난번에 창섭이한테도 약물이 어떻니 요즘 트렌드는 어떻니 했잖아.”

“야! 그건 다르지 인마. 내가 말하는 약물은 보충제 같은 거야 보충제. 네가

시합전에 먹는 액상과당 같은 거.”

“그래도 완전 검증되지 않은 건 좀 자제해.”

“그래서 말도 안 꺼내잖아! 그리고 그 이야기 한 거 아니라니까? 해서야. 뭐

라 말 좀 해줘라.”

“하하. 맞아요. 두호 형. 그냥 케이지 밖에서 어떤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나

는지 그런 거 말해주셨어요. 난투극이라든가 뭐 그런.”

“아아.”

학센 때문에? 라고 한마디를 한 뒤 나와 안 코치님을 비롯한 코치진을 한번

쓱 둘러보는 두호 형.

“가자.”

별 다른 대화는 필요 없었다.

오늘 두호 형은. 아니, 우리는 승자였고. 승리에 공치사는 필요치 않았으니까.

숙소로 향하는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굳이 말로하지 않아도 통하

는 끈끈한 무언가가 있었기에 침묵에 어색함은 없었다.

“형. 애들 좀 데리고 먼저 올라가줘.”

“응? 너는?”

“난 해서랑 이야기 좀 하고 올라갈게.”

“그래? 알았어.”

싱가포르 실내 체육관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던 숙소.

이미 까맣게 밤이 내린 낯선 이국땅의 흥취는 낯설고, 또 설레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시꺼먼 남자만 아니었다면 최고였을 텐데.

“...너 방금 이상한 생각했지?”

안 코치님과 코치진을 먼저 올려 보낸 두호 형은 아까 전 안 코치님을 바라보

던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 했다.

“네? 아뇨?”

“아니긴. 너 표정이 상당히 무례한 표정이었는데. 귀찮게 왜 남겼냐. 이런 표

정이었달까.”

“아닌데요.”

“또 나왔네. 아뇨무새.”

“헐. 형이 그런 말도 알아요? 실망.”

“...”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시작부터 개그를 치는 거지 이 형은?

“해서야.”

“넵.”

“오늘 시합. 잘 봤냐?”

“아! 네! 완전 잘 봤죠.”

WFC랭킹 3위를 1라운드 만에 압살해버리는 장면. 바로 옆에서 제대로 직관 했

습니다.

“어땠어?”

“어떻긴요. 최고였지. 이것저것 시도해보시다가 1라운드 마지막에 타격으로 빡!”

“그리고?”

“네? 어... 그리고... 그리고 또 뭐가 있죠?”

그냥 그게 끝 아닌가?

1라운드 4분 44초 만에 끝난 시합.

더 이야기 할 게 있나 싶었다.

“만약 케이지 안에. 내가 아니라 해서 네가 올라가 있었다면. 어땠을 거 같냐?”

“저요?”

엄...

글쎄다. 적어도 두호 형처럼 경기 운영을 하지는 못했을 거다.

애초에 나는 그라운드가 약점이라 토마 선수가 집중적으로 테이크 다운만 노

렸을 테니까. 두호 형이 타격으로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던 데는 보이진 않았

지만 그간 쌓아온 그라운드 테크닉이 큰 몫을 했다.

“할만하다. 그렇게 생각 안했어?”

“에이. 아무리 그래도 WFC 랭컨데요. 확실히 아직은 제가 스피드도 떨어지고

근력도 떨어져서 어려울 것 같아요. 그라운드야 방비하면 된다 치지만. 힘.

체력. 스피드는 시간이 절대적인 거니까요.”

“... 힘. 스피드. 그 두 가지만 갖추면 어렵지 않다. 그렇게 들리는데? 내 귀

엔?”

“엄...”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나?

그런데 다 그렇지 않나? 압도적인 힘과 스피드만 있으면 누구든 이길 수 있

지. 다만 그 정도 되는 힘과 스피드가 노력한다고 모두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

니까 문제지.

“아까 케이지 밖에서 난동부린 그 자식.”

“학센이요?”

“그래. 그 녀석이 바로 내가 서 있는 세계의 정점이다.”

WFC 웰터급 챔피언. 데이비드 학센.

“그리고. 내게 왕좌를 넘겨줄 사람이지.”

“...”

이번 알렌드로 토마와의 매치에서 승리하며 두호 형은 챔피언 자리에 도전할

수 있는 도전권을 얻었다.

타이틀전.

WFC 웰터급 챔피언 밸트를 두고 학센과 두호 형이 맞붙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해서야. 네가 몇 살이지?”

“저요? 저 올해 서른... 이죠.”

하. 고등학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나이 앞에 3자를 붙이다니. 갑자기 서

럽네.

“형이 딱 마흔이다. 아직까지는 전성기라고 소리높이고 다니지만. 사실 아슬

아슬한 상태지.”

내 어깨를 툭 치며 숙소 너머 야경을 바라보며 두호 형이 말을 이었다.

“에이. 형은 아직 십년은 거뜬해 보이는데요?”

“농담이 아냐.”

에헤이.

왜 또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하실까.

오늘 시합 때만 해도 눈에서 레이저 나올 정도로 불타오르시던 분이.

갑자기 등이 좀 작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이 내 마지막 기회가 될 거야.”

“에이. 만약 형이 꿈을 못 이루면 내가 이뤄 달라 그런 소리 하실 거면...”

“나는 챔피언이 된다.”

“...”

두호 형은 내 말을 자르며 날 돌아봤다.

“나는. 다음 시합에서. 저 데이비드 학센을 꺾고. 반드시 챔피언이 된다.”

약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

이런 사람의 등이 작아 보인다니. 내 눈이 미친 거지.

지금 두호 형의 눈은 아까 시합에서 알렌드로 토마를 앞에 뒀을 때와는 비교

도 되지 않을만큼 불타고 있었다.

“아까 말했지. 뒤처지지 말고 따라오라고.”

“네?”

“나는 시간이 많이 없어. 오래는 못 기다린다. 내가 학센에게서 빼앗을 왕관

을 가지러 와라. 내가 은퇴하기 전에 꼭.”

2.

“흐아암...”

“야. 하품 좀 그만 해. 피곤하면 집 가서 쳐 자던가!”

두호 형의 랭킹전이 끝나고.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준현이 집에서 뒹굴 거리고 있었다.

“얌마. 이게 다 시차적응이라는 거야. 한국에만 있었던 놈이 뭘 알겠냐.”

“지랄도 병이다. 싱가포르랑 서울이랑 시차 한 시간밖에 안되거든?”

“헐. 이놈 보소. 한 시간을 무시하네? 시간은 돈으로도 못사는 거 몰라? 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염병. 네가 내 쇼파에 널부러져 있었던 시간이 두 시간이 넘어. 소중한 시간

낭비 말고 좀 꺼지지?”

“안됨. 나중에 재현이랑 기태도 오기로 함.”

“어디로? 여기로?”

“이응이응.”

“나 나가야 되는데?”

“나갈 때 불 좀 끄고 가라. 올 때 맛있는 것 좀 사오고.”

“뭐 이런 도라이가 다 있지?”

씩씩거리면서도 진심으로 날 쫓아내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 준현이를 보며

난 오랜만에 티비를 보며 뒹굴 거렸다.

“대체 너네 집 놔두고 왜 여기서 이러는 건데?”

“여기가 티비가 커. 그리고 재밌는 게 많아.”

말했다시피 준현이 네는 잘 산다.

그리고 준현이도 돈을 잘 번다.

그러다보니 벽걸이 티비도 내 방 티비와는 비교도 안 되고, 무엇보다 인터넷

티비 채널이 다 결재 돼 있다.

“손아름 님 나오는 드라마나 볼까아. 어제 첫방 했을텐데에에.”

“아. 좀 꺼져!”

“시른데에.”

지상파 3사부터 케이블 채널까지. 월정액을 다 끊어두는 브루주아새끼.

네가 안보면 나라도 봐줘야지 돈이 안 아깝지.

“그나저나. 넌 어디 나가? 오늘 일요일인데?”

“나는 일요일에 나가면 안 되냐?”

“헐. 뭐 게임 정모라도 나감?”

“꺼져.”

“아니면 벌써 서코시즌인가? 코스프레 하러 감?”

“꺼지라고!”

“네가 여자를 만나러 나갈리는 없고. 사실대로 불어. 뭐야?”

“회사 간다! 회사! 일하러!”

얼레.

외국계 기업이라고 복지와 근무환경 하나는 좋다더니 웬일로 주말 출근이지?

“요즘 회사가 좀 안 좋아. 주말이라고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래? 많이 안 좋아?”

“나야 잘 모르지. 내 업무는 통역 쪽이니까. 한동안 널널했으니 통역이 필요

한 일거리가 없었단 이야기고. 최근 들어 주말에도 부를 정도로 바쁘게 움직

이긴 한데...”

그게 일거리가 많아서가 아닌 여기저기 일거리를 만들기 위한 업무 리소스라

는게 문제라는 준현이.

통역이다 보니 듣기 싫어도 듣게 되고 보기 싫어도 보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는 건 예전부터 알았지만. 이런 고충이 있는 줄은 몰랐네.

“어쨌든. 오래 갈 것 같진 않다.”

“불황이?”

“아니. 회사가. 지난번 바이어와 미팅 통역 때 들어보니 이미 본사에서는 한

국 지사를 정리하려는 느낌이더라고.”

헐. 준현이 이제 백수 되겠네.

“그래서. 지금 바로 나가?”

“연락 오면 나가면 돼.”

“안 오면 안 나가는 거고?”

“그렇지.”

그래? 그럼 너도 이리 와서 우리 손아름 님 드라마나 보자.

-Rrrrrrrr

마침 딱 드라마를 찾아 틀려는 타이밍에 걸려온 전화.

“엉? 이게 무슨 번호야?”

난생 처음 보는 번호가 발신번호 창에 떠 있었다.

“이거 국제전환데?”

“헐. 보이스피싱인가?”

나는 빨간 전화기 버튼을 슬라이드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준현아. 먹을 것 좀 줘라.”

“뭐 줄까?”

이 돼지의 집에 먹을 게 없냐는 질문은 필요치 않다.

뭘 먹을지에 대한 고민만이 필요할 뿐.

“어디보자... 나는...”

-Rrrrrrr

그때 다시 울리는 스마트 폰.

“아까 그 번호 같은데? 받아봐.”

준현이는 슬쩍 발신 번호를 보더니 한번 받아보라며 날 부추겼다.

“흠흠.”

또 어떤 사기꾼 놈일까 생각하며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미스터 강의 전화가 맞습니까?

“...”

필리핀이나 중국 쪽에서 걸려오는 한국인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는데.

얘네 영어 쓰는 국제 조직이네.

-여보세요? 전화가 들리지 않나요?

“준현아. 얘네 영어 쓰는데?”

“뭐? 이리 줘봐. 여보세요?”

-여기는 월드 파이팅 챔피언십 사무국입니다. 강해서 씨의 연락처가 맞나요?

“네. 맞습니다. 저는 강해서 선수가 아닌 그의 통역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 다행이네요. 마침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자리를 비워서 나중에 다

시 연락을 해야 하나 했거든요.

준현이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굳이 스피커폰을 할 필요는 없어보

였다. 스피커폰을 하나 안하나 난 두 사람이 하는 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으니까.

“야. 월드 파이팅 챔피언십 사무국이라는데?”

“뭐? 그건 또 뭔데?”

“병신아. WFC말이야. 월드 파이팅 챔피언십!”

WFC 사무국?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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