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27화 (27/203)

27화_강렬하게

1.

-툭

알렌드로 토마와 두호 형은 케이지 중앙에서 가볍게 글러브를 맞댄 후 살짝

거리를 벌렸다.

토마는 왼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왼발을 앞에 두는 파이팅 스타일을 가졌는

데, 두호 형의 거리 잡기를 왼손으로 견제하며 신중한 경기 운영을 가져갔다.

두호 형 또한 초반부터 무리해서 들어가지 않았고.

-훙! 퍽! 쩍.

서로 가볍게 펀치와 레그 킥을 교환한 후 백스텝을 밟는 토마와 한 걸음 더

전진하는 두호 형.

“해서야.”

“넵! 안 코치님!”

“이번 랭킹전에서. 두호가 스스로 내린 과제가 뭔지 아냐?”

“...과제요?”

두호 형 정도 되는 사람도 시합에 과제를 두는구나 싶었다.

“타격이다.”

“타격이요?”

“그래.”

두호 형은 타격이 그리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이건 내가 내린 평가가 아니라 외신이나 격투기 관련 매체에서 두호 형에 대

해 언급할 때 항상 함께 나오는 이야기였다.

“이번에 토마를 이기고 나면 두호가 마주할 상대. 학센은 기존 두호의 타격으

로는 공략하기 힘든 상대거든. 알렌드로 토마를 상대로 타격으로 승기를 뺏어

올 정도는 되어야 학센에게도 타격이 유효하게 먹힐 거다.”

“학센이 그 정도로 대단한가요?”

“어떻게 보면 상성의 차이지. 학센은 챔피언의 자리에서도 올 라운더라고 불

리는 파이터다. 그라운드는 두호가 조금 더 유리하다 하더라도 타격에서 차이

가 너무 나면 운영이 어렵지. 그래서 내린 과제였다. 적어도 두호와 학센의

그라운드 실력 차이만큼 타격 실력의 차이를 줄이는 게.”

“...”

그러고 보면 내가 팀 피스트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한 뒤 봤던 두호 형의 훈련

은 대부분이 타격 중심이었다.

맘모스 코치도 두호 형 때문에 잠시 머물렀다가 남는 시간에 내 타격을 봐준

정도였고.

“그래서... 숙제는 성공적으로 끝냈어요?”

“숙제 결과? 하하하. 내가 너무 말이 많았나 보네. 시합을 봐.”

어느새 WFC 251 메인이벤트의 첫 라운드는 1분이 조금 더 남았었다.

시종일관 침착하게 상대를 밀어붙이는 두호 형과 넓은 케이지를 활용해 도망

치듯 뛰어다니는 토마.

“확실히. 타격으로는 토마가 비비질 못하네요.”

라운드 초반에 몇 번의 타격을 주고받은 뒤 토마는 양팔간격 이상으로 거리를

벌리며 호시탐탐 테이크다운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토마 또한 WFC 웰터급 3위에 랭크된 파이터이니만큼 그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

레슬링이 베이스인 토마는 긴 팔다리를 가지고 있어 그라운드로 들어간다면

두호 형과 정말 박빙의 승부가 될 듯했다.

“전문가들이 50대 50으로 승률을 가르며 박빙의 승부를 언급했다지?”

“네? 네.”

아까 분명 시합 중계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거. 두호의 최근 타격을 못 봐서 한 소리야. 그라운드만 염두에 뒀으니까.

승부처는 아마 2라운드가 될 거다.”

1라운드는 탐색과 빌드업을 위한 라운드라는 건가.

실제로 두호 형은 내가 보기에도 몇 번의 괜찮은 타격 타이밍이 있었지만, 굳

이 무리하지 않고 미끼성 펀치를 던지며 타격의 빌드업을 쌓는 듯했다.

“에이이이!!!! 왜 이렇게 지루해! 어디 샌님들이 소꿉장난하나!!!”

그때 케이지 밖에서 들리는 야유와도 비슷한 외침.

케이지 밖 1열의 관중은 카메라에도 잡힐 만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앉는다.

그 1열의 관중석에서 들린 야유에 고개를 돌려보니.

“...학센?”

나는 누군지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지만 안 코치님의 중얼거림으로 야유의 주

인을 알게 되었다.

학센.

WFC 웰터급 왕좌의 주인.

분노조절장애. 트러블메이커. 도라이 등등. 수많은 부정적 별명이 붙은 파이터.

“학센이 왜 여기 있지?”

조금 전의 외침으로 케이지 밖은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중계 카메라 중 몇 대는 대놓고 학센을 향해 포커스를 맞추기도 했다.

“이거 원! 다음 타이틀전도 별 재미 없는 시합이 되겠어! 둘 중 누가 올라오

든 소꿉놀이 수준이니!”

지루하다는 듯, 한 손으로는 하품을, 다른 한 손으로는 엄지를 아래로 찍어누

르는 제스처를 취하는 학센.

이거 분명 케이지 안에서도 들렸을 텐데. 그냥 경기에 집중하느라 두호 형이

못 듣고 못 봤으면 했지만.

“...”

이미 늦은 듯했다.

토마와 멀찌감치 거리를 벌린 두호 형은 경기장 밖 어수선함의 근원지인 학센

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

세컨드 쪽. 정확히는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리며 뭔가 말을 하는 듯 입술

을 달싹였다.

마우스피스 때문에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한 눈... 팔지 마라?’

대충 그런 말이었던 것 같았다.

1라운드의 남은 시간은 어느새 30초 정도.

두호 형과 토라는 케이지 밖에서 다시 서로를 향해 집중하고 있었고.

-슥. 후웅!

두호 형은 조금 전까지 상대를 탐색 하던 기색을 버리고는 저돌적으로 달려들

며 라이트 펀치를 뻗었다.

거리가 꽤 있었고 펀치의 궤적이 컸기에 토마는 그리 어렵지 않게 두호 형의

펀치를 바깥으로 피해내며 마찬가지로 라이트를 뻗었고.

-휙. 후웅!

두호 형 또한 토마의 펀치를 피해내며 다시금 왼손과 오른손을 뻗어냈고, 토

마는 그중 라이트를 스쳐 맞고는 살짝 비틀거리며 틈을 보였다.

-휙. 슥- 쩌억!

비틀거리는 토마에게 슬쩍 왼손을 뻗어 오른쪽으로 피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상체를 왼쪽으로 비틀며 차올리는 오른발 하이킥.

-쿵!

토마는 레프트를 피하다 정통으로 맞은 오른발 하이킥에 나무토막처럼 쓰러졌

고, 두호 형은 심판을 바라보며 쓰러진 토마를 향해 달려들어 파운딩 자세를

취했다.

-스탑! 스탑!

1라운드 4분 44초.

라운드 종료 16초를 남겨두고 두호 형은 WFC 웰터급 랭킹 3위인 알렌드로 토

마에게 KO 승리를 따내며 이번 시합 과제에 대한 결과물을 보여줬다.

“““와아아아아!!!!!”””

이번에는 학센이 앉은 관중석뿐만 아니라 이곳 체육관의 모든 관중석에서 환

호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메인이벤트에 어울리는 화끈한 타격 KO였다 보니 WFC 진행 측에서도 흥분한

듯 마이크를 잡고 뭐라 뭐라 하고 있었다.

“해서야! 들어갈 준비 해라!”

“넵!”

심판의 승리 판정이 떨어지고 케이지가 열리며 양측 선수의 세컨진과 방송국

카메라들을 반겼다.

나는 미리 챙겨두었던 태극기와 두호 형이 입을 팀 피스트 티. 타월 등을 챙

겨 안 코치님의 뒤를 따랐다.

“이런 졸전이 있나! 수준이 너무 역겨워서 봐줄 수가 없어! 1라운드에 시합이

끝난 걸 다행으로 생각해! 아니었다면 내가 케이지로 들어가 두 녀석을 모두

때려눕혔을 테니까!”

그때 또다시 케이지 밖에서 들리는 학센의 조롱기 어린 외침.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안 코치님의 귀가 닳아 오른 걸로 봐

서 결코 좋은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WFC 측에서도 이런 돌발상황이 당황스러웠는지 검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투입되었지만, 세계 최정상급 격투기 선수를 붙들어두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봐! 토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동양인한테 져? 지금 내 타이틀전을

망치려고 일부러 그런 거야? 이럴 바엔 타이틀전을 망치지 말고 지금 한판 붙

어 노랑이! 난 지금이라도 싸워줄 수 있어!”

뭔가 매우 기분이 나쁜 듯 관중석을 벗어나 케이지 안으로 들어오려 하는 학센.

WFC 측 가드들의 만류에도 막무가내였다.

“이런!”

결국, 케이지 근처까지 다다른 학센을 막는데 안 코치님까지 나서게 되었고.

“뭐야 이 마늘 냄새 풍기는 늙은이는!”

학센은 안 코치님을 향해 뭐라 이야기하며 가드들이 잡고 있던 왼팔을 거칠게

뿌리쳤는데.

-후웅!

가만히 놔두면 분명히 주먹의 궤적이 안 코치님의 콧등을 지나칠 것 같았다.

-텁!

그래서 나는 들고 있던 타올을 바닥에 대충 내팽개치고는 학센의 주먹을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 뭐야 이 냄새 나는 것들은? 최의 코치진인가?”

노리고 휘두른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주먹이 내 손아귀에 잡혀있

자 잠시 당황한 듯 날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학센.

“이것 놔!”

내 손에서 주먹을 빼냄과 동시에 날 밀치려는 듯 오른 손바닥을 뻗는 학센.

나는 뻗어오는 손의 소맷단을 왼손으로 잡아당기며 그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게 유도했고, 그가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몸을 뒤로 잡아당길 때 소맷단

을 놓으며 오른손으로 그를 밀쳐냈다.

-쿠당탕!!

다행히 학센의 뒤에는 WFC 가드들이 몰려있었기에 뒤로 넘어지는 불상사는 피

했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가 놀랄만한 상황이 연출되기엔 충분했다.

“이... 이런 원숭이 새끼가!”

뭔가 아까보다 훨씬 더 화가 난듯한 학센이 내게 달려들려 했지만.

-척

어느새 케이지를 나와 안 코치님과 내 앞을 가로막는 두호 형.

“해서야. 순서는 지켜야지. 저 새끼는 내 꺼 라고.”

*

“이야! 정말 대단하다고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최두호 선수! 아주

경기력이 물이 올랐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렇습니다! WFC 웰터급 랭킹전. 알렌드로 토마 선수를 상대로 1라운드 4분

44초 만에 호쾌한 KO승을 따냈습니다! 시합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문가들이 말

한 승률은 50대 50이었는데요. 해설 위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

스포츠 TV에서 WFC 해설 위원을 맡고 있는 김국현 해설 위원은 캐스터의 질문

에 잠시 조금 전 시합을 되씹었다.

“일단. 최두호 선수의 타격이 놀랄 정도로 발전을 했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번 경기는 최두호 선수가 이기든 알렌드로 토마

선수가 이기든 서브미션으로 승패가 나뉠 거라 생각을 했다. 이 말입니다.”

이후로도 김국현 해설 위원과 캐스터는 한참을 조금 전 시합의 다시 보기를

봐가며 승리의 요인을 찾아 극찬을 멈추지 않았고.

“어? 그런데. 지금 경기장 밖에서 소란이 조금 일어난 것 같습니다.”

“에... 학센 선수에요. 아까 시합 중에도 학센 선수가 카메라에 잡힌 일이 있

었어요. 아무래도 다음 타이틀전의 상대가 정해지는 시합이다 보니 직접 행차

를 한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아까 시청자 여러분들도 보셨죠. 그런데 이런 소란이라니.

WFC 측에서도 뭔가 난감한 것 같습니다.”

“학센 선수는 아주 영리한 선수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시합도

WFC 넘버링 시합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는 시합이에요. 지금 이런 난동

중에도 카메라가 꺼지지 않고 장면을 다 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다음 타이틀

전을 위한 빌드업이다. 그렇게 볼 수 있거든요.”

“다음 타이틀전을 위한 빌드업이다?”

김국현 해설 위원은 잠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숨을 고르고는 다시금 말을 이

었다.

“맞습니다. WFC 타이틀전은 돈이 되는 시합이거든요. 학센은 돈이 되는 시합

을 좋아하기로 유명하구요. 그런데 대전 상대가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최두호 선수가 되자 어떻게든 이슈를 만들어 보려 한다. 그렇게 보여

집니다.”

“이렇게 이슈를 만들어 다음 타이틀전의 PPV 판매를 극대화하겠다. 그렇게 보

면 되는 걸까요?”

“그렇죠.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선수의 시합에서 이런 버리어티한 소요

가 일어났다는 것 자체에 가슴이 벅찹니다. 그만큼 최두호 선수의 위상이 올

라갔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거거든요.”

“어?”

그런데 카메라에 믿지 못할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방금. 학센 선수가 최두호 선수의 코치진을 밀치려다 반대로 밀쳐지는 듯한

장면이 나왔는데요?”

“... 저도 봤습니다. 이거. 다시 돌려볼 수 있습니까?”

김국현 해설 위원 또한 캐스터와 마찬가지로 조금 전 봤던 장면이 믿기지 않

아 다시 보기를 요청했다.

“...저 선수는 강해서 선수로 보입니다. 최두호 선수와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

을 한다고 들었는데 이번 원정에 함께 한 듯합니다..”

“아.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해서 선수는 얼마 전 국내 격투기 단체

인 스트릿 FC의 미들급 챔피언 최창우 선수를 2라운드 만에 격파한 아주 핫한

신인 선수다.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조금 전 학센과의 부딪침에

서 보아도 아주 날카로운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어느새 케이지에서 최두호 선수가 나와 학센과 대치하며 WFC251의 소동은 잦

아들었지만, 오히려 온라인에서는 조금 전 학센을 밀쳐낸 동양인에 관한 이야

기로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 저 친구가 오스만이 말한 그 친구라. 이 말이지?”

“네. 회장님.”

그리고. 그 영상은 WFC251 시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던 WFC의 회장.

텔론의 눈에도 들어갔다.

“오스만 그 친구가 다음 달에 한국 들어간다고 했나? 그 전에 자리 한번 만들

어봐.”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