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26화 (26/203)

26화_따라와

1.

퉁. 퉁.

스텝을 밟는 소리가 꽤나 묵직했다.

브로일러나 WFC는 미국 네바다주 체육위원회를 따라 체급을 선별하지만, FFC

는 독자적인 체급 표를 가지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

물론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진 않지만, 미들급 기준으로 WFC와 FFC의 한계 체

중은 4킬로 정도 될 거다.

거기에 비시즌이라 평체인 것까지 감안하면. 지금 조쉬의 몸무게는 거의 100

킬로에 육박할지도 몰랐다.

-휙. 휙.

견제하듯 뻗어오는 펀치.

확실히 최창우의 그것보다 무거웠다.

실력이 더 뛰어나다거나 정교하다. 이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무거웠다.

“들어간다. 코리안 보이.”

뭐라 뭐라 했는데. 확실히 알아들은 건 코리안 보이뿐이었다.

보이라는 말을 듣기엔 내가 나이가 좀 많은데.

-꿈틀.

날숨 타이밍에 상체를 조금 더 숙였다. 뒷발인 오른발 허벅지에 근육이 섰고

왼쪽 어깨가 열리며 오른쪽 가슴 근육이 팽팽히 당겨졌다.

‘라이트!’

이 모든 전조증상이 조쉬의 오른팔이 뻗어 나올 거라는 걸 내게 알려줬다.

-후웅. 휘익. 뻐어억!

예상한 대로 조쉬는 오른팔을 뻗으며 내게 접근했고, 반시계방향으로 몸을 회

전하며 그대로 팔꿈치를 조쉬의 얼굴이 있을 예상지점에 꽂아 넣었다.

-쿵!

“그만! 그만!”

와. 제대로 꽂혔네.

처음 해보는 건데 이게 이렇게 들어가는구나.

“야. 이 미친놈아! 스파링에서 그렇게 위험한 기술을 쓰면 어떡해!”

안 코치님은 다급하게 케이지 안으로 들어오며 내게 호통을 쳤다.

아니. 이게 이렇게 잘 들어갈 줄 알았냐고요.

그리고 미들급 랭커라면서 맷집이 뭐 이렇게 약해?

“끄으으.”

그래도 영 맹탕은 아니었는지 조쉬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흔들며 자

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의식을 잃었었나?”

뭐라는거야?

그나저나 뭐라 사과를 해야하는데 말을 못하겠네.

이럴 때 준현이가 있었으면 동시통역을 딱! 해줬을 텐데. 아쉽네.

"코치님. 조쉬한테 미안하다고 좀 전해주세요. 제가 다른 격투기 선수랑의 스

파링이 서툴러서 잘 몰랐다고."

"걱정마라."

안 코치님과 링에서 일어난 조쉬는 뭐라 뭐라 이야기하는 듯 하더니 이내 조

쉬가 호탕하게 웃어제끼기 시작했다.

“...코치님. 쟤 왜 저래요? 한 대 맞고 실성했나?”

“백스핀 엘보에 맞고 쓰러졌다니까 그냥 웃네. 미친놈 맞나?”

그렇게 한참을 혼자 웃더니 안 코치님에게 또 뭐라고 말을 하고는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후 케이지를 나서는 조쉬.

아. 뭔가 아쉽네.

한국의 매운맛을 보여주려 했는데, 한 입만 먹이고 못 먹인 기분이었다.

더 먹였어야 했는데.

“미친놈아! 스파링에서 그렇게 위험한 기술 쓰고 그러면 안 돼! 저 친구 매니

저나 코치가 있었으면 정식으로 항의 했을 거다.”

“저는 그런 거 잘 모르니까요... 올라가기 전에 말을 해주지.”

“스파링이 무슨 뜻이냐?”

“...스파링이 스파링이지. 영어 잘하신다고 지금 저 무시하시는 거죠?”

맞네 맞아. 말투가 딱 무시하는 말툰데?

“어휴. 스파링은 시합의 형식을 띤 연습이야. 연습. 부상 위험이 있는 위험한

기술이나, 부위는 때리지도 않는 게 원칙이다. 아마 조쉬 저 친구도 그래서

백스핀 엘보는 생각지도 못했을 거야.”

아. 그래서 저렇게 웃어댔나? 어이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맘모스랑 타격 연습할 때는 뭘 하든 다 받아줬는데.

“어쨌든. 재밌는 경험이라고. 다음에 자기네 체육관에 놀러 오라고 하고는 갔

어.”

“자기네 체육관? 아까는 여기서 운동하고 있더니?”

정리하라니까 인상 찡그렸던 거 아니었어?

“두호 보고 싶어서 일부러 여기서 운동하고 있었대.”

두호 형은 아무래도 WFC 상위 랭커다 보니 해외에 나와도 알아보는 사람이나

일부러 보러 오는 사람도 있구나.

“그나저나. 두호 이놈은 왜 안 나와?”

“제가 가 볼게요.”

그러고 보니 두호 형이 아직도 탈의실에서 나오지 않았...

“뭐야? 왜 거기서 그러고들 있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데리러 가려니까 마침 탈의실 문을 열고 나오

는 두호 형.

“아아. 별거 아냐. 해서 이놈 잠시 스파링 좀 한다고.”

“스파링? 형이랑?”

“야야. 내가 무슨 스파링이야. 조금 전까지 사람 하나 있었어. FFC 랭커라는

놈.”

“그런데 벌써 끝났어?”

“이놈이 백스핀 엘보로 케이오시켰거든.”

“백스핀 엘보? 스파링에서?”

피곤한 듯하던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은 두호 형은 이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잘했다. 잘했어. 그래도 FFC 랭커를 잡았네. 상대측 트레이너는?”

“다행히 없었어. 너 보러 혼자 왔었나 봐. 자기 체육관은 따로 있다더라.”

“그래? 다행이네. 체급은?”

“미들급. 조쉬라고. 찾아보니 FFC 10위권 근처 왔다 갔다 하는 친구네.”

어느새 난 빼놓고 둘만의 세계에 빠진 두호 형과 안 코치님.

“그나저나.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옷 갈아입는데?”

“아? 유안이한테 전화가 와서. 전화 받고 오느라고.”

유안이!

그러면 인정. 인정.

이쁜 딸램의 전화면 폭격이 떨어져도 받아야지.

내 멋진 백스핀 엘보를 못 보여준 게 아쉽긴 하지만 말이야.

“그보다. 해서 너. 그러면 몸은 어느 정도 풀렸겠네?”

“네? 아. 뭐.”

딱히 몸을 풀고 말고 할 정도의 스파링도 아니었지만.

“그럼 들어와 봐. 오랜만에 스파링 한번 하자.”

“형이랑요?”

“그럼? 안 코치랑 할래?”

그런 뜻이 아니잖수.

나는 투덜거리며 스파링 글러브를 다시 끼며 케이지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백스핀 엘보 같은 거 쓰면 안 된다?”

“아! 아까 안 코치님한테 다 들었어요!”

고만 좀 놀려요!

라는 말을 덧붙이려고 목젖까지 끌어올렸는데.

-오싹.

입으로는 농담에 가까운 말을 뱉는 두호 형의 눈을 바라보자 온몸의 솜털이

다 서는 느낌이었다.

이게 시합 직전의 격투기 선수인 건가. 그것도 세계 최정상급의.

살기라던지. 투쟁심이라던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냥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험하고 위태한 느낌.

안 코치님이 신호를 주기도 전에 나는 글러브를 들어 올리며 견제 자세를 잡

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뭐야. 천하의 강해서가 왜 이렇게 쫄아있어?”

“안쫄았거든요? 노인네 시합 전에 괜히 다치게 만들까 봐 걱정하는 거거든요?”

“푸하하. 오케이. 그럼 간다?”

이건 스파링이다.

두호 형은 나처럼 못 배운 사람이 아니니 위험한 공격도. 기술도 쓰지 않을

거다.

타격도 힘을 충분히 빼고 치겠지.

그런데.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내 육감은 지금 이 자리가 ‘위험하다’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퉁.

일단 두호 형과 주먹을 맞댄 후 뒤로 크게 백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벌렸다.

그런 나를 따라 들어오는 두호 형.

-쉭. 쉭

가볍게 견제 식으로 들어오는 라이트를 피해내며 나도 마찬가지로 라이트 훅

을 날렸다. 자세가 구부정한 게 테이크 다운을 노리는 폼이라 머리를 숙이지

못하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텁.

그런 내 라이트 훅을 정말 종잇장 차이로 피해내며 어느새 회수한 오른손을

내 앞다리인 오른발 아래로 밀어 넣는 두호 형.

라이트 훅 때문에 무게중심이 오른발에 가 있어 반응이 한 박자 느렸다.

발을 빼보려 했지만 이미 두호 형의 오른팔이 깊게 들어온 상황. 나는 왼발을

뒤로 쭉 빼며 엉덩이를 낮추고 무게중심을 뒤로 옮겼다.

“합!”

두호 형이 오른발을 들어 올리며 전진 스텝을 밟을 때 타이밍을 맞춰 왼발을

당기며 무게중심을 더 아래로 낮춘 채 양팔로 두호 형의 몸통을 잡아당겼다.

-후웅! 쿵!

뒤로 던지기를 하듯 두호 형을 넘기는 데 성공했나 싶었는데.

“켁! 켁! 탭! 탭!”

어느새 내 오른발에서 팔을 빼낸 두호 형은 뒤로 넘어가면서 내 목 양팔로 조

르며 다리로 내 몸통을 감싸 안았다.

“후우. 와. 해서 너 진짜 많이 늘었다. 살 조금만 더 빼고 스피드 조금만 더

좋았으면 위험할 뻔했어.”

“진 건 진 거죠.”

알면서도 당했다.

은연중에 나 정도 재능이면 체급이고 실력이고 다 무시하고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두호 형의 바디 컨트롤도 대단한 수준이었고, 바디 컨트롤이 비슷

한 수준이다 보니 승패는 기술의 정교함에서 차이가 났다.

물론 나도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지만... 전력을 다한다고 결과가 달라졌을까

싶었다.

“에이. 스파링이라 네가 제대로 타격을 안 쳐서 이긴 거지. 어때. 이번에는

타격만으로 한 번 더?”

“하. 오케이 콜.”

그렇게 우리는 나머지 코치진들이 오기 전까지 스파링을 계속했고, 나는 간접

적으로나마 ‘세계’의 수준을 엿볼 수 있었다.

높긴 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높이는 아닌 그곳을.

*

-169.8lbs

-와아아아!!!

드디어 두호 형의 시합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시점.

두호 형과 상대 선수는 WFC의 계체량 일정에 맞춰 기자들의 플래쉬 세례를 받

으며 체중계 위에 섰다.

결과는 두말할 것 없이 통과.

평소의 성격과는 달리 체중계 위에서 근육을 과시하며 포즈를 취하는 두호 형

을 보며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어렵게 감량했는데 혹시라도 계체에 실패하면 큰일이었으니까.

두호 형의 상대는 WFC 웰터급 랭킹 3위인 알렌드로 토마.

딱히 트래쉬 토크를 즐기거나 요란한 걸 즐기는 성격은 아닌 듯했다.

내일 있을 두호 형의 시합은 WFC 251.

넘버링이 붙은 시합이라는 건 충분히 이슈 요소가 있는 매치라는 건데, 두호

형이나 토마에 대한 이슈라기보다는 현 WFC 웰터급 챔피언에 대한 이슈가 컸다.

최창우와 비슷한 트래쉬 토크와 분노조절장애성 트러블들로 세계적인 돌아이

취급을 받는 WFC 웰터급 챔피언 학센.

내일 시합의 승자가 학센과 타이틀전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주목

을 받고 있는 거다.

두호 형과 토마는 계체가 끝난 뒤 주최 측의 요청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파이

팅 포즈 정도를 취한 뒤 무대를 내려갔다.

“두호야. 여기 음료.”

“오케이.”

“바로 숙소로 가자. 일단 가면서 이것부터 좀 먹고.”

안 코치님은 이온 음료와 바나나를 꺼내 두호 형에게 건넸다.

바나나가 당을 보충할 수 있으면서도 위에 크게 무리 가지 않는 음식이라 계

체 직후에 많이들 먹나 보다.

“해서야. 가방.”

“넵!”

내가 들고 있는 가방에는 스폰서 회사에서 제공한 여러 액상과당 및 미네랄

비타민 등의 보충제 음료가 가득 들어있었다.

두호 형은 이걸 이제부터 조금씩 끊어가며 내일 시합 전까지 모두 섭취할 거다.

“숙소에 국밥 뜨끈하게 끓여놨을 거다.”

“좋지.”

보통 감량 이후 음식을 바로 먹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소화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어있는 위에도 부담이 되기 때문.

하지만 두호 형은 계체 이후에 돼지국밥을 먹는 게 일종의 루틴 같은 거라고

했다.

“진짜. 드디어 내일이네요.”

나는 에너지 보충 음료를 하나 꺼내 두호 형에게 건네며 설렘 반 걱정 반 섞

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 지옥 같은 고통의 보답을 받는 날이지.”

두호 형의 대답은 이 후덥지근한 공기만큼이나 뜨겁고. 무거웠다.

2.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여기는 WFC 251 시합이 펼쳐지는 싱가포르 실

내 체육관입니다! 오늘의 관전 포인트는 아무래도 메인 이벤트인 웰터급. 슈

퍼 코리안 최두호 선수와 알렌드로 토마 선수의 시합이겠죠?

-맞습니다! 흔히 말하는 넘버링 시합의 메인이벤트로 대한민국 국기를 단 최

두호 선수가 뛴다는 것에 저는 정말 감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뭐야. 중계하는 아저씨 말투가 대체 왜 저래?

-전문가들은 최두호 선수와 토마 선수의 승률을 50대 50으로 평가하며 박빙의

승부를 예상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 토마 선수는 동양인인 우리 최두호 선수보다 팔이 길기 때문에 그 거리

를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관건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

습니다.

삑.

스마트 폰으로 보던 유료 중계를 꺼버렸다. 도저히 볼 수가 없네.

WFC 넘버링 대회는 정확히는 pay per view라고 해서. 미국의 FOX사를 비롯해

각국의 대형 방송사에서 중계한다.

유료 중계인 만큼 해설진의 생생한 설명을 듣고 싶어 거금을 들여 채널 가입

을 했는데 이런 해설이라니. 욕 좀 먹겠다 싶었다.

“해서야! 뭐하냐!”

“아! 갑니다!”

안 코치님이 불러서 달려가 보니 어느새 두호 형이 입장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똑바로 안 따라다니냐?”

하루 사이 충분히 리바운드에 성공해 피부부터 광이 나는 두호 형이 웃으며

내게 말 했다.

“죄송함다!”

“뒤처지지 말고. 바짝 따라붙어. 내가 앞장설 테니.”

“넵!”

마침내 문을 열고 나서는 두호 형.

나보다 한발 앞서. 세계로 향하는 걸음을 뗐다.

바로 옆에 있는데.

항상 같이 운동하는 사람인데.

지금, 이 순간에는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멀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해서야.”

“넵!”

그때. 돌연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날 바라보는 두호 형.

“오늘 내 시합에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마라. 세계와. 그 세계를 씹어 먹는

법까지 알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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